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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0화 (30/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0화

와아아아아!!

천지를 울리는 고함과 함께 비명이 섞이며 울려 퍼진다.

“막아! 젖 먹던 힘 다 쥐어 짜내서 막아라!”

“여기가 뚫리면 끝이다! 저 더러운 오스만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라!”

필사적으로 성벽을 지키는 자들과.

“뚫어라! 술탄을 위하여!”

“이 지긋지긋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성벽을 뛰어넘으려는 자들.

두 거대한 집단이 충돌하며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창과 칼이 부딪치고,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피와 비명, 죽음이 난무했다.

“반드시 뚫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견뎌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공방전을 끝내기라도 하듯 오스만은 총공세를 펼쳤다. 그에 화답하듯 동로마 방어군도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웠다.

특히나 성벽 위의 50명이 넘는 컬렉터들의 활약은 눈부시기까지 했다.

“하압!”

“다 죽어라!”

컬렉터들이 스킬 하나를 쓸 때마다 성벽을 올라오려는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이 휩쓸려 나갔다.

이곳에 모인 컬렉터들은 전부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이다.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서로 굳이 경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황에 바쁘게 돌아가는군.’

그 상황을 지켜보던 유현은 컬렉터들을 보며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성벽이 워낙 넓고 적들이 많다 보니, 컬렉터들은 서로 공을 나누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만으로는 벅차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젠장!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잖아!”

“심지어 이 녀석들 텍스트도 안 주는데?! 이거 제대로 온 거 맞나?”

“거기 주둥이 나불댈 시간 있으면 스킬이라도 한 번 더 써!”

처음 컬렉터들의 공세는 한여름의 태풍처럼 매서웠다.

자신이 화려한 모습을 보일수록 성령들이 좋아했고, 후원받는 포인트가 높아진다.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두각을 보여야 하는 곳이었고, 컬렉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해 싸웠다.

“허억! 허억! 이, 이거 언제 끝나는 거지?”

“젠장. 저길 봐. 아직도 끝이 없어.”

하지만, 전투가 지속할수록.

컬렉터들은 점점 힘에 부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처음에 너무 힘을 낭비했어. 조금 길게 봐야 했는데.”

“서, 성령님들! 아닙니다! 저 아직 안 지쳤습니다! 더 할 수 있다고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초반에 급하게 달린 컬렉터들이 지쳐서 헐떡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화려함만 강조해서 스킬을 마구 난사한 대가였다.

유현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쪽은 벌써부터 조기 탈락이군. 반면…….’

강혜림은 아직 지친 기색이 없이 날뛰고 있었다. 그녀는 성벽 위를 돌아다니며 벽을 넘어오는 자들을 집중적으로 처리했다.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다. 한칼에 한 놈. 그녀는 매우 효율적으로 적을 쓰러뜨리면서도, 다른 컬렉터들에게 화려함도 뒤지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인데도 시선을 확 잡아끄는 매력이 넘쳤다.

‘아직까지는 괜찮군. 다른 서재 쪽은 지금 어쩌려나.’

유현은 관조자의 방에서 벗어나 [합동 서재 구역]으로 이동했다.

보통 텔러는 개인의 방에서 지켜보지만, 이번처럼 다수의 서재가 동시 시화를 할 경우에 이러한 특수 구역이 생성된다.

그런 합동 구역에는 이미 몇몇 텔러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자못 심각한 시선으로 자신의 컬렉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아. 그러게 내가 초반부터 힘을 빼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이딴 놈을 계약자라고 놔둬야 한다니.”

“아, 아닙니다. 성령님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몇은 아직 여유를, 반대로 몇몇은 벌써부터 탈락의 위기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어금니가 길게 자란 호랑이 머리의 텔러, 게리그스 정사원은 후자에 속했다.

‘이런 빌어먹을! 그렇게 자신 있다고 초반부터 힘을 낭비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잖아!’

그는 화면 너머에서 빌빌거리는 자신의 컬렉터를 향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미 자신의 서재 성령들의 여론은 최악인데, 여기에 불을 지필 수는 없었다.

[ㅉㅉ 결국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그래도 나름 싹수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인 듯?]

[아직 멀쩡한 놈들 몇몇 남아 있으니, 다른 데나 갑시다.]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시청령의 숫자에 게리그스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남아 있는 시청령들도 하나둘 떠나갔다.

[거 뭐냐, 검후 서재는 어떰?]

[보니까 아직 쌩쌩하던데?]

[ㅇㅋ 거기로 간다.]

‘검후!’

게리그스도 검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번 합동 시화에 있어서 가장 다크호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서재가 아니던가.

그의 시선이 [합동 구역]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곧바로 강유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젠장. 여유가 철철 넘치는구만. 최근 갑자기 잘나간다고 뻐기고 있기는!’

그는 유현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쏘아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현만 계속 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남아 있는 성령들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이 멍청아! 어서 싸워! 성령님들 떠나시는 거 안 보여?!”

-이런 제길! 나라고 그러기 싫은 줄 알아? 힘든 걸 어떡해!

“처음부터 날뛸 때부터 알아봤다!”

-뭐? 애초에 화려하게 행동하라고 한 게 누군데!

계약을 맺은 컬렉터와 텔러 사이의 불화. 이것은 단순히 게리그스의 서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점 지쳐 가는 컬렉터들과 그들을 닦달하는 텔러들이 늘어나는 추세였으니까.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점점 지쳐서 쓰러지는 컬렉터들과 달리 강혜림은 아직 쌩쌩하게 날뛰고 있었다. 체력 배분을 잘한 덕분인지, 그녀는 아직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다른 컬렉터들과 차이를 벌린 덕에 유현의 서재에 점점 새로운 성령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백모의 짐승이 서재에 입장합니다.]

[포기 않는 수행자가 서재에 입장합니다.]

[질투에 벼려진 왕녀가 서재에 입장합니다.]

[…….]

…….

순식간에 쭉쭉 치솟는 시청령들의 숫자.

강혜림이 사상세계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300명 정도였던 시청령은 어느덧 500명을 넘었다.

[현재 시청령: 512]

“어서 오십시오 성령님들. 검후전기의 시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새로 온 성령들이 이곳의 분위기에 마음에 들어 합니다.]

[일부 성령들이 너무 북적인다고 불편해합니다.]

갑자기 수가 확 늘어서 메시지 창이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유현은 양해를 구하며 메시지를 슬로우 모드로 바꾸고 다시 시화에 집중했다.

시청령의 수가 늘어나고 후원도 그만큼 늘어나서 기뻐할 일이었지만, 유현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지만, 그녀도 결국 한계를 맞이할 거야. 당장 초반에 비해서 움직임이 굼떠지는 게 보일 정도야. 지금이야 다른 컬렉터들도 버텨 주지만, 균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순간 전황은 크게 바뀌어.’

병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당장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는 있다지만.

“만약,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겁니까?”

유현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전투가 길어졌다. 지친 컬렉터들 사이에서 부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름 팀이랍시고 뭉친 컬렉터들도 제 살길 도모하기 바빠졌다.

“아악! 젠장! 누가 치유 좀 도와줘!”

“이런 씨!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 못 싸우겠으면 꺼지던가!”

“뭐, 이 새끼야?! 같이 편먹자며!”

검에 팔을 크게 베인 컬렉터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변 컬렉터들은 그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다.

알아서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도움을 줄 여유가 없었다.

유현은 그 광경을 그저 담담하게 지켜봤다.

“혜림 씨는 괜찮으십니까?”

-후우. 아직 할 만해요.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괜찮아요. 더…… 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강혜림도 점점 숨이 차는 게 보였다.

전투가 시작되고 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면 너머 성벽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 * *

콰과과광!

“끄아아아악!”

“아악! 살려 줘!”

강혜림은 순간 세상에 한차례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성벽이 크게 흔들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울리며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붕괴하는 성벽에 휩쓸린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은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일 없이 성벽의 잔해와 함께 파묻혔다.

순간 먹먹해졌던 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지? 강혜림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성벽, 성벽이…….”

든든하게 적들을 막아 주던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대체, 무슨 일이…….”

-대포입니다.

당혹스러워하는 강혜림의 귓가에 유현의 소리가 들려왔다.

“대포요?”

-네. 우르반 거포. 실제 역사에서도 오스만 제국은 성벽을 공략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위력의 대포를 가져왔죠. 지금 그걸 쏜 겁니다. 몇 번 못 쓸 물건이지만, 성벽을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던 거죠. 앞으로 더 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성벽이…….

유현의 말대로.

오스만 정병들은 무너진 성벽의 사이로 물밀 듯이 쏟아져 왔다.

“막아라! 놈들을 막앗!!!!”

“지원 병력! 어서 이쪽 입구를 막아!!!!”

수비 측 지휘관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뚫린 성벽으로 밀려오는 오스만 병사들과 그곳을 지키려는 로마 병사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혼돈의 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성벽을 끼지 않은 채, 싸우는 두 집단의 전력 차는 명백했다.

가까스로 유지하던 전장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이었다.

“야, 야 이거 어떡해?”

“하, 씨. 이대로 있으면 다 죽게 생겼는데.”

그 광경을 보던 컬렉터들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성벽을 끼고 싸워서 겨우 버텼는데, 성벽이 무너졌다? 이제 가망이 없었다.

“겁먹지 마라. 로마의 후예들이여! 마지막 한 명까지 맞서 싸워라!!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호위대들과 함께 적들을 막아서던 황제가 직접 일선에 서며 외쳤다.

지휘관인 그는 이 절망적인 순간에 포기할 법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검을 쥐었다. 그 광경에 고무된 로마 병사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광경이 몸집이 약한 짐승이 필사적으로 덩치를 부풀리려는 발악으로밖에 비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용병들이여! 부디,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게!”

드라가시스는 이마에 피가 섞인 땀을 닦아 내며 컬렉터들에게 외쳤다. 그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네! 부디, 내 백성들을! 나의 조국을! 지켜 주게!”

드라가시스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는 컬렉터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눈치를 보기만 할 뿐.

그들은 단지 포인트를 벌기 위해 이곳에 왔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크아아악!

아악! 살려 줘!

그러는 사이에도 살육은 계속됐다. 붕괴된 성벽 부근이 시체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강하게 부는 봄바람마저 피 냄새를 완전히 씻어 내지 못했다.

강혜림은 숨을 몰아쉬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죽어! 죽으라고!”

“사, 살려!”

피와 죽음이 난무한다.

그녀는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여태 사상세계에서 해 왔던 싸움은 어린아이 장난이라고 말하듯, 대규모로 벌어지는 전쟁은 수준을 달리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어!’

컬렉터들이 힘을 합친다면, 무너진 성벽의 적들을 몰아내고 방어선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가 뭐라고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나, 나는 못 해! 난 여기까지 하겠어!”

한 컬렉터가 그렇게 외치더니, 바깥과 아직 유지되고 있는 출구를 통해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강혜림은 머리가 하얗게 물드는 걸 느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다 함께 힘을 합치지 못할망정 도망친다면……!

“이, 이런 제길! 나도 포기하겠어!”

“나도!”

“나도! 젠장! 애초에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다고! 이렇게 빡셀 줄 누가 알았겠어!”

한 명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 그 뒤를 이어 다른 컬렉터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강혜림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한 컬렉터를 붙잡으며 외쳤다.

“지금 당신들이 다 떠나면, 수비는!”

“수비는 무슨 수비! 지금 다 죽게 생긴 거 안 보여?!”

“무슨…….”

“이봐. 그쪽이 아직 컬렉터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애초에 여기는 이런 곳이라고! 괜히 다들 실패한 줄 알아? 그냥 적당히 버티다 안 되면 도망치면 그만이야.”

“그, 그건…… 여기를 지키는 병사들은…….”

“병사? 하! 어이가 없군. 여기 있는 놈들은 그저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야! 다 가짜라고! 그런 놈들이 싸우다 얼마나 죽든지 말든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 뒤질 거면 혼자 뒤지라고!”

강혜림은 자신의 손을 뿌리치는 컬렉터를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대거 탈주에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다들 저마다 목표를 위해 컬렉터가 되고, 사상세계에서 싸우던 게 아니었던 건가?

강혜림은 황망한 표정으로 전장을 살폈다.

전선이…… 밀리기 시작한다.

“용병들이여! 어서 지원을!”

저 아래에서 드라가시스의 애처로운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강혜림의 시선이 출구로 향하는 게이트와 무너진 성벽 아래를 번갈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떨렸다.

‘나는 어쩌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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