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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21화 (2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21화

“매니저요?”

“네.”

아연해하며 묻는 강혜림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컬렉터에게 있어서 매니저 역할이라 한다면 보통은 텔러를 떠올린다. 그 말이 맞기는 하다. 나도 어떻게 보면 강혜림의 매니저에 가까우니까.

이 하계 바깥의 일을 처리하는 매니저라는 것이 다르다는 거겠지.

“저라고 혜림 씨의 모든 것을 다 처리해 줄 정도는 아닙니다. 당장에 저는 제 서재를 가꾸는 것도 벅차거든요. 이 바닥의 일은 이쪽의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네?! 거짓말! 유현 씨라면 다 할 줄 아시면서!”

“대체, 절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음. 뭐든지 알고, 뭐든지 할 수 있는 팔방미인?”

“저는 그런 만능 엔터테이너가 아닙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죠.”

그래도 강혜림이 나를 꽤나 좋게 평가해 주고 있는 점은 고맙다. 아니, 오히려 내게 기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뭐가 어찌 됐든, 혜림 씨가 이 세상에서 컬렉터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매니저가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그녀가 몸을 담을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클랜은 별로 신가요?”

“클랜은 안 됩니다.”

유명한 컬렉터는 연예인과 같다. 연예인들이 소속사에 들어가는 것처럼 컬렉터들도 저마다 매니지먼트나 클랜에 들어간다.

소규모 단위로 운영되며 소수의 사람으로 활동하는 매니지먼트.

반대로 클랜의 경우에는 거대 기업의 후원에 힘입어 큰 규모로 활동하는 곳이었다.

강혜림은 내게 후자의 가능성을 권하고 있었다.

“왜요?”

“클랜은 보통 규모가 크죠. 어지간한 규모는 클랜이라는 이름조차 붙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그곳에 소속된 컬렉터들도 많고, 텔러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텔러는 내게 있어서 상급자나 다름없다. 강혜림이 만약 어느 클랜에 소속되게 된다면, 나 또한 해당 클랜과 협약하는 텔러와 마주하게 된다.

“좋든 싫든 간에 그들과 부딪치게 되겠죠. 그들은 자신이 이쪽의 선배라는 권위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 할 겁니다. 내부 사내 정치에 휘말릴 테죠.”

“아…… 그건 확실히 좀 그러겠네요.”

“물론, 거대 클랜의 경우에는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혜택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곳의 거대 클랜은 천체주식회사로 치면 특정 부서에 소속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혜택이야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런 혜택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많았다.

“혜림 씨와 제가 보여 주는 이야기는 오롯이 저희만의 것이어야 합니다. 거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의 숟가락을 얹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소규모로 운영되는 매니지먼트다.

물론 그쪽에서도 이쪽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그건 계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중요한 건 지금 강혜림에게는 현실의 그녀를 받쳐 줄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거다.

“언제까지 이런 좁아터진 방에서 지내실 건 아니잖습니까. 저는 포인트를 많이 벌게 해 주지, 현금을 많이 벌게 해 주지 않습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매니저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보다 더 떳떳하게 살죠.”

“네. 유현 씨 말이 맞아요.”

현실의 금전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강혜림의 눈이 진지하게 빛났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집중을 하시는군요.”

“아, 아닌 데요오.”

“됐습니다. 아무튼, 혜림 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는 매니지먼트를 찾을 필요가 있으니. 여기에 집중하도록 하죠.”

“혹시, 미리 생각해 둔 곳이 있나요?”

“글쎄요.”

나는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둔 곳은 있지만, 과연 지금 이 시간대에 내가 생각하던 그곳이 실제로 존재할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확률이 높으니, 걸어볼 만했다.

그 순간이었다.

“……!”

나는 멀리서 느껴지는 기묘한 파장에 표정을 굳혔다.

“유현 씨? 왜 그러시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볼일이 있으니, 나갔다 오죠.”

“네?”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곧바로 [제네시스의 가호]를 이용해 장소를 옮겼다.

* * *

강유현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고시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의 허공이었다.

마천루들이 아래로 펼쳐진 아찔한 상공. 그곳에서 강유현은 자신을 멀리서 호출한 상대와 마주 봤다.

“누구십니까?”

상대는 꼬장꼬장한 모습을 한 긴 수염을 기른 중년이었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긴 콧수염을 슬쩍 쓰다듬기만 했다.

강유현을 살펴보는 그의 시선은 어딘가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해 보였다.

“누구냐고 묻지 않습니까.”

“버릇없는 놈이로군.”

상대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유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유현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쯧쯧. 아가엘님은 대체, 이 녀석의 뭘 보고 직접 부르라고 하신 건지.”

“…….”

“뭐, 아무튼 부르니 와서 잘 됐다. 네놈이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신입 사원이겠지? 내가 친히 네놈을 보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네놈에게 우리 펜타그램 부서에 들어올 수 있는 영광을 주기 위해서였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말에 강유현의 이마는 이 이상 찌푸려질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멋대로 이쪽을 부른 것도 모자라,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멋대로 자기 용건만 말하다니.

강유현은 최대한 심정을 다스리며 조용히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나? 나를 말하면 펜타그램 부서 소속의 진풍이다. 네놈의 선배 되시는 분이지.”

“……그래서 진풍 선배님께서는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유현이 잡아떼며 말하자 진풍의 눈썹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않고 곧바로 호통을 내질렀다.

“건방진 놈! 감히, 선배가 하는 말을 뭐로 들었단 말이냐!”

“후배가 귀가 좀 좋지 않아서 말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쯧. 형상을 빨리 갖췄다만, 이름조차 없는 녀석이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죄송하지만, 제게는 강유현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유현이 툭 쏘아붙이듯 말하자, 진풍의 동공이 순간 확장됐다.

‘벌써, 이름을 가졌다고?’

진풍은 혹시나 유현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텔러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 생각을 접었다.

‘설마, 정말로 이름을 가졌다고?’

보통 텔러가 이름을 얻는 것은 모습의 개화가 끝난 뒤다. 평균적으로 첫걸음 미션 이후 3주는 걸렸다.

진풍의 눈동자에 질투의 빛이 서렸다. 자신도 3주 이상이나 걸리던 것을 유현이 단번에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크흠. 네놈의 이름은 내 알 바 아니다. 이 선배님이 부르면 부르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될 것을 붙이는 말이 쓸데없이 길구나.”

“…….”

유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진풍은 애초에 유현의 의견이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의 목적은 그저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네놈은 그저 잠자코 우리 펜타그램 부서에 들어오는…….”

“싫습니다.”

“뭣?!”

유현의 똑 부러지는 대답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진풍이었다.

그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감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유현에게 괘씸함을 느꼈다.

“지금 뭐라고 말했느냐?”

“들어가기 싫다고 말했습니다만? 그걸 다시 말해 줘야 알아듣습니까?”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선배님이야말로 건방이 하늘을 찌르시는군요.”

“이, 이노옴! 지금 네가 감히 누구한테……!”

“누구긴 누구야. 알량한 권위와 직위만 믿고 까부는 꼰대 같은 텔러에게 한 소리지.”

유현의 싸늘한 말에 진풍은 몸을 움찔했다. 그는 이제 최소한의 예의를 위한 존대조차 하지 않았다. 진풍은 머리를 굴리며 유현의 당당함의 근원지를 찾으려 애를 썼다.

‘뭐지? 이 녀석은 대체 뭘 믿고 나에게 저렇게 구는 거지? 그 어떤 부서에도 소속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 사이에……?’

하지만, 진풍이 걱정하던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다.

유현은 진풍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 속내가 뻔히 보여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어디 부서에 소속이라도 된 게 아닐까 걱정이라도 했어? 혹시라도 다른 부서를 잘못 건드려서 일이 틀어지면, 본인이 경을 치게 될 테니까?”

“그, 그게 무슨…….”

“뭐, 굳이 말하자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애초에 나는 지금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니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진풍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유현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자식이 감히 선배님께……!”

“선배면 선배답게 굴어야 선배 취급을 해 주지.”

“……!”

진풍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유현은 그런 진풍이 한심스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선배? 그래. 기수만 따지면 분명 내 선배가 맞겠지. 그런데, 그 정도나 해 먹고도 아직도 대리조차 달지 못한 ‘사원’이 감히 선배의 자격을 운운해도 되는 건가?”

“……!”

이전까지 분노에 가득 찬 진풍의 표정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드러났다.

“그, 그걸 어떻게…….”

“왜?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진풍 사원? 웃기는 이야기로군. 같은 직급끼리 선배 후배를 논하다니. 우리 천체주식회사는 오직 ‘직급’에 의해서만 선후배가 나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천체주식회사는 오직 실적으로 승부한다. 서로 경쟁하고 싸워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실적만 내면 우수한 대접을 해 주는 곳이 바로 천체주식회사였다.

그리고 우수함을 증명하는 증표는 오직 직급뿐이었다.

아무리 진풍이 유현보다 더 오랫동안 시화실 텔러로 일해 왔다 하더라도, 대리를 달지 못한 그는 결국, 정사원인 유현과 동급이나 마찬가지였다.

진풍의 눈동자가 바쁘게 굴러갔다.

‘놈이 어떻게 그 사실을……?’

유현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텔러다. 그리고 보통 이때의 텔러들은 아직 본사의 규칙에 익숙지 않아 직급이 같아도 다른 기수 텔러를 선배라고 어려워한다.

진풍은 그 부분을 이용해서 유현을 겁박해, 강제로 자신의 부서로 끌고 오려고 했다.

그 시도가 시작과 동시에 좌초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왜? 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해?”

유현은 진풍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습게 보였겠지. 그래도 나름 천재라는 소리 들어서, 시작과 동시에 모습을 갖추고 이름까지 가지고 있다지만, 그래 봤자 신참이니까. 그냥 좀 뭐라고 말하면 알아서 기어들어 올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 이놈이 건방지게! 내가 소속된 부서가 어디인지나 알고 지껄이는 거냐!”

“이제 본인이 할 말이 없으니, 등에 업은 부서의 위광을 빌리는 건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군. 그러니 그 나이 먹고도 사원의 딱지를 못 벗어나지.”

“이익!”

아무리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을 모토로 삼은 유현이라 하더라도, 항상 웃으면서 남을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진풍처럼 저렇게 강제적으로 자신을 방해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찍어 눌러야 한다.’

특히나 저런 자들은 이쪽에서 굽신거리면 오히려 기세등등해져서 더 기어오른다. 그걸 막으려면 찍소리도 못하게 짓밟아야 했다.

“진풍. 가서 전해. 나는 절대로 네놈과 같은 부서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너한테 이 일을 사주한 텔러에게도 전해라. 적어도 나를 데려가려면, 보는 눈이 있는 텔러를 부르던가 아니면 본인이 직접 오라고.”

유현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었다.

자신의 서재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됐고, 성령들 사이에서 작게나마 소문이 퍼지는 순간, 다른 텔러들이 다 알아차렸을 테니까.

저기 있는 진풍처럼 사리가 어둡고 자신의 직위만 믿고 까부는 놈만 아니라면, 지금 유현의 성장세가 무시무시하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의 부서로 영입하고자 하겠지.

“네놈…… 그 말을 후회하지 않으렷다?”

진풍은 이를 악물며 유현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자신의 등 뒤에는 시화실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으며, 이들과 척을 지면 앞으로 시화실 생활이 힘들 거라고 돌려서 협박하는 것이었다.

유현은 그 가당찮은 협박에 피식 웃었다.

“이 지구에 이런 속담이 있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까? 괜찮다마다. 어차피 댁같이 만년 사원에만 머무는 녀석이 있는 부서라면 그 수준은 보지 않아도 알겠으니까.”

“이, 이 자식이……!”

오랫동안 사원의 자리에 머무른 것은 진풍에게 있어서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역으로 자신의 능력보다는 부서의 위광에 매달렸다.

부서의 힘이 곧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자신이 뭐라도 된 것마냥 행동해 왔다.

유현은 그런 진풍의 약점을 대놓고 지적하고 후벼 팠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꺼져.”

진풍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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