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0화
전생에서도 여러 컬렉터가 미궁 라비린토스 클리어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클랜이나 팀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미궁의 주인인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리지 못해서? 녀석의 존재감에 겁을 먹고 도망쳐서? 혹은 미궁으로 들어온 입구를 찾지 못해 당해서?
아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클리어 방법을 찾지 못해서였지.’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려도, 실타래로 미궁을 다시 되돌아와도.
라비린토스 사상세계는 그들이 틀렸다고 비웃듯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라비린토스가 관심에서 잊힐 무렵, 어느 날 한 컬렉터가 이곳의 클리어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막대한 보상과 함께 이곳에 숨겨진 [히든피스]까지 챙겼지.’
본래 그는 스캐빈저(Scavenger)였다. 다른 컬렉터들이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걸 몰래 확인하고, 혹시 무언가 챙길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몰래 숨어들어 온 좀도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대체 뭘 찾았기에 혼자서 이곳을 클리어 했던 걸까?
“바로 이겁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깃털을 하나 주워들며 말했다.
“이 라비린토스의 클리어 방법은 토벌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이 미궁을 탈출하는 것이죠. 바로, 이걸 이용해서 말이죠.”
“깃털? 그보다 탈출이라면 오면서 풀어 놓은 실타래를 따라가면…….”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왔던 입구로 돌아가는 것에 가깝죠. 혜림 씨. 미궁이나 미로는 본디 입구와 출구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출구가 어디라는 거죠?”
“저기요.”
나는 손가락을 들어 천장에 뚫린 구멍을 가리켰다.
높이가 30m나 되는 구멍이었다.
“바로, 저기가 라비린토스의 출구입니다.”
“……잘 모르겠네요.”
강혜림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다른 성령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의 궁금함을 해결시켜 주기 위해 친절하게 설명을 이었다.
“다이달로스에 관해서 아십니까?”
“이 미궁을 만든 제작자라고 들었어요.”
“그는 천재적인 발명가였습니다. 이런 복잡한 형태의 미궁을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절대로 누군가 탈출해서는 안 되는 이 미궁을 탈출한 자가 있었다는 거죠.”
바로, 영웅 테세우스였다.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은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라비린토스를 탈출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 아리아드네가 사용한 실타래 방법은, 다이달로스 본인이 알려준 점이었다는 거다.
“미노스 왕은 노발대발하며 다이달로스와 그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둬 버립니다. 설계도는 불탔고, 실타래의 방법조차 사용할 수 없었죠. 다이달로스 부자는 영원히 이곳에 갇혀 지낼 신세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기가 막힌 탈출 방법을 하나 찾게 된다.
“아!”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강혜림도 알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날개!”
“맞습니다. 다이달로스는 저 위에서 떨어진 깃털들을 주워 담아 밀랍으로 이어 붙여,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죠.”
그렇게 날개를 얻은 두 부자는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미궁에서 탈출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이번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인 겁니다.”
[대다수 성령이 당신의 지식에 감탄합니다.]
[500TP를 후원받았습니다.]
역시나.
성령들은 시각적인 즐거움 말고도 지적인 충족감을 좋아한다. 나는 그 점을 노려서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설명했고, 덕분에 포인트를 벌 수 있었다.
클리어 조건을 찾았으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강혜림은 곳곳에 떨어진 깃털들을 주워 한곳에 모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아앗!
깃털 조각들이 빛과 함께 저절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칙칙한 갈색이었던 깃털들은 하나로 뭉치더니 이내 새하얀색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쌍의 날개. 사실상 이곳에 널린 깃털들 자체가 히든피스였던 것이다.
[이카로스의 날개]
하늘을 노리다 추락해 버린 이카로스가 사용했던 날개입니다. 그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서 사용자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등급: 레어
-하루에 한 번 [비행]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매력, 민첩 소폭 증가
[비행]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일정 고도 이상은 오르지 못합니다. 30분 동안 지속됩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아이템이었다.
등급도 흔히 볼 수 없는 레어인 데다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니.
물론, 원전 이야기를 생각하면 하늘을 나는 데도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 30분 동안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은 강혜림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더 달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모를 공중전에 써먹을 수도 있겠군.’
나는 진심을 담아 손뼉을 치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히든피스를 얻으셨군요.”
히든피스(Hidden Piece)
[차원 상점]에서도 팔지 않고, 오직 사상세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아이템들을 일컫는 말이다. 등급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효과 자체만으로도 동급의 아이템보다 월등한 성능을 지니고 있는 게 보통이다.
“세상에.”
강혜림도 자신이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히든피스를 얻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러다 이내 내 눈치를 살피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뻥긋거리며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일전에 알려 준 그 말. 하셔야죠.’
“…….”
내가 뭘 말하는지,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 눈치를 살핀 것이었고.
나의 은근한 압박에 강혜림은 조금 망설이다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운이 좋군.”
약속의 대사를 읊었다.
* * *
[사상세계 ‘라비린토스 미궁’을 클리어 했습니다.]
[4,000TP를 획득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당신은 사상세계를 혼자서 클리어 했습니다.]
[1,500TP를 추가 획득했습니다.]
[사상세계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깃듭니다.]
[‘지형감지’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탯이 상승했습니다.]
강혜림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했고, 그와 동시에 사상세계가 무너지듯 사라졌다.
이전 코볼트 광산보다 더 많이 주어지는 포인트와 텍스트. 사상세계를 구성하던 텍스트의 일부는 그대로 강혜림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일부 텍스트를 획득해 [검후전기]의 두 번째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들에게 내 서재를 제대로 증명했다는 사실이지.’
내가 지닌 서재, 그리고 내가 보여 준 [검후전기]라는 이야기.
그것을 이어 나가는 주인공인 강혜림과, 그녀를 보좌하는 나 강유현이라는 텔러를.
오늘을 기점으로 성령들은 뚜렷하게 각인했을 것이다.
‘이번에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릴 때 보여 준 퍼포먼스가 컸어.’
검기의 각성.
그로 인해 단일로는 상대하기 힘든 보스급 환상체를 쓰러뜨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당시 내 서재에 있었던 성령들을 휘어잡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강혜림은 성격은 둘째치고서 외모만 보면 눈이 확 뜨이는 미녀였다.
당연히 일부 성령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은 있었다. 이건가?’
오히려 투자한 포인트 이상의 것을 벌어들이고 말았다.
나는 시스템 창을 열어 내 서재 현황을 살폈다.
[최대 시청령: 162]
[현재 구독령: 112]
당일 내 시화는 최대 162명의 방문자를 찍었고, 나의 시화에 감화된 구독령만 벌써 100이 넘었다. 덕분에 서브미션을 빠르게 달성했고, 다량의 포인트를 추가로 벌어들였다.
강혜림이 얻은 포인트의 일부 수수료에, 서재에 들어오는 시청령들, 그리고 구독을 하면서 생기는 수익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포인트는 무려 40,240TP
매일 텔러로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빠져나가는 텍스트와 서재 유지 비용, 그리고 천체주식회사에서 떼어 가는 포인트를 다 빼고도 저렇게 벌어들인 것이었다.
‘놀랍군.’
종말이 찾아왔을 때, 4만 포인트를 벌려면 대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했던가?
최도윤 같이 혼자서 다 해 먹는 녀석이야 쉽게 벌었겠지만, 나 같은 일반적인 사람은 저 4만이라는 포인트도 벌벌 떨 정도의 거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나는 고작 2번의 시화로 이 정도의 포인트를 번 것이다.
‘아직 사원밖에 되지 않는 내 서재가 이 정도라면 대리를 넘어서 과장, 차장급 텔러의 서재는 얼마나 벌어들인다는 소리야?’
게다가 강혜림의 건을 봐도 알 수 있듯, 종말 이전에는 포인트를 버는 것이 너무나도 쉬웠다.
종말 이후에는 포인트 하나를 벌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해야만 했으니까.
그럼에도 지금 컬렉터들의 수준이 내 기대보다 한참 못하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컬렉터들은 그만큼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거겠지.’
분명 주어진 환경은 지금이 훨씬 더 풍족한데, 수준의 차이는 명백할 정도로 처참했다.
표면적인 평화에 취해, 모두 영혼까지 나태해진 탓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달라질 거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니까.’
지금은 그 장대한 계획의 두 번째 발을 내디뎠을 뿐이었다.
하지만 단 2개의 족적이라도 꽤 크고 깊은 것인지라, 주위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띠링. 띠링.
지금도 [제네시스 네트워크]를 통해 내게 개인적으로 메시지가 날아오고 있었다.
대부분은 내 시화를 한 번이라도 본 시청령들이었다. 그들이 내게 이렇게 러브 콜을 보내는 것은 간단했다.
‘서재의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거겠지.’
나는 메시지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대부분의 메일은 성령의 성격에 따라 말투가 달랐지만, 그들의 의도는 다 똑같았다.
내 서재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 계약을 맺자는 것.
“웃기는 일이야.”
물론, 어지간한 텔러들은 성령들과 서재 후원 계약을 맺는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든든한 후광 하나를 등에 업고 있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됐으니까.
먼 미래에 있을 손해를 감수해도 괜찮을 정도로 돌아오는 이익이 컸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 서재는 ‘고작’ 저 정도 성령들에게 쥐여 쥘 수준이 아니었다.
‘무려 대성군 판데모니엄의 사탄의 제안도 거절한 나인데. 3에서 3.5세대 성령들의 후원이 눈에 찰 리가 있나.’
대부분 메일은 이름도 모를 성령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간혹 몇 개는 나름 명성을 떨친 성군의 것에서 온 것도 있었다.
개 중에는 종말 이후에도 내 기억에 각인 될 정도로 낯익은 몇몇 이름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지체 없이 메시지 창을 껐다.
‘애초에 후원자를 자처하는 관심도 없는 성령들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
지금은 내 첫 번째 컬렉터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나는 강혜림을 슬쩍 살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강혜림의 고시원의 좁은 방.
그 좁아터진 방에서 강혜림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흔들며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중이었다.
“헤헤헤. 유현 씨. 어때요? 멋지죠?”
그녀는 등에 달린 날개가 마음에 드는지, 시종일관 내게 의견을 물었다.
확실히 제대로 꾸민 상태에서 새하얀 날개까지 등에 달자, 강혜림은 정말 천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네네. 멋지네요.”
하지만, 나는 그녀의 본래 성격을 알기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정작 눈치 없는 강혜림은 또 그게 좋다고 우쭐대고 있었다.
“엣헴. 저도 이제 어엿한 컬렉터라고요. 게다가 이번에 벌어들인 포인트를 생각하면 예전의 제가 아니라는 말씀.”
강혜림은 이번 라비린토스 사상세계를 클리어 한 이후 쭈욱 저 상태였다.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오늘 확실히 알았다.
‘욕망에 솔직한 목표를 지닌 것은 좋은데, 자뻑이 심한 스타일이로군. 수수하고 소심하게 살던 과거에 대한 반동이려나.’
어찌 됐든 강혜림도 여기까지 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기에 딱히 뭐라고 지적할 수는 없었다.
그녀도 그걸 알기 때문인지, 그리고 자신의 변한 모습에 취해서 그런지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고.
“후훗. 어때요? 유현 씨? 저 예쁘죠? 매력적이죠?”
“……제발 좀 그만하면 안 됩니까?”
“에이, 부끄러워하시긴. 튕기시는 거예요? 자자.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좋다구요?”
“대체, 왜 텔러인 제게 그런 걸 묻는 겁니까?”
“흐흥~~. 저는 성령님들께도 먹히는 외모라고요. 텔러인 유현 씨도 사실 좋으면서 아닌 척하는 거 다 보이거든요? 어때요? 어때?”
그렇게 말하면서 익숙하지도 않은 섹시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닌가?
나는 팔뚝에 돋은 소름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그거 하지 마세요. 진짜 역겨워서 꿀밤 때려 주고 싶으니까.”
“너무해!”
내 싸늘한 한마디에 바로 침몰당하는 강혜림.
하지만,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으니. 아마, 나중에 가면 몇 번이고 부활해서 달려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계속 이대로 있기에는 뭐하니,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주접떠는 건 됐고, 이제 앞으로의 일에 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접이라니…….”
상처받았다는 듯 말하는 강혜림.
나는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혜림 씨도 나름 이름을 타게 됐습니다. 포인트도 꽤 벌었고요. 텔러인 저와 다르게 혜림 씨는 이 하계에 속한 몸이니, 슬슬 이곳에서도 자신의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반이요?”
“네.”
내게는 필요 없지만, 컬렉터들에게는 필요로 하는 것.
“매니저 하나 구합시다.”
현실에서도 그녀를 뒷바라지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훌륭히 서포팅 할 사람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