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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7화 (1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7화

컬렉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이나 텔러들은 컬렉터의 힘을 논할 것이다.

컬렉터는 강해야 한다. 그래야만 환상체를 쉽게 쓰러뜨릴 수 있고 이야기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없으니까. 그건 나 또한 동감하는 바였다.

그렇다면 2번째로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때는 대답이 갈렸다.

이야기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적합성.

사상세계를 클리어 할 수 있게 그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는 안목.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훌륭한 리더십.

뭐, 이러한 것들.

그러나, 나는 자신 있게 이렇게 외칠 것이다.

컬렉터에게 있어서 2번째로 중요한 건 바로 ‘때깔’이라고.

“어, 음. 저 괜찮나요?”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지금 강혜림의 모습은 성령들을 확실히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강혜림이 괜스레 불안한지 내게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만 대답했다.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강혜림의 변한 모습은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원판부터 예쁘다는 건 알았지. 꾸미지 않아서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작정하고 꾸민 강혜림의 모습은 내가 과거에 봤던 그 아름답고 고고한 검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새하얀 무복과 깔끔하게 묶어서 정돈한 흑단 같은 머리카락.

한 듯 안 한 듯 연하게 한 화장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몇 배나 부각시켰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서 등을 올곧게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은 먼 과거의 내가 선망을 품었던 그 검후였다.

당장에 성령들뿐만 아니라 소수지만 근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마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쳐다볼 정도로 강혜림은 매력적이었다. 아마, 이 상태로 TV에 나가면 순식간에 인기 스타가 되지 않을까?

“저,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정작 그녀는 확실치 않은지, 불안한 어조로 물었다.

“어허. 허리 펴고! 입 꾹!”

“합.”

내가 핀잔을 주자, 그녀는 내가 시킨 대로 따랐다.

모습은 예전 검후의 모습이었지만, 일단 성격이 성격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이미지 붕괴를 야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을 아끼고, 행동을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시킨 참이었다.

강혜림도 그걸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러니 확실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검후의 모습이 연출됐다. 입만 안 열면 완벽한 여자. 그게 바로 강혜림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불안감을 종식할 겸 나는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에 그녀에게 보여 줬다. 강혜림은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내 입꼬리를 경련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헤픈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그녀도 눈치는 있는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기색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도 나중에는 조심해야 했지만, 지금은 일단 내버려 두자.

어찌 됐든 강혜림을 꾸미기 위한 내 계획은 확실히 들어맞았다.

띠링. 띠링.

[샬드랄라의 지도자가 강혜림에게 100TP를 후원합니다.]

[21TP를 획득했습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강혜림에게 100TP를 후원합니다.]

[21TP를 획득했습니다.]

당장, 그녀의 외향적인 변화에 혹해서 성령들이 포인트를 호쾌하게 투척한 것이었다.

강혜림은 설마 이럴 줄 몰랐는지 내심 당황한 눈치였지만,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엄포를 놓은 덕에 촌뜨기처럼 반응하지는 않았다.

나는 계약금으로 들어오는 포인트를 보며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컬렉터의 외모라는 게 확실히 중요하기는 해.’

물론, 성령들이 바라는 것은 실력이 있는 컬렉터다. 자신이 바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무능력하면 그만큼 답답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컬렉터에게 능력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성령들이 그다음으로 보는 건 컬렉터의 외향이었다.

‘똑같은 실력을 지녀도, 제대로 꾸미지도 않고 츄리닝 입고 싸우는 컬렉터랑 멋지고 예쁘게 꾸미고 싸우는 컬렉터를 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지.’

유희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는 데 주로 시각적인 효과가 컸다.

사람들이 영화, 드라마에서 괜히 선남선녀의 로맨스를 꿈꾸는 것이 아니듯, 성령들도 외모를 봤다.

“자. 그리고 사상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이걸 익히세요.”

아직도 자신의 사진에 못 박힌 듯 시선을 고정하는 강혜림에게 나는 그녀가 구매했던 [이야기] 몇 개를 꺼내 건넸다.

새하얀 활자들이 경단처럼 꽉꽉 뭉쳐진 이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빛을 내는 새하얀 구체처럼 생겼다.

강혜림은 신기한 것을 보듯 내가 건네준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신기하십니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서요. 그저 막연히 듣기만 했거든요.”

“앞으로는 자주 보게 될 겁니다. 여기, 각각 혜림 씨에게 필요한 [이야기]들로만 추려 놨습니다.”

내가 건넨 이야기는 [삼재검법] [알소르 용병검술] [감각 극대화] 이렇게 3개였다.

전부 근접 전투를 벌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었다.

“이게 도움이 될까요?”

“됩니다.”

나는 확답을 담아 대답했다.

강혜림의 힘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특성]에서만 나오는 힘이었다. 특성이 컬렉터에게 중요한 축을 담당했지만, 그렇다고 특성 하나만으로 싸우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컬렉터들은 자신의 특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모아야 강해졌다. 다른 [이야기]를 흡수하고, 또한 모은 포인트를 소모해서 자신의 스탯을 증가시키는 것.

이게 바로 컬렉터들이 강해지는 방법이었다.

즉 특성은 컬렉터의 실력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기둥 중 하나가 되어야지, 오직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됐다.

내가 강혜림에게 이런 기초적인 [이야기]를 구매하라고, 닦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혜림 씨의 특성은 다른 컬렉터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특성 하나가 모든 상황을 대처하도록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성이 좋다 한들, 이 하나에 맹신하거나 목을 매면 험한 꼴을 당할 겁니다.”

나는 종말 이후 그런 자들을 많이 봐 왔다.

새롭게 얻은 자기 힘에 취해서, 마구잡이로 날뛰던 자들.

확실히 그들이 지녔던 특성은 대단한 것이었고, 어지간한 사람들은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성을 명백하게 카운터 치는 일이라거나, 혹은 특성을 잠시간 무효화시키는 일도 있었다. 비록 그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대비해야 했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지름길이었다.

“혜림 씨의 검은 확실히 빠르고 매섭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초가 담겨 있지 않죠. 당장은 감각과 느낌으로 검을 휘두르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가면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힐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건네준 것이 기초 검술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것만 있더라도 강혜림의 전투력을 확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검에 관해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가 기초까지 탄탄하다면?

그때는 진짜 괴물이 탄생하고 마는 거다.

“그, 감사합니다.”

강혜림은 내가 진지한 걸 알기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3개의 새하얀 덩어리는 그대로 강혜림의 몸 안으로 흡수됐다. 아마, 그녀가 보는 시스템 창에는 [이야기를 흡수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떠 있지 않을까?

“괜찮으십니까?”

“아, 네.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네요.”

“좋은 반응입니다. 보통 사람마다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치가 다르거든요. 이제 막 컬렉터가 된 혜림 씨 같은 종9품 컬렉터의 경우에는 2개만 받아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하는 게 정상인데.”

“저는 멀쩡한데요?”

“그러니까, 혜림 씨가 대단하다는 겁니다. 3개를 동시에 받아들여도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는 건 [이야기]를 제대로 흡수했다는 소리였다. 이쪽으로도 타고났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군.

“물론, 받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해당 [이야기]를 꾸준히 쓰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이야기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오죠.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고.”

그래서 이야기를 흡수하는 소화 과정이 필요하다.

계속 사용하고 연습하며 몸에 익혀야 했다. 그래야 그 이야기가 본인의 것이 된다.

“일단은 기초적인 [이야기]만 챙기면 될 겁니다. 나중에 가면 스킬 같은 것도 얻을 수 있겠지만, 보통 그런 건 [차원 상점]에서 비싸게 파니까, 사상세계 클리어 보상으로 노리는 게 낫죠.”

아무튼, 지금 시점에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전부 챙겨 줬다.

강혜림도 자신을 이렇게까지 돌봐 주는 내게 감동했는지, 나를 향한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나는 먼저 선수를 치듯 말했다.

“고마운 건 알지만 여기까지. 서재 개방도 했으니, 성령님들께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죠.”

앞으로 보일 검후의 모습은 강혜림 본연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겠지만, 나는 그녀가 잘해나가리라 믿었다.

“네. 믿고 맡겨 주세요.”

“자. 그러면 들어가죠.”

지금이야 강혜림이 감격에 취해서 얌전하지, 이것을 구매하기 위해 소모한 포인트를 떠올린다면 발작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그걸 미연에 차단하고자, 나는 강혜림을 이번 목표로 한 사상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처음 갔던 코볼트 광산과 비슷하게 하늘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통로였다.

하지만 암석을 깎아서 만든 투박한 광산과 다르게, 이곳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궁에 가까웠다.

“여긴 어디죠?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소외된 곳이라는 건 알겠는데.”

강혜림이 짐짓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야말로 얼굴에 엄격, 근엄, 진지를 적어 놓은 모양새.

내가 연기하라고 지시는 했는데, 막상 저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실소가 지어지는 건 왜일까?

이대로 그녀의 미묘한 연기를 보면 뿜을 거 같아서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크레타의 미궁입니다.”

정확히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에 있는 미궁 라비린토스(Λαβύρινθος)이었다.

“보통 컬렉터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사상세계이기도 하죠.”

“그거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게 왜 여기에…….”

“사상세계의 출현은 국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설화가 깃든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에 사상세계로 구현될 수도 있죠.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거든요.”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이곳 라비린토스는 이미 몇 번의 토벌대가 꾸려졌지만, 여전히 미 클리어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왜죠?”

“클리어 조건을 찾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미궁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까다롭기도 해서요.”

내 말에 강혜림은 주위를 한번 살폈다. 조금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광산에서 [밝은 눈]이라는 스킬을 얻은 그녀는 어둠 속을 쉽게 꿰뚫어 봤다.

주변은 확실히 미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에 길이 트여 있는 복잡한 미로 형태였다.

“미궁 자체가 지도 없이는 돌아다니기에는 복잡하죠. 심지어 전승에 의하면 이 미궁 안쪽에는 무시무시한 환상체가 돌아다니니까요.”

“……미노타우로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강혜림도 알았다.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듯.

우오오오오오!!

미궁의 저 너머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코볼트 광산과는 다릅니다. 길은 복잡하지, 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서 어둡지. 심지어 다른 환상체는 하나도 없고, 오직 미노타우로스 녀석 혼자뿐이죠.”

사실상 파밍을 할 건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심지어 이곳 환상체는 일반적인 녀석이 아닌 보스급 환상체. 어지간한 컬렉터들은 상대하기 꺼리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과연, 지금의 강혜림이 상대를 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소머리 환상체가 미궁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거려나.’

그 때문에 주기적으로 토벌을 할 필요도 없어서 이곳 라비린토스 사상세계는 방치되다시피 남겨졌다. 이곳은 나름 얌전한 사상세계라 ‘침식’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딱 좋았다.

오늘의 목표는 단 하나.

이 라비린토스의 클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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