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16화
“흐으으. 너무 맛있어요.”
카페에서 달달한 조각 케이크를 한입 머금은 강혜림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맞은편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던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요! 제 평생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걸요.”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녀의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생각해 보면 당장 지금의 강혜림은 돈도 쪼들려서 사는 신세였다.
자신의 능력도 모른 채,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내일하며 살던 그녀다. 그러다 갑자기 재능을 각성하여 화려한 전과를 올렸다.
단 며칠 만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러한 변화에 기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라고 그녀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강혜림이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향상심은 내가 지닌 것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어떤 면에서 강혜림은 나와 닮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고작 케이크 가지고 너무 그러진 마시죠. 앞으로 성공 가도만 달리면 삼시 세끼 케이크만 먹을 수 있는데.”
“정말요?!”
“뭐 그거야, 혜림 씨 자유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번 포인트를 어디에 쓰는지는 결국 컬렉터의 자유니까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쪽팔리니까 그만둬 주세요.”
지구가 혼성계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지구를 포함한 하계에는 포인트 환전소라는 곳도 있어서, 컬렉터들은 금전이 필요한 경우에는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역으로 현금을 포인트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흠이려나?
강혜림이 이번 코볼트 광산을 클리어하며 벌어들인 포인트는 약 5,000TP.
이 중 극히 일부만 현금화를 해도 강혜림이 구가하는 삶의 질이 확연히 늘어나는 건 당연했다.
당장 강혜림처럼 등급이 낮은 컬렉터는 현금 벌이가 포인트 환전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가면 그녀는 자신이 전환한 포인트를 아까워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게 될 거다.
그때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달달한 디저트를 산처럼 쌓아 놓고 먹을 수 있겠지.
“물론, 살이 찌는 것도 본연이 혜림 씨 책임인 건 잊지 마세요.”
“윽!”
때마침 포크로 케이크 한 입을 더 떠먹으려던 강혜림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나를 살짝 쏘아보았다.
“그거 여자한테 실례인 거 아시죠?”
“저는 텔러라서 잘 모르겠군요.”
“씨잉.”
말싸움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짜증을 부릴 수도 없었다.
그때 강혜림은 막 떠오른 게 있었는지, 화제를 전환했다.
“아. 그러고 보니, 유현 씨가 제 특성에 관해서 알고 계신다고 하셨죠. 확실히 저도 검을 휘두르면서 느끼긴 했는데, 이 고려시대 소드마스터라는 특성은 정확히 뭔가요?”
일전의 코볼트 사냥을 통해 강혜림은 자신이 지닌 [고려시대 소드마스터]라는 특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깨닫는 것과 별개로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특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안 그래도, 알려 주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완벽히 한배를 탔으니, 그녀가 듣고 싶지 않아도 내가 억지로 주입해야 하는 처지였다.
“혜림 씨는 척준경에 관해서 아십니까?”
“어, 음…….”
강혜림은 대답을 망설였다. 저 반응만 봐도 충분했다.
“뭐, 모를 만도 하죠. 해당 인물은 그 흔한 사극에서도 다뤄지지 않았었으니까요. 역사에 관해서 상세히 알지 않으면 누구라도 비슷한 반응일 겁니다.”
“그, 그런가요?”
“하지만 한번 알게 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죠.”
척준경.
곡산 척 씨 출신으로 고려시대의 하급 무관이자 문관이었던 자였다.
하지만, 그는 여진 전쟁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막대한 전공을 세운 거로 유명했다.
홀로 여진족이 점령한 성을 기어 올라가 성벽을 휩쓸어 버리고.
단신으로 수천이 넘는 적군의 포위망을 뚫는가 하면
수만이 넘는 적들에게 용감무쌍하게 달려들어, 일방적으로 적들의 수급을 취해 돌아오기까지.
단순히 부풀려진 이야기가 아닌 엄연히 정사에 기록된 사실이었다.
단일 무력이 인간을 초월해, 그를 아는 사람이 장난삼아 부르기를 ‘소드마스터 척’, ‘고려시대 소드마스터’였던 것이다.
강혜림이 지닌 특성이 바로 그 ‘척준경’이 지닌 이야기가 구현된 특성이었다.
내 설명을 다 전해 들은 강혜림은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그렇게 대단한 위인이었다고요? 그런데, 왜 그걸 몰랐지? 보통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잖아요.”
“어, 음.”
그 당연한 물음에 나는 대답을 살짝 망설였다.
뭐, 저렇게 엄청난 무공을 세웠을 정도면 드라마나 영화화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척준경의 최후는 이자겸의 난을 도와서 반역자로 처벌받아 악인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도 있었지만.
“그, 친구 이름이 좀…… 그러거든요.”
“친구 이름이요? 대체, 친구 이름이 뭐라고 그런데요?”
“그건, 제 입으로는 말 못 합니다.”
“아이참, 궁금하게 자꾸 왜 그러시는데요? 네? 알려 줘요오.”
강혜림은 팔짱을 끼고 입을 꾹 다문 채, 내게 앙탈을 부리면서 대답을 촉구했다. 내가 계속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숫제 떼를 쓰면서까지 나를 귀찮게 했다.
결국, 참다못해 내가 그녀를 쏘아붙였다.
“아, 좀. 말 못 한다면, 말 못 하는 줄 아세요. 성희롱으로 신고할 겁니다.”
“예?! 성희롱까지 가는 건가요?!”
“정 궁금하면 본인이 찾아보시던가요. 스마트폰은 폼으로 들고 다니십니까?”
“아! 맞다.”
강혜림은 그제야 떠올렸는지, 자신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검색에 들어갔다. 나는 살짝 불편한 기색을 풍기며 얼음이 담긴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강혜림을 슬쩍 살피자, 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이내 얼굴이 잘 익은 홍시마냥 확 달아올랐다. 그녀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며 나를 향해 외쳤다.
“변태!”
“그걸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그, 그래도…… 이건 너무 외설스럽잖아요!”
“제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실존 이름 인물이 그렇다는데. 뭐, 어쩝니까. 아무튼, 친구 이름이 그따위라 매체화가 안 된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그 위용은 어딜 가는 게 아니죠. 강혜림 씨가 지닌 그 특성의 힘은 혜림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 이거죠.”
“…….”
그녀는 조금 더 자신의 특성을 자세히 알아야 했다. 그녀가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앞일을 위해서 확실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강혜림도 그제야 자신의 특성을 제대로 받아들인 듯 진지해졌다.
“그렇다면, 제가 정말로 대단한 특성을 지녔다는 거네요?”
강혜림은 뿌듯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기쁨을 참을 수 없는지, 헤픈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강혜림이 대충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에게 쓴소리를 들으면 확 쪼그라들지만, 칭찬을 받으면 반대로 지나치게 거만해지는 스타일.
당장에도 그것을 증명하듯 그녀는 콧대를 세우며 자신의 밝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대체, 이 모습 어디가 미래의 검후라는 건지.’
내가 옛날에 봤던 그 모습도 결국 연기였던 걸까? 그 도도하고 냉철했던 눈빛과 표정까지?
나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강혜림을 살폈다.
“흐헤헤.”
그녀는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지, 입을 헤 벌리며 묘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백수의 복장으로 말이다.
이런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인다고 생각하면 그녀의 계약자인 내가 쪽팔릴 지경이었다. 컬렉터들은 성령들에게 이야기를 보여 줘야 하는 존재들. 이미지 관리는 필수였다.
“일단, 이럴 게 아니군요. 혜림 씨. 일어나세요.”
“헤헤…… 네, 넷?!”
“정신 차리고 일어나시라고요.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더 앞당겨야겠습니다.”
“계, 계획이라니요?”
“이미지 메이킹입니다.”
언제까지 저런 몰골로 그녀를 활동하게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무용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겉모습이 저래서야, 성령들도 못 참고 서재를 떠날지도 몰랐다.
서재를 대표하는 주인공으로서 최우선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보이는 능력이라면.
두 번째는 당연히 고운 때깔이 아니겠는가?
“일단, 옷부터 사러 갑시다. 언제까지 그렇게 활동할 건 아니잖아요?”
“아, 그건 그러네요.”
강혜림도 인지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녀도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니, 이제 제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되겠지.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위로 카탈로그 하나를 만들어 내서 강혜림에게 건넸다.
“어…….”
강혜림은 왠지 익숙한 이 과정에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스레 내게 카탈로그를 받으며 이게 무슨 의미냐는 시선을 던졌다.
나는 강혜림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포인트 벌었잖아요? 미래의 자신을 위해 투자하셔야죠.”
내가 띄운 카탈로그는 그녀에게 어울릴 법한 장비들.
물론, 가격도 최대한 그녀가 구매할 수 있는 선에서 합리적인 것들로만 추려 놨다.
카탈로그에 적힌 포인트를 보며 손을 덜덜 떠는 강혜림에게 나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제가 뭐, 잡아먹기라도 합니까? 등쳐 먹기라도 합니까? 다 혜림 씨 잘되라고 하는 겁니다. 알죠?”
“네, 네에…….”
강혜림은 제삼자가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 *
“흠, 이 정도면 충분히 된 거 같군요.”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재 개방] 버튼을 클릭했다.
[서재가 개방됩니다.]
[시청령들이 서재에 방문합니다.]
[천귀살의 추격자가…….]
내가 서재 개방하기를 고대했다는 듯, 서재를 열자마자 성령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여기서 내가 우르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전 코볼트 광산에서 내 시화를 관람하던 성령들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성령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현재 시청령: 63]
[현재 구독령: 45]
검후전기 첫 화를 끝맺음했을 때 시청령의 숫자가 34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작과 동시에 63명. 심지어, 내 서재를 구독 등록을 한 성령들의 숫자도 확연히 늘었다.
‘보통 구독령의 숫자가, 시청령의 30%만 되도 시화의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데.’
내 경우에는 절반을 넘어 약 70%나 유지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비율. 어떻게 보면 첫 시작치고는 정말로 화려하게 저지른 셈이었다.
‘게다가 지난 시화 이후로 소문이 퍼졌는지, 조금씩이지만 성령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그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돌고 있는 거겠지.
‘대다수는 내가 보여 줄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어.’
지루하고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던 지구에 모처럼 그들의 흥미를 품게 만드는 이야기가 생겼다.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그들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것을 위한 일환으로 나는 강혜림의 이미지 변화를 꾀했다.
[풍향의 정령이 눈을 크게 뜹니다.]
[아룬골의 오두막 사나이가 입을 헤 벌립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빕니다.]
……
…새로 들어온 성령들을 포함해, 지난번 시화에 참여했던 성령들은 놀라운 반응을 선보였다.
애초에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색다른 이야기였을 것이다. 단순히 환상체만 깨작깨작 잡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해당 사상세계의 이야기를 꿰뚫고, 그 근원까지 처리하는 그런 영웅담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시화를 보일지만 기대하면서 왔겠지.
그래서 나는 시청령들의 허를 찌르듯 시작과 동시에 선보인 것이었다.
‘제대로’ 꾸민 강혜림의 모습을.
경악하는 성령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