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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5화 (1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5화

내가 기대했던 대로.

아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강혜림은 잘 싸웠다.

‘벌써 광산의 최심부까지 도달하다니.’

이럴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었지만, 강혜림의 성장 속도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래도 종말에서 최도윤 녀석 곁에서 10년은 굴러서 남들보다 안목이 더 뛰어나다고 자부했는데, 역시 검후는 검후인가?

나는 내 눈이 틀렸다고,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선택한 계약자가 기대를 뛰어넘는 행보를 보였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야 기쁘지 않을 수가 없지.

[획득 포인트: 2,050TP]

내게 들어온 막대한 포인트를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웃을 자신이 있었다.

강혜림이 벌어들인 후원의 일부와 서재의 시청령을 통해 벌어들인 서재 수수료까지.

서재 개설을 하고, 단 3시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심지어, 이게 정산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거라는 거.’

나는 포인트에 관심을 거두고, 화면 너머 강혜림을 살폈다.

최심부에 도달한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리 특성의 힘 덕분에 미쳐 날뛰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오늘이 첫 전투였다. 육체가 특성의 힘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나중에 체력 훈련도 따로 시키고, 일단은 여기까지인가?’

나는 [관조자의 방]에서 나와 그녀에게 다가갔다. 숨을 헐떡이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마치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해맑게 웃었다.

“일어나지는 마시고, 일단 앉아서 좀 쉬세요.”

“헥. 헥. 아, 네.”

“그래서 어땠습니까? 검을 쥔 감각은?”

“후우. 최고예요.”

강혜림은 꽤 지쳤음에도 반색하며 대답했다. 나는 슬쩍 그녀의 책을 살폈다. 칙칙한 갈색이었던 그녀의 책은 이전보다 꽤 밝은 동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가 오늘 이 사상세계에서 이룩한 이야기와 역사가 그녀의 책을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그녀가 지닌 가능성은 거대했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내 말에 강혜림도 결연한 의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선을 넘어 광산의 심장부까지. 강혜림은 거침이 없었고, 코볼트들은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놈들은 결국 태세를 전환해서 강혜림을 피해 도망쳤다. 더 안쪽, 더 깊은 곳으로.

그 최후의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아마 놈들은 모일 대로 모여서 혜림 씨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환상체다. 기본적인 지능이 있다는 소리.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턱대고 강혜림에게 달려들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서 남은 병력을 전부 다 끌어모아서 최후의 장소에서 농성을 벌이려는 것일 테지.

“움직임이 꽤 가닥이 잡힌 걸 보면, 지도자가 있는 것 같군요.”

이곳 광산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코볼트 무리의 왕이 있었다.

지휘관이 있다면 싸움은 더 힘들어진다. 나는 그 부분을 넌지시 알려 줬다.

“어쩌시겠습니까? 여기서 멈추실 겁니까?”

나는 그래도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서 물었다.

내 말을 듣던 강혜림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파!’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큭. 유현 씨.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야죠. 설마 저 경계선 넘게 해 놓고, 나 몰라라 내팽개치시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한 말에 책임은 집니다. 그래서 갈 겁니까?”

“못 먹어도 고 할래요.”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됐는지, 강혜림이 검을 쥐고서 일어났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여태껏 보지 못한 강렬한 의지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망설임을 보였다면 어떻게든 뜯어말릴 생각이었지만, 저렇게 의욕적이라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 일단 목표를 정하고 가야겠죠. 사상세계를 클리어 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네. 일단, 교육을 받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설명하기 쉽죠. 이곳 사상세계의 클리어 조건은 토벌입니다. 코볼트 무리를 전부 잡는 게 베스트이긴 한데, 안쪽의 규모를 생각하면 우두머리를 최우선으로 노리셔야 할 겁니다.”

사상세계는 [이야기]가 현실로 구현된 공간이었다.

당연히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존재했고, 그에 따른 공략법이 갈리게 됐다.

때로는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때로는 숨겨진 이야기의 근원을 파헤쳐야 하고

때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핵을 제거해야 한다.

그중에서 특정 환상체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는 토벌이 가장 심플하다고 볼 수 있었다.

‘괜히, 정부에서도 사상세계 클리어에 열을 안 올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광산의 코볼트 무리는 공략법이 단순하다는 점이지.’

이곳 사상세계 클리어 조건은 코볼트 무리의 왕을 처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조언해 줄 필요도 없이 강혜림 혼자서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아직 기본기가 부족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나는 내 안목 이상으로 그녀의 가능성과 실력을 믿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면 되는 건가요?”

“아 참 그전에. 무기를 바꾸셔야 할 거 같네요.”

나는 강혜림이 쥔 검을 가리켰다. 무료로 보급된 검은 거친 전투의 여파를 고스란히 담아 내듯 여기저기 날이 나가 있었다.

“그대로 들어가면 도중에 부러질 겁니다. 공짜로 받은 거라서 애초에 질이 그렇게 좋지 않아 보이니까요.”

“어…… 그러면 저, 이제 어쩌죠?”

잔뜩 들뜬 강혜림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검을 쥐면 남부럽지 않은 힘을 발휘하는 그녀였지만, 검이 없으면 처음 만났을 때의 수줍고 겁 많은 아가씨로 탈바꿈하고 마는 것이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앞에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카탈로그를 펼쳐 보였다.

강혜림은 그것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와 카탈로그 리스트를 번갈아 살폈다.

대체 이게 뭐냐는 눈빛.

“여기까지 오시면서 포인트 벌었잖아요?”

내가 띄운 리스트는 딱 강혜림이 번 돈으로 살 수 있는 수준의 검이었다.

“이때 써야지, 언제 쓰겠습니까?”

참고로 텔러가 돈을 버는 수단 중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자신과 계약한 컬렉터가 [차원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그중 일부를 해당 텔러가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었다.

시화를 선보일 때는 텔러와 컬렉터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와 그녀는 철저히 남이었다.

“에, 엣?”

“자. 고르세요. 이럴 줄 알고 적당한 수준에서 효율 좋은 거로만 뽑았으니까요. 그래도 계약을 맺은 컬렉터인데, 등쳐먹는 짓은 안 합니다.”

“어, 음. 그래도 계약자 할인 같은 거 있죠?”

나는 말 대신 방긋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앗, 아아.”

결국, 강혜림은 고개를 푹 떨구고 카탈로그에서 적당한 검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차원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자, 그녀의 포인트가 소모되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세련되고 유려해 보이는 검이었다. 그녀가 조금 전까지 사용했던 기본 무구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훨씬 더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강혜림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으으으. 유현 씨. 너무해요.”

“저니까 이 정도에 산 거죠. 다른 컬렉터들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항상 감사하십시오. 휴먼.

* * *

크르릉!

코볼트 무리의 왕은 부하들을 이끌고 침입자를 맞이할 준비를 갖췄다.

처음 부하들에게 침입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언제나처럼 광산의 곁가지만 훑고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순식간이 바뀌게 됐다.

고작 한 명. 단 한 명이었지만, 인간들이 그어 놓은 경계선을 넘어서 광산의 최심부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라 왕은 당황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곳은 자신의 땅. 자신의 영토. 절대로 침략자가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런데 한 명에 의해 여기까지 밀려났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 최후의 보루에서 그 상대를 보기 좋게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크릉!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빛이 희미했지만, 코볼트 무리는 광산이나 미궁에서 서식했기 때문에 눈이 매우 밝았다. 당연히 침입자가 다가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침입자는 단 하나. 가녀려 보이는 여성.

하지만, 이 자리의 그 어떤 코볼트도 그녀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악귀마냥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죽어 나가던 동료들의 모습이 도망쳐 내려온 코볼트들의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왕의 명령만 아니었으면 이미 몇몇 코볼트들은 도망을 쳤을 것이었다.

케륵? 케르륵?

게다가 어째서인지.

저 침입자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씨이.”

침입자, 강혜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코볼트 무리를 노려봤다.

그래봤자,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순박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억지로 화를 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의 검격을 본 코볼트들은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를 마주하는 착각을 받았다.

“너희들 다 죽었어.”

강혜림은 막대한 포인트를 벌었다. 성령들의 호응도 좋았고, 그녀 자신도 드디어 재능을 깨우쳤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코볼트를 무리하게 사냥하다 검날이 거의 나가 버렸고, 결국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로운 검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벌었던 포인트를 거의 다 소모한 탓에 들떴던 그녀의 마음도 저 아래로 처박혔다.

자연스레 강혜림의 분노는 코볼트 무리를 향했다.

“내 검이 부러진 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

만약 코볼트 무리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억울해서 복장이 터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혜림이 왜 화를 내는지 몰랐고, 당황해하면서도 왕의 명령에 따라 싸울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크르릉!

일반 코볼트 보다도 3배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왕이 양손에 곡괭이를 하나씩 쥐고서 으르렁거렸다. 그는 자신의 터전을 위협하는 강혜림에게 증오심을 불태웠다.

하지만 강혜림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왕을 노려봤다. 저 코볼트 때문에 자신의 포인트가 날아갔으니, 녀석으로 포인트를 충당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강유현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뭐. 본인이 알아서 의욕을 불태우니, 나야 좋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혜림이 코볼트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사상세계 ‘앙바르 산맥의 코볼트 폐광’을 클리어 했습니다.]

[2,000TP를 획득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당신은 사상세계를 혼자서 클리어 했습니다.]

[1,000TP를 추가 획득했습니다.]

[코볼트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깃듭니다.]

[‘밝은 눈’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582TP를 획득했습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

[사상세계와 관련된 일부 부산물을 획득했습니다.]

………

지금 강혜림은 아마 자신의 눈앞에 어지러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시스템 창에 눈이 어지러울 것이었다.

강혜림이 코볼트 무리를 전부 다 쓸어 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새로 산 검의 뽕을 뽑기라도 하듯 코볼트를 전부 다 쓸어 버리고 최후에는 왕마저 쓰러뜨렸다.

그 위대한 업적에 성령들은 미친 듯이 열광했고, 강혜림을 향해 포인트를 후원했다.

그리고 일부 성령들은 내 서재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내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현재 시청령: 34]

[현재 구독령: 22]

[정산받은 후원 금액: 4,230TP]

[서브미션-시청령 10명 달성!]

[보상으로 300TP를 획득했습니다.]

[서브미션-구독령 5명 달성!]

[보상으로 500TP를 획득했습니다.]

[서브미션-구독령 15명 달성!]

[보상으로…….]

나 또한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며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 올렸다.

눈이 바쁜 것은 강혜림뿐만이 아니었다. 내게도 막대한 포인트가 들어오며, 또한 내가 보여 준 시화에 감화된 성령들이 구독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지.’

소문이 퍼질 거였다.

강유현 텔러와 강혜림 컬렉터에 관한 소문이.

그것을 확인하고, 또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찾아오겠지.

“첫 시작은 그럭저럭 성공인가?”

사상세계가 사라진다.

강혜림의 몸은 다시 현실로 옮겨지고, 사라진 사상세계를 구축하던 활자들이 그녀의 몸에 흡수됐다. 코볼트 광산의 누적된 텍스트가 그녀에게 들어가 포인트로 변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모든 텍스트가 강혜림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텍스트는 공간을 뛰어넘어 내가 있는 [관조자의 방]까지 넘어왔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텍스트의 뭉치는 내 손위에 모이더니, 이내 한 권의 책으로 변했다.

책의 표지에는 내가 서재의 이름으로 적어 놓은 [검후전기]가 적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

그리고 처음으로 보여 준 이야기였다.

나는 [관조자의 방]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비어 있는 흰 책장이 있었다. 나는 보란 듯이 내 첫 책을 책장에 꽂았다.

책장은 넓었다. 그리고 지금 꽂은 책은 고작 한 권뿐. 이 빈 공간에 비하면, 책 한 권은 초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젠간.

‘이 책장을 가득 채우게 되겠지.’

앞으로 5년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그 이후, 나는 더 먼 미래까지 보고 있었다.

종말이 찾아오지 않는 더 먼 미래의 이야기.

전생에서는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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