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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4화 (1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4화

“자, 잠깐만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잔뜩 자신감을 얻은 강혜림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가 싶은지 그녀가 내게 물었다.

뭐, 그녀가 걱정하는 바가 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환상체가 강하고, 많고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컬렉터들 간 새겨진 암묵적인 규칙.’

본래 사상세계는 클리어를 통해 현실에서 제거하는 것이 가능했다. 오래 놔둘 경우에는 환상체가 이상 증식을 해서 현실로 뛰쳐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구가 막 혼성계에 진입해서 사상세계가 생겼을 때, 세상은 꽤 혼란스러운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컬렉터들이 힘을 갖추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사상세계의 용도는 바뀌었다.

‘바로 포인트와 이야기를 파밍 하기 위한 장소로.’

사상세계는 하나를 클리어하면, 다른 무작위 장소에 무작위 이야기로 새로운 사상세계가 나타났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세계의 경우에 직접 겪어 보지 못하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어떤 위험이 있을 줄 알고 함부로 들어가겠는가?

‘그래서 나온 주장이 기존 사상세계를 일부러 클리어 하지 말고, 그대로 유지하자는 거였지.’

그러한 이유로 지금 이 코볼트 광산처럼, 대다수의 사상세계에는 여기서 멈추라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합리적으로, 그리고 대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보기 좋은 변명에 지나지 않아.’

초기 지구에서 보여 주는 이야기는 모험과 낭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지구 컬렉터들은 그저 항상 똑같은 행위만 반복할 뿐이었다.

파밍, 파밍, 끝없는 파밍.

‘그게 합리적이고 안전한 건 맞아.’

굳이 사상세계 클리어에 목숨을 걸 필요도 없었고, 평소처럼 똑같이 자신이 사냥했던 환상체를 잡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해도 포인트는 들어왔다.

그 안일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알겠어.’

지구는 초기에 막대한 이야기가 매장된, 나름 고평가된 구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지구는 그러지 않았다. 지구의 컬렉터들이 안전만 추구하다 보니, 성령들의 관심을 끌 법한 즐거운 이야기가 사라졌고 자연스레 그들의 관심도 줄어들게 됐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종말이 찾아왔지.’

지구가 혼성계로 완전하게 편입되기 위한 과정 그 두 번째.

페이즈 아포칼립스(Apocalypse).

여기서 종말의 역할은 단 하나.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최대한으로 쥐어짜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살기 편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대충대충 하던 사람들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이야기의 다양성과 질이 올라가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는지는 애초에 상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련이라는 이름 아래 실험 쥐처럼 지낸 것이 무려 10년.

‘나는 이 세계의 전말을 알고 있다.’

나는 종말까지의 5년과 종말 이후의 10년을 합쳐 총 15년을 보고 겪어 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러져 갔고, 또 얼마나 많은 별이 그들을 비웃었던가.

그럼에도 죽고 싶지 않았고, 살기 위해서 뒤도 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지구가 그런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됐는지,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제삼자의 개입이 아닌, 자기들 스스로 힘으로.’

단순한 대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순전히 나의 욕망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고정된 틀부터 부술 필요가 있었다.

“사상세계 클리어는 그대로 속행합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고 자시고, 뭐가 문제입니까? 혜림 씨는 텔러인 제가 강제로 시켰다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컬렉터들은 제게 책임을 물을 수 없죠. 저들이 뭘 어쩔 겁니까? 제가 시켰다는데.”

물론, 해당 컬렉터들의 뒤에 있는 다른 텔러들도 가만히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만.

나는 강혜림을 안심시키려고 의도적으로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내 말에 강혜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강유현 텔러님 말대로 할게요. 사실 저도 여기서 멈추는 건 별로 달갑지 않았거든요.”

강혜림은 지금 인생에 몇 없는 거대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꾹꾹 감춰 왔던 특성을 완전하게 개방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니, 사실 누구보다도 지금 이 상황을 격하게 반겼다.

“좋은 선택입니다. 게다가 성령님들도 그걸 바라는 것 같고요.”

[대다수 성령이 당신의 말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말에 성령들이 간접 메시지를 보내며 그렇다고 호응했다.

그들도 안 그래도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겨우 제대로 즐기나 싶었는데, 강혜림이 다른 컬렉터들처럼 경계선에서 물러날까 봐.

그런데 우리가 계속 속행하겠다고 하자, 쌍수를 들고 반기는 것이었다.

성령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목말라 했으니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어느덧 시청령의 숫자가 13명까지 늘었다.

“자자, 성령님들. 다들 우리 컬렉터 강혜림 씨 힘내라고 응원해 줍시다! 여기서 멈추면 아쉽잖아요?”

돌려서 말했지만,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이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뻔뻔하게 외쳤다.

성령들은 모처럼 즐거운 이야기가 끊기는 것이 아쉬워서 지체 없이 포인트를 후원해 줬다.

[100TP를 후원받았습니다.]

[400TP를 후원받았습니다.]

[200TP를 후원받았습니다.]

순식간에 들어오는 자잘한 후원들. 그중 일부는 강혜림에게, 나머지 일부는 내게 돌아왔다.

강혜림은 입을 헤 벌리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메시지에 넋을 빼앗겼다. 뭐, 그녀에게 있어서 이렇게 막대한 포인트를 벌어 본 적이 없었을 테지.

“뭐 하십니까. 가셔야죠.”

내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강혜림.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망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날뛰세요.”

“네!”

강혜림은 사상세계 클리어를 속행했다. 그녀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거침없이 경계선을 넘고, 광산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성령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환호했다.

나 또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만 휘둘리지 않겠다는 증거였다.

주인공이라면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끝없이 나아가야 했다.

그것이 영웅의 이야기니까.

‘자, 그러면 이제 슬슬.’

나는 나대로 일을 시작해 볼까.

새로 들어온 시청령은 지금 이 서재의 뜨거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응? 이거 뭐야.”

천체주식회사 소속 대리급 텔러 타우단.

인간과 파충류를 반쯤 섞어 놓은 듯 생긴 그는 지구에 파견된 시화실 소속 텔러 중 하나였다.

오늘도 할 일이 없어서 적당히 제네시스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정보를 검색하던 그는. 지구의 서재 리스트에 새로 떠오르는 서재 하나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새로운 서재가 등장했다고?”

새로운 서재가 등장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새로운 기수가 왔으니, 그들이 서재를 만들면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서재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선보이지 못하고 폐쇄되며, 다른 텔러들에게 흡수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타우단이 놀란 것은 이번에 새로 생성된 서재가 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야. 서재 개설 3시간도 안 돼서 시청령이 15나 된다고? 이게 말이 되나?”

보통 처음 서재 개설을 할 경우에 시청령은 한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유지하는 것이 힘든 데다가 시청령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답도 없었다.

어느 정도 버티면서 나름 재미난 콘텐츠를 보여 준다면, 1달 정도쯤에 저 정도 시청령을 모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3시간이라니?

특정 부서에서 작정하고 뒤를 밀어줘도 이렇게는 되기란 쉽지 않았다.

“텔러 이름은 강유현? 이런 녀석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이 서재 첫 개설일이 오늘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제 막 정사원을 단 신입이라고?’

타우단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막 시화를 시작한 애송이가 벌써 이만한 성령들을 모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가 저 정도 크기의 서재를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데.

‘확인을 해 봐야 한다.’

혹시라도 무슨 꼼수를 쓴 게 아닐까? 타우단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텔러로서 유현의 서재에 입장했다.

그리고 타우단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엄청난 기세로 코볼트 무리를 휘젓고 있는 한 여성이었다.

‘뭐지? 저 컬렉터는 대체…….’

복장은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은 트레이닝복. 몸을 보호하는 방어구도 없으며, 손에 쥔 검은 컬렉터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평범한 무기였다.

겉모습만 보면 계약할 텔러도 찾지 못하는 하급 컬렉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뭐가 저렇게 강해?’

그도 대리라는 직급까지 올라오면서 다양한 컬렉터들을 봐 왔다. 능력이 있거나 재능이 있다는 자들도 본 적이 있었고, 다른 서재에 소속된 컬렉터들이 어떻게 싸우는지도 참고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타우단은 컬렉터의 대략적인 실력을 알아볼 정도의 안목은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타우단이 느낀 강혜림은 믿을 수 없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점점 강해지고 있어.’

그것은 새로운 힘을 얻었다기보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힘을 되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강혜림은 거침없이 광산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막아서던 코볼트 환상체들도, 이제는 그 무위에 겁을 먹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보다 지금 어디까지 들어가는 거야?’

타우단은 그제야 강혜림이 경계선을 한참 넘어 광산의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경계선을 넘어서 들어갔다고? 미친 건가?”

지구의 컬렉터들이 경계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깨트리면 안 되는 일종의 금기 취급까지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미친 짓을 저질렀다고?’

보통 컬렉터가 나서서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계약을 맺은 텔러가 무언가를 했다는 소리인데.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타우단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컬렉터들도 결국 사회에 소속된 인간들이었다. 정해진 무언가를 거역하는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 것에 성령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타우단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름이…… 커지고 있어.’

지구에 존재하는 서재 리스트. 당연히 시청령이나 구독령의 숫자에 따라 그 순위가 정해지는 목록인데, 그 순위의 아래에서 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뭔가 재미난 게 없을까 탐색하던 성령들이. 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미친 짓, 미친 짓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컬렉터를 발굴한 것도 그렇지만, 컬렉터들이 정한 규율을 보기 좋게 때려 부수기까지 했다.

‘분명, 미친 짓인데.’

그 미친 짓에 목마른 성령들이 많았다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는 소식을 듣고.

또 누군가는 호기심에 방문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강유현의 서재에는 성령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덧 시청령의 숫자가 스물에 육박하게 됐고.

그 순간, 이름이 없던 서재에 하나의 제목이 새겨졌다.

[검후전기(劍后傳記)]

강유현이 보여 주고자 하는 첫 번째 영웅담의 이야기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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