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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3화 (1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3화

강혜림은 눈앞의 코볼트 환상체를 두고 잔뜩 긴장했다.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고, 검을 쥔 손아귀에 땀이 차올랐다. 그녀는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강혜림은 못내 그것이 불안이었다.

컬렉터가 되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전에 저런 괴물과 싸운 적도 없었다.

‘무서워.’

환상체를 처음 대면한 컬렉터들의 마음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들에겐 의지와 각오가 없는 반면, 환상체는 이 세상의 침입자를 향해 살의와 적의를 불태웠다.

그것을 처음 마주하는 초보자들은 그 기백에 밀려 얼어붙는 게 당연지사.

심지어, 그녀를 지켜보는 눈이 하나가 아닌 것도 컸다.

[샬드랄라의 지배자가 당신의 모습에 혀를 찹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당신이 겁먹는 모습에 기뻐합니다]

[고통의 탐구자가 당신이 망가지는 걸 기대합니다]

성령들의 존재가 그러했다.

컬렉터에게 있어서 성령의 존재감은 컸다. 환상체를 사냥하며 포인트를 벌 수 있었지만, 가장 큰 포인트 벌이는 바로 저 성령들에게 있었으니까.

성령들의 눈에 들어야 한다. 성령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 생각이 족쇄가 되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중요한 첫 전투,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막대한 부담과 긴장감.

강혜림은 위장이 콕콕 쑤셔서 당장이라도 검을 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었다. 할 수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강혜림은 검을 꽉 쥐고, 도망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

그녀는 강유현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게 갑자기 나타난 신비로운 청년. 그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해 줬다.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 줬다.

허름한 고시원의 좁은 방. 그곳에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허망하게 삶을 소모하던 이런 자신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해 줬다.

‘여기서 내가 도망친다면, 강유현 텔러님에게 폐를 끼치고 말아.’

자신은 어떻게 돼도 좋다. 하지만, 은인에게만큼은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공포, 두려움, 긴장감. 그 모든 것들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 하나가 그녀가 도망치지 않게 등을 지탱해 줬다.

그리고 자신이 망가지길 원하는 저 성령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기대감을 품은 강유현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자신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검을 들어.’

강혜림은 실전에서 검을 쥐어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휘두른 적은 연습 때를 빼고, 한 번도 없었다.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는 거야.’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차분했다.

손을 타고 느껴지는 투박한 칼자루의 감촉이 그녀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너는 모든 것을 쥘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벨 수 있다고.

크르아악!

코볼트가 입을 쩍 벌리고 강혜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짐승처럼 주둥이가 튀어나온 이 파충류를 닮은 생명체는 징그러운 것을 넘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손에 쥔 단검, 날카로운 이빨. 어느 것 하나에만 당해도 아프고 괴로울 것이었다.

강혜림은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느리게 지나가는 그 속에서, 그녀는 오늘 검을 휘둘렀던 그 감각을 떠올렸다.

‘마치, 검과 하나가 된 것 같은…….’

파앗!

코볼트가 어느덧 지척까지 접근했고, 동시에 강혜림이 움직였다.

시종일관 허공에 고정된 그녀의 검 끝이 광산 내에 존재하는 희미한 빛을 받아 번뜩였다.

단순하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 검과 함께 손이 나아가는 유려한 궤적.

그것이 코볼트가 쥔 단검과 그 얄팍한 몸통을 가르고 지나갔다.

케엑!

코볼트가 투박한 비명을 내지르며 지면에 쓰러졌다. 반대로 코볼트와 교차하듯 지나간 강혜림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빠른 반격.

그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본 성령들은 경악했다.

[샬드랄라의 지배자가 당신의 무위에 감탄합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이 광경을 믿을 수 없어 합니다]

[고통의 탐구자가…….]

성령들이 본 강혜림은 초짜였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도 몰랐으며, 전투의 마음가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초짜.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코볼트 한 마리에게 겁먹고 도망치는 강혜림만 그려졌었다.

그랬어야 했는데.

강혜림은 그런 성령들의 부푼 기대감을 보기 좋게 배신했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갈 필요도 없이 단 일격에 코볼트를 쓰러뜨렸다. 절대 초보자가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역시나.’

관조자의 방에서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본 유현은 씨익 웃었다.

“바로 그겁니다. 강혜림 씨.”

그녀의 검격은 유현이 봐도 매혹될 정도로 강하고 또 아름다웠다.

“칼은 그렇게 휘두르는 거죠.”

스스스스.

즉사한 코볼트는 순식간에 새하얀 활자(Text) 덩어리들로 변했다. 이렇게 ‘이야기’로 이루어진 환상체는 죽음과 동시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극소 단위의 텍스트로 변했다.

그중 일부는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고, 또 일부는 강혜림의 몸에 흡수됐다.

강혜림의 몸에 쌓인 텍스트는 그대로 포인트로 변환되어, 그녀에게 축적됐다.

[코볼트를 쓰러뜨렸습니다.]

[3TP를 획득했습니다.]

처음으로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벌어들인 포인트. 그리고 일격으로 보여 준 무위에 감탄하는 성령들의 모습.

강혜림의 눈에는 그런 것들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뿐이었다.

‘내가, 해냈어.’

뒤늦게 검을 쥔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닌 기쁨의 떨림이었다.

‘정말로 해냈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강혜림은 문득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컬렉터로서 생애 첫 각성. 부푼 기대감을 안고 교육소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들은 것은 핀잔뿐이었다.

‘너는 힘은 무식하게 센데, 왜 그렇게 겁이 많아?’

‘성격이 너무 소심해. 환상체를 상대로 무기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거야.’

‘뭐. 꼴에 신체 능력은 좋으니, 탱커 정도는 할 수 있겠네.’

교관의 동정 어린 시선과 동기들의 무시.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그녀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성공해서 떳떳해지고 싶은 꿈을 접었고, 내일이 아닌 오늘을 걱정하며 살았다.

‘지금은 달라.’

누군가 보면 고작 코볼트 한 마리를 쓰러뜨린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남들에겐 고작 코볼트 한 마리였지만, 생애 첫 전투를 통해 얻은 영예로움은 강혜림의 안에 깊게 자리했다. 그 누구도 알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잘하셨습니다.”

“아.”

아니. 알아 주는 이가 하나 있었다.

관조자의 방에서 나온 유현은 강혜림에게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광경에 강혜림은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유현이 먼저 선수를 쳤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 이릅니다.”

케륵! 케르륵!

광산 깊은 곳에서부터 코볼트 무리의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전투 소리를 듣고 안쪽 녀석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인지한 것이었다.

강혜림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쥐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평소보다 냉철해진 상태였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혜림 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로 일일이 기뻐하기에는 이릅니다.”

이 세상은 강혜림이 앞으로 기뻐할 일들이 가득했다.

여기서 만족하고 기뻐하면 안 됐다.

더 욕심내고, 더 갈망해야 했다.

“할 수 있겠죠?”

“네.”

강혜림이 자신감에 차오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무운을 빌죠.”

강유현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관조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멀리서 코볼트 무리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처럼 한 마리가 아니다. 최소 다섯은 돼 보였다. 절대 초보자가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혜림은 이상하게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아직 기뻐하기에는 일러.’

그녀는 검을 고쳐 쥐었다.

동시에 어둠 속의 코볼트 무리가 장막을 헤치듯 등장했다. 놈들은 강혜림을 보자마자 적의를 불태우며 달려들었다.

강혜림 또한 주저하지 않고 코볼트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샬드랄라의 지도자가 계약자의 무위에 감탄합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할 말을 잃고 입을 쩍 벌립니다.]

강혜림이 망가지길 바랐던 성령들은 처음 보였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에 와서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지는 않았다. 처음 싸움이 그저 운이었다고 믿으며, 어떻게든 강혜림의 꼬투리를 잡아 그녀에게 훈수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강혜림이 광산을 누비며 코볼트들을 일방적으로 쓰러뜨리기 시작하는 순간, 성령들은 점차 그녀의 무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진짜 대단하긴 하단 말이지.’

[고려시대 소드마스터]라는 특성. 이름이 장난스럽지만, 무려 주인공급 특성이었다. 애초에 이 특성의 주인은 인류사에 있어 검을 쥔 사람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의 강함을 선보였었다.

그것이 인제 와서 빛을 보게 된 것일 뿐.

그리고 강혜림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점점 자신의 특성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성장력이야.’

억눌러 왔던 무언가를 해방한 듯, 강혜림은 날개를 단 것마냥 날아다녔다. 도저히 최하등급의 컬렉터라고 치부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처음에 사기니, 뭐니 주장하던 성령들조차 지금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성령들의 반응을 살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굴어도, 성령은 성령이라 이건가.’

그들은 강혜림이 보여 주는 싸움에 푹 빠져있었다. 다른 서재에서 온갖 트롤질로 깽판을 치던 녀석마저 마치 홀린 듯 강혜림을 주시했다.

게다가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내 서재에는 또 다른 성령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처음 셋이었던 시청령은 지금 와서는 열 명으로 늘었다.

‘아직 이름 있는 성령들은 없지만, 매우 순조롭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초반 분위기였다.

다른 서재의 경우에는 시작과 동시에 욕을 먹거나, 성령들이 답답함에 훈수를 두고는 했다.

하지만, 내 서재에 들어온 성령들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홀린 듯, 강혜림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샬드랄라의 지배자가 강혜림에게 100TP를 후원합니다.]

[21TP를 획득했습니다.]

[고통의 탐구자가 강혜림에게 100TP를 후원합니다.]

[21TP를 획득했습니다.]

성령들이 강혜림에게 포인트를 후원했고, 그 포인트의 일부는 내게 돌아왔다.

그것이 계약의 힘이었다. 성령들이 강혜림에게 후원하면 할수록, 내게도 이득이 된다는 소리였다.

텔러가 잘 나가는 컬렉터를 붙잡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자. 성령님들 어떠십니까? 강혜림 컬렉터는 무려, 오늘이 첫 전투라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첫 전투에, 처음 쥔 검으로 코볼트 무리를 쓰러뜨리는 그 모습이.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직 더 할 수 있거든요.”

나는 성령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그들이 더 많이 포인트를 후원하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이 서재를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는 역할을 했다.

성령들이 서재에 오래 머무를수록 공적치는 쌓이고, 또 그것이 내게 포인트로 돌아오는 구조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포인트 일부는 강혜림에게 들어갔다. 결국, 컬렉터와 텔러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지.’

물론, 그건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또다시 한 무리의 코볼트를 휩쓴 강혜림은 지친 기색도 없어 보였다. 전투로 소모하는 체력보다 특성의 힘으로 회복되는 체력이 더 많았다.

어느덧 강혜림은 광산의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여긴…….”

“경계선입니다.”

벽에 새겨진 표식을 본 강혜림에게 내가 나타나며 대신 대답해 줬다.

“코볼트가 한 건가요?”

“아뇨. 사람이 한 겁니다. ‘여기까지’가 파밍 구역이라고 정해 놓은 거죠.”

그러니까 포인트 벌이로 사냥을 하고 싶으면 여기까지만 하라고, 일종의 지표를 정해 놓은 것이었다. 이 이상 들어가면 사상세계 자체에 영향을 주게 되니까.

경계선은 안정적으로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처를 유지하자는, 컬렉터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점이었다.

“아…….”

강혜림은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쉬움이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의아해서 물었다.

“왜 아쉬워하십니까?”

“네? 하지만, 이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가 끝이라고…….”

“제가 언제 여기가 끝이라고 했습니까?”

“예?”

당황하는 강혜림에게 나는 손가락을 들어 경계선 너머를 가리켰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야죠.”

“끝까지 가야 한다면, 설마?”

눈을 크게 뜨는 강혜림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오늘 이 사상세계를 혜림 씨가 완전히 클리어 하는 겁니다.”

경계선? 서로 터치하지 말고 좋게좋게 가자고?

웃기지 말라고 해.

오늘 이 사상세계는 우리가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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