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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2화 (1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2화

나는 어떤 식으로 서재의 이름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른 텔러들처럼 어그로성이 높은 이름을 지을까? 아니, 여기서 내가 무슨 이름을 지어도 저 서재들과 다 고만고만하게 비춰 보일 거란 말이지.’

평범한 이름이 넘칠 때 저런 이름을 쓰면 그건 확실하게 관심을 끌 수 있었지만,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저런 이름으로 관심을 모으려는 건 하책이었다.

외눈박이 나라에서 한쪽 눈만 뜨면 정상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혹시나 참고할 것이 없나 싶어서 다른 서재들을 유심히 살폈다.

이번에 입사식을 끝낸 내 동기들은 벌써부터 서재 개설을 끝내고, 시화(示話)를 선보이고 있었다.

시청령(視聽靈)이 많으면 셋, 적으면 하나밖에 없는 아주 작은 서재였다.

혹시나 싶어서 해당 서재에 접속해서 확인을 해 보니, 그나마 있는 시청령들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샤드카르의 첫 번째 생존자 100TP 후원!]

[이게 뭐냐? 진짜 하다 하다 이상한 놈을 보여 주네.]

[교만한 지룡 100TP 후원!]

[진짜 수준이 낮네요. 새로 생긴 서재라 해서 호기심 들어서 왔는데, 그냥 가렵니다.]

[선술집의 취객 100TP 후원!]

[ㅋㅋㅋㅋ걍 서재 접는 거 추천.]

메시지 창엔 악플만 달려 있었다. 심지어 간접 메시지도 아니고, 저렇게 TP를 소모로 하는 직접 메시지로 말이다.

성령들은 텔러와 컬렉터를 실컷 조롱하고 있었으며, 당연히 실시간으로 보는 컬렉터의 표정은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도를 넘은 비난과 인신 공격. 하지만, 시청령이라고는 저들이 전부라 쳐낼 수도 없는 상황. 아마, 이 서재 텔러는 눈물을 머금고 저 성령들의 비위를 맞춰 주고 있으리라.

처음의 분위기는 모든 것은 아니어도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간다.

차후 저 서재에 호기심으로 들어간 성령들 또한 저 반응에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쭙잖은 컬렉터와 계약을 맺은 결과지.’

확실히 성령들이 짜증을 낼 정도로 컬렉터의 수준은 낮았다. 계약자가 없던 컬렉터라 실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혜림이라는 히든카드를 잡았으니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

아마 저 서재의 성령들은 당장에 TP를 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놀리는 것마저 흥미가 떨어져 서재를 나가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당 서재는 더 이상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사장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텔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두 가지.’

첫째는 다른 서재를 운영하는 텔러의 밑으로 서재 권한을 양도하며 들어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TP를 벌지 못해 결국 서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대다수의 텔러들은 첫 번째 방식을 취했다. 비록 누군가의 아래에 들어가 부려 먹히고 온갖 잡일을 담당하겠지만, TP가 없어서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게 일반적인 텔러들의 말로였다.

실시간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자칫 잘못하면 저렇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참 다행이지.’

나는 일단 서재의 이름을 정하지 않은 채 [서재 개설] 버튼을 눌렀다.

[미션 성공!]

[개인 서재를 획득했습니다]

[관조자의 방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원할 때마다 관조자의 방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만 들리는 자그마한 팡파르 소리와 함께 서재가 개설됐다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관조자의 방이 뭔지 알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강혜림 씨.”

“네.”

“일단, 제가 충고한 대로 무기를 검으로 바꾸고 연습하신 것은 잘했습니다.”

“헤헤. 감사합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만한 실적을 낼 수 있냐는 거겠죠. 강혜림 씨. 검을 휘두를 준비는 됐습니까?”

“네?”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한 말의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것. 그것은 단순히 허공에 대고 연습하는 게 아니었다. 강혜림은 이제 본격적으로 컬렉터로서 활동해야 했다. 그걸 위해 무기를 바꾸라고 한 것이었고.

“그, 지금요?”

설마 벌써부터 내가 이런 말을 꺼낼 줄 몰랐는지, 그녀가 되물었다.

“혜림 씨. 우리 텔러들이 컬렉터와 계약을 맺고 시화를 하는 거 아시죠?”

“네.”

“시화(示話)라는 것은 이야기를 보여 준다는 뜻입니다. 우리 텔러들은 적당한 계약자를 찾아, 성령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 주죠. 여기서 묻겠습니다. 우리가 보여 주려는 이야기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 그게…….”

그녀는 대답하는 걸 망설였다. 정확히는 이런 것에 관해서 별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리라.

강혜림은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컬렉터의 삶이 아닐까요.”

“뭐, 비슷하지만. 조금 포괄적인 말입니다. 사실, 이야기라는 것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죠. 어떤 성령들은 컬렉터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를 궁금해합니다. 그들이 살아온 삶과 역사에 호기심을 느끼죠. 또 어떤 성령은 자신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어떤 성령은 컬렉터가 보여 주는, 재미난 모습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죠.”

즉, 보여 주는 이야기에서도 장르가 갈렸다.

미지를 탐험하는 모험을 보여 주는 컬렉터도 있고, 다양한 요리를 만들고 그것을 먹는 것을 보여 주는 컬렉터도 있었다.

역사, 철학, 엔터테이먼트 등등.

하지만 이런 장르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 장르가 있었다.

“그게 바로 영웅담입니다.”

“영웅…… 담이요?”

영웅의 이야기. 그들의 탄생과 성공해 나가는 서사.

성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다.

“강혜림 씨. 당신은 앞으로 영웅담의 주인공이 될 겁니다.”

“저, 저 같은 게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뭐, 거창하게 영웅담이라고 했지만. 실상해야 하는 일은 간단했다.

게이트 내부로 들어가, 그 안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쓰러뜨리고 꾸준히 성장하는 것.

영웅담의 기본적인 골자는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단순한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많은 텔러들이 도전해도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눈앞의 벽을 넘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저는 아직 컬렉터 등급도 아주 낮은걸요. 이제 종9품(從九品)밖에 안 되는데…….”

종9품이라면 정1품부터 시작하는 한국 컬렉터의 18등급 중에서 가장 아래. 알파벳으로 랭크를 매기면 F에 가까웠다.

“상관없습니다.”

그녀가 계급이 낮은 건 아직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서였다.

특성을 깨우쳤을 때, 수준으로 매기면 종9품이 아니라 오히려 몇 단계는 높여도 부족했다.

“그, 그래도.”

“강혜림 씨는 자신의 힘을 믿으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은 모르겠죠. 하지만, 제 말대로만 하시면 금방 깨닫게 될 겁니다. 당신이 지닌 그 특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으, 으음. 알겠어요.”

결국, 나의 설득에 못 이긴 것은 강혜림이었다.

강혜림은 검을 챙겼다. 공짜로 지원해 주는 그저 그런 수준의 무구였지만, 그녀의 수준을 생각하면 문제 될 건 없을 거였다.

때마침 해당 사상 세계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긴, 사람들이 조금 적네요.”

“입구가 외진 곳에 있으니까요.”

강혜림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내 시선은 다른 곳에 고정됐다.

시선의 끝, 그곳에서 새하얀 소용돌이가 허공에서 휘몰아치듯 회전하고 있었다.

‘저곳이 사상 세계로 통하는 입구.’

물질계 지구가 혼성 계에 편입되기 전, 신화나 전설은 그저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된 허구성으로 구성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혼성 계에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그것은 완전히 달리 변했다.

바로, 저 사상 세계의 출현 때문이었다.

‘실제 역사, 혹은 글로만 내려오던 전설, 신화, 설화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본뜬 곳.’

이제는 사라져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고대의 이야기가 현실로 구체화하여 일종의 아공간의 형태로 구현된 세계.

이런 사상세계야 말로 컬렉터들이 가장 활동하기 최적화된 장소였다.

“들어가시죠.”

“아, 네.”

강혜림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입구를 통해 사상세계로 진입했다. 순식간이 풍경이 바뀌었다. 우리가 이동한 곳은 광산이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눅눅하고 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앙바르 산맥의 코볼트 폐광.

해당 사상세계가 지닌 이름이었다. 물론 당장은 없고, 미래에 밝혀지는 것이지만.

‘그리고 초급 컬렉터들이 주로 포인트를 파밍 하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지.’

난이도도 적당해서 강혜림의 첫 데뷔전으로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여, 여기는……?”

“코볼트 폐광입니다. 코볼트에 관해서는 잘 아십니까?”

“아, 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달랐다. 강혜림은 잔뜩 긴장한 채, 검을 꼭 쥐었다. 그녀는 불안한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광산에는 그녀와 나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다.

잔뜩 긴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자못 안쓰럽지만, 이것도 다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강혜림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 서재 현황을 살폈다.

<제목: 무제(無題)> (강유현)

[서재 소개가 없습니다.]

현재 시청령 수: 0

#영웅담

서재는 개설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시화를 시작하지 않아 손님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나는 [서재 개방] 버튼을 눌렀다.

[서재가 개방됩니다.]

시스템 창의 메시지와 함께 나의 서재가 제네시스 네트워크의 시화 리스트에 올라갔다.

아주 잠깐만 기다렸을 뿐인데, 시청령들이 들어왔다.

어디 볼 만한 이야기가 없는지, 찾아다니는 성령들이었다.

[‘샬드랄라의 지도자’가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선술집의 취객’이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고통의 탐구자’가 서재에 입장했습니다.]

당장 들어온 숫자는 셋. 그중 하나는 낯이 익은 이름이었다.

‘누구인가 했더니, 다른 방에서 악플 달던 그 성령이잖아.’

아마, 새로운 방이 생겨서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온 것 같았다.

이거, 조금만 흠을 보이면 물어뜯기겠군.

나는 일단,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서재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서재의 주인, 강유현 사원이라고 합니다.”

[샬드랄라의 지도자가 됐고, 어서 이야기나 보여 달라고 합니다.]

[고통의 탐구자가 컬렉터의 겁먹은 행색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다들 성격이 급하군. 어떻게든 이쪽이 하는 걸 판단하고 물어뜯을 궁리밖에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강혜림에게 말했다.

“혜림 씨. 저는 이제 서재 관리실에 들어가 성령님들께 혜림 씨의 모습을 보여 줄 겁니다. 이제부터 혜림 씨 혼자서 싸워 나가야 합니다.”

“네에…….”

강혜림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도 어느 정도 다짐은 하고 있는지, 우는소리는 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누이 말했죠. 당신은 할 수 있다고. 그러니, 긴장을 풀고 가볍게 하시면 됩니다. 공터에서 검을 휘둘렀을 때의 감각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처럼만 하면 충분할 겁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게 끝이었다.

막상 검을 휘두르면 그녀도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리라.

나는 곧바로 개인 아공간으로 이동했다. 6평 넓이의 이 백색의 방의 이름은 [관조자의 방]이라 불리는 곳. 서재를 개설한 텔러에게 주어지는 개인적인 아공간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제삼자의 시선으로 컬렉터의 모습과 시청령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었다.

크륵 크르륵!

어두운 광산의 굴 너머로 코볼트의 소리가 들려왔다.

사상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신비와 괴이, 몬스터들은 사상세계가 지닌 이야기의 힘으로 구현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환상 구현체(幻想具現體)라 불렀다. 줄여서 환상체.

저 코볼트도 이곳 폐광의 이야기로 구현된 환상체였다.

크륵!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코볼트는 한 마리. 강혜림은 그런 코볼트를 보더니, 조심스레 검을 겨누었다. 앙다문 입술이 그녀가 긴장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코볼트도 강혜림을 발견하고 이를 드러냈다.

강혜림에게도 이번 첫 싸움은 중요하겠지만, 그건 나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이번이 첫 시화였으니까.

‘시작한다.’

화면 속의 코볼트가 강혜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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