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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7화 (7/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7화

텔러들 사이에서 소문은 빨랐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정보에 민감한 종족들이었고 당연히 남들보다 소식에 귀가 밝고 정보의 수집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입사식에 모인 중견급 텔러들의 사이로 하나의 소문이 퍼졌다.

[첫 번째 미션이 시작하자마자 모습을 개화한 텔러가 있다.]

처음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도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텔러가 완전히 모습을 개화하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2주는 소모됐다. 단순히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 아닌, 한 부위씩 천천히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개화를 끝냈다? 시간상 5분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누군가 지어낸 헛소리라 치부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진짜라면?’

소문이라는 것은 으레 과장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었지만.

‘소문의 100%가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소문이 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반, 아니 그 반의반이라도 소문에 걸맞은 상대라면.’

당연하게도 모두의 관심이 강유현을 향하게 됐다.

‘찾아야 한다. 다른 실 녀석들보다 먼저!’

‘어떻게든 포섭해야 한다. 다른 놈들에게 빼앗길 수 없어.’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연회장이었지만, 이곳은 이미 보이지 않는 검이 몇 번이고 충돌하는 전쟁터였다.

다른 부서끼리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고 주변을 수색하기 바빴다.

‘어디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왜 안 보이는 거지? 설마, 여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 이곳은 무조건 와야만 하는 곳. 분명, 어딘가에 있다.’

모두가 아닌 척하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서 강유현을 찾아다녔다.

결국 2층 테라스의 구석, 몰래 숨어서 책을 읽고 있던 강유현의 위치가 들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유현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나 다름없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책 읽기에 삼매경이었는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그래도 충분히 얻을 건 얻었다.’

숨어 있는 동안 시간을 꽤 번 덕분에 책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필요로 한 정보는 어느 정도 얻은 상태였다.

‘남은 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넘기느냐인데.’

그런 생각을 품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유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네로군. 이번에 모습을 단번에 개화했다는 신입이.”

“허. 진짜였네. 긴가민가했는데, 소문이 사실이었잖아?”

“사원님. 혹시 저희 재정실의 스피카 부서로 오지 않으시겠어요?”

순식간에 강유현 주위로 그를 포섭하려는 텔러들로 가득해졌다. 유현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말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최도윤도 그랬었지.’

종말이 찾아오고, 튜토리얼이라는 이름하에 사람들을 시련에 들게 했던 때였다.

유현은 누구보다도 먼저 최도윤의 곁에 빌붙어 있었고, 최도윤은 아직 자신만의 파벌을 만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패도적인 행보는 여전해서, 먼저 조직을 이룬 자들이 자주 접촉을 해 오고는 했다.

흔히들 말하는 스카우트.

그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무력을 가진 최도윤은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자들을 향한 최도윤의 행동은 언제나 똑같았다.

‘거절. 그것도 그냥 거절이 아닌, 꼭 상대방의 속을 긁는 말이나 행동으로 거절했었지.’

당연히 최도윤의 건방진 행보에 분노한 조직은 그를 어떻게든 죽이려 했지만, 최후는 언제나 똑같았다.

‘전멸.’

최도윤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조직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무너지고 붕괴했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유현에게 그 광경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꺼져라. 나는 혼자가 편하다.

최도윤은 항상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강유현은 그런 최도윤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렇게 말해?’

최도윤은 힘이 있었다. 본인도 그걸 아니까 당당했다.

하지만, 유현은 아니었다. 당장에 유현은 이제 막 입사식에 참여한 신입 사원이었다.

나름 예의를 차리며 접근하는 자들은 그보다 상급자들. 직장으로 따지면 선배였다.

‘이런 자들한테 꺼지라고 한다고? 진짜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말 못 하지.’

실력이 있어도 인성이 돼먹지 못하면 뭘 해도 안 되는 법이었다. 앞으로 몇 번 더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관계를 그르치는 건 너무 어리석었다.

‘굳이 상대방을 화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뭐든지 완만하게 해결해야 해.’

물론, 거절은 할 거다. 하지만, 강하게 말해서 적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강유현은 최도윤이라는 예를 모범으로 삼아 예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그래서 터득한 것은 바로 ‘처세술’

상대방의 적의를 사지 않고 원만하게 관계를 풀어 나가는 기술이었다.

“아하하. 이거 참. 제게 관심을 가져 주시다니, 영광스럽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당장…….”

“아. 그런데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그게 좀 힘들 거 같습니다. 저 같은 게 어찌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강유현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면서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제안은 거절하지만, 최대한 우회해서. 그리고 자기 능력의 부족함을 절감했다는 투로.

단지 그렇게만 해도, 상대방에게는 ‘비록 거절당했지만, 상대가 예의가 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기 충분했다.

간혹 이런 완곡한 거절마저 먹히지 않을 정도로 밀고 들어오는 텔러들이 있었다. 약간 정한 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인데, 은근 피곤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강유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엇? 감찰실 소속 탈라란님 아닙니까?”

“음? 내 이름을 어찌 알았지?”

사실 책을 통해 정보를 알아낸 것이지만, 유현은 능청 부리며 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는 길에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감찰실에 강직하고 능력이 뛰어난 선배님이 계시다고. 향후 해당 실의 간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크크 흠흠.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보는 눈이 있군.”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해당 출납계 직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유형은 이때다 싶어 본론을 꺼냈다.

“솔직히 저도 탈라란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라는 게 여의치 않아서요. 무엇보다 여기는 다른 소속 선배님들도 많이 모이는 곳 아닙니까? 제가 섣불리 선택을 내리면, 선배님이 견제를 받으실 겁니다. 저는 선배님이 저 때문에 곤혹스러워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제 마음 아시겠죠?”

내가 하고는 싶은데, 당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절한다.

이 말뜻을 이해한 탈라란의 눈빛이 감동에 젖었다.

“그러니,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하는 제 선택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흠흠.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신입은 또 신입의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강유현은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시간 벌기일 뿐이야.’

지금은 잘 설득해서 물러났지만, 아마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다시 찾아올 게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해서 핑곗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유현은 음식을 맛본다는 핑계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중이었다. 유현은 접시에 먹을 것을 일부러 천천히 담으며 시간을 벌었다.

아마 유현이 이 요리를 다 먹는 순간, 그때부터 다시 영입 전쟁이 재개될 것이 자명했다.

‘그보다 텔러가 요리를 먹었나? 내가 알기로는 포인트를 먹고 사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텔러는 태생부터 독특한 종족이다 보니, 다른 생명체처럼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그들은 생존에 있어서 포인트를 소모했다.

그걸 알다 보니, 이 만찬장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일단 차려진 음식을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만.’

딱 봐도 맛있어 보이다 보니, 일단 맛 정도는 볼 생각이었다.

유현은 적당히 양념이 발라진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었다.

그 순간 눈앞에 알림 창이 떠올랐다.

[1TP를 획득했습니다.]

[1TP를 획득했습니다.]

[1TP를 획득했습니다.]

고기를 씹던 유현은 그제야 이 연회장의 음식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왜 텔러들이 이런 걸 먹나 했더니, 요리 자체가 포인트로 이루어진 거였나?’

이런 건 처음 보는 것이라 조금 신기했다. 하지만 유현은 주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에 다시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강유현을 향한 주변의 시선은 다양했다. 질투, 경외, 그리고 욕망.

전생에서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관심이었지만,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이제 곧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겠군.’

천체주식회사 내부의 파벌 싸움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유현의 존재는 그 밸런스를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카드였던 것이다.

‘그 마음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용당하는 건 질색이라서 말이지.’

유현의 시선이 연회장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다 한 텔러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건?’

유현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텔러들이 재차 다가왔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거절당하지 않고 유현을 섭외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다분한 채였다.

그러나, 유현의 시선은 한 텔러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흠흠.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 봤는데 말이야.”

“이쪽 부서로, 아니 이봐. 감찰실 놈들은 상도덕도 없나? 내가 먼저 말 걸었네만?”

“지원실 나부랭이 놈들은 항상 그렇듯 뒤로 물러나 있지?”

“재정실 놈들은 맨날 눈 굴리며 포인트만 만지더니, 머리가 안 굴러가나 봐?”

서로를 견제하면서 유현에게 접근하는 텔러들.

하지만, 이번에는 유현의 반응이 더 빨랐다.

“이거 죄송합니다. 저 선약이 먼저 잡혀서.”

유현은 그 말만 남기고 자신이 눈여겨보던 텔러에게 황급히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하하. 오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왜 여기에 계십니까?”

“음?”

“이거 참, 절 모르시다니 섭섭합니다.”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상대방을 잡아끌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주위에서는 말릴 틈도 없었다.

상대방은 그런 유현을 잠시 지긋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미안. 잠시 다른데 정신이 팔려서.”

저쪽에서도 대답을 받아 준 덕분에 유현은 다른 텔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떠나가는 유현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텔러들이 유현이 사라지고 나서 뒤늦게 이상함을 깨달았다.

“잠깐만. 방금 그 신입이랑 함께 있던 텔러, 어디 부서 소속이야?”

“그보다…… 저런 텔러가 이번 입사식에 오기로 했던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그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유현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그들은 자리를 떠난 뒤였다.

* * *

겨우 귀찮은 손길을 피해서 연회장을 빠져나온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이번 미션은 입사식에 참여하라는 게 전부였어. 참여는 했으니, 중간에 빠져나와도 상관은 없다는 소리지.’

이런 연회도 온종일 여는 것은 아니라 언젠가 끝나게 된다. 그리고 연회가 끝나면 나를 포함한 신입들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 준다고 하니, 나로서는 시간만 끌면 됐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적당한 곳에 짱박혀서 책만 읽으면 끝. 적당한 장소도 이미 물색을 끝냈으니, 바로 가기만 하면 됐다.

“빠져나오는데, 적당히 맞장구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는 연회장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자에게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 기묘한 시선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으음. 뭔가 이상하니, 빨리 자리를 떠야겠군.

“피차 서로 바쁜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 멈추세요.”

왠지 불안해서 자리를 뜨려는 그 순간, 상대방이 뒤에서 날 불러 세웠다.

이대로 그냥 도망치면 됐음에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당신, 어떻게 그 연회장에서 저를 발견했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도망치는 건 글러서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등골이 싸늘해지며 전신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뱀이 내 몸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자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고른 거 같은데.’

승냥이 떼를 피하려다 호랑이와 마주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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