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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6화 (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6화

천체주식회사의 이미지는 내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애초에 저것을 ‘회사’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거대하군.’

그것은 우주에 떠다니는 거대한 섬이었다.

그리고 섬 위에는 도시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그렇다면 저 도시 중에 천체주식회사 건물이 있는 걸까?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천체주식회사란, 저 도시 전체를 포함한 섬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었다.

보통 회사라는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거대한 빌딩 하나를 떠올리겠지만, 저것은 그런 예상을 아득히 웃도는 규모를 지녔다.

“도착했다.”

뼈 사슴. 우리를 인솔하기로 한 사스라도 그가 도착을 알렸다.

우주 열차에서 천체주식회사까지 가는 길에, 그저 생각 없이 넋 놓으며 창밖을 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상황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고, 그것이 끝날 무렵에는 인솔자인 사스람도르의 책을 통해 그의 정보를 읽었다.

덕분에 복잡했던 머리를 정리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입사식에는 특별하게 성령들을 초대했다고 했었지.’

“너희들은 이제 곧 입사식에 참여하게 될 거다. 참고로 주의할 점이 있다. 이번 입사식은 성령님들의 초청식도 함께 진행된다.”

생각하기 무섭게 사스람도르가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찹쌀떡들이 당황했지만, 사스람도르는 손뼉을 한번 짝 치는 거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어차피 너희들이 성령님들께 뭘 하라고 바라는 게 아니다. 너희들이 가만히만 있어도 서로 마주칠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뭐, 열리는 시기는 비슷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거행하는 건 아니니까. 당연한 일인가.’

정확히 이번 성령들의 초청식은 앞으로도 천체주식회사와 잘 해 보자고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일 뿐이었다. 입사식과 타이밍이 겹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지, 누군가가 의도한 부분은 없었다.

‘뭐가 어찌 됐든 입사식이라고 마냥 편한 건 아니겠지만.’

시작부터 1시간만 주고서 알아서 계약을 맺어오라고 현장에 집어던진 놈들이다. 그걸 성공했다고 입사식을 통해 잘 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입사식은 새로운 시련의 장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 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확실하지.’

우주 열차에서 우리가 내린 곳은, 천체주식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역이었다.

우주 열차는 본사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고, 그 근방만 순회하듯 돌아서 우리를 내려 줬다.

역 근처에는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몇몇 존재가 있었다.

‘침입자를 막기 위한 경비인가?’

죄다 전신을 가리는 갑옷을 걸치고 있어서 종족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만큼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경비병들을 지나쳐 역 바깥으로 나가자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기차역과 천체주식회사를 이어 주는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것이었다.

“따라와라.”

사스람도르가 앞장서고 나와 다른 찹쌀떡들이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천체주식회사의 넓은 부지를 가로지르듯 걸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다르듯, 내부에서 보는 천체주식회사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경외감이 들었다.

“우와아.”

“와.”

일부 찹쌀떡들이 감정을 채 숨기지 못하고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나도 보는 눈이 없었다면 똑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온갖 문화의 다양한 건물 양식들이 가득한 곳이라니.’

그것이 너무 올드하지 않게 현대 건축물의 디자인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우뚝 서 있었다. 도로는 포장이 깔끔하게 돼 있었고, 틈틈이 보이는 이동 수단은 지구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별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여기다.”

사스람도르가 안내한 곳은 거대한 연회장으로 추정되는 건물이었다. 그 웅장한 자태에 작게 떠들던 찹쌀떡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모종의 기대마저 품은 것 같았다.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지만.

‘애초에 차원 게이트를 이용해 단번에 넘어올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도보를 이용하다니. 누가 텔러들 아니랄까 봐 참 영악하군.’

이건 일종의 통과 의례에 가까웠다.

신입 텔러들에게 일부러 천체주식회사의 광활한 모습을 두 눈에 새기듯 보여 줌으로서, 조직을 향한 경외심과 충성심을 심어 주기 위한 과정.

나도 사스람도르의 책을 통해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교묘한 작업이었다.

‘그것보다 진짜는 이쪽인가?’

입사식이 열리는 건물에 들어선 우리는 긴 복도를 걷다가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

커다란 문을 눈앞에 둔 나는 주먹을 한차례 쥐었다 폈다.

이 안쪽에서 이번 새로운 텔러들의 합격을 축하한다는 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찹쌀떡 녀석들은 그 소식에 희희낙락해서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야지.’

이제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두렵다고 해서 멈추거나 도망치지 않으리라.

‘가자.’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 * *

연회장 안쪽은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내뿜는 빛으로 가득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넓은 홀. 커다란 테이블 위로는 온갖 산해진미가 놓여 있었다.

홀의 한쪽에서는 주인 없는 악기들이 저절로 움직이며 은은한 곡조를 흘렸다.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제 막 사원 딱지를 단 텔러들은 기뻐하며 연회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조금 멀리 떨어진 장소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일단, 우리만 있는 건가?’

홀에는 이제 막 미션을 통과한 텔러들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안내해 준 사스람도르도, 자신의 역할은 끝이라며 떠나 버렸다.

일종의 자유마저 획득한 찹쌀떡들은 저들끼리 조잘조잘 떠들거나 홀에 널린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로 팔짱을 꼈다.

“너. 거기서 뭐 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래야.”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새하얀 찹쌀떡 하나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녀석들과는 모습이 조금이지만, 다른 게 있었다.

‘뿔?’

녀석의 머리 위로는 두 개의 붉은 뿔이 우뚝 솟아 있었다.

나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앞으로 취할 모습 일부를 개화시킨 녀석이었다. 눈매도 조금 매서운 거 같고.

“그래서, 왜 부른 건데?”

“너는 저기 저 녀석들처럼 연회를 즐기지 않는 거야?”

“별로.”

딱히 친해질 생각은 없어서 나는 짧게 대꾸했다. 나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익. 너, 지금 자기는 모습을 벌써 취했다고 기고만장하는 거야?”

“뭐?”

“그래. 그렇겠지. 첫 등장과 동시에 모습을 완전히 개화하다니. 확실히 자랑할 만해. 그래도 너, 너무 나를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을걸. 내가 곧바로 너를 따라잡아 줄 테니까!”

뿔쟁이 녀석은 나를 향해 앙증맞은 손을 척 하고 내밀더니, 이내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대체 뭘 하러 온 건가 싶었는데, 선전 포고 때문이었나?

‘재미있는 녀석이네.’

다른 찹쌀떡들과 다르게 개화한 부위가 2개나 있다는 것은, 텔러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거겠지. 어쩌면 먼 미래에는 대단한 텔러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이다.

‘이름이라도 들어 둘 걸 그랬나? 아니, 아직 이름이 없겠구나.’

시작과 동시에 모습과 이름 다 있는 내가 제일 이상한 거였다.

‘뭐, 그거야 상관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연회장이 지니는 가치였다.

당장에는 아무도 없이 이제 막 사원으로 승진한 녀석들끼리 떠들고 있지만, 이제 곧 진짜 연회가 시작된다.

‘드디어 왔군.’

그리고 기다리던 상황은 빠르게 도착했다.

연회장의 대문이 열리며, 텔러들이 우르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

“뭐지?”

새로 들어온 텔러들은 딱 봐도 ‘나 대단한 사람이오’라는 걸 몸에 새긴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들어온 첫 행동과 다르게 사근사근한 말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이번 연회의 주최 측 텔러니까.”

“자자. 긴장하지 말고 다들 아까처럼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찹쌀떡들은 그 말에 안도하며 다시 연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연회가 열리는 이곳은 입사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장소가 품은 진짜 의미는 그게 아니었다.

‘말이 축하지. 사실, 상급자들의 기수 품평회에 가까워.’

연회장에 들어온 텔러들은 직급만 놓고 보면 천체주식회사에서 중직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텔러들을 보고 확인하며, 그들이 첫 번째 미션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선택하는 거였다.

자신의 실(室)과 부서에 필요한 인재를.

‘천체주식회사 내부를 떠받치는 건 총 8개의 기둥.’

가장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역시 시화실(示話室)이었다.

시화실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서 성령들에게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성령들로부터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일을 했다.

보통 하계에서 알고 있는 텔러의 이미지란, 전부 시화실의 그것이었다.

시화실이 갖는 영향력은 아주 컸고, 갓 태어난 텔러들이 시화실에 품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다른 실에서 그걸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지.’

다른 실들도 인재를 애타게 원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시화실 소속 텔러들에게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 주며 후방에서 지원해 주는 지원실.

자사 내부의 인턴 교육이나 안내 및 잡일을 담당하는 관리실.

외부에서 회사의 침입자를 막아 내기 위한 경비를 맡는 수호실.

내부에서 터지는 문제를 관리하고 처리하는 감찰실.

이야기를 통해 벌어들이는 포인트를 관리하는 재정실.

모든 사건을 기록하며 보관하는 회계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실(室)을 통제하는 중앙실까지.

천체주식회사는 이런 일중칠실(一中七室)의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중 중앙실은 최고위 간부급만 소속되는 곳이라 평범한 텔러는 갈 수 없는 곳인 걸 고려한다면 고를 수 있는 건 7개. 아니, 그 7개의 실에서 또 저마다 부서가 갈리는 걸 생각하면 주어진 선택지는 훨씬 더 많았다.

‘어떻게든 이번 기수에서 쓸모 있는 녀석들을 추려서, 자신의 부서로 데려간다.’

이 자리는 자신의 실(室)과 부서에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일곱 부서의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뭐, 당장 다른 부서로 가고 싶은 녀석에게 있어서는 기회의 장이 되겠지만.’

나처럼 시화실에 그대로 남을 텔러라면 귀찮은 자리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 소문 들었나? 이번에 등장과 동시에 모습을 개화한 신입이 있다더군.”

“뭐? 진짜?”

“이미 소문이 쫙 퍼졌어.”

2층의 테라스에 몸을 숨긴 채 엿들어 보니, 아무래도 메인 타겟은 내가 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리 그것을 알아채고서 그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었다.

들키는 순간 저들은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 게 분명했다.

다른 실은 물론이며 시화실 소속 텔러라도 마찬가지. 저마다의 부서에서 서로 나를 데려가겠다고 난리를 피울 게 눈에 선했다.

‘보통 이런 자리는 좋아하지 않는데, 강제 참가라 어쩔 수 없고.’

무엇보다 나라고 이 자리에서 뽑아 먹을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노다지로군.’

나는 이번 신입 기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찾아온 텔러들을 살폈다.

정확히는 그들의 머리 위에 떠다니는 책들을 말이다.

저건 단순한 책이 아니다. 내게만 보이는 책이며, 무엇보다도 남들이 모르는 정보가 담겨 있는 보물창고였다.

‘정보야말로 곧 최고의 무기다.’

몰래 숨어 있던 나는 그들의 책을 하나씩 회수했다.

책의 표지는 하나같이 은빛이었고 어떤 것은 은색 사이에 은은한 금빛마저 섞여 있었다.

이 정도의 책을 지닌 텔러라면, 지니고 있는 정보도 꽤나 풍부할 것이었다.

‘뭐, 이 자리에 계속 있다 보면 언젠가 들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전까지 어떻게든 뽕은 뽑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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