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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화 (4/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화

“쓰읍. 후우.”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다.’

미션 실패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초. 진짜 조금만 더 늦었으면 부활하고 1시간 만에 다시 죽을 뻔했다. 아니. 실패 시 존재의 소멸이라 했으니,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려나?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어.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나는 아직도 내 앞에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컬렉터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미션이 종료되기 5분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 * *

“25분을 넘게 살폈지만,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처음 책에 관한 능력을 깨우쳤을 때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이 능력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크게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아무리 내가 가능성을 보는 능력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떡 하니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

나는 서울 인근을 엄청난 속도로 돌아다니며 아직 계약을 맺지 못한 컬렉터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동색 책을 지니고 있었고,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사람들도 은색이 한계였다.

‘혹시 은색이 최대치인가 싶었지만, 그나마 발견했던 금색은 이미 계약을 맺은 컬렉터였지.’

금색이 있다는 걸 알기에 더욱 필사적이었던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다음에는, 혹은 그다음에는 정말로 금색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기대감을 품으니,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가호를 통한 이동에 쿨타임이 있었을 줄이야.’

한번 이동하면 1분 동안은 이동하지 못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빠르게 돌아다니며 전부 다 확인했을 텐데.

‘그냥…… 여기서 타협을 해야 하는 건가?’

책이 은빛이라고 다 같은 은빛은 아니었다. 같은 색 내에서도 급이 갈리는지 어떤 책은 은은하게 빛을 내뿜었지만, 어떤 책은 꽤 강렬한 빛을 내뿜기도 했다.

적지만, 분명히 강한 은빛을 내는 책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어느 정도 강자의 반열에 들 가능성을 지닌 자들이었다.

나는 몇몇 점찍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남은 시간을 모두 걸고 금빛 책을 찾아다닐 것인가, 아니면 안정적으로 은빛 책 중에서 상위권을 선택할 것인가.’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타협하는 것이 옳겠지만, 나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은색도 상위 10퍼센트에는 들겠지만, 내게는 그것조차 부족하게 느껴졌다.

텔러에게 있어서 첫 계약자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건 텔러가 아니었던 나조차 알던 사실이 아니던가?

‘생각하자. 머리에 있는 과거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

내게는 전생의 기억이 있다.

컬렉터들 사이에서도 네임드라 불리는 자들이 누구인지. 훗날 대성할 자격을 지닌 컬렉터가 누구인지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떠올리는 거야. 지금 이 시간대에서 아직 제대로 각광받지 못한 컬렉터가 누가 있지?’

나의 머릿속으로 다양한 컬렉터들의 이명이 거품처럼 떠오르고 사라졌다.

지금 시간대는 종말이 오기 5년 전.

이미 어지간한 네임드 컬렉터들은 활동을 시작한 뒤고, 저마다 계약을 맺은 텔러들이 있었다.

‘몇 명 떠오르긴 하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

꽤 이름을 날리는 신인이 몇 떠올랐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지금 그들은 아직 컬렉터로 각성조차 하지 못했을 때였다.

지금, 이 미션을 클리어 하려면 최소한 컬렉터로 각성한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은근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5분.’

5분은 절대로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 동안 적당한 계약 상대를 찾으라는 보장은 없었다.

진흙 속에 진주가 파묻혀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직접 찾는 것은 별개였다.

나는 조건을 떠올렸다.

지금 시간대는 종말이 오기 5년 전. 그리고 내게 필요로 한 인재는 컬렉터로 각성은 했지만, 아직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자였다.

그렇다면 시간대를 좁혀서 범위를 추려 내는 건 어떨까?

‘넉넉잡아 향후 반년 내로 활동을 하는 컬렉터를 선별해야 해.’

수십이 넘는 후보들이 순식간에 지워지고, 선택의 폭이 좁혀졌다.

그렇게 추려 내고 추려 낸 후보는 셋.

‘괴선(怪仙) 방상씨. 플레임나이트(Flame Knight) 권인범. 검후(劍后) 강혜림.’

옛날에 사람들이 이 셋을 기적의 삼인방이라 불렀다.

초기 지구가 혼성계에 편입되기 위한 99일의 사상 통합 이후 다양한 컬렉터들이 나타났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파란을 일으킬만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그냥저냥 한 컬렉터들 사이에서 간혹 옥석이 튀어나와도 1년에 1명이 전부.

기적의 3인방은 그런 인재의 가뭄 사이에서 축복처럼 내려온 셋이었다.

물론 3인방이라 묶어서 불렀지만, 사실 그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다. 다만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고, 각성의 시기도 비슷해서 그렇게 묶여서 불렸을 뿐이었다.

현재 내가 점찍은 후보는 이 셋이었다.

‘괴선 방상씨는 말 그대로 괴이한 사술을 부렸지. 하지만, 그 정체는 누구도 몰랐어. 애초에 방상씨라는 이름조차 가명에 지나지 않았지.’

얼굴에 탈을 쓰고 펑퍼짐한 옷을 입어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방상씨는 제외. 애초에 가명과 이명만으로 누구인지 특정 지을 수 없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방상씨를 찾아다녔겠지만, 지금은 제한 시간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음은 플레임나이트 권인범. 그는 미국 시민권자라 지금 시간대에는 한국에 없을 거야.’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반년 뒤. 그것도 미국에서 막 한국으로 상경했을 때였다. 미국에서 넘어왔다는 것만 알지, 어디 주의 어느 도시에 사는지 모르는 이상 그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1명만 남게 되는군.’

검후 강혜림.

사실 위의 두 명의 위치를 전부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검후를 선택했을 것이다.

기적의 삼인방이라 불리던 셋이지만, 이 셋 중에서도 우열은 있었고. 그중 최고를 가리라고 한다면 검후가 가장 압도적이었으니까.

타이밍도 나쁘지 않았다. 검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건 반년 뒤였다. 심지어, 검후가 초창기에 무명으로 꽤 길게 활동을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그녀는 아직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한 상태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곧바로 강혜림이라는 이름을 탐색에 들어갔다.

‘찾았다.’

작정하고 한 명을 특정하니, 찾기는 쉬웠다. 위치는 서울의 외곽에 있는 고시텔 촌이었다. 그녀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곧바로 장소를 옮겼다.

파앗!

시야가 바뀌고 공간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야외에서 좁아터진 고시원으로.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한 실내의 적막감만 맴돌았다.

피부로 닿는 공기는 어딘가 탁했고, 방안은 곰팡내마저 났다.

그런 최악의 공간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떠 있는 한 권의 책을 보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

내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눈부신 황금빛 책. 동색과 은색은 비교도 되지 않을 찬란함이었다.

‘성공이다.’

나는 환희에 가득 찬 마음을 억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흠.”

“힉! 누, 누구세요?!”

허름한 고시원의 방 안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던 여성은 나를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순간, 이거 주거 무단 침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텔러한테 그런 법이 적용되나?’

어찌 됐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강혜림 컬렉터님 맞으시죠?”

“그, 그런데요?”

“저는 지구에 파견 오게 된 천체주식회사 소속 텔러 강유현이라고 합니다.”

미리 준비했던 대사가 술술 나왔다. 사실, 나도 내 상황이 어떤지 모른다. 갑자기 미션을 걸고 그거 깨겠다고 급하게 움직이는데, 확인할 겨를이 어디 있나?

그래도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심어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보니까, 계약한 텔러가 없으시더군요. 저는 당신과 계약을 맺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네? 정말요?”

“네. 물론이죠.”

나는 눈앞의 여성을 자세히 살폈다.

입고 있는 옷은 분홍색 트레이닝복. 그마저도 목덜미나 소매가 늘어나 있을 정도로 오래 입었다. 눈가에는 안경을 썼고, 머리는 정돈도 하지 않은 채 귀찮은지. 대충 뒤로 한데 모아서 묶었다.

그녀는 내 말에 컵라면을 쥔 채 꿈이라도 꾸는 표정이었다.

‘나 제대로 고른 거 맞지?’

아무리 봐도 내가 알던 검후와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성공하기 전에 오랫동안 무명으로 활동했다는 말은 들었다지만, 설마 이 정도였단 말인가?

그녀는 아직도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몽롱한 어조로 물었다.

“저, 정말로 저랑 계약하러 찾아오신 텔러님이 맞으세요?”

“네. 맞습니다. 저는 강혜림 씨와 계약하러 왔습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나는 여유를 가장하며 텔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계약서를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그, 그치만…… 저는 능력도 부족하고, 싸움도 할 줄 모르는 팔푼이인 걸요.”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주위에서 다 그랬었어요. 그래서 컬렉터 따위는 포기하고, 그냥 공무원 시험이나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과연. 왜 이런 곳에서 지내나 했더니, 아직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가?

하지만,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분명 대성할 자질을 지닌 컬렉터가 확실했다. 당장에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닙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지녔는지.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한 소리입니다.”

“정말요?”

“네. 물론이죠. 저는 텔러입니다. 성령님들께 이야기를 보여 주는 존재죠. 그런 제 눈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당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드릴 테니까요. 여기에 사인만 하신다면 말이죠.”

이제 남은 시간은 30초.

나는 계약서를 건넸다. 그녀는 어딘가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계약서를 받아들였다.

“제가…… 컬렉터.”

“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 15초.

“자, 잠시만요. 내가 펜을 어디에다 뒀더라?”

“……여기요.”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사인펜 하나를 잽싸게 쥐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제 남은 시간은 5초 남짓.

나는 피가 마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가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을 지켜봤다.

“다 됐어요.”

그녀의 기쁜 음색과 동시에 계약서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씨익 웃으며 남은 시간을 살폈다.

[00:00:03]

‘휴. 진짜 아슬아슬했군.’

정말 피가 마르고, 식은땀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옳았다. 그것도 무려 미래의 검후라 불리는 컬렉터와 계약을 맺었으니까.

[미션-첫걸음을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정사원으로 승진합니다.]

미션의 보상으로 나는 인턴에서 정사원이 됐다. 첫 시작부터 현장으로 집어던져 놓고 겨우 사원이라니. 실무직 텔러의 직급을 생각하면 위로 단계가 한참이나 더 남아 있는 상황.

‘조급해하지 말자. 한 걸음씩 가면 돼.’

내게는 미래의 지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죽기 전에 다짐했었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한심하게 살지 않겠다고.

‘비록 텔러로 다시 태어날 줄은 몰랐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 살아 주겠어.’

그러니, 나의 일차적인 목표는 텔러로서 대성하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훌륭한 자질을 지닌 컬렉터의 영입은 필수였다.

강혜림은 그 기념비적인 첫 계약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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