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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화 (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화

대기권 바깥에 있던 나는 서울의 상공에 도착했다.

멀쩡하게 솟아 있는 마천루들과 도로를 시끄럽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며 내가 처음으로 든 감정은 바로 반가움이었다.

‘이렇게 멀쩡한 지구가 대체 얼마 만이지?’

종말이 도래한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렸다.

대체 몇 년이나 그렇게 지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단지, 아주 오래 그렇게 지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알던 행성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파괴됐다.

더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기는…… 예전 그대로야.’

나는 적당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땅으로 착지했다. [제네시스의 가호] 덕분에 나는 물리 법칙을 초월하는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었다. 얼마든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고,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텔러 녀석들이 어째서 계약자들을 험하게 굴렸는지 알만하네.’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인간은 절대로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확신.

그 자신감의 발로가 바로 이 [제네시스 시스템]이었다.

당장에 내가 우주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 시스템의 가호 덕분이었다.

‘일단, 컬렉터들을 찾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지금 1순위는 미션이었다.

종말 이전에는 컬렉터들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은근히 숫자가 많아서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그 어떤 텔러와도 계약하지 않은 컬렉터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알 방도도 없었으니까.’

계약을 맺지 않은 컬렉터들은 대다수가 초짜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검증되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흔히들 긁지 않는 복권에 비유하는데, 그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복권의 당첨 확률이 극악이듯, 이런 초짜 컬렉터들 사이에서 대성하는 자들도 극악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시스템의 지원을 통해 컬렉터들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려나.’

시스템 창 위로 펼쳐진 지도에는 붉게 빛나는 점들이 우수수 찍혀 있었다.

이 점들은 시스템에 편입된 컬렉터를 나타내고 있었다. 포인트를 벌고 [이야기]를 수집하는 그들은 필연적으로 [제네시스 시스템]에 등록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수한 붉은 점들 사이에서 적지만, 푸른색으로 빛나는 점들이 찍혀 있었다.

‘아마 붉은색이 계약한 컬렉터고, 푸른색이 그러지 못한 컬렉터로군.’

나는 즉시 서울 지도에서 가장 푸른색이 많이 밀집된 곳을 선택했다. 시스템의 힘을 통해 내 몸은 순식간에 해당 구역으로 이동했다.

처음 이동했을 때는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몇 번 해 보니 적응이 됐다.

‘여긴가?’

내가 도착한 곳은 국가 공인 공공 기관, 컬렉터 협회였다.

여기도 지금은 멀쩡히 남아 있었구나. 종말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가루처럼 산화돼서 사라졌었는데.

협회 외부에 펼쳐진 공원이나, 그 안쪽의 거대한 홀에 다양한 컬렉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흠. 이건 대충 이렇게 쓰는 건가?’

나는 즉시 시스템 창을 움직여 컬렉터들의 모습을 그 안에 담았다. 마치 카메라를 촬영하듯 활용하니, 거기에 찍힌 컬렉터들의 머리 위로 붉은빛과 푸른빛이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서 해당 컬렉터의 이름과 간단한 신상 정보까지 함께 딸려 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컬렉터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이걸로는 부족한데.’

이름과 성별, 나이와 거주 구역 같은 거로 상대방의 능력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한동안 계속 시스템 창을 통해 주변 컬렉터들을 훑어보고 있자,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당신 누굽니까? 컬렉터 맞습니까?”

아무래도 내가 가만히 서서 주변을 계속 구경하기만 하자, 수상해서 다가온 것 같았다.

상대를 보니, 붉은빛이 나는 컬렉터. 이쪽 협회를 지키는 경비원이었다.

“그냥 사람 찾는 중입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아니, 방해고 자시고. 당신 여기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닌 거 몰라?”

그는 나를 외부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날 밀어내려고 손을 내뻗는데,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의 손이 내 몸에 닿으려는 순간, 제네시스의 가호가 발동했다.

파지직!

“어어?”

미약한 전류와 함께 자신의 손이 튕겨 나간 걸 확인한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호, 혹시 텔러셨습니까?”

“그런데요.”

“이, 이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영락없이 사람인 줄 알아서.”

남자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며 내게 사과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의 이질감과 함께 정말로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종말 이전에는 텔러들의 취급은 거의 귀족에 가까웠다. 아무렴, 컬렉터들에게는 텔러가 반드시 필요했고 계약에 있어서 언제나 텔러들이 갑의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종말 이후에 텔러들은 재앙을 흩뿌리는 사신에 비견되고는 했다.

그들이 나타나면 언제나 종말의 시련이 내려왔고,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가호를 받은 그들을 건드릴 수도 없어서 이를 갈며 증오를 불태울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텔러들의 취급이 좋을 때. 인턴이라는 직급도 관계없다. 텔러라는 사실, 자신과 계약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죄, 죄송했습니다.”

경비원은 내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도망치듯 떠났다. 저 깍듯한 태도를 보니, 오히려 내가 더 불편할 지경이었다.

‘무시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시스템 창을 치운 그때였다.

‘뭐지?’

꾸며진 인조 공원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다.

‘책?’

사람들의 머리 위에 책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혹시 환각을 보는 게 아닌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다.

‘이게 뭐야?’

줄곧 시스템 창을 통해서 사람들을 살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창을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했다.

이건 제네시스 시스템이 알려 주는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광경인 듯했었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책이 떠다니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

나는 시간을 살폈다. 미션이 끝나기까지 약 37분이 남아 있었다.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나는 멀리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 위에 있는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해 놓고 혹시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은 내 의지를 따라 내게 딸려 왔다.

‘진짜로 되네.’

책의 표지는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책 자체는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책에서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이 빛 또한 갈색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시스템 창으로 이 책주(冊主)의 간단한 정보를 살핀 후에 책을 펼쳤다.

이름: 김상두

종족: 인간(컬렉터)

설명: 5년 전 각성한 컬렉터. 등급은 종 8품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실력을 지닌 자 중 하나다. 겁이 많고 소심해서, 싸움을 원하지 않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환상체들과 싸우고 있다.

[역사]

책에 적힌 것은 해당 인물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 사람이 걸어온 과거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이건…….’

나는 혹시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책도 살폈다.

책에는 각 책 주인의 관한 정보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들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책은 사람마다 색깔이 달랐다. 어떤 책은 책의 표지가 은색인 것도 있었고, 표지는 갈색인데 흘러나오는 빛이 은색인 것도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한테만 보이는 책이라는 건, 나만의 능력이라 이건가?’

모든 텔러가 이 책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해서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내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책은…… 없는 건가?’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책을 살폈다.

책에는 한 인간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의외로 세세하게 적혀 있어서, 그 사람이 숨기고 싶었던 흑역사까지 적힌 부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턱.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능력은…… 대박이다.’

책을 지닌 사람의 과거, 특성, 정보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라니. 대박 수준이 아니다. 이건 사기라고 해도 좋았다.

내가 가져도 놀라운데, 남이 이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배가 아파 올지도 모를 정도로.

‘하긴. 환생했으면 이런 특수한 능력 하나 정도는 생길 때도 됐지.’

보통, 소설 속 주인공들이 딱 그러지 않던가.

회귀하거나 환생했더니, 새로운 힘을 각성하거나 뭐 그런 거.

물론, 그것은 소설 속 캐릭터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오래 살아온 나는 이쪽의 특이성에 관해서 잘 알기에 하는 소리였다.

혼성계(混成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칭하는 단어로, 이곳에서 흔히들 있는 일이었다.

혼성계에서는 비물질적인 것이 현실에 떡하니 존재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의 흐름도, 이곳에서는 엄연히 사실로 존재했다.

나는 전생에서 이 혼성계가 어떤 곳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모든 개념과 관념이 현실이 되는 곳.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도 무거운 가치를 갖는 곳.’

신화, 영웅담, 전설, 괴담 등등.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모두가 한데 뒤섞여 실제화된 세계.

지금 내가 사는 곳이 바로 그러했다.

당연히 이런 혼성계는 흔히들 말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단순히 말뿐이 아닌,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위기를 넘어서면 강해진다. 선택받은 인간은 자주 기연을 만난다. 주인공은 패배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전부 혼성계에서는 흔하게 벌어질 수 있었다.

‘뭐. 나도 그것을 빨리 눈치채서 최도윤 그 자식한테 빌붙은 거였지만.’

나는 종말이 찾아왔음에도 이렇다 할 능력을 얻지 못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가지지 못한 것을 애타게 바라기보다는, 가진 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최도윤. 녀석은 재수가 밥맛이지만, 능력과 카리스마만큼은 진짜였다. 종말의 시련, 튜토리얼 초창기에 녀석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붙었다. 나의 쓸모를 어필하면서.

그 덕분에 극악의 생존율을 자랑하는 종말 속에서도 나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에는 죽었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

내가 죽었다가 새로 부활했는데,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썩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 혼성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책 자체의 색깔은 그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것일 거고. 책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그 사람이 지닌 잠재 능력과 가능성을 나타내는 거겠지.’

즉 책 표지가 동색인데 흘러나오는 빛이 은빛이면, 그 사람은 은색까지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표지도 빛도 다 동색이라면, 그 사람은 그저 그뿐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동색도 은색도 있다면, 금색도 있다는 것.

‘알 수 있는 정보는 대충 이건가?’

나는 내 책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며 시스템 창을 열었다.

‘이 책의 능력에 관해서 알게 됐다면 쉽지.’

책은 그 사람이 내포한 미래의 가능성도 보여 주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계약을 맺지 못한 일부 컬렉터들이 당첨인지 아닌지, 미리 알아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최대한 파란 점이 찍힌 곳을 위주로 돌아다니며, 가능성이 있는 녀석을 찾는다.’

나는 곧바로 가호를 이용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사스람도르는 3분도 남지 않은 타이머를 보며 팔짱을 꼈다. 그는 면장갑을 낀 손가락을 까닥이며 자신의 팔뚝을 툭툭 건드렸다.

미션에 주어진 시간은 1시간. 그리고 대다수의 신입 텔러들은 미션을 성공했다.

‘하긴. 이번 미션은 바보가 아닌 이상 성공률이 100퍼센트에 가까우니까.’

간혹 정말 운이 없거나, 정말 멍청해서 이조차도 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가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사스람도르의 관심을 가장 끄는 것은 초창기에 모습을 개화한 강유현의 존재였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계약자를 찾은 뒤야. 하지만 아직 녀석만큼은 계약자를 찾지 못했다.’

아직 유일하게 미션 성공이 뜨지 않은 강유현의 상태를 확인한 사스람도르는 검은 동공 안쪽의 붉은 안광을 가늘게 좁혔다.

“등장과 동시에 변화를 끝내서 대단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자신의 기대감을 완벽히 배신하는 그의 행보에 실망감이 절로 들었다.

적어도 그라면 다른 녀석들보다 더 대단한 실적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남은 시간은 1분. 사실상, 끝이군.’

타이머의 숫자가 규칙적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약 3초 남았을 때.

삐빅.

[모든 텔러가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사스람도르의 눈앞에 그런 알림 창이 떠올랐다.

강유현은 데드라인을 3초 남기고 그것을 통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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