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2화
가라앉았던 의식이 수면 위로 천천히 부상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뭐지?’
정신을 차린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살아 있다고?’
내가 입은 상처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단순히 상처의 문제가 아닌, 상처를 입힌 매개체가 문제였으니까.
종말의 창지기가 휘두른 저주의 마창.
스치기만 해도 생명체를 세포 단위로 붕괴시키는 끔찍한 무구였다.
바로, 그것이 나의 배를 꿰뚫었었다.
무지막지한 회복력을 지닌 그 최도윤도 맞으면 성치 않을 공격이었는데, 지금 내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복부에 있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어라?’
나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상처만 나은 게 아니었다. 내 모습조차 어딘가 달랐다.
“이건 또 뭐야?”
사지 멀쩡하게 달려 있어야 할 인간의 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자리 잡은 것은 이질적인 육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좁은 홀이었다.
홀로 추정되는 공간에는 나 말고도 나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도열해 있었다.
어떻게 생겼냐면 무슨 새하얀 찹쌀떡처럼 생겼다. 팔로 추정되는 돌출부 두 개가 있으며 얼굴에는 커다란 눈 2개가 달린 찹쌀떡.
어디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캐릭터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일이야?’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 있었고. 심지어, 생판 처음 보는 이상한 존재로 부활했다.
“다 모였군.”
그 순간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한 존재가 우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는 딱 맞는 양복을 입은 뼈로 된 사슴 머리를 한 녀석이었다.
‘텔러잖아?’
텔러(Teller)
종말을 관할하던 녀석들과 생긴 것은 달랐지만, 그 본질은 같은 종족이 분명했다. 내가 녀석들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텔러가 갑자기 왜 등장했는지, 궁금할 차에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겠다. 너희들은 이제 천체주식회사(天體株式會社) 소속 텔러로서 일하게 될 거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그런 너희들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자리지.”
‘뭐? 갑자기 이게 무슨 개소리야?’
하지만, 나는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다른 녀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니까. 괜히 여기서 튀어 봤자 나만 손해였다.
사슴 머리가 말했다.
“설명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너희들이 직접 보여 줄 차례지.”
그 말과 동시에.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이 좌우로 갈라졌다.
‘무슨……?’
뭘 채 반응하기도 전에 나를 포함한 다른 새하얀 녀석들이 갈라진 틈새로 우르르 떨어졌다.
홀의 바닥 아래는 끝없이 펼쳐진 우주였다.
우주의 한복판에 던져진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우릴 전부 죽일 셈인가?’
그런 생각도 잠시, 내 눈앞으로 반투명한 창 하나가 떠올랐다.
[제네시스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숨을 쉴 수 있어?’
가호라고 추정되는 새하얀 막이 내 몸 주위를 비눗방울처럼 감싸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있었고, 우주의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녀석들도 똑같이 반투명한 구체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겨우 한숨을 돌리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나는 죽었다. 하지만 부활했어. 이유는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라. 아니, 우주 한복판인가. 그리고 사슴 머리 녀석의 말로 추정하면, 텔러로 부활한 거 같아.’
조금 시간을 들여서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띠링.
[미션-첫걸음]
당신은 텔러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텔러는 성령님들께 이야기를 대신해서 보여 주는 존재.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를 보여 줘야 할지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표: 첫 번째 계약을 맺으시오.
성공 시: 정사원 승진
실패 시: 존재 소멸
제한 시간: 1시간
‘뭐?’
난데없이 현장 투입에 이어 제한 시간 1시간짜리 미션을 주다니. 심지어 실패 시, 존재의 소멸이라고?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아니. 지금은 그걸 따질 시간이 아니야.’
이미 미션은 시작됐다. 오히려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고 막연히 알아서 해야 했던 종말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매우 친절한 상황이었다.
‘텔러가 성령들에게 이야기를 보여 주기 위한 주인공, 첫 계약자를 만들어라. 이거로군. 그렇다면 그 장소가.’
내 시야에 거대한 행성 하나가 잡혔다.
그것은 이제는 멸망했다고 생각했던 푸른 행성 지구였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돌아 버리겠군.’
멀쩡한 지구의 모습을 보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지구를 살폈다.
푸른 바다 위로 새하얀 구름이 붓칠하듯 채워진 지구. 분명, 종말이 찾아오기 전의 지구였다.
내가 아는 종말 이후의 지구는 저러지 않았다. 땅은 병들고 갈라져 검게 물들었고, 하늘은 붉은 빛에 잿빛 바람만 몰아쳤었다. 그렇게 망가졌던 지구는 회생 불가능한 행성이 됐다.
그랬던 지구가 저렇게 멀쩡하다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가설이 맴돌았다.
‘죽었다 살아난 것과 동시에, 과거로 온 건가?’
과거로의 회귀.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 다시 살아난 것도 놀라운데, 과거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겠지.’
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00:57:34]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을 깔끔하게 지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미션에 집중한다.’
미션을 실패했을 경우 존재가 소멸한다고 했다. 기껏 죽었다 부활했는데, 1시간 만에 다시 사망하는 것은 사양이었다.
‘시간대는 과거. 텔러와 계약자라는 관계로 짐작건대 지구는 종말이 찾아오기 전, 컬렉터들이 활동하던 시대가 분명하다.’
지구는 종말이 오기 전에도 평범한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곳곳에 생긴 게이트와 거기서 나오는 괴물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시대였으니까.
컬렉터는 각성한 인간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텔러와 계약을 맺고 환상체와 싸우는 자들을 그렇게 불렀다.
‘아직 계약을 맺지 못한 컬렉터들을 찾아서, 그들 중 하나를 붙잡아라. 이거로군.’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이번 미션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계약하기는 쉽다. 그냥 계약한 텔러가 없는 컬렉터 하나만 붙잡아서 적당히 회유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선에서, 컬렉터들도 텔러와의 계약을 원해.’
컬렉터는 텔러와 계약을 통해 성령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텔러가 없는 컬렉터는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보여도 성령의 후원을 받을 수 없었다. 오직 텔러라는 창구만이 그들에게 포인트를 얻게 해 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당연히 포인트를 벌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컬렉터들의 특성상, 텔러와의 계약을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즉 1시간짜리 미션 치고는 아주 쉽다는 거.’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바라니, 이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상황치고는 미션의 난이도가 낮았다.
나는 여기서 다른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결국, 계약은 누구라도 다 맺을 수 있다는 거야. 생각하는 머리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누구와 계약을 맺느냐는 것이겠지.’
아무런 생각 없이 적당한 컬렉터 하나를 붙잡고 계약을 맺는 건 쉬웠다.
하지만, 그 컬렉터가 능력도 재능도 없는 쭉정이라면?
성령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포인트를 제대로 벌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즉, 이 상황을 크게 본다면 단순히 계약을 성사시키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자질이 뛰어난 컬렉터를 발굴하라는 소리였다.
‘시작부터 허들이 더럽게 높군.’
나는 일단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홀로그램 창을 만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것을 처음 다루는데도, 머릿속에는 이미 어떻게 이 창을 활용해야 하는지 지식이 전부 다 담겨 있었다.
홀로그램 창에 저 앞에 펼쳐진 지구의 모습이 축소되어 떠올랐다. 지도 위에는 내가 이동할 수 있는 중요 포인트들이 찍혀 있었는데, 주로 사람들이 많이 기거하는 각 나라의 수도들이 대다수였다.
‘일단, 내 목적지는 한국의 서울.’
나는 당연히 내가 나고 자란 나라를 선택했다.
하지만 불편한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몸뚱이였다.
‘팔이 더럽게 짧아서 화면이 제대로 안 눌러지네.’
심지어 손가락도 없는 뭉툭한 손이라서 무슨 벙어리장갑이라도 끼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그건 그래도 엄지라도 튀어나왔지, 이건 더 심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냥 손가락 몇 개 휙휙 움직이는 거로 진작 끝냈을 텐데.’
그때의 내가 강하게 그리워지는 순간,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어?’
뭉툭했던 손이 길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손가락 5개가 다 자라나 있었다. 그것은 오른손뿐만이 아니라 왼손도 마찬가지였다.
이 가호 안쪽을 딛고 설 수 있는 멀쩡한 두 다리. 그리고 두 팔. 나는 본능적으로 내 얼굴을 매만졌다. 고개를 돌려 반투명한 막을 살피니, 그곳에 희미하지만 내 모습이 비춰 보였다.
그것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갑자기 변했어?’
텔러라는 종족들이 딱히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방법으로 변할 줄은 몰랐다. 설마, 예전 내 모습을 떠올리며 강하게 바랬기 때문인가?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내게는 미션이 먼저였다. 시간이 아직 있지만, 이건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놀려 지도 위의 서울을 선택했다.
내 몸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흠?’
첫 번째 미션의 총괄 책임자 중 하나인 사스람도르는 뻥 뚫린 동공에서 붉은 안광을 흘렸다.
뼈로 된 사슴 머리를 한 그는 천체주식회사 소속 과장급 텔러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이제 막 태어난 신입들에게 미션을 내리고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전과 같이, 그냥 적당한 녀석들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 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녀석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모습이 변했다고?’
아직도 어리바리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놈들이 대부분인 와중에 한 녀석이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말도 안 된다.’
보통 갓 태어난 텔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모습이 바뀌게 되는데, 그 과정이 빠르면 2주에서 늦으면 4주나 걸린다.
하지만, 방금 그 녀석은 그 과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변했다.
사스람도르는 자신이 혹시 환상을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야. 방금 봤어?”
“모습이 바로 바뀐 거 맞지?”
“그게 가능해?”
아직 감도 잡지 못한 다른 텔러들은 사라진 강유현의 빈자리를 보며 경악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들이라고 바뀌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바뀌어야 한다는 본능은 각인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별개였다.
하지만, 강유현은 그를 이루었다. 단, 3분 만에.
사스람도르는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변한다고? 그게 가능했던 일인가?’
그는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다양한 텔러들이 첫 미션을 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단언컨대, 시작과 동시에 자신의 형태를 취하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름 재능이 있는 천재라 불리는 녀석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 기록이 지금 깨졌다.
‘이건…… 대단하군.’
사스람도르는 언제나처럼 지루했던 이번 미션의 과정이 오늘만큼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