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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1화 (1/456)

나만 아는 주인공들

# 나만 아는 주인공들 1화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현실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다 하더라도, 꿈은 크게 가지라고.

꿈을 향해 가다 보면, 너는 언젠가 네 삶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순진했던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다.

컬렉터의 시대가 끝나고, 이 세상에 종말이 찾아 왔을 때도.

그 지옥 같은 곳에서 10년 가까이 버티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었다.

바보 같게도.

“쿨럭.”

복부를 후비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비릿한 혈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 이후로 질리도록 맡아온 냄새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 피 냄새는 나의 것이었으니까.

‘여기까진가.’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험의 능선을 넘어온 나였지만, 그것도 이제 끝을 맞이했다고.

단순히 복부를 관통당한 거라면 [치유의 이야기]나 혹은 그 효과를 지닌 강렬한 포션으로 치료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 상처는 저주의 마창에 꿰뚫린 것. 어중간한 치료는 절대로 먹히지 않았다.

그나마 가능한 거라면, 모든 상처와 상태 이상을 해제시키는 [엘릭서] 같은 비약 정도인가?

‘그런 게 내게 있을 리가 없잖아.’

어쩌면 ‘녀석’은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나서, 마치 선택받은 사람인 양 모든 혜택을 쓸어 담은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내게 귀중한 비약을 써 줄 리가 있나.’

누구보다 녀석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이기에 알고 있었다. 녀석은 이미 필요가 떨어진 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런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밟으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총 넷.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었다.

익숙한 얼굴들. 나름 동료라고 생각하며, 함께 역경을 헤쳐 온 사람들이었다.

전투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그들은 여기저기 잔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그들은 잔해에 등을 기댄 나를 발견하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죽어 가고 있음에도, 나를 걱정하는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나마 사이가 좋다고 생각했던 한 명만은 나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기는 했다.

저런 눈빛을 받은 것만으로도 퍽이나 감동을 하는 내가 미웠다. 나 진짜 어지간히도 심한 취급을 받아 왔구나.

“…….”

무리의 선두. 이 집단의 리더이자, 세상의 축복을 받은 주인공이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에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년을 함께 한 사이인데. 매정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왔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상처에 새겨진 저주가 온몸을 잠식해 나가서, 입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쿨럭! 단 한마디를 꺼냈을 뿐인데도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네가.”

나를 지그시 보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녀석은 내가 충분히 쓰러뜨렸을 거다.”

그러나, 그 말은 나를 걱정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책에 가까웠지.

그래. 어차피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대답이 그대로 돌아와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크흐흐.”

“뭐가 그렇게 웃기지?”

“아니, 그냥. 내가 생각했던 대로, 똑같이 말하는 게 웃겨서.”

“…….”

녀석의 말대로였다.

내가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눈앞의 남자는 충분히 재앙을 흩뿌리는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판이 나는 것은 한참 뒤가 됐겠지. 그리고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존재들의 싸움이 주위에 얼마나 큰 사태를 불러일으킬지, 과연 알기나 할까?

아니, 녀석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겠지.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죽더라도 제 목적만 이룰 수만 있다면 상관없을 테니까. 이 사이코패스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살폈다. 검게 죽은 땅, 붉게 물든 하늘, 휘몰아치는 강풍 속에 한때 찬란했던 서울은 옛적에 폐허로 변모했다. 그 틈새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여파에 휩쓸려 죽었을 사람들.

그들은 결국에 살아남은 것이었다.

나는 아니었지만.

“큭큭.”

저 사람들은 살았지만, 반대로 내가 죽어 간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이런 젠장. 살기 위해서 저 사이코패스에게 빌붙어,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랬는데, 그랬는데.

마지막에 정에 휩쓸릴 줄이야.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녀석에게 물었다.

“너. 엘릭서 가지고 있지?”

“그렇다.”

녀석은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녀석도 아는 거다.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혹은 대답하지 않더라도 내가 확신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내게는 쓰지 않을 거고.”

“……그래.”

“너무하네.”

“엘릭서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는 앞으로 있을 위험을 대비한 나의 예비 목숨이지. 하지만 너는, 이 엘릭서를 사용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다.”

가치.

그 단어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기도 했고, 녀석이 이 세상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평가하는 잣대이기도 했다.

“큭큭. 가치, 가치인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 삶은 확실히 가치가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길에 평범하게 치이는 돌멩이처럼, 나는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도, 눈치가 빨라 저 남자에게 빌붙은 덕분이었고.

당연하게도

가치를 주장하는 그답게 그의 삶은 가치가 넘치는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또는 누군가의 삶을 자기 멋대로 수준을 매기고 그것을 평가하며, 살릴지 죽일지 정하는 것. 놈은 그런 짓을 서슴없이 행하는 사이코패스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녀석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참, 엿 같은 세상이야.”

한탄스럽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빛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드높은 천상의 격을 지닌 성령(星靈)들.

인간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을 유희로 지켜보며, 우리에게 시련과 보상을 내리는 존재들.

그들은 저 남자를 좋아했다. 그의 패도적인 방식에 열광했고, 나 같은 쩌리 같은 놈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나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성령은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내게 관심 따윈 없었다.

“너도 참 엿 같은 놈이고.”

“필요에 의해서 내게 빌붙은 건 네 의지가 아니었던가?”

“그것도 그렇지.”

일단은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세상의 종말이 찾아왔을 때, 내가 녀석을 발견하게 된 것은 사실상 천운이었다. 저 남자라면, 이 세상의 끝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어떻게든 그에게 붙은 것이었다.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린 그저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서 잠시 동행했을 뿐이라는 걸.

그래서다. 녀석이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에 화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녀석이 저런 성격인 걸 알면서도 먼저 다가간 건 나였다.

“당신,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그냥 엿 같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표독한 인상의 여인 하나가 나서며 나를 질책했다.

그래. 쟤랑은 예전부터 몇 번이고 티격태격하고는 했지. 그녀는 능력도 안 되는 내가 저 남자에게 빌붙은 것을 눈꼴사나울 정도로 싫어했으니까.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인데, 좀 너그럽게 봐주는 것도 안 되냐?

“그만.”

남자가 여자의 말을 끊으며 내게 물었다.

“하나만 묻지. 대체, 왜 그랬지?”

“쿨럭. 뭐가?”

“싸움에 끼어든 것. 언제나처럼 너는 정보를 제공하고, 뒤에 물러나서 싸움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았나? 하지만, 이번엔 달랐지. 네가 한 행동은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너에게 이득도 되지 않은 행위였다.”

뭐, 그랬다. 싸울 줄은 알았지만, 저 선택받은 녀석처럼 대단한 수준도 아니라서 나는 항상 최후방을 차지했다. 그런 내가 주로 했던 것은, 녀석에게 주변의 정보를 열심히 모아서 전달하는 것이 전부.

싸움은 녀석이. 정찰과 정보는 내가.

그게 우리 사이를 유지해 주는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래서 녀석은 묻는 것이었다.

왜 룰을 깬 거냐고.

“왜냐, 라…….”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못 해 먹겠더라고.”

“못 해 먹겠다?”

“큭큭. 쿨럭! 그래. 못 해 먹겠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냥, 그냥 지친 거야. 너한테 빌붙는 것도, 이렇게 사는 것도. 나라는 인간은 그저 이것뿐이었다고, 여기가 나의 한계라고. 그냥 그것뿐.”

그래. 내가 녀석의 싸움에 끼어든 것은 단순한 변덕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움직인 동기는 그저 예전부터 계속 품어 왔던 자그마한 불만이었다.

그것이 이번에 활화산처럼 크게 폭발했을 뿐이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꿈을 품었었고, 그것을 위해 노력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선택받은 자의 것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철저히 조연으로라도, 죽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영 못 할 짓이었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분수에 맞지 않는 싸움에 끼어들어 이 꼴이 난 거였다.

나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너는…….”

녀석은 주위의 생존자들을 발견하더니, 눈가를 좁혔다.

“고작, 저런 녀석들을 살리겠다고…….”

“아니.”

나는 곧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그냥 지쳐서 그랬다니까.”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이라니. 애초에 네가 그걸 확답할 정도로, 나에 관해서 잘 아는 게 아니잖아? 사실, 관심도 없었으면서.”

“…….”

남자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래도 놀랐다. 설마, 타인에게 무감각한 녀석이 내 속내를 저렇게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었다니. 그래. 생각해 보면 녀석도 머리가 좋기는 했었지.

띠링.

순간, 허공에 커다란 알림음이 퍼지면서 한 존재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짙은 그림자만 깃든 얼굴에 붉은 안광이 흘러나오는 녀석.

우리를 이 종말에 인도하며, 성령들에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대신 보여 주는 텔러(teller)라는 존재였다.

“아주 훌륭하군요. 여러분들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히 살아남으셨습니다.”

녀석은 사람들의 상태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채, 제 할 말만 떠들고 있었다. 녀석이 하는 말은 별거 없었다. 이번 시련에서 살아남았으니, 이제 다음 시련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련의 끝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시련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애초에 녀석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죽음은 그저 성령들을 위한 유희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이후로 항상 그래 왔다.

처음에는 놈들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그랬지만.

그것마저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된 지, 꽤 됐다.

“가라.”

나는 내 앞에 선 녀석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서 가. 네 추종자들 이끌고.”

“뭐? 추종자?!”

내 말에 땍땍거리는 여자가 또 반응했다. 후우. 진짜 뭐 하나 가볍게 넘어가는 게 없네.

“추종자 아니면 뭔데? 뭐, 왕비님이라고 불러 줄까?”

“너!”

“언니. 그만 해요. 저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어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가요.”

보다 못한 다른 여자가 그녀를 말리고 나섰다. 씩씩대던 여자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픽 돌리며 자리를 떠났다. 주변에서 눈치를 보던 나머지 둘도 슬쩍 뒤로 물러났다.

“뭐해? 너도 안 가고.”

“맞아요. 도윤님. 저 남자는 무시하고 어서 가요. 전부 그가 자초한 일이에요.”

그래. 최도윤. 어서 가. 너를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그녀들과 함께 떠나.

항상 그래 왔잖아. 너는 말 없이 멋대로 움직이고, 알아서 따라가는 것은 순전히 나의 몫이었잖아.

“…….”

하지만 어째서인지, 최도윤은 쉽사리 떠나려 하지 않았다.

설마,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몇 년의 미운 정이라도 든 것일까?

참 웃기는 일이다. 감정이라고는 거의 없다시피 한 녀석이, 여기서 ‘망설임’을 보이다니.

새액. 새액.

저주가 폐까지 번지자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웠다. 그나마 나도 나름의 힘을 지녀서 바로 죽지 않는 거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이미 즉사였다.

나는 내가 죽는 모습을 녀석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이 죽음은 그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어야 했다. 구경꾼 따위는 질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었다.

“최도윤. 어서 가라. 너는, 여기서 멈출 녀석이 아니잖아.”

“…….”

“아니면, 뭐. 나한테 엘릭서라도 써 주게?”

나는 일부러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최도윤의 표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은 지금까지 내가 본 적이 없는 감정적인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래. 너도 사람이기는 했구나.’

그렇게 몇 초라는 시간이 흘렀을까.

최도윤은 결국,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언제나처럼.

이번에 다른 점을 꼽자면, 나는 더 이상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겠지.

‘잘 가라.’

미련 없이 떠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녀석도 그걸 알기에,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등을 돌린 것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는 녀석의 배려였다.

시간이 흐른다.

최도윤이 떠났다. 목적지는 다음 시련으로 가기 위한 차원 게이트였다.

멀리서 눈치를 보던 생존자들도 하나둘 최도윤의 뒤를 쫓았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 채, 부푼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내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 하지만 내 덕인 걸 모르는 사람들.

어떻게 살아남을지도 모른 채, 그저 한 남자의 뒤꽁무니만 줄줄 따라다니는 사람들.

그들 중 누구도 내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정말로.

“부질없네.”

딱히 이런 걸 바라고 한 짓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쿨럭.

지금까지 토해 냈던 것의 배가 되는 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저주가 심장까지 올라온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시야마저 흐릿하고, 팔다리의 감각이 희미해졌다.

‘여기까지구나.’

나는 결국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도, 내 삶에서도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선택받은 주인공의 후광을 바라보며 악착같이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고작 그런 것을 위해서 살아왔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며.

그럼에도 수긍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 삶의 끝에, 낙원이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감각이 없어서, 손을 든 건지 아닌 건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뿌연 시야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으니, 손을 든 것이 맞겠지.

‘만약에 내게 다시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하늘의 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후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잡히지 않는 것을 필사적으로 쥐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처음 품었던 꿈.

지금은 포기했던 꿈.

남들보다 더.

더 높이 올라가서.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살고, 싶었다.

전신에 생명력이 빠져나간다.

나의 의식이 무의식의 바다 저 아래로 가라앉는다.

‘아.’

흐릿해진 시야 속으로 내가 눈을 감기 직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를 향해 천천히 내려오는 황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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