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
설마 이렇게 많은 마스터 도전자들이 부름에 응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만약 아누비스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도전자들을 불러낼 수가 없었으리라. 유령의 형태로 되돌아온 도전자들은 단체로 허공을 떠돌아다니며 기쁜 음색을 내었다.
[마스터 네크로맨서가 누구냐?]
[네크로맨서가 개사기 직업이었구만. 우리들을 단체로 부를 수가 있다니.]
[오랜만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와서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그러니까. 진짜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이곳에 소환된 이들은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도전자 전원이 천신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씨발. 천신 개새끼야. 내가 평민이라는 직업으로 얼마나 힘들게 마스터를 달았는데 배신을 때려?]
[님, 천신보고 개새끼라뇨. 개새끼는 애교라도 있지. 저 새끼는 오크 똥보다 못한 새끼임.]
[와, 생각보다 엄청 많이 천신한테 당했네.]
[그러니까. 나는 천신이랑 관련된 임무에 노예처럼 개처럼 부려지다가 마지막에 배신당함.]
[너도 토사구팽 당했냐.]
[다들 그런 식이지 않음? 뭐, 아닌 사람들도 있겠다만.]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떠들지 못했다. 자신을 욕하는 것을 보다 못한 천신이 작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벌레 같은 것들이! 오늘 이곳에서 완전히 소멸을 시켜주마!”
거친 목소리와 함께 천신의 놀라운 권능이 발현됐다.
“심판의 날!”
동시에 천신의 몸에서 빛이 폭사되어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시스템이 알려왔다.
[천신이 그의 권능 ‘심판의 날’을 사용합니다.]
심판의 날은 아무리 충렬의 병력이 월등하다고 한들, 상황이 암울해져 감을 암시했다.
[천신과 그의 동맹을 제외한 모든 존재의 액티브 스킬이 1회만 사용 가능 하게 됩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두 번 이상 똑같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소모성 스킬은 현재 보유한 양만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액티브 스킬을 단 1회만 사용할 수가 있다니.
‘이렇게 된다면…….’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심판의 날은 그러한 제약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 위치한 모든 천사들의 계급이 한단계 상승합니다.]
[천사들의 전투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천사들 전원에게 ‘성스러운 심판자의 검’이 주어집니다.]
[성스러운 심판자의 검: 천신의 권능으로 발현된 빛의 검이다. 천사들만 사용할 수 있으며, 검에 닿는 적들을 빛으로 불태운다. 전투가 끝나면 사라진다.]
[천사들 전원에게 ‘성스러운 심판자의 갑옷’이 주어집니다.]
[성스러운 심판자의 갑옷: 천신의 권능으로 발현된 빛의 갑옷이다. 일정 이하의 대미지를 모조리 상쇄시킨다. 공격한 존재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한다. 모든 상태이상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친절히 알려주는 시스템의 설명에 충렬은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미친……!’
천사들에게 주어진 빛의 검이라는 것은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빛의 갑옷이라는 것이었다.
‘대미지의 상쇄는 둘째치더라도 모든 상태 이상에 저항을 한다니.’
각종 저주와 관련된 능력은 이곳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아니, 사용할 수는 있어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다행히 마신은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천사들의 전투력만 놓고 봐도 상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천신의 권능이 적용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천사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마스터 도전자가 덤벼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아누비스에 의해 되살아난 마스터 도전자들은 본래의 능력에 50%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있었다. 유령이라는 존재로 소환되었으니 언데드일 터. 그렇다면 강화는 간단했다.
‘어쩔 수 없나.’
충렬은 천신의 권능에 맞서기 위해, 곧바로 영역 선포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그에 맞서려면 영역 선포 스킬밖에 답이 없었다.
“영역 선포! 죽음의 땅!”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암흑 투기를 소모하여 당신의 영역을 선포합니다.]
[심판의 날로 인하여 소모된 암흑 투기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회복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충렬의 영역 선포는 적용될 수가 없었다.
[천신의 ‘하늘 궁전’이 사악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막아버립니다.]
[영역 선포 스킬이 실패합니다.]
[영역 선포 스킬은 이번 전투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
충렬의 영역 선포 실패를 시작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강력하게 무장한 천사들이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더러운 언데드들이여! 이곳에서 재로 변하라!”
“네놈들의 타락한 육체는 우리들이 정화를 시켜주겠다!”
언데드들이 더럽고 타락했다고? 그러면서 자기들은 왜 마족들과 협동하여 싸우는 것일까. 어쨌거나 천사들만 들이친 것은 아니었다. 마왕을 포함해 마족들 또한 천사들과 함께 협공을 시작했다.
특히 마왕들의 능력은 감히 그 수준을 측정하기 힘들 정도였다.
“드러내어라! 심안의 눈!”
“이곳에 네 녀석들의 뼈를 묻게 해주겠다. 마족들이여! 마왕의 힘을 받고 전투를 이어가라! 마기 폭주!”
[‘심안의 마왕’이 ‘심안의 눈’을 사용합니다.]
[그의 주변에 위치한 마스터 도전자 충렬의 세력들이 약점에 쉽게 노출됩니다.]
[‘무투의 마왕’이 ‘포효’합니다.]
[그의 포효에 영향을 받은 마족들의 마기가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새벽의 여신이 따로 힘을 부려 충렬을 도우려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그러나 새벽의 여신은 충렬을 도울 수가 없었다. 곧 그녀를 향해 마신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어이, 새벽을 담당하는 신. 당신은 나와 놀자고.”
그러면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마신은 그대로 새벽의 여신과 충돌했다. 여신이 방어할 틈은 없었다.
펑!
그러면서 그녀를 공중으로 띄운 뒤, 따로 전투를 시작했다.
[새벽의 여신과 마신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의 여신의 승률: 24.42%]
[승률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바뀝니다.]
[여신의 승률이 0%가 되면 그녀는 소멸됩니다.]
[여신의 승률이 100%가 되면 마신이 소멸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충렬은 마신을 잠시 동안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충렬은 알고 있었다.
‘빠르게 천신을 없애야 한다.’
그러고서 늦지 않게 여신을 도와주어야 했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새벽의 여신은 소멸될 것이 확실했다. 승률이 24.42%밖에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 승률은 지금도 계속해서 줄어드는 중이었다.
‘여신이 소멸하게 된다면…….’
마신이 천신과 함께 협공해 올 것이었다. 천신 하나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한데 마신까지 동시에 상대하게 된다면…….
‘무척이나 힘들겠지. 그 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해.’
여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모든 전력을 천신에게 쏟아야 할 때였다.
마침 프렘이 충렬에게 외쳤다.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프렘은 더 이상 실성한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덕분에 엄청난 시체를 모을 수 있었어. 보유한 모든 시체들을 소모하여 악몽을 제작할 테니 시간을 벌어줘!]
프렘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위치한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천사들을 제거하고, 천신에게 당도해야 했다.
“데프론! 길을 뚫어라! 우리들은 천신을 직접 상대하기 위해 나선다!”
액티브 스킬은 단 1회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영역 선포의 스킬은 날려 버리게 되었지만, 아직 다른 스킬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프렘이 악몽을 완전히 만들기만 해도 승산은 다시 이쪽에게 유리해질 것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아냐고? 시스템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프렘이 보유하던 시체 6,631구를 소모하여 네임드 악몽 ‘바베르의 탑’의 제작을 시도합니다.]
[만약 완성된다면 이전에 없던 희대의 악몽이 탄생하게 됩니다.]
[악몽이 완성되는 순간, ‘하늘 궁전’은 오염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신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대량의 힘을 소실할 것입니다.]
***
악몽이 제작되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천신 또한 파악했다. 하지만 천사들을 불러 프렘을 처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직접 나서야 했다. 왜냐고? 천사들은 이미 분노에 극을 달하는 마스터 도전자들을 뚫고 지나갈 수가 없어서다. 그들의 대부분은 충렬의 뒤에서 들이치는 적들을 막아주었다.
[어딜!]
[네까짓 것들이 천사라고? 꺼져라! 천사의 탈을 쓴 천신의 개새끼들아!]
[내가 여기서 소멸된다고 해도 네크로 마스터에게는 단 한 발자국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겠다!]
도전자들은 충렬과 대화를 한 번도 나누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이충렬이 당하면 끝이니 무조건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충렬이 생존해있어야만 그들은 자신들의 복수를 이룰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천신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되살아나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을 위하여 충렬의 부름에 응한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우리 인류에게도 신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지구에 있는 내 가족들이 언제 이곳에 끌려올지 모른다고! 그들이 이 지옥 같은 곳을 겪기 전에 우리가 자리를 만들어 놔야 해!]
[내 영혼이 저승으로 끌려간다고 해도 상관없다.]
[마찬가지야! 이미 죽어버린 거. 화끈하게 마무리 짓고 가자!]
물론 그들만으로는 사실 천사들의 전력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도우는 충렬의 수하들이 있었다.
박해일과 태양왕 라이트. 그들이 강력한 병력들은 둘로 나누어 충렬의 오른쪽과 왼쪽을 각각 지켰다. 그리고 마스터 도전자들을 도왔다.
[살육자들! 구울들과 함께 저쪽에서 진입을 막아! 데쓰러들은 넘어오는 천사들을 다구리 친다! 백호! 가서 저 천사의 면상을 뜯어 와라!]
“해골만세 혈맹원들님! 부상자들을 곧바로 이쪽으로 옮겨주십시오! 신전 관계자분들은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이런……! 이쪽으로 피하십시오! 마족들의 원거리 공격을 방어해 드리겠습니다! 태양의 보호!”
전투력이 약한 언데드들을 고기 방패 삼아서, 전투에 참여한 이들은 최대한 천사들과 마족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전투력 자체는 적들이 뛰어났음에도 전황은 팽팽하게 유지되는 중이었다. 만약 메두사와 그의 나가들까지 함께 소환할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영지의 주민이 아니고 동맹 관계였기에, 영주의 반지로는 소환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는 것들만 생각해야 했다.
어쨌거나 모든 이들이 충렬을 위해 자리를 지켰다. 적들이 감히 그를 넘보지 못하게.
충렬은 모든 이들이 힘겹게 전투를 이어나가는 동안, 천신을 처치하기 위해 전진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굳이 힘들게 길을 뚫을 필요는 없었다.
악몽을 제작하고 있는 프렘을 저지할 병력이 없자, 결국 천신이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어차피 네크로맨서, 네 녀석만 처치하면 상황은 쉽게 끝나겠지! 나의 천벌을 받거라, 네크로맨서여!”
그렇게 다른 이들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충렬을 포함한 그의 네임드들이 천신과의 전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