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32화 (232/237)

# 232

휘몰아치는 폭풍

묘비들을 살핀 결과, 천신이 어떻게 통수를 치는지 완전히 파악을 했다. 아무리 천신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마스터들을 간단히 처치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천신은 대부분 상대를 안심시킨 뒤, 마스터에 대해 탐색전을 벌이고 그에 알맞게 제거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이라도 믿는 순간 끝이었다. 죽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묘비에 글을 남기게 될 것이리라. 물론 새벽의 여신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었다.

[다른 신들이 내 눈을 통해 천신을 지켜보는 중이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대 하나쯤은 피하게 할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다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충렬은 곧 천신의 앞에 다다랐다.

***

천신의 앞에 다다른 충렬은 생각보다 너무 거대한 천신의 모습에 절로 목이 아파왔다. 그런 충렬의 불편함을 느꼈던 것일까? 천신이 스스로의 모습을 축소시켰다.

모습을 축소시킨 천신이 충렬을 반겨주었다. 그가 중저음의 목소리를 울리며 충렬을 환영했다. 새벽의 여신이 옆에 있었지만, 충렬에게 먼저 말을 건네었다.

“왔는가. 마스터 네크로맨서여.”

그러면서 한쪽 손을 내미는 천신이었다. 생각보다 천신은 친절하게 반응했다.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그의 행동에 충렬이 대충 한쪽 손을 내밀며 마주잡아 주었다. 그리고 답했다.

“반갑습니다.”

물론 반갑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천신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었다. 충렬이 그의 손을 마주잡자 시스템이 좋지 않은 소식을 알려왔다.

[천신이 당신의 능력을 측정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정신계 개척도가 100%입니다.]

[천신이 시도한 측정이 실패합니다.]

천신의 행동에 충렬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려다가 참았다.

‘역시, 그렇게 나오시겠다?’

설마 시작부터 술수를 부리려고 하다니. 정신계 개척도가 100%라서 다행이었다.

‘아깝군. 다짜고짜 내 정신으로 들어왔더라면…….’

그랬더라면 아주 좋은 일이 발생했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인지, 천신은 당황하고 말았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표정에서 당혹함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충렬과 눈이 마주치자 표정을 싹 고치더니 곧바로 자세를 정돈했다.

“크흠. 오늘따라 내가 피곤한 건가. 이런 날에 초대해서 미안하군.”

그러더니 충렬에게 다시금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되었거나 나의 궁전에 온 것을 환영한다네.”

그리고 새벽의 여신을 바라보더니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새벽을 담당하는 그대가 네크로맨서와 함께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군.”

그것은 잠깐이었지만 충렬은 그 점을 확실히 캐치해 내었다. 천신은 확실히 새벽의 여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새벽의 여신 또한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천신과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단칼에 싫은 티를 내었다.

“네크로맨서가 염려되어 함께 동행했을 뿐. 서로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당신과 나는 다소곳이 이야기를 할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천신에 의해 세력이 축소된 새벽의 여신이었다. 그녀가 조용히 있는 것만으로도 천신은 고마워해야 했다. 물론 능구렁이같은 그는 털털한 척을 했지만 말이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 기분이 그렇다면 미안하군. 네크로맨서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어. 허허.”

그렇게 천신과 충렬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휴전 협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

이상했다. 천신이 미친 것일까? 천신은 말도 되지 않는 내용으로 휴전을 해주려고 했다.

‘너무 말도 되지 않는다.’

불리한 내용을 들이밀었기 때문에?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충렬에게 너무나 유리했다. 일방적으로.

생각 외로 천신은 그럴듯하게 충렬에게 제안했다.

“이것은 신의 계약이다.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어길 수가 없는 내용이지.”

충렬이 네크로맨서의 계약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천신 또한 계약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천신이 제안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천신과의 계약]

[대상: 이충렬]

[내용: 충렬과 그의 세력들은 계약하는 순간부터 천신과 해당 세력들을 공격하지 못한다. 공격을 한다면 계약에 의하여 소멸된다. 천신은 또한 충렬과 그의 세력을 공격하지 못하며, 정기적으로 그를 후원해 준다. 충렬이 요구 사항을 말한다면 그것을 최대한 들어준다. 충렬이 궁전을 나서는 순간, 천신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계약서의 내용을 읽은 충렬은 때가 왔음을 인지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번지르르하고 달콤한 계약 내용이었다. 휴전을 넘어서서 천신의 후원까지 받을 수가 있다니.

‘하지만 계약서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충렬은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대사였다.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나.’

계약을 하는 순간,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몰랐다. 계약을 하자마자 충렬은 천신을 공격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야했다. 그러나 천신은 달랐다.

‘내가 궁전을 나서는 순간부터 계약을 이행한다고?’

바꿔서 말해 궁전 밖으로 나서지 못한다면 천신이 공격해도 반격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결국 이렇게 수작질을 벌이는군.’

천신은 일부러 계약서를 이렇게 작성한 것이리라. 물론 충렬이 영지 귀환석을 이용해서 공격을 당하기 전에 이동한다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빼낼 수 있다던 새벽의 여신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그러나 느낌이 좋지 않아.’

새벽의 여신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조건을 제시했다. 교묘하게 허점이 없는 것처럼. 때문에 충렬은 섣불리 계약하지 않았다.

주변에 놓인 수많은 묘비들이 알려주었다. 천신은 이런 짓을 한 번, 두 번 해본 것이 아니었음을.

‘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한번 튕겨볼까.’

과연 천신이 어떻게 나올까. 그 반응 한 번이면 놈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파악하기는 했지만 확인 사살이 필요했다. 너무나 능구렁이같이 행동하는 천신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충렬이 먼저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충렬이 아무런 말없이 계약 내용만 살피자 천신이 말했다.

“어떤가. 자네에게 너무나도 좋은 조건일 텐데. 이대로 계약을 진행하도록 하지. 후원은 정말 제대로 해줄 테니 말이야.”

천신의 재촉에도 충렬은 묵묵부답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충렬이 입을 열어 말했다. 돌려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충렬은 남자답게 돌직구로 말했다.

“궁전을 나서는 순간이 아니라, 계약을 하는 순간으로 바꾸죠. 그러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충렬의 말에 천신의 인상이 악귀같이 변해 버렸다. 천신에게 참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성의 대명사인 천신이 맞을까 싶을 정도였다.

천신은 드디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었다.

“벌레 같은 인간 따위가 결국 귀찮게 가자는 이야기로군. 좋다. 쉽게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발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광경도 재미있겠지.”

그러더니 천신은 새벽의 여신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이참에 네년의 힘까지 흡수해 주도록 하지.”

너무나 재빠른 태세 변환에 충렬이 차마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새벽의 여신도 마찬가지였다. 수작을 부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곧바로 미친 짓거리를 하다니.

“천신! 다른 신들이 당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

천신은 새벽의 여신이 하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네년과 붙어먹은 놈들 따위 알 바가 아니다. 보나마나 바퀴벌레같이 간신히 존재하는 녀석들뿐이겠지. 내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핵심을 찌르는 말에 새벽의 여신이 한쪽 입술을 깨물었다. 천신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천신은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다. 천신의 수작질에 새벽의 여신 또한 곧장 반응했다.

***

천신은 충렬과 새벽의 여신이 도망치지 못하게 제약을 가하려 했다. 속성을 떠나서 신급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사용했다.

“신의 결계.”

[천신이 신의 결계를 사용합니다.]

[결계 범위는 하늘 궁전 전체입니다.]

[천신의 허락 없이는 어떤 수단을 이용하여도 하늘 궁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충렬에게는 새벽의 여신이 있었다. 충렬과 함께한 그녀 또한 신급 존재. 그녀가 천신이 사용한 결계를 파쇄했다.

“결계 제거!”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과연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준다던 호언장담은 괜히 한 것이 아니었다.

[새벽의 여신이 신의 결계를 해제합니다.]

[더 이상 결계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결계를 해제한 여신이 충렬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이 틈에 어서 빠져나가야……!”

물론 상대하는 신이 천신 혼자였다면 새벽의 여신은 빠져나갈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상대해야 하는 신은 천신 혼자가 아니었다. 천신의 뒤에서 어두운 안개가 잠시 발생하더니 누군가 등장했다.

“이런… 역시 천신. 너는 물러터졌다니까?”

전형적인 검은 피부의 마족의 모습으로 등장한 존재. 그는 바로 마신이었다. 그의 머리 위로 이름이 떠올랐다.

<마신>

마신은 등장하자마자 천신을 도왔다.

“결계 강화.”

그 말을 끝으로 새벽의 여신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마신이 사라진 결계를 복구하며 한차례 강화를 합니다.]

[결계를 해제하려면 천신과 마신을 처치하거나, 두 명의 신 이상이 결계를 해제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하늘 궁전 내에 새로운 존재는 진입할 수 있으나, 허락 없이 빠져나가지는 못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신은 천사들을 보더니 외쳤다.

“마왕들이여. 그대들의 수하와 함께 가면을 벗어라!”

그러자 순결한 모습을 하고 있던 천사들이, 허물을 벗어던지듯이 겉의 피부를 잡아 날렸다. 동시에 천사의 모습이 찢어지며 어둠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마왕과 마족들이 등장했다. 그 숫자가 2,500정도에 달했다. 결국 5천의 천사는 2,500의 천사와 2,500의 마족들이 합쳐져 있던 숫자였다.

그 광경에 새벽의 여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

그녀는 설마 마신이 천신을 도와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질 못했다. 그녀의 당황한 표정에 마신이 말했다.

“귀찮은 인간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해서 말이야. 천신이 갑자기 부르기에 급하게 왔더니 일이 쉽게 풀리는군. 크큭.”

하지만 충렬은 상황이 악화될 것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설마 마신까지 등장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마신이 등장했다고 한들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헬리오스에 있어서 마지막 전투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신을 처치한다면 더 이상의 지긋지긋한 일들은 끝이다.’

자신이 신이 된다면 과연 누가 건드릴 것인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마스터들은 그들끼리 합세하여 신을 상대했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 충렬에게는 새벽의 여신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를 무작정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도는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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