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폭풍전야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느새 뒤쳐져 오던 프렘과 실비아, 그리고 나머지 나가 사신 셋이 합류했다. 하지만 그들이 합류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었다.
굳이 충렬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충렬은 전체적인 전투를 지켜보는 중이었고, 그런 충렬의 옆으로 프렘과 실비아가 다가왔다. 나가 셋은 메두사에게로 돌아갔다.
충렬의 옆으로 온 프렘이 투덜거렸다.
[쳇. 이렇게 되면 건질 시체가 얼마 없게 되잖아. 모조리 언데드로 부활시켜 버리다니.]
물론 그렇게 말은 해도 프렘이 챙길 시체는 많았다. 기존에 미리 죽어 있던 시체들이었다. 다만 프렘은 더 많은 시체를 챙기지 못해 그런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전황은 걷잡을 수 없이 충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아군이 죽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적들은 죽을 때마다 충렬의 수족이 되어 일어섰다. 하급 천사, 도전자, 몬스터들은 진작 전멸한 지가 오래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던 신봉자의 수급이 베어지는 것으로 전투는 마무리되었다.
서걱.
데스 나이트가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이곳에 침공한 천신의 세력을 모조리 일망타진하였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은 이곳에서 충렬이 얻은 것을 정산하기 시작했다.
[처치한 적들로부터 발생한 카르마를 포함하여 보너스 카르마가 합산하여 주어집니다.]
[전장에서 승리한 당신에게 총 500만 카르마가 주어집니다.]
대규모 전투 참여 하나로 500만 카르마를 가져가게 되었다.
‘미친. 단위부터 다르잖아.’
짜잘한 카르마를 벌어가던 예전과는 달랐다. 단위가 감히 차원을 달리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대량으로 적들을 학살한 당신의 레벨이 7만큼 상승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60이 됩니다.]
그렇게 레벨이 60으로 상승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강한 존재가 되었다.
[‘암흑 투기’의 ‘전이’를 깨우쳤습니다.]
[암흑 전이: 보유하고 있는 암흑 투기를 원하는 대상에게 부여한다. 암흑 투기를 받은 대상은 일시적으로 암흑 투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암흑 전이라니.’
이제 암흑 투기를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에서 벗어났다.
‘예전에 샤오링이 암흑 투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때가 떠오르는군.’
암흑 투기와 홍염의 힘이 합치면서 엄청난 종류의 것이 발생했었다. 흑화라는 힘이 말이다. 이제 그 힘을 또다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리라.
어쨌거나 대규모 전투 한 번으로 충렬은 또다시 성장하게 되었고, 시스템은 마지막으로 새롭게 합류한 언데드에 대해 알려왔다.
[이곳에서 적을 처치하며 발생한 언데드의 종류와 수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본래 영역 선포가 끝나면 사라져야 하지만, 군단의 반지가 그들의 소멸을 방지합니다.]
[새롭게 합류하는 언데드는 소멸되기 직전까지 반지에 저장되어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적들이 죽으며 아군으로 합류한 숫자는 다음과 같았다.
[악녀 이리실라]
[하급 리퍼 (200)]
[듀라한 (200)]
[언데드 괴수 (300)]
[좀비 (1,488)]
[해골 병사 (1,481)]
도전자들은 충렬의 영지민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영역 선포의 영향일까?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죽으면서 듀라한이 되었다. 데프론이 듀라한일 때와는 달랐다. 그보다는 수준이 낮았는지, 그들은 떨어진 머리를 왼쪽 손으로 들고 있었고, 오른손엔 간단한 장검을 착용한 채 일어섰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기괴망측하게 생긴 언데드 몬스터가 되었다. 신봉자들은 좀비가 아니면 해골 병사가 되었고 말이다. 그 결과가 방금 나온 것이었다. 중간에 몇몇 언데드가 파괴되기는 했지만 그 숫자는 매우 미미했다.
‘결국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를 얻어 가게 되는군.’
저 숫자를 합치니 해골 병사만 벌써 2,100마리를 넘겼다.
‘그리고 군단의 반지에 중첩된 스택도 1천을 넘기게 되었다.’
이곳에서 학살을 벌이면서 스택 1천을 또다시 쌓은 것이었다.
‘나중에 레벨을 높인 상태에서 또 사용한다면…….’
데스 나이트보다 더 강한 존재가 소환될 것이리라. 이미 지금도 레벨은 많이 올랐지만 앞으로 더 올린다면 어떤 존재가 소환될지 몰랐다.
그렇게 늘어나는 전력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새 메두사가 충렬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전투가 끝나자 영역 선포는 종료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묘비들이 새롭게 생겨져 있었다. 도전자들의 육체는 충렬의 수하가 되었지만, 그들이 어딘가의 주민이 되면서 그 전에 묘비를 남긴 것이었다.
-야, 씨발. 천신이 주는 임무 하지 마라. 마스터 상대해야 한다.
-마스터 네크로맨서 마주치면 바로 뒤짐.
-네크로 마스터님. 혼자서 3,000명 넘는 인원 학살. 실화?
-ㅇㅇ 실화.
-천신은 뭐 하냐. 마스터 도전자 섭외 안 함?
묘비들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묘비를 살펴보니 사망한 도전자들이 왜 충렬의 주민이 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것보다 죽으니까 진짜 천국에서 주민 되게 해주네? 개이득.
-ㅋㅋ계약 조건에 그것도 있었잖아. 당연한 소리를.
-ㅇㅈ. 이제 쉬러 갑니다 ㅋ
-근데 천국까지 네크로 마스터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함?
-그러게; 보니까 천신은 계속 싸울 생각이던데.
-설마 마스터라고 해도 신을 이길 수 있겠냐? 생각 좀 하고 말해라.
그렇게 묘비들을 살피며 충렬은 소환한 언데드 또한 군단의 반지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전장에는 나가들의 군대만 남게 되었다. 그런 나가들의 사이를 가르며 강렬한 기운을 가진 메두사가 충렬의 앞에 도착했다.
나가들의 지도자인 그녀는 충렬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다. 인간. 먼저 보냈던 신하들에게 네가 누구인지 들었다.”
메두사의 말에 충렬이 묘비에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영지로 돌아가서 치료부터 받으시죠.”
기본적인 치료는 성녀가 해준 상황이었지만, 이곳의 인원이 너무 많았다. 성녀 혼자서 이들을 모두 돌보기에는 무리였다. 영지에서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
언제 적들이 또다시 들이칠지 몰랐다. 충렬의 말에 메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을 따르겠다.”
그러던 중에 프렘이 충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충렬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나가들의 시체를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봐 달라는 것인가.’
프렘은 이미 나가들의 시체 외에, 천신의 군대가 남긴 시체를 모두 수거한 상태였다. 충렬이 도착하기 전, 한차례 시작된 전투로부터 발생한 시체였다. 메두사의 눈치가 보이니 나가들의 시체는 수거하지 못한 것이리라.
눈치 보며 말할 것은 없었다. 충렬은 곧장 메두사에게 말했다.
“죽은 나가들의 시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러자 메두사가 답했다. 메두사는 충렬이 말한 의미를 단번에 파악했다.
“그대에게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게 느껴지는군. 거기에 관련해서 사용하려는 것이겠지?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 우리들은 딱히 떠나간 이들의 육체에는 미련을 가지지 않으니까.”
그 말인 즉, 어떤 용도로 사용하던지 관여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정말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움을 준 충렬이 사용하려 하니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다른 나가들의 표정을 대충 훑어보니 실제로 그녀들은 별다른 상관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감사히 가져갈 뿐이었다.
“고맙습니다.”
충렬은 말을 끝내자마자 프렘에게 턱짓을 했다. 알아서 수거를 하라고 말이다.
***
프렘이 시체들을 수거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프렘은 이곳에서 총 5천 구가 넘는 시체를 수거했다.
덕분에 프렘의 스킬에 저장된 시체는 그 숫자만 6,600을 넘기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용무를 끝낸 충렬과 메두사의 무리들은 곧바로 영지로 복귀했다. 현재는 영지에 복귀한 나가들을 위해, 영지에 있던 모든 이들이 동원되어 그녀들을 돌보는 중이었다.
현재 충렬은 영주의 집무실에서 메두사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을 노린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천신이 메두사를 노린 이유. 그녀가 가진 능력 때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확히 그 능력이 어떤 것인지는 몰랐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맞다. 내 능력은 신조차 봉인할 수 있을 정도이지.”
메두사가 가진 ‘석화’의 능력. 그녀의 석화 능력은 신조차 석상으로 만들 만큼 무척이나 무서운 능력이었다.
신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활동하지 못하게 봉인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녀가 설명을 끝내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따로 알려왔다.
[‘메두사’의 석화: 대상을 석상으로 만들어 봉인한다. 신에게도 통할 정도다. 다만 대상에 따라서 석화를 사용하는 데 소모되는 힘이 다르다. 만약 신에게 사용한다면 메두사는 소멸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 경우에는 부활 스킬로 되살아날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였다. 메두사가 뜬금없는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다.”
무엇이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일까.
‘함께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인가?’
그러나 충렬의 추측은 빗나갔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마법을 사용했다.
“인간화.”
[메두사가 ‘인간화’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녀의 모습이 인간으로 변합니다.]
동시에 그녀의 주변으로 초록색의 빛이 번뜩이더니, 그녀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파앗!
인간으로 변한 그녀의 상체는 이전과 비슷한 외모였다. 다만 하체가 뱀이었던 곳은 멀쩡한 사람의 다리가 나타났다.
머릿결 또한 변했다. 본래 그녀의 머리카락은 가느다란 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화 스킬을 사용하니 초록색인 것만 그대로인 채, 생머리에 간단한 웨이브가 들어간 풍성한 머릿결로 바뀌었다.
그리고 피부톤은 약간의 연두색이 섞여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일 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인간의 모습임에 분명했다.
물론 그녀는 이전과 같이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녀의 기다란 머릿결이 아슬아슬하게 위태한 상체를 가렸을 뿐이었다. 전에는 별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막상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니 눈길이 가기는 했다.
거기다가 사람의 다리로 변한 하체도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충렬은 거기까지는 쳐다보지 않았다.
“왜 갑자기 사람의 모습으로……?”
메두사가 사람으로 변하는 스킬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왜 사용한 것일까?
“공짜로 그대의 영지에 머물 생각은 없다. 이곳에 머물게 된 이상 그대는 마음껏 나를 취해도 좋다.”
그러면서 메두사가 상체를 비스듬히 숙이더니 충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곧 앉아 있는 충렬의 위로 올라탄 메두사가 충렬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나를 가져라.”
갑작스런 메두사의 행동에 충렬이 당황했다.
‘흐음…….’
충렬도 남자였다. 굳이 상대가 먼저 대시해 온다면 굳이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보다도 메두사의 얼굴은 무척이나 미인형의 얼굴이었다. 그 누구라도 혹할 만큼.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몸을 충렬에게 맡긴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준다는 것 그 이상이었다.
마침 시스템이 알려왔다.
[메두사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메두사는 지금까지 그 어떤 존재와도 몸을 섞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육체를 탐닉한다면 그녀가 가진 방대한 힘의 일부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랬다. 그녀와 몸을 섞는다면, 그녀가 가진 힘의 일부를 흡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메두사 또한 그것을 알고서 충렬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에, 충렬은 말문이 막혔다.
[메두사의 힘을 일부분 흡수하면 그 힘이 ‘케르베로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케르베로스는 새로운 초월체로 진화를 완료합니다.]
[메두사의 힘을 이용한 초월체로의 진화는 ‘지옥의 개’와 ‘사독의 뱀’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진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십시오.]
당연히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초월체가 되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이런 식으로 불쑥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없군.’
충렬은 딱히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메두사와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충렬은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탄 메두사의 턱을 한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