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27화 (227/237)

# 227

***

전황은 생각보다 압도적으로 불리해 보였다. 이미 살아 있는 2,000의 나가들 주변으로 그보다 배는 넘어 보이는 나가들의 시체가 존재했다. 대충 세어보면 그 숫자가 4천이었다.

반면 천신 세력의 시체는 고작 1,500에 불과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나가들이 전멸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야.’

상황을 살피며 계산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천신의 군대가 주는 압박은 너무나 조직적이었다. 한차례의 전면전을 끝내고, 다시금 나가들을 치려는 그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지금 충렬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전황을 뒤집는다.’

전면전을 또다시 시작하려는 적들의 중심부로 충렬이 진입했다. 그 중심부에는 천신의 성녀, 이리실라가 있었다.

전황을 뒤집기 위해 마스터 도전자인 이충렬과, 천신의 세력과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

나가들과 함께 피신해 가던 메두사. 그녀의 도망은 멀리까지 이어질 수가 없었다. 동맹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각종 배신이 발을 묶었고, 결국 천신의 군대와 마주치고 말았다.

현재 그녀의 두 눈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쳤기 때문에? 아니었다. 수많은 나가들이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것과 흘러내리는 피가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었다. 너무나 지독한 슬픔에 의하여 눈이 충혈되다 못해 터져 버렸다. 그로 인해서 흘러내리는 피눈물이었다.

“크으윽…….”

메두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차례의 전투로 절반이 넘는 나가들이 사망해 버렸다. 중간에 자신의 이능을 이용해 전투를 소강 상태로 만들었지만, 그사이 적들은 이미 자신을 포함한 나가들을 포위한 상태였다. 후퇴할 길은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가 파괴된 왕궁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메두사의 측근중 하나가 메두사에게 말했다.

“이걸 쓰고 먼저 가십시오!”

그녀가 건넨 것은 1인용 워프 스크롤이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메두사를 위한 전용 스크롤이었던 것이다.

메두사는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찢었다. 사용하기 위해서 찢은 것은 아니었다.

“닥쳐라!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너희들을 두고 가지는 않는다!”

그랬다. 메두사가 스크롤을 찢은 이유는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국 스스로를 절벽 앞에 내놓은 메두사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명령을 내렸다.

“나와 함께 이곳에서 잠들 자들은 끝까지 남아 싸운다! 살고 싶은 나가들은 말리지 않을 테니 기회가 생기면 즉시 해골왕에게 가거라!”

물론 나가들은 살고 싶었다. 그러나 해골왕에게 갈 생각은 없었다. 메두사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그녀들도 기꺼이 죽을 생각이었다. 한 나가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마지막까지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자 나머지 나가들도 그녀의 말을 이어갔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저 녀석들의 면상을 하나라도 더 물어뜯겠습니다!”

그 외의 나가들은 특유의 뱀의 목소리로 화답했다.

“캬아아아아악!”

“키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악!”

전황은 불리했지만 나가들의 사기는 반대로 증가되어 갔다. 그러나 그때였다. 다시금 천신의 세력들과 한판 붙으려는 찰나. 저쪽을 지휘하던 성녀를 중심으로 지독한 죽음의 힘이 폭사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

전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던 성녀 이리실라.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호호. 메두사를 잡기만 하면 이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

천신이 약조했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메두사를 잡아오기만 한다면 막대한 포상을 주겠다고.

수명을 원하는 대로 늘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무한한 신성력을 공급하는 것도 기본이었다. 나중에 육체가 죽어서 영혼이 하늘로 오면, 높은 지위를 가진 천사의 자리를 약속했다.

상상만 해도 기뻤던 것일까? 성녀의 표정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자, 이제 그럼 끝내볼까? 하아.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지.”

그녀는 메두사를 그만 놀리고 슬슬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천신이 보내준 하급 천사와, 이계에서 온 도전자라는 인간들 덕분에 나가들을 처치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하지만 성녀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이었다.

그녀의 귓가로 한 사내의 숨결이 훅 치고 들어왔다.

“끝내길 뭘 끝내?”

사내의 정체는 바로 충렬이었다. 충렬은 공간 도약을 이용해 단번에 성녀의 뒤로 이동했던 것이다. 갑작스런 충렬의 목소리에 성녀가 당황했다.

“헉! 누구……!”

당황한 성녀는 신성력을 이용해 충렬을 떨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 애초에 다른 이들이 다가올 틈은 없었다. 마침 성녀는 혼자서 뒷짐을 서고 있었고,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 전에 충렬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먼저였다.

충렬은 성녀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았다. 가느다란 그녀의 목은 한 손에 쉽게 잡혔다. 어렵지 않게 성녀의 목을 잡은 충렬이 말했다.

“너부터 끝나라.”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자 가녀린 성녀의 목이 단번에 기역 자로 꺾였다.

콰득.

동시에 그녀는 죽어버렸다.

[성녀 이리실라를 처치하였…….]

아니,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어서 들려오는 시스템의 음성이 이상했다.

[성녀 이리실라가 천신의 보호에 의하여 죽지 않고 되살아납니다.]

역시 단번에 죽지 않다니.

‘귀찮게 하는군.’

왜 뒷짐을 지고 혼자서 구경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죽을 걱정이 아예 없었던 것이었다.

‘확실히 죽어버리는 수밖에 없겠어.’

충렬은 순식간에 몸을 회복해 가는 성녀의 가슴에 손을 쑤셔 넣었다.

푸욱.

그리고 먼저 심장을 꽉 쥐었다. 심장을 옥죄는 충렬의 손아귀에 어느새 목이 원래대로 돌아온 성녀가 침을 흘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것인지, 그녀의 눈은 뒤집혀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악……!”

그러나 성녀 이리실라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곧 성녀의 심장이 부풀어 오르더니 찢어지는 생고기처럼 이리저리 분해되었다.

콰지지직.

심장을 터뜨려 없애 버린 충렬은 성녀가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충렬은 성녀의 갈비뼈를 양손을 이용하여 파고들었다.

한쪽 손은 위로, 그리고 다른 손을 아래로 내리며 성녀의 육체를 찢어발겼다. 곧 성녀의 육체는 다양한 소리를 내며 다져진 고기가 되어갔다.

콰드드드드득!

찌지직!

콰지지직!

잔인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확실하게 끝내 버려야 했다.

성녀의 몸을 조각조각 내는 한편, 충렬은 귀찮은 천신의 힘을 방해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

“영역 선포. 죽음의 땅.”

그러자 충렬을 중심으로 암흑 투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기둥이 되어 솟아올랐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그 기둥은 점점 넓어지며 충렬의 주변에 위치한 땅을 어둠으로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죽음의 땅으로 뒤바뀌어 가는 과정이었다.

암흑 투기를 소모하는 대신 이제 쿨타임 따위는 없어진 영역 선포였다. 그러한 스킬에 충렬이 대량의 암흑 투기를 주입하자, 물들여 가는 영역의 속도는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

성녀는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신의 힘은 더 이상 성녀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충렬의 영역 선포가 주변을 모두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사용했던 영역 선포가, 천신의 개입을 차단시켜 버렸다.

[주변의 영역이 당신을 위한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영역으로 선포된 땅에, 더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천신의 힘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성녀의 부활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천신의 개입이 차단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성녀가 죽음의 땅에서 사망하자 아군이 되어 일어섰다.

[‘죽음의 땅’에서 죽은 성녀가 당신의 종이 되어 일어섭니다.]

[성녀 이리실라가 ‘악녀 이리실라’로 부활합니다.]

성녀에서 악녀라고 이름이 바뀐 이리실라.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어둠에 물들었다. 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옷부터 시작해 가지고 있던 기운까지. 모든 것이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죽음의 땅에서 부활시킨 언데드치고는 처음으로 개인의 이름을 가진 언데드였다. 본래라면 언데드의 땅이 사라지면 그녀 역시 사라질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죽음의 땅이 종료되기 전에 이리실라를 네크로 반지에 저장한다면 계속해서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의외로군. 성녀마저 언데드로 만들어 버리다니.’

물론 좋은 일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천신의 세력에 노출된 덕분에, 이제는 새벽의 여신이 주었던 채취가 소용이 없게 되었다.

[천신이 당신의 존재를 파악하였습니다.]

[당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시하는 중입니다.]

[새벽의 여신과 섞었던 채취로는 천신의 시야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 충렬의 영지도 천신으로부터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충렬은 겁을 먹지 않았다. 아직 부족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병력을 불린 상황이었다. 충렬이 하늘을 바라보며 천신을 도발했다.

“주시하면 어쩔 건데. 들어와 보시던가.”

하지만 천신으로부터 대답은 없었다. 어쨌거나 성녀가 악녀로 변하자 천신의 편에 있었던 하급 천사들이 분노했다.

“감히 성녀를!”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하지만 하급 천사들은 결코 충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급 정도의 수준을 가진 천사들 따위는 간단한 손짓 하나로 처치할 수가 있었다.

“파괴 광선.”

충렬이 방금 저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인 하급 천사들 중 하나에게 암흑 투기를 쏘았다. 그러자 입을 나불거린 천사가 단번에 소멸되었다.

[하급 천사가 파괴광선에 의해 모든 신성력이 불타며 사라졌습니다.]

[하급 천사가 처치됩니다.]

[5,000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5천 카르마라. 하급 천사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카르마를 주었다. 물론 하급 천사는 죽자마자 충렬의 수족이 되어 일어섰다.

[하급 천사가 죽음의 땅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죽은 하급 천사가 ‘하급 리퍼’가 되어 일어섭니다.]

[‘하급 리퍼’가 당신의 세력에 합류합니다.]

이제 이대로만 간다면 충렬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충렬은 파괴 광선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영역 선포로 인해 암흑 투기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어쩔 수 없군.’

이제 병력들을 소환해 지휘를 해야 했다. 영역 선포가 종료되기 전에 이곳을 쓸어버리는 것이 답이었다.

‘지금부터 시간 싸움이다.’

빠른 시간 안에 적들을 처치하지 못한다면 위험해지는 것은 충렬이었다.

어차피 병력을 소환한다고 해도 손해를 볼 것은 없었다. 네크로 군단의 반지에 있는 이들을 꺼낼 생각이었으니까.

마음을 정한 충렬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스템, 군단의 반지에 저장된 스택을 모조리 소모한다. 그리고 저장된 언데드들을 전부 꺼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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