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23화 (223/237)

# 223

***

레일리에 의해 처치된 광군주. 그의 모습에 충렬은 어이가 없었다.

‘의외로 별것 없잖아.’

물론 레일리가 강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도전자들의 묘비들을 살펴본 것치고는 허망한 광군주의 최후였다. 충렬의 소환수들이 모두 나서지도 않았는데도 이기다니. 생각보다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하긴, 묘비들의 글을 살펴본다면 도전자들은 임무 때문에 광군주와 전투를 벌인 것이었다.’

그 말인즉, 전투를 벌인 도전자들은 마스터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그들은 강제로 임무 지역에 보내지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마스터였다. 그러니 광군주의 상대가 비교적 쉬웠을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마스터가 되기 위한 임무 내용들이 광군주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

그냥 충렬을 마주한 광군주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광군주는 간단히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당장에 그가 죽으면서 소속이 사라진 500마리의 해골 병사들. 녀석들이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해골 병사들을 지휘하던 광군주가 사망하였습니다.]

[광군주를 처치한 당신은 남아 있는 해골 병사들을 합류시키거나 포로로 잡을 수 있습니다.]

[혹은 그들을 처치하여 카르마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골 병사들의 처우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시스템이 제시한 것은 세력에 흡수시키거나, 포로로 잡거나, 처치하거나. 3개 중에 하나였다.

‘포로로 잡을 이유는 없다. 저들을 데려갈 존재는 따로 없으니까.’

그렇다면 합류시키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물론 충렬의 생각은 정해져 있었다.

‘애써 죽일 필요는 없지.’

늘릴 수 있다면 조금의 병력이라도 더욱 늘려야 했다.

“저들을 나의 세력에 합류시킨다.”

충렬의 말에 시스템이 답했다.

[500마리의 해골 병사들이 당신의 ‘네크로 군단의 반지’로 이동됩니다.]

[네크로 군단의 반지에 해골 병사들이 추가됩니다.]

[현재 중첩된 숫자: 383]

[현재 저장된 언데드: 좀비 112마리, 해골 병사 619마리, 와이트 30마리,]

광군주 덕분에 반지에 저장된 언데드가 엄청난 숫자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선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충렬이 그가 남긴 병사들을 합류시킬 무렵, 광군주의 시체 위로 그의 힘을 머금은 영혼이 응축되어 떠올랐다.

[응축된 광군주의 영혼]

영혼이 나타나자 시스템은 충렬의 앞으로 그것을 끌고 왔다.

[당신의 소환수가 광군주를 처치하였습니다.]

[응축된 영혼에 대한 처우는 당신이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충렬의 앞에 놓인 광군주의 응축된 영혼. 그것은 그냥 도깨비불같이 매우 작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에 놓이니 자세한 설명을 볼 수가 있었다.

[응축된 광군주의 영혼: 광군주가 사망하며 남긴 그의 영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힘이 응축되어 있다. 네크로맨서인 당신은 그의 영혼을 풀어주어 승천시켜 줄 것인지, 혹은 수하에게 흡수시켜 강화할 것인지 정할 수 있다.]

설명을 읽은 충렬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왜 자유롭게 풀어줘?”

아무런 이득 없이 풀어줄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그냥 먹어치우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때문에 충렬은 즉각 입을 열어 말했다.

“흡수시킨다.”

충렬의 말에 시스템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응축된 광군주의 영혼으로 당신의 소환수들 중 하나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흡수시키겠습니까?]

[추천 대상: 제레미(1순위), 그 외(2순위).]

시스템이 1순위라고 강조하는 제레미였다. 그렇다면 굳이 다른 이들에게 흡수시킬 필요는 없었다.

“제레미에게 흡수시킨다.”

그러자 광군주의 영혼이 제레미의 두개골 안으로 순식간에 흡수되었다.

***

광군주 덕분에 데프론에 이어서 제레미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제레미에게 일어난 변화는 데프론보다 더욱 놀라웠다.

[제레미가 광군주의 영혼을 흡수하였습니다.]

[제레미의 숙련 등급이 9등급으로 상승합니다.]

[제레미의 직위가 ‘수호대장’에서 ‘수호군주’로 상승합니다.]

수호군주가 되면서 제레미는 엄청난 성장을 이룩해 내었다. 개인에게만 효과가 있던 그의 스킬이, 이제 군대를 위한 스킬로 변모한 것이다.

가장 첫 번째 변화는 특수한 힘을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수호좌의 각인: 제레미의 뼈 전체에 수호좌의 문신이 새겨졌다. 근처의 아군이나 자신이 공격에 당할 때마다 수호좌에 에너지가 충전되며, 그것을 이용하여 각종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단체로 사용할 스킬이었다.

[‘절대 방어’가 ‘절대 보호’로 강화됩니다.]

[절대 보호: 제레미가 선두에 서서 모든 방패병들을 집결시켜 사용한다. 아군들의 전방에서 일정 시간 모든 피해를 흡수한다. 소모한 수호좌의 힘에 따라 유지되는 시간이 다르며, 집결시킨 방패병들의 숫자에 따라서 흡수 가능한 피해량이 달라진다.]

보유한 스킬들은 차례대로 강화되었다.

[‘수호대장의 아우라’가 ‘수호군주의 아우라’로 강화됩니다.]

수호대장의 아우라는 일정 피해량만 감소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다. 그렇지만 수호군주의 아우라는 달랐다. 간단히 이름만 바뀌었지만, 그 내용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다.

[수호군주의 아우라: 근처에 존재하는 아군들이 입는 피해를 일정량 감소시킨다. 아군들 중 전투 불능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받은 아군을, 일정 시간 수호좌의 힘으로 보호하여 죽지 않게 한다. 수호좌의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적용되지 않는다.]

그 내용을 읽은 충렬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제 제레미를 소환하기만 해도 아군의 피해는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 사망해야 할 아군을 죽지 않게 하다니. 물론 그 시간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겠지만, 단 몇 초만 죽지 않게 해도 사기였다. 그사이에 마렉이 치료를 해주면 되었으니까.

‘정말 성장에는 끝이 없군.’

그러나 놀랄 틈은 없었다.

[수호방패병 소환 스킬이 강화합니다.]

[소환 가능한 숫자가 대폭 증가합니다.]

이름의 변경은 없었지만, 소환 스킬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수호방패병 소환: 커다란 방패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방패병들을 소환한다. 수호좌의 힘을 소모하며 소환할 수 있다. 최대 100기까지 소환이 가능하다.]

제레미도 이제 소환 가능한 숫자가 세 자리에 들어섰다. 군주라는 명함을 얻었을 뿐인데 이전보다 훨씬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특히 그의 방어 스킬은 필수였다. 물론 스킬의 성장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다음 2개의 스킬 또한 간단히 성장했다.

[지면 강타가 ‘대지의 분노’로 변합니다.]

[대지의 분노: 수호좌에 저장된 힘을 소모하여 대지를 분노케 한다. 땅이 크게 흔들리며 갈라진다. 수호좌의 힘을 많이 소모할수록 적용되는 범위가 증가한다.]

[스킬 ‘도발’이 ‘수호병의 도발’로 변경됩니다.]

[수호병의 도발: 군주의 직위를 가진 제레미가 애써 도발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이제 그의 방패병들이 도발을 사용해 적들의 시선을 자신들에게로 돌릴 것이다. 수호방패병들은 일정 시간마다 도발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도발 스킬을 마지막으로 제레미의 성장은 종료되었다.

***

제레미의 성장을 마지막으로 상황이 정리될 무렵이었다. 충렬에게 영지의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혼돈의 신전의 ‘새벽의 가호’가 다시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소식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박해일 대신 대리인이 된 라이트가 충렬을 기다렸다.

[대리인 라이트가 당신의 방문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영지에 ‘메두사의 사신들’이 방문하였습니다.]

‘메두사라고?’

메두사라면 예전에 분쟁 지역에서 해골왕의 편에 섰을 때 만난 세력이었다. 당연히 메두사 본인을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세력 관계도를 보아도 충렬과는 적대적이지도, 또는 친화적이지도 않은 무관심한 관계였다.

‘그런데 왜 방문한 것이지?’

사신을 보낸 것을 본다면 적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자신의 영지로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영지를 방문해 보아야 할 때였다.

‘겸사겸사 새벽의 가호도 사용해야겠어.’

적지 않은 카르마를 모았다. 새벽의 가호를 사용해 누군가를 강화시키고, 사신들 또한 만나보아야 할 것 같았다.

***

우거진 숲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자리를 잡은 축축한 늪은 촉촉한 수분을 공급해 주었다. 사람이라면 늪은 불편한 장소겠지만, 나가들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곳에 건설된 메두사의 왕국은 나가들에게 있어서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한 왕국 내부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궁 대전에 자리를 잡은 일단의 나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왕 폐하. 이곳은 포기해야 합니다.”

여왕 폐하라고 불린 나가. 그녀의 하반신은 뱀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상반신은 여성의 상체로 이루어진 메두사였다. 여왕의 위치에 있었지만 메두사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았다. 뭐, 애초에 그녀를 포함한 모든 나가들이 걸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나가는 모두가 여성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신경 쓰는 것은 단 하나. 왕국의 안위였다.

어찌 되었거나 신하의 말에 메두사가 입을 열었다.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곳을 포기해도 갈 곳 따위는 없어.”

그녀의 말에 다른 나가들이 다급한 어조로 메두사를 설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메두사가 당한다면 나가들은 끝장이라는 것을.

“급하게 피신할 곳을 찾았습니다. 언데드의 땅에서 사는 해골왕이 저희에게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메두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와 자주 싸웠던 해골왕이?”

물론 메두사는 해골왕과의 악감정이 없었다. 그저 강한 자가 땅을 정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그 때문에 이리저리 서로 부딪쳐 가며 싸웠을 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서로가 전투를 벌였던 이력이 있는 해골왕이 선뜻 손을 내밀어주다니.

하기야, 메두사와 해골왕은 서로 전투를 벌일 때 추잡한 짓거리를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정정당당히 대결을 이루었다. 아마 그렇기에 이런 상황임에도 선뜻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메두사는 해골왕이 내민 손을 잡기 직전,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다른 동맹국들은 어찌되었나? 그들에게서 연락은 없나?”

메두사의 말에 신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차례대로 보고를 이어나갔다.

“켄타우로스 종족은 피신처 마련을 거부하였습니다.”

“하르피들은 저희 사신을 높은 곳에서 추락시켜 죽였습니다.”

“웨어울프들 또한 저희 사신의 목을 베어 적들에게 넘겨주었습…….”

하지만 신하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두사는 분노했다. 그녀는 차마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 의리 없는 놈들이……!”

아마 평소 왕래가 있었던 이들이었지만, 위기에 처하자 도움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배신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언데드의 땅으로 가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해골왕의 소식을 가져온 나가가 혹할 만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친하게 지내는 인간을 먼저 소개시켜 준다고 그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실력은 확실하니 거래 조건만 좋다면 피신처를 제공해 줄 인간이라고 합니다. 일단 사신들을 보내기는 했지만… 협상이 결렬되어도 당분간은 자신이 숨겨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했습니다.”

실력이 확실한 인간이라고? 해골왕이 그렇게까지 말을 할 정도라면 쏟아져 내리는 폭우를 막아줄 정도의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폭우를 멈추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폭우에 몸이 젖지 않게, 지붕의 역할만 해줄 수 있다면 메두사는 만족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도움을 준 인간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다.’

자신을 원한다면 자신의 몸까지 건네어줄 의향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제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손길을 내밀어주는 동맹국들. 아니, 이제는 칼을 들이미는 배신자들에게 머리를 굽혀 목이 베일 것인가. 아니면 비록 전쟁을 한 경력이 있지만 언데드의 땅으로 가서 몸을 숨길 것인가. 그 둘 중에 하나는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메두사는 왜인지 해골왕의 행동이 더욱 믿음이 갔다. 오히려 동맹국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성은 도움을 줄 다른 동맹국들을 다시 찾아보라고 했지만, 이미 마음은 기울었다.

마음을 정한 메두사는 더 많은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명령을 내렸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까울 때였다.

“언데드의 땅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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