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넓어지는 영토, 증가하는 세력
얼음장같이 차가운 수백의 시체. 그 앞에 선 마렉이 머리를 긁었다.
[이거… 생각보다 제법 많은데?]
마렉의 자신 없는 말투에 충렬이 말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에 몇몇을 살리기만 해도 악령들은 우리를 믿을 테니까요.”
[그래도 어린아이들이니 그리 많은 힘은 소모되지 않을 것 같아. 일단은 해볼게.]
마렉의 말에 충렬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주었다. 어느새 충렬의 옆으로 고위 악령 셋이 자리를 잡았다.
딱히 오랜 주문이 걸릴 필요는 없었다. 마렉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서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대규모 부활.]
동시에 마렉의 양손으로부터 혼돈의 힘이 대량으로 뿌려졌다.
[마렉의 대규모 부활이 광범위 장소에 적용되었습니다.]
[혼돈의 힘이 죽은 아이들에게 스며듭니다.]
마렉의 스킬은 효과적이었다.
[아이들의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강한 존재를 살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다행히 마렉이 힘을 별로 쓰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전원 되살아났다.
[총 210명의 아이들이 되살아났습니다.]
[마렉의 몸에서부터 발생하는 ‘치유의 아우라’가 아이들의 활력을 빠르게 돋우는 중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누워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치 방금까지 잠을 잔 것처럼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났던 것이었다.
“으응…….”
“하암…….”
아이들이 일어나는 모습에 고위 악령들은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간신히 정신을 유지한 고위 악령 하나가 입을 열 뿐이었다.
[오… 신이시여…….]
악령이 신을 찾다니. 아이러니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나머지 고위 악령들 또한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신이십니까……!]
[이런 기적이……!]
이전까지 있었던 의구심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충격에 말을 제대로 이을 수조차 없었다. 지독한 원념에 집어삼켜진 고위 악령조차 충격받을 정도의 기적이었다. 기적을 목격한 고위 악령들이 재빨리 밖의 악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밖에 있는 병사들이여! 모두 들어오라! 아이들이 일어났다!]
그 명령에 일반 악령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악령들은 어느새 아이들이 있는 곳을 빙 둘러쌌다.
그렇지만 그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고위 악령들과는 다르게 이미 이성을 상실한 일반 악령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는 일반 악령들과 달리, 깨어난 아이들이 그들을 알아보았다. 비록 서로가 비슷하게 생긴 악령들이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 엄마?”
“아빠……?”
병사가 된 이들 중에는 아마 부모들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형! 왜 그러고 있어? 다들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네…….”
“오늘 무슨 날인가? 누나도 왜 그러고 있어?”
그러한 아이들의 반응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분명 이성이 존재하지 않음에 분명한 악령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으아아……]
[으어어어어…….]
무어라 말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악령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과 달리 정신을 울리는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된 울음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악령들이 울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의 기억은 죽기 직전의 기억이 끝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당장에 꺼내는 말은 배고픔의 호소였다.
“왜 울어? 먹을 것을 못 구했구나.”
“정말? 오늘도 먹을 게 없나?”
“괜찮아. 하루 더 굶을 수 있어.”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해맑은 미소로 악령들을 응원해 주었다. 아이들은 이미 성숙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행동이 악령들의 영혼에 불을 지폈다.
[원념에 집어삼켜진 영혼들이 아이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이 너무나 큽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집어삼킨 원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와 싸우기 시작합니다.]
스스로의 원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악령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너무나 손쉽게 원념이 패배했다. 곧 악령들은, 자신들을 집어삼킨 원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악령 하나가 자신의 원념을 벗어 던집니다.]
[해방된 악령: 1]
[원념에서 벗어난 악령이 다른 악령의 해방을 도와줍니다.]
[해방된 악령: 2]
[해방된 악령들이 아직 해방되지 못한 악령들을…….]
[해방된 악령: 4]
…….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악령들이 원념에서 해방되는 것은 불길이 번지는 것처럼 금방이었다. 고위 악령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고위 악령들은 아무런 도움이 필요 없었다. 스스로가 원념에서 간단히 벗어날 수가 있었다. 고위 악령들이 이렇게 된 것은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원념에서 벗어난 영혼들의 모습에 고위 악령들이 스스로의 원념을 벗어 던집니다.]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악령으로 만들어야 했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악령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게 고위 악령을 포함해 모든 악령들은,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
[악령들이 비록 원념에 집어삼켜졌지만 이제는 모든 원념을 벗어 던졌습니다.]
[불굴의 정신으로 끝까지 버텨낸 악령들이 마침내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수호성인: 지키겠다는 강력한 열망과 큰 깨달음으로 인해 성인이라는 존재가 되었다. 비록 언데드이지만 수호성인은 그 누구보다도 고결한 존재이다. ‘영혼’ 계열의 존재들은 수호성인의 앞에서 감히 경거망동할 수가 없다. 한 손에는 랜턴을 들어 방황하는 자들을 인도하고, 다른 한 손에는 철퇴를 들어 엇나간 존재들을 물리친다.]
인도자들의 모습은 더 이상 검은색의 악령이 아니었다. 회색으로 옅어졌으며, 그들의 무장은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게 되었다. 언데드인데 마치 전투 사제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물론 영혼의 모습이기에 반투명했다. 그렇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였다.
수호성인으로 바뀐 악령 다음에는 고위 악령들의 차례였다.
[고위 악령들은 그 순결한 의무를 끝까지 지켜낸 덕에 ‘고위 기사’가 됩니다.]
[고위 기사: 기사들 중에서도 얻기 힘든 ‘고위’의 자격을, 그들은 이미 악령일 때부터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위 기사로서 이제 수호성인들을 지키며 지휘한다. 다만 영혼의 형태이기에 기사의 명칭이 있음에도 더 이상 검을 들지는 않는다. 대신 막강한 힘을 부려 사용할 수가 있다.]
결국 악령들부터 시작해 고위 악령들까지. 모두가 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에 이성이 돌아온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먼저 달려갔다.
[세… 셀린느! 정말 깨어난 것이냐!]
[오……! 야곱아!]
[이게 꿈이 아니라니!]
고위 기사들과 충렬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수호성인들이 한창 자신들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할 무렵, 고위 기사들은 충렬과 따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기사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충렬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전까지의 말투는 사라져 있었다.
[앞으로 모든 열과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살아 있을 때의 지나간 육신은 끝난 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으로 살아가는 두 번째 생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하지만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머물고 있던 창고에서 수호성인들이 벽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또한 고위 기사들의 뒤로 가더니 하나둘씩 바닥에 착지했다. 동시에 양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아래로 숙였다. 수호성인들의 음성은 고위 기사들보다 더욱 크게 울렸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깨어나게 해주신 그 은혜를 이 영혼이 다 닳도록 갚아나가겠습니다!]
따로 충렬이 무어라 말하려고 할 무렵. 시스템이 먼저 알려왔다.
[고위 기사들과 수호성인들이 당신과 계약한 내용을 앞으로 충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세력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요새의 명칭이 바뀌었다.
[악령들의 요새가 ‘성인들의 요새’로 변경됩니다.]
[성인들의 요새와 그 주변이 당신의 영토에 포함되었습니다.]
[식민지가 추가됩니다.]
그렇게 이전보다 더욱 많은 숫자의 병력이 합류하였다.
<추가된 식민지>
[성인들의 요새]
[대표: 고위 기사, 고위 기사, 고위 기사]
[종류: 고위 기사, 수호성인, 어린아이]
[인원: 고위 기사(3), 수호성인(540), 아이들(210)]
[설명: 강력한 원념을 가진 악령들이, 원념을 벗어 던지고 상위 존재로 각성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충렬의 세력에 합류하였고, 앞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추가 발전: 아직 없음.]
[누적된 카르마: 0]
시스템이 알려온 것을 본 충렬은 눈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들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굳이 긴 말은 하지 않았다.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충렬의 세력이 된 고위 기사들과 수호성인들은 짤막한 추모식을 보냈다. 악령조차 되지 못하고 일찍 죽어서 떠나야 했던 동료들과 이웃들을 향해서였다. 하지만 떠나간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일 뿐. 추모식은 10분도 되지 않아 금방 종료되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성인들의 요새가 새로운 세력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지금은 그것을 살펴야할 때였다.
‘아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요새에 머물게 할 수는 없었다. 충렬의 영지와는 달리 이곳은 먹을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혼돈의 신전에 있는 성녀에게 보내기로 했다. 고위 기사들과 수호성인들 또한 그것에 동의했다.
[아이들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은 당신의 영지를 수호하기 위한 방파제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제 이 요새는 적의 진격을 막을 요새였고, 고위 기사들과 수호성인들은 충렬의 병사가 되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었다. 물론 충렬이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와 도움을 주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아이들을 성녀에게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르타디아, 그럼 아이들을 부탁드립니다.”
아르타디아는 숙련 등급이 A등급으로 되면서 대규모 순간 이동을 배웠다. 그래서 성녀에게 아이들을 보내는 것은 간단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아이들을 뒤에 두고 충렬에게 답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지.”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본 드래곤 아르타디아가 ‘대규모 순간 이동’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녀와 210명의 아이들이 당신의 영지 중 핵심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영지에 도착한 210명의 아이들은 이제 성녀 실비아의 보살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곳에서 할 일은 이제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