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16화 (216/237)

# 216

***

충렬이 소울 크리스탈을 살펴보고 있을 때, 다른 네임드들 또한 소울 크리스탈에 저장된 기억들을 살피고 있었다. 여러 기억들을 살피고 난 후, 충렬과 그 무리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서로 파악한 내용들을 전달했다.

다른 네임드들이 살펴본 소울 크리스탈의 내용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충렬의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만 시간대가 달랐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의 끝은 참담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기근과 질병, 그리고 각종 저주에 의하여 모두가 사망했다. 그리고 악령이 되어 영지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게 대충이나마 악령들이 살아생전 겪었던 일들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대화를 마무리지은 것은 아르타디아였다.

“결국 악령이 되면서 요새와 마을 자체가 언데드의 땅으로 옮겨진 것이 확실하다.”

제법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악령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처지에 동정을 느끼며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요새에서 한 무리의 악령들이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누군가가 악령들의 접근을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충렬과 그 무리들에게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고위 악령 하나와 대규모의 악령들이 여러분들에게 접근하는 중입니다.]

[교전에 대비하십시오.]

아직 악령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그렇지만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악령들은 충렬을 포함한 일행들에게 무척이나 적대적임을 말이다.

***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억지로 악령들을 배려할 필요는 없었다. 아군이 되지 않은 것 같다면 제거해야 했다. 앞으로 영지가 될 장소에 적을 두는 것은 위험했으니까. 하지만 시스템은 충렬에게 이미 힌트를 주었다. 그들을 자신의 세력에 흡수시킬 방법을 말이다.

‘시스템은 분명 저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수하로 부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각해야했다. 도대체 어떻게 현재의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지를. 전투는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했다.

‘솔직히 저들의 사연을 알았다고 한들,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에 별다른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악령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토대로.

악령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그렇지만 우선은 시도를 해보아야 했다. 그 외에는 답이 없었다.

충렬이 그렇게 생각할 무렵, 어느새 악령들이 이쪽을 향해 거의 다 도착했다.

***

충렬은 대화를 시도해 보려 했다. 모든 네임드들이 충렬이 생각하는 바를 따랐다. 그래서 악령들이 접근해 옴에도 나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악령들은 거리가 가까워지자마자 공격을 시작하려 했다. 특히 맨 앞에서 접근해 오던 고위 악령은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로와의 거리가 60미터로 좁혀졌을 무렵. 고위 악령이 다른 악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여. 감히 우리들의 영토를 넘보는 적들을 제거하라!]

고위 악령의 명령에 다른 악령들이 울부짖음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악령들은 독기를 바짝 세우며 이쪽으로 미칠 듯이 짓쳐들어 왔다.

“키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캬아아악!”

허공에서 짓쳐드는 악령들의 모습을 보니 당장에 대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감을 판단한 충렬이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네.”

일단은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충렬이 따로 나설 필요는 없었다.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네임드 ‘아르타디아’가 악령들을 제압하기 위해 나섰다.

[아르타디아가 본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거대한 본 드래곤의 모습이 된 아르타디아. 다른 일행들이 움직이기 전 악령들과 마주한 그녀는 실력 행사를 하기보다 교섭을 시도했다.

[성격들이 급하군. 다짜고짜 공격을 하려 하다니. 잠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의외로 고위 악령은 그런 아르타디아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물론 그의 답변은 만족스러운 종류의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시끄럽다. 우리들의 땅을 어지럽힌 죄. 죽음으로 묻겠다.]

고위 악령의 대답을 들은 아르타디아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대화를 시도는 해보았지만 실패였다. 그리고 이미 서로와의 거리는 지척거리인 상황이었다.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교전은 시작되었다.

악령들을 향해 바라보던 그녀는 녀석들과 충돌하기 전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녀가 사용한 스킬은 제압을 목적으로 한 드래곤 피어였다.

[원념에 잡아먹힌 이들이여. 흥분을 가라앉혀라!]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부터 발생한 파동이 악령들을 집어삼켰다.

[본 드래곤 아르타디아가 ‘드래곤 피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드래곤 피어가 사용되는 순간, 고위 악령이 자신의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따위 것으로는 우리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고위 악령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검은 색의 아우라가 일시에 터졌다. 둑이 터져 물이 범람하듯이, 녀석의 아우라가 모든 악령들을 덮었다. 그리고 악령들에게 흡수되었다.

[고위 악령이 ‘어둠의 광기’를 다른 악령들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고위 악령의 정신이 주변에 위치한 악령들과 연결됩니다.]

[고위 악령이 품은 원념이 악령들에게 전달됩니다.]

[연결이 유지되는 동안, 악령들의 전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악령들의 제압이 무척이나 어려워졌다는 것을 말이다.

[드래곤 피어가 악령들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악령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

미쳐 날뛰는 악령들. 녀석들의 공격 수법은 무척이나 괴랄했다. 수많은 악령들이 네임드들이 소환한 소환수들에게 순식간에 빙의했던 것이다.

[악령 하나가 데프론이 소환한 군단보병, <죽음의 보병13>에게 빙의하였습니다.]

소환수에게 빙의한 악령은 곧바로 행동했다.

[빙의된 <죽음의 보병13>이 인근의 보병에게 검을 휘두릅니다.]

[<죽음의 보병 35>가 <죽음의 보병13>에 의하여 처치되었습니다.]

덕분에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악령들은 빙의를 통해 상대를 지배하고, 빙의한 존재의 아군을 공격했다.

빙의된 존재를 처치해 보았자 소용은 없었다.

[제레미의 <수호 방패병7>이 빙의된 <죽음의 보병13>의 머리통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죽음의 보병13>이 역소환됩니다.]

[보병에게 빙의되어 있던 악령이 <수호 방패병7>에게 다시 빙의합니다.]

죽이면 죽일수록 줄어드는 것은 결국 이쪽의 숫자였다. 일반 소환수가 아닌 네임드들이 분주히 움직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네임드들도 위험한 조짐을 보였다.

[악령 하나가 ‘아르타디아’의 몸속에 들어가 빙의를 시도합니다.]

[아르타디아가 버텨냅니다.]

[또 다른 악령이 이어서 그녀에게 스며들어갑니다.]

[아르타디아의 한쪽 날개가 악령의 지배를 받기 직전입니다.]

[악령 아홉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르타디아의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드래곤인 그녀조차 타격을 받을 만큼 위험했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의 육체를 멈추었다.

[아르타디아가 스스로의 육체를 봉인합니다.]

[그녀는 빙의한 악령들을 몰아내기 위해 정신계에서 따로 전투를 시작합니다.]

드래곤의 정신을 가진 아르타디아가 그나마 이 정도였다. 그 말인 즉, 다른 이들은 이마저도 힘들다는 소리였다.

[왕찌엔에게 총 다섯에 해당하는 악령들이 스며들었습니다.]

[왕찌엔이 악령들에게 신체의 주도권을 빼앗기기 직전입니다.]

[자르딘에게 총 넷에 해당하는 악령들이 스며듭니다.]

[자르딘이 악령들의 지배를 받기 일보직전입니다.]

[제레미에게 일곱에 해당하는…….]

[제레미의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그가 발산하던 수호대장의 아우라가 일시적으로 종료됩니다.]

[그가 소환한 수호 방패병들이 혼란 상태에 빠져듭니다.]

…….

아직 네임드들 전원이 버티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심각해져 갔다. 의외로 잘 버티고 있는 것은 샤오링이었다.

[샤오링이 호신강기(護身剛氣)를 최대로 유지하는 중입니다.]

[악령들이 샤오링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버티기만 할 뿐. 공격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공격 대상은 빙의된 아군들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악령들을 공격하려고 하면 녀석들은 얄밉게도 곧바로 다른 대상에게 빙의했다.

어쨌거나 공중에서 마렉의 비명이 들려왔다. 마렉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악령들의 공격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젠장! 그만 따라오라고! 거머리 같은 자식들아!]

그렇게 전체적인 상황을 잠시 살펴보던 충렬은 곧 묵묵히 전방을 주시했다.

이제 다른 이들을 신경 쓰기란 어려웠다. 여러 악령들이 충렬의 몸을 차지하기 위하여 발악했기 때문이다. 물론 악령들은 충렬의 몸을 장악할 수가 없었다.

[악령이 당신의 암흑 투기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갑니다.]

[뒤에서 빙의를 시도하던 악령이 떨어져 나갑니다.]

[양옆에서 악령들이…….]

그러나 정작 충렬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전방에 위치한 악령 때문이었다. 악령 하나가 충렬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반 악령들은 충렬의 암흑 투기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때문일까? 충렬의 코앞으로 다가온 악령은 고위 악령이었다.

[네가 침입자들의 수괴로구나! 너를 처치하고 이 혼란을 잠재우겠다!]

그러더니 녀석은 곧장 충렬에게 빙의되기 위해 짓쳐들었다.

혹여라도 일반 악령이 빙의가 되면 몰아내기 힘들었다. 그런데 고위 악령이 빙의되면 상황은 더욱 암담해지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충렬은 놈이 들이쳐 오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암흑 투기를 거두어볼까.’

그러면서 충렬은 몸을 감쌌던 암흑 투기를 사라지게 했다.

암흑 투기를 끌어 올리는 것도 아니고, 거두어들인다고? 웬 뚱딴지같은 행위일까. 그렇지만 이는 충렬이 의도한 바였다.

솔직히 보유한 암흑 투기를 더욱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다면 고위 악령의 접근마저 차단할 수가 있을 것이리라. 그러나 충렬은 그러지 않았다.

‘하필 공격 수단이 빙의라니. 운이 좋았어.’

충렬의 정신계 개척도는 100%였다. 신조차도 건드리지 못하는 정신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고위 악령이 빙의된다면 아마 녀석은 갇히게 될 것이었다. 바로 충렬의 정신 속으로 말이다.

‘강제로라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겠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암울했지만, 일부러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고위 악령은 자신을 주시했고, 충렬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흘러가는 양상을 파악하자마자 녀석의 빙의를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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