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악령들의 요새
악령 셋의 머리 위에 표시된 이름. 그것은 녀석들의 모습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웠다.
<고위 악령>
악령에게 고위라는 명칭이 쓰이다니. 하지만 녀석들은 고위라는 명칭을 가져갈 자격이 있었다. 숫자는 고작 셋에 불과했지만, 다른 악령들과 달리 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말을 하며 서로가 의견의 교환이 가능했다.
고위 악령들은 조금 전에 정찰을 왔던 아르타디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 이상한 녀석이 이곳을 염탐하러 왔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봤다. 병사들이 잡았나?]
[실패했더군.]
고위 악령 셋의 대화는 무척이나 간결하며 핵심적이었다.
[그 어떤 언데드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찬성이다. 이곳에 더 많은 질병이 발생하게 둘 수는 없어.]
[외부인의 접근 또한 주의하도록 병사들에게 말하도록 해.]
고위 악령 셋은 바깥에 대해 무척이나 경계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말을 이어갔다.
[그나저나 아까 보았던 검은 새가 신경이 쓰인다.]
[그렇다면 조용히 가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지. 아이들의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게.]
[내가 움직이도록 하겠다.]
그러더니 악령 하나가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떠나기 전 아이들을 보고 가야겠군.]
악령들이 지키고 있던 건물은 그렇게까지 화려하지는 않았다. 2층 높이에 대충 60평 정도의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어쨌거나 그 말을 끝으로 고위 악령 하나가 지키고 있던 건물 안으로 향했다. 딱히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그의 몸은 건물의 벽을 그냥 통과해 들어갔다.
고위 악령이 안으로 들어가자, 창고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엔 신기하게도 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육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멀쩡했다. 하지만 손상되지만 않았을 뿐. 아이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랬다. 여러 층으로 구분된 각각의 병상에 뉘여 있는 아이들은 이미 시체였다. 그 숫자가 대략 100을 가볍게 넘겼다. 시체의 주변은 악령들의 힘이 가득했다. 아마 시체가 썩지 않은 이유이리라.
고위 악령은 아이들의 시체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녀석은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듯했다.
[잘들 자고 있는구나. 곧 사제님이 오신다면 죽음의 질병을 치료해 주실 것이다. 분명 억울한 우리들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제님께서 오실 것이야. 그때까지 조금만 버티고들 있거라.]
사제님이라니. 녀석은 자신이 악령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치 스스로가 인간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령의 사정까지 자세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고위 악령. 그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온 그는 주변에 돌아다니는 악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여. 나를 따라오라. 침입자들을 척살하러 간다.]
고위 악령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악령들이 울음소리로 응답했다.
***
고위 악령이 죽은 아이들을 살필 무렵, 충렬은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저 멀리 앞에는 높은 성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성벽은 바로 아르타디아가 정찰한 요새였다. 충렬은 요새를 힐끔 바라보았다.
‘악령들이 잔뜩 머물고 있군.’
요새의 내부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요새의 위로, 수많은 악령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기에 알 수가 있었다. 다행인 점은 악령들이 요새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주변에 즐비한 폐가들부터 조사해 나가야 했다.
‘지금 살펴볼 것은 폐가다.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악령들에 대해 알아갈 힌트를 얻어야 해.’
당연히 주변에 존재하는 도전자들의 묘비 또한 대충 지나갈 수는 없었다.
-와, 여긴 미쳤는데요. 악령이 뭐 이렇게 강해요?
-설명 시작합니다. 악령은 강력한 한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죽어서…….
-되는 건데 살아생전 집착이 많을수록 죽었을 때 더 강해짐.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강하지?
-그러니까요; 도전자 100명 공격대를 순삭시킬 정도. 개빡셈.
묘비 하나를 살핀 충렬은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100명의 공격대가 순식간에 전멸이라…….’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도전자들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각종 직업을 가진 도전자 100명이라면 결코 허접한 전력은 아니었다.
‘그런 도전자들을 전멸시키다니.’
악령들은 생각보다 얕보면 안 되는 언데드가 분명해보였다.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겠군.’
충렬에게 소환수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숫자로는 녀석들보다 적었다.
‘조심해야겠어.’
어쨌거나 제법 도움이 되는 글 또한 존재했다.
-근데 폐가 안에 소울 크리스탈이라고 있는데 어떻게 사용해요?
-그거 ‘죽음’, ‘영혼’, ‘소통’ 관련 재능 등이 있어야 사용 가능함.
-사용하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 가능.
-내가 봤는데 딱히 볼 건 없더라.
-ㅇㅇ 보니까 불쌍하긴 하던데. 어차피 토벌 임무라서……. 괜히 봄.
‘소울 크리스탈이라고?’
마침 폐가들을 살피려고 했다. 충렬은 묘비에서 정보를 파악하자마자 움직였다. 당연히 혼자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은 이미 주변에 넓게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충렬은 자신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데프론에게 말했다.
“데프론, 다른 이들에게 소식을 전해라. 폐가 위주로 살펴달라고.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으니까.”
충렬의 명령에 데프론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이동했다. 휘하의 해골 병사들은 충렬을 호위하게 하고서.
데프론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충렬은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가까운 폐가를 향해서 말이다.
***
소울 크리스탈. 그것은 빨간색의 보석이었다. 허공에 떠있는 그것은 가져갈 수도, 이동시킬 수도 없었다. 온전히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소울 크리스탈은 모든 폐가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특정 폐가마다 하나씩 존재했다.
‘죽음’ 재능이 있는 충렬은 다행히 소울 크리스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충렬의 소환수들 또한 크리스탈에 손을 올리면 사용이 가능했다.
사용법은 단순했다. 크리스탈에 손을 올리면 이곳과 관련된 영혼이 가진 기억 하나가 머릿속으로 재생되었다.
때문에 충렬을 포함한 그 무리들은, 곳곳에 존재하는 소울 크리스탈에서 정보를 모으는 중이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정보를 살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가장 먼저 크리스탈 하나를 살핀 충렬.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누군가의 과거 기억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
화창하고 맑은 날. 주변의 초목은 푸르렀으며 논과 밭은 풍작을 맞이했다. 수백 이상의 소떼들은 풀을 뜯고 있었고, 이곳에 터전을 잡은 주민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충렬이 선택한 소울 크리스탈. 해당 기억을 가진 주민 또한 행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정은 화목했으며 그의 아내는 임신 중에 있었다. 곧 있으면 둘째 아이를 보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이렇게 좋은 영주님을 오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영지의 영주. 비록 조그만 요새와 마을뿐이었지만, 평화롭게 살아가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을 세세히 보살펴 주는 영주로 인하여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물론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제법 되었다. 주민들의 숫자만 하여도 대략 1천에 다다랐으니까. 영주는 부임한 지 겨우 3년 만에 그러한 마을을 풍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영주와 함께 온 3명의 기사들도 철저한 기사도를 중시하는 명예로운 자들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운 영주가 부임한지 7년째. 영주가 사망했다.
사망의 원인은 너무나 쉽게 밝혀졌다. 독살이었다. 주민들은 영주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못했다. 그것은 해당 기억을 가진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누가 영주님을……!”
이곳의 영주는 결코 독살을 당할 만큼 악한 짓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지가 살찌워지면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자가 존재하는 법. 영주가 사망하자마자 인근의 영지를 다스리던 자가 나타났다. 국왕의 인장이 찍힌 영지 공문서를 가지고 말이다. 그는 오자마자 공문서의 내용을 들이밀었다.
공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해당 영지의 영주가 사망하였을 때, 인근의 영주 …에게 영지를 양도한다. 적국의 침입에 대비하여 누군가 역할을 대신해야 하기 위함이다. 영지가 양도되면 그곳에 머무르는 모든 기사들과 병사들은 …에게 충성 맹세를 해야 하며…….
한마디로 개소리가 쓰여 있었다. 영지를 집어삼키기 위해 수도에 뇌물을 먹인 것이리라.
그러나 공문서를 들이민 귀족의 행태에 반항할 수는 없었다. 어쩌겠는가. 분하지만 참을 수밖에. 당장에 영주를 독살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새로운 영주가 된 그는 미친 짓거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농노도 아닌데 수확한 것의 70%를 세금으로 가져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머지 30%는 용병들을 고용해 착취했다.
“아, 안 됩니다! 그것마저 가져가시면 올 겨울은 어떻게……!”
그래도 주민들은 악착같이 버텨내었다. 적응은 빨랐다. 수확하지만 않으면 뺏길 것도 없었다. 그러니 하루하루 끼니를 얻으며 생계를 유지할 뿐이었다. 기존에 머물던 기사를 포함해 수십 명의 병사들도 주민들을 위해 사냥을 다녔다.
하지만 새로운 영주. 그는 그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벌건 대낮에 영주는 마을의 소녀들을 겁탈했다. 그가 데려온 용병들과 함께.
소녀 외에 젊은 여성이라면 유부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그 대상은 해당 기억을 간직한 존재의 첫째 아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첫째 딸은 이미 열다섯이라는 나이를 가지고 있는 풋풋한 소녀였다.
“아악! 아빠! 엄마!”
소녀가 부모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부모는 고개를 떨굴 뿐. 차마 나설 수가 없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서면 소녀가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고개를 숙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기사 셋과 20명의 병사들. 그 중 선두에 선 기사들이 고성을 내질렀던 것이다.
“이 미친놈의 작자가!”
그의 뒤에 있던 다른 기사들도 화를 참지 못했다.
“감히 대낮에……!”
“이런 파렴치한 같으니! 네 이 우리들이 모시던 영주님을 죽인 것이 확실하다!”
기사 셋은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독살에 대한 증거가 없어 참으며 인내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눈앞의 광경을 보고서 참아야 하는 모욕을 감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3명의 기사들은 20명의 병사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오합지졸에 불과한 신임 영주와 그의 용병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힘의 격차는 극명했다. 애초에 기사 셋만으로도 이곳에 존재하는 용병들을 싹 쓸어버릴 수가 있었다.
귀족과 30명의 용병들이 죽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귀족을 죽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상금 사냥꾼들의 침공과, 고용된 마녀들의 저주가 마을에 찾아왔다.
하지만 기사들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지 않았다. 항상 빳빳하게 들어 올리며 다녔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가느니 죽는 것이 더욱 좋다는 것을. 살아 있는 이유는 자식들과 이웃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키려면 무기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모든 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병사가 되었다.
사내들은 검과 창을, 자식을 가진 여인들은 활을 들었다.
충렬이 들여다본 소울 크리스탈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