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크락이 던진 주방장용 칼. 그것은 주변의 공기를 집어삼켰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공기를 집어삼키며 날아갔다.
쌔애애애애액!
지나가는 공간에 위치한 먼지들은 크락의 칼이 지나갈 때마다 모조리 녹아 사라졌다. 그런 칼은 곧 금세 라악에게 당도했고, 라악은 그 자리를 가만히 지켰다.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녀석은 거만한 자세로 있었던 것이다.
“흥! 네놈 따위의 공격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
물론 녀석의 거만은 거기까지였다. 충렬의 무리들에게 온갖 버프를 받은 크락의 칼은, 라악을 한 방에 끝내 버렸기 때문이다.
라악의 목에 당도한 크락의 칼. 그것은 그대로 라악의 두툼한 목을 지나쳐 갔다. 살육자의 목은 단순한 던지기로 베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두꺼웠다. 그렇지만 크락의 칼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라악의 목을 베면서 지나갔다.
서걱.
순식간에 목과 분리된 라악의 머리가 하늘을 수놓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크락의 주방장 칼이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저 멀리 쭉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마치 아무런 저항조차 받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다행히 라악의 뒤에 서 있는 살육자들은 없었다. 만약 서 있었다면 그들 또한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다.
간단한 던지기 한 방으로 라악은 사망했다. 라악마저 할 수 없는 행위를 크락은 너무나 쉽게 해버렸다. 고작 버프를 받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라악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됨과 동시에 녀석의 머리와 몸이 동시에 얼어갔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그리고 잠시 후, 바람이 살짝 불자 가루가 되며 부서졌다.
와장창창!
결국 완전히 확인 사살까지 된 라악. 장내는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대결을 지켜보던 다른 살육자들은 차마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 못했다.
“헉! 라악이 죽었다!”
“거짓말! 내 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다! 사실이다! 크락이 힘을 숨기고 있었다!”
“크락은 무서운 놈이었다!”
그리고 모든 살육자들이 곧바로 크락의 승리를 인정했다.
“크락! 이제부터 우리들의 우두머리다!”
“크락의 명령에 복종한다!”
“제발 고기는 나눠서 먹자!”
“맞다! 고기는 나눠서 먹어야 한다!”
살육자들이 떠들기 시작하거나 말거나 라악이 처치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당신과 계약한 크락이 기존의 우두머리를 처치하였습니다.]
[크락이 살육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크락은 앞으로 당신의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의 능력이 기존보다 강해지며 한 단계 성장을 이룹니다.]
그 말과 동시에 크락의 덩치가 커져갔다.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기자 크락이 놀라했다.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기쁨을 누릴 틈은 없었다.
“어어! 이상하다! 몸에 힘이 가득 들어온다!”
녀석의 놀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녀석의 변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언데드 크락에게 네크로맨서의 힘이 스며들었습니다.]
[크락의 덩치가 이전보다 커집니다]
[크락의 머리가 더욱 영민해집니다.]
[크락에게 마법적인 능력 ‘압도’가 주어집니다.]
[크락이 기본 능력 ‘카리스마’를 깨우칩니다.]
[크락…….]
…….
크락의 변화는 놀라웠다. 오히려 이전의 라악이라는 녀석보다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당장의 덩치만 보아도 6미터는 가볍게 넘길 만큼 거대해졌다. 다른 살육자들의 덩치는 너무나 가볍게 압도했다.
그렇게 녀석의 변화가 완료되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마스터로서의 첫 여정을 성공적으로 해내었기 때문일까? 시스템은 더 이상 충렬을 도전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마스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마스터 ‘이충렬’ 님.]
[당신은 처음으로 식민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수하가 된 크락이 앞으로 해당 식민지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름에 언제든 응답할 것입니다.]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당신이 어느 장소에 있던지, 영주의 반지로 ‘살육자’들을 소환할 수가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당신에게 ‘네크로맨서의 계약’의 특성이 온전히 자리를 잡게 됩니다.]
영지에 존재하는 주민들처럼, 식민지의 존재들도 소환할 수가 있게 되었다.
‘뭐 못 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만약에 못 한다고 했으면 네크로 반지에 넣고 다니면 되었다.
어쨌거나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의 영지 상태창에 새로운 목록이 추가되었다.
<식민지>
[살육자들의 마을]
[대표: 크락]
[종류: 살육자]
[인원: 148]
[설명: 인근의 살육자들 마을 중 가장 큰 곳이다. 아직 동쪽과 서쪽에 존재하는 살육자 마을은 정복하지 못했다. 이들이 활동할 때마다 가져갈 수 있는 카르마가 발생한다. 카르마는 추후 방문할 때마다 가져갈 수 있다.]
[추가 발전: 없음]
[누적된 카르마: 0]
크락을 도와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간단한 도움 하나로 충렬의 전력에 곧바로 살육자들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동쪽과 서쪽에 다른 살육자들이 존재하나 보군.’
그들의 정복도 이루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당장은 아니었다. 지금은 북쪽을 향해 계속 진군할 때였다. 다른 마을을 정복하는 것은 따로 맡기기로 했다.
충렬은 새롭게 자신의 수하가 된 크락을 불렀다.
“이봐, 크락.”
그러자 이전보다 더욱 영민해진 녀석이 곧바로 자세를 낮추며 엎드렸다. 녀석의 덩치가 너무나 거대했기에, 엎드렸음에도 충렬이 아래에서 올려다보아야 했다.
어쨌든 엎드린 녀석이 고개를 살짝 올리더니 대답했다.
“나를 선택해 주어서 고맙다. 말씀해라. 무슨 말이든지 이행한다.”
녀석의 행동을 보면 더욱 영악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녀석은 무척이나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 충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봤자 충렬은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충렬은 그저 자신이 할 말만을 했다.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살육자들 마을을 정복해라.”
방금까지만 해도 몇몇 네임드들을 남겨서 동쪽과 서쪽의 정복을 도울까도 했다. 하지만 녀석의 성장을 보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충렬의 명령을 받은 크락. 녀석이 고개를 들더니 그대로 지면에 이마를 강하게 박았다.
쿠웅!
그리고 말했다.
“다른 마을 정복한다. 나 크락. 힘을 준 은혜 잊지 않는다.”
크락이 저자세로 나가자 다른 살육자들 또한 자세를 낮추었다.
“우두머리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우리도 숙여야 한다.”
“그런데 왜 숙이나?”
“모른다. 대들면 크락에게 죽는다.”
그렇게 첫 정복은 무난하게 종료되었다.
***
별다른 고생 없이 첫 번째 식민지를 만든 충렬. 그는 마을에서 쉬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리들과 함께 곧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살육자들 마을에서 출발한 지도 벌써 1시간 30분째. 이제 녀석들의 마을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아르타디아는 다시 정찰을 위해 다크 버드로 변해서 앞서갔다. 이동하는 도중 장애물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척박한 땅. 이곳은 바로 언데드가 살아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죽어버린 대지뿐이었다.
‘그나저나 너무 황량하군.’
간혹 정처 없이 떠도는 언데드조차 없었다. 그러나 충렬은 곧 주의를 기울이며 이동해야 했다.
‘서서히 지형이 변화한다.’
저 앞의 땅에 논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살아 숨 쉬는 논밭은 아니었다. 이미 죽어 있고 썩은 물이 고인, 그러한 논밭이었다. 마침 먼저 정찰을 간 아르타디아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
정찰을 다녀온 아르타디아. 그녀가 이 앞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 앞은 의외로 규모가 제법 되는 요새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악령들이 살아가고 있더군.”
‘악령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몬스터였다. 그런데 적들의 숫자가 제법 되는 것 같았다. 아르타디아가 저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상대는 얼마나 있습니까?”
“악령들이 너무나 공격적이야. 근처에 가자마자 공격을 하기에 자세히 세어보지는 못했다. 떼어낸다고 고생을 조금 했지. 대충 숫자가 500은 넘기는 것 같더군.”
500이라면 이쪽보다 숫자가 더 많았다. 물론 지금은 놈들의 숫자에 대하여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조심히 전진해야 한다. 조금만 앞으로 가면 악령들이 만든 결계가 존재하니까 말이지.”
***
과연, 아르타디아의 말은 정말이었다. 논밭으로 보이는 곳으로 입장하자마자 시스템이 심상치 않은 것들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악령들의 터전에 진입하였습니다.]
[살아생전 그들이 간직한 ‘한(恨)’이 당신을 포함한 당신의 무리들에게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소에 오랫동안 머문다면, 언데드가 아닌 당신은 광인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시스템의 정보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충렬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의 정신계 개척도는 100%입니다.]
[악령들의 한이 감히 당신에게 침범하지 못합니다.]
만약 정신계 개척도 수치가 낮았다면 충렬은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개척도가 높아서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충렬이 어떤 용무로 이곳에 방문한 것인지 알고 있던 시스템이, 곧 충렬에게 반가운 정보를 알려왔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쉽게 정복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물론 이전과 달리 확실한 종류의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악령들은 살아생전 그들이 만든 요새에 머물고 있습니다.]
[악령들이 왜 요새를 떠나지 않는지, 왜 모든 존재들에게 적대적인지를 파악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수하로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한숨을 쉬었다.
‘조금 복잡한 일을 해야 하는군.’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전에는 무조건 처치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병력을 늘리려면, 시스템의 말대로 접근을 시도해야 했다.
‘그래도 할 만은 하다.’
마침 악령들의 지역에 진입하자 도전자들의 묘비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전자들의 묘비가 어떠한 도움을 줄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우선 그것들을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파악했을 때, 요새에 진입한다.’
그 전까지는 괜히 요새로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악령들의 주의를 끌기 전,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는 것이 먼저였다. 물론 정보는 묘비들을 살피는 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은 묘비를 살피고, 다른 이들은 무언가 특별한 것들이 주변에 있는지 파악해야 했다.
“다들 잠깐 모여주십시오. 해줘야할 일이 있습니다.”
***
충렬이 정보 수집을 시작하던 그 시각. 요새 안쪽에는 수많은 악령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건물 하나에 특이하게 생긴 악령 셋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악령들의 모습은 단순히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반투명한 모습이었다. 다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 건물을 지키고 있는 악령들은 달랐다. 기존의 악령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모습은 비슷했다. 그렇지만 몸 주변에 미칠 듯이 타오르는 어둠의 아우라가 발생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사납고 위험해 보였다. 그런 녀석들의 머리 위로, 어떤 악령들인지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