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13화 (213/237)

# 213화.

첫 식민지

기존에 있는 우두머리를 귀찮게 설득시킬 필요는 없었다. 시간 낭비였다. 성격을 들어보니 이미 우두머리인 놈이 조아릴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마주친 녀석을 우두머리로 만들고 부리면 되었다.

그래서 크락을 부리기로 했다. 마침 시스템은 현재 상황과 관련하여 적절한 능력을 주었고, 이제 그것을 사용하면 되었다.

네크로맨서의 계약을 사용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했다.

[당신은 ‘네크로맨서의 계약’을 사용하려 합니다.]

[계약 대상: 살육자 ‘크락’]

[계약 내용: 살육자 크락을 일주일 이내에 그가 머무는 마을의 우두머리로 만들어준다. 크락은 우두머리가 되면 소속 살육자들과 함께 충렬의 수하가 되어 충성을 바친다. 만약 충렬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충렬은 챔피언 도전자가 된다. 크락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크락은 소멸된다.]

크락을 따로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녀석은 우두머리로 만들어준다고 하자 계약 내용 따위는 자세히 읽지도 않았다. 정작 나중에 가서 계약에 의해 발이 묶이게 될 존재는 자신이었음에도 말이다.

“한다! 무조건 한다! 우두머리 하고 싶다!”

크락의 두 눈이 탐욕에 물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의 권력을 탐하고 싶은 그 마음을 탓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충렬에게 있어서는 이득이었으니까. 뭐, 녀석도 이득이기는 했다.

‘계약 덕분에 크락이 배신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겠군.’

혹시라도 배신을 한다면 소멸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리라. 충성하지 않으면 ‘소멸’이라는 조항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크락의 말에 시스템이 충렬에게 물어왔다.

[계약을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한다.”

그러자 충렬과 크락의 사이에서, 신성한 죽음의 기운이 발생되었다. 그러더니 나뉘어 서로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당신은 일주일 이내로 크락을 우두머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굳이 일주일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녀석이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바로 오늘이다.’

크락을 우두머리로 만드는 일은 쉬웠다. 녀석이 기존의 우두머리를 직접 처치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순했다.

‘거기에 도움을 주지 말라는 소리는 없었다.’

일단은 녀석의 전투력 자체를 가볍게 상승시킬 것이었다.

“마렉, 제레미. 크락에게 버프를 주십시오.”

마렉은 충렬이 하는 행동에 감탄했다. 무엇을 할지 대충 눈치를 채었기 때문이다.

[크큭. 네 잔머리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니까. 알겠다고.]

[알겠습니다.]

곧이어 마렉의 공격 버프가 크락에게 주어졌다. 제레미의 버프는 딱히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크락을 아군으로 인식하자, 자연적으로 버프가 적용되었다.

[마렉이 혼돈의 힘을 이용하여 크락에게 축복을 부여합니다.]

[마렉이 적지 않은 힘을 응축시켜 크락에게 집중적으로 부여하였습니다.]

[크락의 무기에 막대한 혼돈 속성이 자리를 잡습니다.]

[제레미가 크락을 아군으로 인식합니다.]

[크락에게 ‘수호대장의 아우라’가 적용됩니다.]

[앞으로 크락이 받을 피해량이 축소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충렬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머지 일행들 역시 알아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주었다. 제레미의 뒤를 이은 것은 아르타디아였다.

최근에 아이스 마스터리를 획득한 그녀는, 얼음과 관련된 기초적인 마법을 마음껏 부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했다.

“잠시만 움직이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드래곤일 시절, 가지고 있던 기초 마법을 크락에게 사용하였다.

“인챈트 아이스 웨펀, 인챈트 아이스 아머, 아이스 배리어, 아이스 레지스트…….”

그녀가 부여하는 버프의 종류는 다양했다. 다른 이들이 버프를 걸어줄 필요조차 없을 정도였다. 하나씩 일일이 사용해야 해서 귀찮을 뿐이었지, 그녀가 사용하는 버프 마법은 기존의 이들보다 훨씬 다양했다. 다양하다고 해서 다양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려 드래곤이 사용해 주는 버프였다. 그러니 위력이 떨어질 일 또한 없었다.

[본 드래곤 아르타디아가 얼음 속성을 ‘크락’의 무기에 부여합니다.]

[크락의 무기에 혼돈의 힘과 얼음의 힘이 조화를 이룹니다.]

[크락의 무기에 당한 대상은 단번에 육체가 찢어지며 해당 부위의 주변이 얼어붙을 것입니다.]

[크락의 신체에 얼음의 보호가 부여됩니다.]

[크락의 육체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크락을 공격한 대상은 일정 확률로 얼어붙을 것입니다.]

[크락에게 아이스 배리어가 적용되었습니다.]

[크락의 주변에 얼음 결정들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생깁니다.]

[얼음 보호막은 크락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

[크락에게 아이스 레지…….]

[크락의 얼음 속성 저항력이 상승하며…….]

…….

크락에게 각종 버프를 부여한 아르타디아가 말했다.

“매우 기초적인 버프라서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지는 않는다. 내 기준에서는 위력도 별로지. 하지만 지금 네게는 딱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별로라고 말을 했지만 절대로 별로일 리는 없었다.

크락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당장에 적용된 각종 버프가, 무엇이라도 상대할 수 있겠다는 기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아르타디아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 신기하다! 온몸에 힘이 넘친다! 당장에라도 상대할 수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녀석이 출발할 때는 아니었다. 최근에 합류한 프렘이 광인처럼 웃으며 크락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키키킥. 굳이 버프 같은 것을 줄 필요가 있나?]

그러더니 프렘은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크락에게 내밀었다.

[이거 하나면 끝이야.]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프렘이 미리 제작해 놓은 ‘휴대용 악몽’을 크락에게 건네어줍니다.]

[휴대용 악몽: 적은 숫자의 시체를 응축시켜 만든 간이형 악몽이다. 모양을 축소시켰지만 사용하면 전방에 시체로 만든 타워가 등장한다. 등장한 악몽은 간단한 마법 공격을 사용하며 아이템 사용자를 보호한다. 위력은 기존의 악몽에 비해 무척이나 질이 떨어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프렘이 장난처럼 만든 악몽이다.]

휴대용 악몽이라니. 그에 대한 설명은 무척이나 허접하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결코 허접할 정도는 아니겠지.’

물론 기존의 프렘이 사용한 악몽처럼 무지막지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장난처럼 만들었다고 해도, 무려 악몽이었다. 막대한 능력과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면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것이리라.

[어차피 버리려고 했는데, 가져가라. 켈켈켈. 역시 불구경이 재밌지!]

그렘린은 장난을 좋아하는 종족이라고 하더니, 프렘의 장난은 조금 많이 괴팍했다.

정작 악몽의 정체를 모르는 크락은, 조그만 인형같이 생긴 그것에 머리를 갸우뚱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게 뭔가? 먹는 건가?”

먹는 거긴. 먹으면 큰일 나는 거다.

어쨌거나 일행들이 크락을 챙겨주는 모습에, 동행하던 박해일이 혼잣말을 이어갔다. 각종 버프에 남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악몽까지. 이건 뭐, 결과를 지켜볼 것도 없었다. 특히나 박해일은 일전에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잔인한 놈들. 파리 하나를 잡으라고 바주카포를 손에다가 쥐어주는군.]

박해일이 저렇게 말을 할 정도라니.

하기야, 솔직히 저 말 또한 부족한 느낌은 있었다.

***

애초에 버프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크락은 프렘에게서 받은 휴대용 악몽을 사용하기만 해도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크락은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녀석은 우두머리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했다.

‘뭐, 굳이 악몽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사용하라고 해야겠어.’

지금 크락에게 부여된 버프만 해도 엄청났다. 맞아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때리면 상대는 즉사였다. 당연히 상대가 막강하다면 소용은 없겠지만, 지금 상대하러 가는 녀석에게는 무척이나 과분했다.

결국 충렬의 무리들과 함께 마을로 향하는 크락. 녀석은 맨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크락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대략 5분 정도 걷자 녀석의 마을의 입구로 도착했다.

충렬과 그 무리들이 크락을 뒤따라왔음에도 살육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약간의 호기심을 가질 뿐이었다.

“크락, 언데드들을 안내하나?”

“이렇게 다양한 언데드가 함께하는 것은 처음 본다.”

“어딜 가려는 것 같다.”

“잘 가라.”

충렬은 일부러 암흑 투기를 주변에 살며시 발산하며 이동했다. 혹여나 자신에게 눈독을 들이는 살육자가 없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적이었다. 녀석들은 충렬을 보았음에도 딱히 침을 흘리거나 하지 않았다.

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였다. 마을의 입구에 도착한 크락. 녀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긋지긋한 라악! 나와라! 오늘부터 내가 우두머리가 된다!”

크락의 외침에 주변에서 멀뚱히 구경하던 살육자들이 수군거렸다.

“헉! 크락. 미쳤다!”

“우두머리 화낸다! 저 녀석 죽으면 우리 차례다!”

“화풀이 당하기는 싫다.”

“싸움 구경을 놓치기도 싫다.”

“멀리서 지켜본다!”

크락의 도전에 수많은 살육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 있었다. 자칫하다 불똥이 튈 것 같아서인지 거리를 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크락의 외침에 마을 안쪽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크락! 네 녀석! 미쳐 버렸다!”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거구가 이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기존의 우두머리였다. 녀석이 뛸 때마다 지축이 크게 울렸다.

쿵! 쿵! 쿵! 쿵!

그렇게 달려온 우두머리 라악. 라악의 덩치는 기존의 살육자들보다 거대했다. 그만큼 힘도 강할 것이리라.

녀석은 충렬과 그 무리들이 있음에도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크락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감히 나에게 도전하다니! 죽여 버리겠다!”

***

크락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한 라악. 녀석은 곧바로 선공을 취했다. 왼손에는 쇠사슬과 연결된 갈고리를, 오른손에는 요리사용 칼을 장착한 녀석이 칼을 먼저 투척했다.

“죽어라!”

크락과 라악의 거리는 대략 70미터. 라악이 칼을 던지자 칼이 회전하며 크락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생각보다 조준은 정확했으며, 그 속도는 엄청났다.

쉬이이이익!

도대체 얼마나 빠른 것일까? 화살이 날아가는 것보다 더욱 빨랐다. 70미터라는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잠시 뒤 시퍼런 날을 보이는 칼이 크락의 머리를 꿰뚫을 듯 했다.

하지만 크락이 당하는 일은 없었다. 칼이 크락의 머리를 꿰뚫으려는 그 순간, 녀석의 주변을 떠다니던 얼음 알갱이들이 응축되어 머리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아이스 배리어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크락을 보호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라악의 칼과 크락에게 적용된 보호막이 충돌했다.

카앙!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라악이 던진 요리사용 칼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튕겨났다. 튕겨난 녀석의 칼은 맥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쳤다.

챙그랑.

그 일말의 사태에 라악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어… 어떻게……!”

그러나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크락은 던질 자세를 취했다. 칼을 들고 있던 손을 위로 들어 올렸던 것이다.

크락은 칼을 던지기 전에 라악에게 말했다.

“내 차례다.”

그리고 곧바로 들고 있던 주방장용 칼을, 라악에게 던졌다.

그러자 혼돈의 힘과 얼음 속성의 힘이 들어간 크락의 칼. 그 칼이 라악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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