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살육자들의 마을
북부로의 진출. 첫 진출부터 수많은 병력을 데리고 가지는 않았다. 첫 출정은 단출하게 했다. 상황도 살필 겸, 손실이 적게 날 수 있도록 해야 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네임드 소환수들은 간단한 병력들을 소환할 수가 있었다. 때문에 충렬이 참여하는 전장은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올 필요가 없었다.
충렬과 함께 출발한 이들은 박해일, 왕찌엔, 자르딘, 그리고 한창 마법 학교에서 해골들을 마법사로 만들던 김시민이 전부였다.
그런데 죽음술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김시민과, 새롭게 충렬의 네임드가 된 프렘이 출발할 때부터 서로에게 관심을 보였다.
특히 김시민은 프렘의 지식에 감탄했다.
[호오라, 죽음의 기운을 그렇게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다니…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면 적은 힘을 사용하여 큰 파괴력을 내겠군요.]
프렘 또한 김시민에게 찰떡같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리치가 된 프렘의 어조는 무척이나 스산했다. 그렇지만 단순한 몬스터였던 이전과 달리, 그의 언어는 확실히 나아졌다.
[자, 알려줬으니 어서 네가 가진 스킬들을 전수해 줘. 빨리. 현기증이 난단 말이야.]
언데드가 어떻게 현기증이 발생할까? 그것도 뼈다귀밖에 없는 리치가 말이다. 그만큼 프렘은 김시민의 스킬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랬다. 프렘이 죽음과 관련된 힘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려주면, 김시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프렘에게 하나씩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모든 스킬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자신이 배운 만큼만 알려주었다.
김시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렘이 자신의 스킬에 흥미를 가져야, 프렘에게서 많은 지식을 가져올 수가 있다는 것을.
당연히 그 방법은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프렘은 김시민에게 스킬을 배우기 위하여,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이 아는 것들을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김시민은 일부러 차례대로 주고받아 가는 중이었다. 서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알겠습니다. 흐음… 이 스킬은 광범위 스킬인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충렬은 과연 어떠한 스킬을 알려줄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충렬이 궁금해할 틈도 없이, 시스템이 알려주어서다.
[죽음술사 김시민이 데스리치 프렘에게 공격 마법, ‘죽음의 손아귀’를 전수합니다.]
스킬을 배우는 것은 금방이었다. 김시민이 알려주기로 마음을 먹자, 프렘은 곧바로 배워 나갔다.
그러나 프렘은 그냥 배우지 않았다. 평범하게 배우는 수준을 벗어났다.
[프렘이 ‘죽음의 손아귀를 배웠습니다.]
[프렘의 데스 마스터리로 인해, 죽음의 손아귀가 ‘역병 지대’로 강화됩니다.]
결국 새로운 스킬을 배우면서 기존의 것보다 더욱 강력한 스킬을 얻게 되었다.
[역병 지대: 넓은 지대를 역병에 물들게 한다. 해당 지대를 밟고 있는 적은 각종 질병에 걸린다. 오래 머물수록 더욱 지독한 질병이 발생한다. 데스 스피릿에 저장된 힘을 많이 사용할수록 적용 범위가 증가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대는 정화되지만 한번 적용된 질병은 치료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설명만 보아서는 별달리 강할 것 같지 않은 스킬이었다. 그러나 충렬은 고개를 저었다.
‘결코 나쁘지 않은 스킬이다. 오히려 지금 나의 상황에서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볼 수가 있어.’
이 스킬은 많은 인원들끼리 전투가 발생했을 때, 확실한 효과를 발휘할 스킬이었다. 중요한 것은 한번 사용되고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역병 지대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적은 불리해진다.’
더군다나 한번 질병이 발생하면, 대상을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영역 선포 스킬과 중첩해서 사용하면 엄청난 효율을 보이겠군.’
아군에게는 활력을, 적군에게는 지옥을 맛보여 주게 될 것이리라.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스킬이었다.
프렘 또한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괴상한 웃음을 흘려대었다.
[역병 지대라고? 키키킥. 인간의 언데드가 되었더니 이런 것들을 날로 먹을 수 있는군. 켈켈켈.]
프렘의 웃음은 순간 광인을 보는 듯했다. 마렉은 그런 프렘의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쯧쯧,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한 녀석이었잖아.]
역시, 마렉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상태도 심각했다는 것을.
***
프렘은 원래 마력과 관련된 힘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의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악몽의 제작을 시작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충렬의 소환수가 되면서 데스리치가 되고, 막대한 죽음의 힘을 얻자 훨씬 강해졌다.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졌다.
그러한 점이 만족스러웠을까? 프렘은 매시간이 행복해 보였다. 영지의 북쪽에 자리한 산맥을 거의 다 지나갈 무렵, 프렘이 충렬의 옆에 오더니 말을 걸었다.
[이봐, 인간. 빨리 죽지 마라. 이렇게 즐거운 날이 끝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프렘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당연히 나도 빨리 죽고 싶지는 않지. 그러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위치에 서려는 거고.”
천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죽음의 마법들을 배웠다고는 하나, 프렘은 진정으로 마법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그렘린이었다.
‘아니, 이제는 데스리치지.’
어쨌거나 그런 프렘의 말을 들어주며 가고 있을 때였다. 잠시 후, 영지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던 산맥을 완전히 지났다. 산맥에서 내려온 충렬과 무리들의 앞을 반기는 것은 삭막한 들판이었다.
‘역시 언데드의 땅은 척박하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대지. 말라비틀어져 죽은 풀의 포기들만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제부터는 북쪽을 포함해 동쪽과 서쪽으로도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 오는군.’
정찰을 위해 먼저 날아갔던 아르타디아가 지금 막 되돌아오고 있었다. 아르타디아는 다크엘프의 모습이 아니면 다른 존재로 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빠른 정찰을 위하여 작은 새로 변하여 정찰을 했다. 그리고 이제 막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 충렬이 무리들에게 말했다.
“아르타디아가 오고 있습니다. 잠시 멈추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는 있었다.
어쨌거나 잠시 후, 충렬의 앞으로 도착한 아르타디아가 곧 다크엘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아르타디아가 폴리모프를 사용합니다.]
[그녀의 모습이 ‘다크 버드’에서 ‘다크 엘프’로 변합니다.]
순식간에 충렬의 앞에선 그녀가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동쪽과 서쪽으로 갈 필요는 없다. 이대로 쭉 북상해서 점령지들을 만들고, 그 후에 동쪽과 서쪽으로 병력을 분산시켜 자잘한 장소들을 점령하면 될 거야.”
그게 편했다. 그냥 북쪽으로 쭉 올라가며 정복하고, 양 옆으로 몸집을 천천히 불려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편하자고 그러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큼지막한 세력들이 주로 북쪽 길에 많이 분포되어 있더군. 처음 마주할 큰 세력은 인육을 즐기는 살육자들이다.”
살육자라고? 이름만 들어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언데드인데.’
하지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하려는 찰나, 아르타디아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오거를 닮은 녀석들이다. 물론 근육보다 지방이 많아 돼지 같은 놈들이지만 말이지. 놈들의 마을이 조금만 가면 나타난다. 상대하기가 어렵지는 않을 거야.”
아르타디아가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로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딱히 걱정할 필요 없이 이동하면 되겠지.’
그렇게 그녀에게 살육자에 대한 설명을 들어가며, 충렬과 무리들은 북쪽을 향하여 이동해 나아갔다.
***
충렬과 무리들이 북상하는 한편, 살육자들의 마을을 다스리던 우두머리는 한창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거대한 덩치에 출렁거리는 뱃살, 그리고 피가 묻은 요리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주방장의 칼과, 다른 손에는 갈고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우두머리는 갈고리에 인간의 시체를 꿰뚫어 생으로 뜯어 먹고 있었다.
“인간은 역시 맛있다. 가서 인육을 더 가져와라.”
우두머리의 명령에 살육자 하나가 투덜거렸다.
“너무 많이 먹는다. 식량 부족해진다.”
하나가 투덜거리자 나머지 살육자들 또한 동조했다.
“조금만 먹어라. 우리가 힘들게 구해 왔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은 곧 멈추어졌다. 우두머리가 처음으로 투덜거린 살육자에게 주방장의 칼을 던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힘이 가해진 주방장의 칼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쉬이이익!
그러더니 정확히 처음으로 투덜거린 살육자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었다.
푸욱!
머리가 쪼개진 살육자는 그 한 방에 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명을 달리한 살육자가 곧 대지에 몸을 뉘였다.
털썩.
그 모습을 흘겨본 우두머리가 입을 열었다.
“식량, 생겼다. 또 불만인 놈?”
우두머리의 행동에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살육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재빨리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 인육을 가지러 간다.”
“더 가지고 오겠다.”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살육자들이었다. 그런데 살육자들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랬다. 살육자들은 헬리오스의 초기, 충렬이 겪었던 도살자와 그 모습이 매우 흡사했다.
아니, 흡사한 정도가 아니었다. 도살자와 아주 똑같이 생겼다. 덩치는 살육자들이 훨씬 거대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런 흉포한 우두머리의 주변에는 제법 적지 않은 숫자의 묘비들이 존재했다. 아마 이곳에서 죽은 도전자들인 것 같았다.
-야, 지옥에서 보이는 도살자가 왜 여기 있냐?
-여기 있는 놈들이 토종. 그리고 더 강함.
-그런 것들은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쟤 나랑 파티였는데, 직업이 살육자 연구가임.
묘비들을 보니 파티 단위의 인물들이 제법 많이 찾아온 것 같았다.
-엥, 살육자 연구가? 근데 왜 여기서 죽었어?
-그러게. 직업만 보면 살육자랑 친화력 있을 것 같은데 ㅋㅋㅋ
-나도 파티였음. 살육자한테 임무 받으러 왔다가 배고프다고 먹힘.
-내가 제일 마지막에 죽었다. 시체 속에서 숨어 있다가 걸렸네.
-까비.
방금 보았던 묘비 외에도 다양한 파티들의 글은 많이 존재했다.
어쨌든 살육자들의 숫자는 대략 100마리에 가까웠다. 당장 이곳 마을에 머물고 있는 숫자만 100마리였다. 아마 사냥을 나선 녀석들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을 것이리라.
4미터는 가뿐히 넘어갈 정도의 거구를 가진 살육자들. 녀석들은 많은 수의 도전자들이 모여서 오지 않으면 토벌이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많은 인원이 모여온다고 해도 소용은 없었다. 실력이 없다면 놈들의 식량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곧 충렬과 그 무리들이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말인 즉, 녀석들의 마을에 위기가 닥친다는 소리였다.
그것을 모르는 살육자 우두머리는 식탐이 많은 돼지처럼, 그저 고기만 계속해서 섭취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