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새벽을 관장하는 자
영지에 도착한 충렬에게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스터가 된 당신은 ‘한계 돌파’로 인하여 이제 성장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더 이상은 카르마로 스킬을 상승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자주 사용하든, 연구를 하든, 또는 깨달음 등을 얻는다면 당신의 스킬은 자연히 성장할 것입니다.]
[레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계 돌파: 당신은 카르마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스킬의 랭크가 삭제되며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 레벨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카르마를 사용하지 않고 조건만 만족한다면 계속해서 성장한다.]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의 스킬들이 변화를 맞이했다.
[모든 스킬들의 랭크가 제거됩니다.]
[랭크 제한이 풀렸습니다.]
랭크 제한만 풀린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당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소모하여 스킬을 사용합니다.]
[당신에겐 막대한 힘인 암흑 투기가 있습니다.]
[암흑 투기로 재사용 대기 시간을 대체합니다.]
[스킬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사라집니다.]
그로 인하여 더 이상은 재사용 대기 시간에 묶일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리 막대한 대기 시간이 필요한 스킬이더라도, 그 제약에서 벗어난 것이다.
[‘영역선포 - 죽음의 땅’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삭제됩니다.]
[‘시체 폭파’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삭제됩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계 돌파로 인하여 당신의 정신계 개척도가 10%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정신계 개척도를 100%로 달성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당신의 정신계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의 정신계에 침범한다면 상대는 소멸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스터가 되자 마지막 보상이 주어졌다.
[이제 ‘카르마’는 당신에게 있어서 화폐 단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소홀히 대하지는 마십시오.]
[어떻게 본다면 지금부터 카르마는 당신에게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스터가 된 기념으로 당신에게 200만 카르마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보상을 끝낸 시스템은 마스터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마스터가 된 당신이 신좌를 차지하는 법은 단 하나입니다.]
[헬리오스에 관여하는 신들 중 하나를 처치하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신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강제적인 임무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신을 처치하기 전까지 당신은 원하는 임무를 선택하여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터전을 침범하여 영토를 늘릴 수 있으며, 마음껏 약탈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은둔하여 조용히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임무에서는 자유로워졌다고는 하나, 헬리오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었다.
[다만 주의하십시오.]
[마스터의 힘을 얻으면서 헬리오스의 신들은 당신의 존재를 파악하였습니다.]
마스터가 되었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헬리오스의 진정한 시련은, 마스터가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당신에게 당신과 관련된 세력 관계도를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세력 관계도는 인연이 있는 신들이 표시됩니다.]
[물론 신이 아니더라도 진영을 이룬 이들 또한 표시됩니다.]
<세력 관계(우호도)>
[신]
[새벽을 관장하는 자: 68 (우호적인)]
[천신: -45 (적대적인)]
[마신: -28 (경계하는)]
[일반]
[해골왕 레오: 85 (환영하는)]
[머메이드 여왕 아란티아: 49 (우호적인)]
[나가 왕국 메두사: 0 (무관심)]
일반에서 인연이 있는 다른 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아리엘을 처치했을 때, 그와 관련된 진영이 있었지.’
하지만 천신에 속한 진영이라 그런지, 일반에서는 표시되지 않았다. 대신 천신과의 관계는 더욱 하락해 있었다. 정작 충렬에게 패배한 메두사 쪽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최종 목표는 신의 처치였다. 설마 신의 처치가 마스터에서 신이 되는 방법일 줄은 추측하지도 못했다.
‘왜 전에 영지전 임무를 임시로 수행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예전에 수행한 영지전의 임무. 그 임무를 수행한 이유는 바로 세력을 확장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려 신을 상대하는 일이다. 세력 없이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얼마나 강할지,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하나의 적을 처치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마스터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고는 하나, 혹여라도 세력을 일구지 못한다면…….
‘명함조차 내밀기가 힘들다.’
지금부터는 더욱 집중하여 헬리오스에서 세력을 만들어 나가야 했다. 더 이상은 임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척이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처럼 포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정진하여 발전을 이루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했다.
왜냐고? 마스터가 되면서 모든 위험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의 소식을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마스터가 되면서 신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격을 갖추었습니다.]
[‘새벽을 관장하는 자’가 자신이 머무는 장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응하면 그가 머무는 장소, ‘여명의 지대’로 이동됩니다.]
새벽을 관장하는 자. 그의 초대가 발생했다. 지금부터 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물론 우호적인 관계에서는 괜찮았다.
그러나 적대적이라면 그와 비례하는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프렘이 알려준 대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버렸군.’
무려 천신과 마신. 둘 다 충렬을 적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호적인 신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전에 듣기로는 그는 천신과 마신을 싫어했다.
‘당분간은 그의 그늘 아래서 사려야겠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칫 시작부터 파멸에 이를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마스터가 되자마자 충렬을 부르다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우선 충렬은 입을 열어 답했다.
“초대에 응한다.”
[알겠습니다.]
[‘여명의 지대’로 당신을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
충렬이 초대받은 여명의 지대. 그곳은 지대라는 말과 달리 땅이 존재하지 않는 공중이었다. 아니, 공중이라기보다는 우주 그 자체였다. 어두운 공간 주변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으며, 충렬은 무중력 상태로 떠 있었다. 암흑 투기의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몸이 추락하지는 않았으니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충렬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음성이 전달되었다. 시스템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왔는가 그대여. 반갑군.]
중후하게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 분명 음성은 머릿속을 우리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 공간 자체가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화하기가 불편하면 형체를 만들어주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의 앞으로 그가 가상의 형체를 드러내었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인조적이었다. 밀랍으로 만든 인형처럼,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는 정도였다. 눈, 코, 입은 없었다. 단지 형체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잠시였다.
[흐음. 그대는 남성이니 나는 여성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좋겠지.]
그 말을 끝으로 그. 아니, 새벽을 관장하는 자는 여성의 모습으로 완벽히 변했다. 중세 황족들이 입을 법한 고급스러운 드레스에, 길게 수놓은 은색의 머리카락. 전형적으로 아름답고 고결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렇게 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충렬이 예의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상대는 신이었다. 예우를 보이는 것이 좋으리라. 물론 과한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충렬의 행동에 만족스러웠을까? 상대는 충렬의 행동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형체를 만들어서인지 신은 더 이상 정신으로 음성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까지 들렸던 중후한 음성과 달리, 그 음성은 완벽히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였다.
“내가 부르자마자 와주어서 고맙다. 아, 나는 성별이 딱히 존재하지 않으니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을 한 상대. 그녀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충렬을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신의 위치라면 오만할 법도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어쨌거나 잡다한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충렬을 직접 부른 이유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
새벽을 관장하는 자, 그녀는 현재 정세를 알려주기 위하여 충렬을 불렀다.
“다른 신의 개입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직접 불러서 이렇게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알려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천신과 마신이 서로 치고 박으며 싸우고 있지만, 가끔 충렬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신들로부터 충렬을 찾지 못하게 숨기는 중이라고 했다.
원래라면 성녀를 통해서 알려줘도 되지만, 혹시나 몰라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초대해서 알려주는 중이었다.
“대충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다. 당장에는 내가 그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 보다시피 나는 쇠락의 길을 걷는 신에 불과하니까 말이지.”
쇠락하는 신들 중 하나. 하지만 충렬은 결코 쇠락하는 신들의 힘 또한 얕보지 않았다.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공중에 떠다니는 묘비가 수두룩했다. 무려 마스터들의 묘비가.
-아, 신을 상대하라는 거 하지 마.
-신을 처치하기는 무슨. 마스터 5명 파티. 숨쉬기도 전에 전멸.
-그냥 조용히 사는 것이 정답. 인정?
-인정. 서로가 가진 세력을 다 규합해서 와도 1초 컷 당함.
-내가 막타 쳐서 신이 되려고 했는데. 이렇게 죽어버리네 ㅋ
아마 새벽을 관장하는 자를 처치하기 위해서 진입한 마스터들이 분명해 보였다.
‘역시 신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주변의 묘비들을 살펴 신과 관련된 정보들을 살펴볼까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었다. 새벽을 관장하는 자. 그녀가 말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앞으로 자세한 이야기는 성녀를 통해서 간간히 연락을 취하도록 하지. 그대를 이쪽으로 부른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벅차다. 내 힘이 지속적으로 너무 많이 소모가 되니까 말이야.”
그러더니 그녀는 충렬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작별 인사는 별것 없었다. 어느새 충렬의 앞으로 서서히 다가온 여신. 키는 180㎝ 정도 될 법한 그녀가, 몸에 걸친 드레스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알몸이 되어 충렬을 품에 안았다.
온몸을 밀착시켜 충렬을 품은 여신. 그녀가 충렬의 입술을 탐했다.
갑작스러운 전개였다. 충렬이 차마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났다.
그러나 충렬은 곧 반응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여신의 입에서 나온 샘이 충렬의 입안을 촉촉이 적셔갔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유는 없었다. 충렬은 그저 여신이 이끄는 대로 모든 것을 맡겼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행위는 머지않아 종료되었다. 찰나의 순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녀가 입술을 떼자 마침내 현재 상황을 인식한 충렬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이지?’
충렬이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모습의 여신이 입술을 훔쳐오는데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행위를 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새 충렬의 귓가로 자신의 입을 이동시킨 그녀가 말했다. 귓가를 간질이듯 다가오는 그녀의 음성은 무척이나 달짝지근하며 나른했다.
“나의 채취와 숨결이 당분간 그대를 숨겨줄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품에 안긴 충렬의 의식은 기절한 듯이 순식간에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