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프렘과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새 녀석을 포위한 충렬의 네임드들. 그들에게 둘러싸이자 프렘은 체념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처럼 죽음의 순간에 발악하지 않았다. 녀석은 몬스터답지 않게 평온한 표정으로 충렬에게 말했다.
“죽여라 인간. 마지막은 편하게 가고 싶다.”
하지만 충렬은 곧바로 프렘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아까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데. 그건 무슨 이야기지?”
충렬의 물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프렘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걸 궁금해하다니. 너는 특이한 인간이다.”
그 동안 이야기를 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일까? 프렘은 마치 한이라도 푼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은…….”
***
프렘은 자신이 겪은 일과 악몽을 제작하게 된 이야기 등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었다.
녀석을 포위한 네임드들. 그들 또한 프렘의 이야기를 듣고 대부분이 안타깝게 여겼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음 또한 알고 있었다. 이곳은 힘이 없다면 짓밟힐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세계였으니까.
결국 프렘이 자포자기하고 죽으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복수는커녕 이제는 수명 자체가 곧 끝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녀석의 사연을 대충 파악한 충렬이 입을 열었다. 그의 부족한 수명을 충렬에게는 채울 방법이 있었다.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천신이라고 했던가?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할 테니까.”
그리고 충렬은 간결한 어조로 필요한 부분만을 말했다.
“나의 일에 도움을 준다면, 내가 죽기 전까지 네게 삶을 제공할 수 있다.”
충렬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전자로서 죽지만 않는다면, 프렘은 계속해서 언데드로 유지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프렘은 고개를 저었다. 언데드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녀석은 의외로 언데드가 되기는 싫어했다.
“인간 따위의 말은 믿지 않는다. 네 녀석을 따르면 언데드가 되어서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나를 마음대로 부릴 것이다. 그것은 싫다.”
그랬다. 녀석은 자신을 완전히 종처럼 부릴까 봐, 그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충렬과 프렘의 대화를 듣던 마렉이 말을 이어갔다.
[이봐 충렬, 그런데 천신이라면 그때 우리가 마왕을 죽이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신과 싸움을 붙이게 만든 그 천신이 맞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프렘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더니 마렉의 모습을 보고서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놀라했다.
“천사의 탈을 쓴 녀석이 천계에 심각한 손해를 입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녀석이 너였다!”
프렘의 말에 마렉이 중얼거렸다.
[천사의 탈이라니… 천사인데…….]
그러나 프렘은 마렉의 반응을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충렬에게 놀라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천신과 마신은 어차피 한번 싸운 이상 전쟁으로 끝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둘 다 네 녀석이 원흉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프렘의 정보력은 의외로 놀라웠다. 어디서 저런 정보를 입수하였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이어서 하는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인간. 조심해라. 마신과 천신, 둘 다 너를 주시하고 있다. 서로의 전쟁이 바빠 신경을 쓰지 못할 뿐.”
그러더니 프렘은 방금 거절했던 충렬의 제안을 다시 승낙했다. 방금까지 자포자기했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녀석의 표정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크큭. 너는 절대 두 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는 말이다. 네 밑으로 들어가겠다. 그렇다면 언젠가 천신을 마주할 날이 오겠지!”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충렬에게 물어왔다.
[네크로맨서의 숨겨진 업적 하나를 달성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스스로 당신의 언데드가 되기를 원하는 업적.]
[당신은 그것을 달성하였습니다.]
뜬금없이 업적이라니. 설마 이러한 업적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새로운 업적을 달성한 보상은 나쁘지 않았다.
[보상으로 다음의 목록 중에서 하나의 언데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목록은 당신의 레벨에 영향을 받아 종류가 달라집니다.]
동시에 시스템은 수많은 목록을 보여주었다. 충렬의 레벨은 카르마로는 더 이상 상승시키지 못하는 엄청난 레벨이었다. 때문에 등장하는 목록은 엄청나게 많았다.
[스켈레톤] [좀비] [리치] [뱀파이어] [레이스] [리퍼] [데스 나이트] [듀라한] [디바우러] [밴시] [와이트] [고스트] [스펙터] [팬텀] [퓨리]…….
각 언데드에 대한 설명은 따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설명 없이 너무나 많은 목록에 충렬의 고민이 커졌다. 프렘이 합류하는 것에 대한 기쁨은 둘째로 쳐야했다. 당장에 주어진 목록들에 갈피가 서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선택하기가 힘들군.’
하지만 충렬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 목록은 충렬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프렘 역시 충렬과 마찬가지로 목록을 볼 수가 있었다. 덕분에 녀석은 되고 싶어하는 언데드를 단번에 선택했다.
“나는 무조건 리치를 선택하겠다. 리치여야만 한다.”
무언가 이유가 있는 듯 했다. 녀석의 강단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스템에게 말했다.
“프렘을 리치로 만든다.”
레일리의 경우에는 리치가 되는데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템이 필요 없었다. 업적 달성 하나로 프렘은 단숨에 리치가 되었다. 물론 평범한 리치는 아니었다.
[악몽 제작자라는 명칭과 리치가 합쳐 프렘이 ‘데스 리치’로 변모합니다.]
***
데스 리치가 된다는 말. 그 말과 동시에 프렘의 주변으로 어둠의 힘이 휘감아졌다. 어두운 기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앙상한 뼈만 남은 그렘린이 서 있었다. 녀석의 날개는 제거되었으며 난쟁이같이 작은 리치가 되었다.
<데스 리치 프렘>
[악몽을 제작하던 그렘린이었다. 충렬의 리치가 되어 다시금 악몽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천신을 극도로 증오한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프렘에 대한 상태창도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프렘은 시작부터 높은 숙련등급으로 시작했다.
[프렘은 본래 처지에서 행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룩하였습니다.]
[업적과 함께 프렘이 높은 숙련 등급에서 시작합니다.]
[기존의 스킬 중, 핵심적인 스킬들을 가져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프렘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프렘
숙련: 9등급 - 0%
종족: 데스 리치
스킬: [악몽 제작: 시체를 소모해 악몽을 제작한다. 소모되는 시체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제작되는 악몽의 종류는 다르다. 연구를 이어갈수록 높은 효율을 보이는 악몽을 제작할 수 있다.]
[시체 수거: 주변의 시체를 수거하여 다닐 수 있다. 수거한 시체는 프렘의 마법 창고에 자동으로 저장된다. (저장된 시체: 0구)]
그렇게 간단한 상태창의 설명과 함께, 시스템이 변화된 점을 알려주었다.
[기존에 프렘이 따로 저장하던 시체들이 많습니다.]
[시체들은 모두 821구입니다.]
[프렘이 모아두었던 821구의 시체가 시체 수거 스킬로 흡수됩니다.]
[저장된 시체: 821구]
시체 수거와 악몽 제작. 그 두 개를 가지고 시작하는 프렘이었다. 악몽 제작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체 수거라는 스킬까지 있다니.
‘악몽 제작뿐만이 아니라, 수거한 시체를 꺼내게 해서 시체 폭파를 사용한다면…….’
이제 굳이 전장에서 시체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엄청난 전력이 들어왔군.’
물론 악몽 제작과 시체 수거는 기존의 것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프렘이 리치가 되면서 이전에 없던 막대한 힘을 얻어갔다.
[프렘이 ‘데스 스피릿’를 보유하게 됩니다.]
[데스 스피릿: 프렘의 영혼에 죽음의 힘이 각인되었다. 죽음을 조율하는 힘을 얻었다. 모든 기술과 마법에 죽음의 힘을 흘려 넣을 수 있다. 많은 힘을 소모할수록 위력적인 스킬이 사용된다.]
[프렘이 ‘데스 마스터리’를 배웁니다.]
[데스 마스터리: 숙련 등급과 상관없이 죽음과 관련된 마법들을 배우거나 전수받거나 승계를 받을 수 있다.]
[프렘이 ‘자아 발현’을 습득합니다.]
[자아 발현: 잠들었던 자아가 깨어난다. 비록 ‘이충렬’에게 소속된 언데드이지만 스스로 판단하며 행동할 수 있다.]
당장에 배운 것은 그것들뿐이었다. 숙련 등급이 9등급인 것 치고는 조금 빈약하게 보였다.
‘하지만 결코 빈약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데스 마스터리. 그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숙련 등급과 상관없이 배울 수만 있다면 마법을 무한정 늘릴 수 있다.’
당장에는 스킬이 얼마 없어 보일지라도, 여건만 주어진다면 프렘은 막강한 데스 리치가 된다는 소리였다.
마침 시스템이 충렬에게 물어보았다. 바로 충렬에게도 죽음과 관련된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소지한 스킬 ‘데스’를 프렘에게 전수하거나 승계할 수가 있습니다.]
[전수를 하면 당신은 스킬을 유지하지만, 프렘은 기초적인 수준의 데스를 배울 것입니다.]
[승계를 하면 당신의 스킬은 삭제되지만, 프렘에게 막강한 데스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데스는 당신보다 더 강한 성장이 가능합니다.]
전수를 하느냐, 승계를 하느냐. 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애매하게 둘이서 스킬을 사용하느니, 몰아주는 것이 정답이다.’
기초적인 데스도 막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강화된 것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일까. 반드시 더 강하게 될 수 있는 쪽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마음을 정한 충렬이 시스템에게 말했다.
“데스를 프렘에게 승계한다.”
그러자 시스템이 답했다.
[당신의 ‘데스’ 스킬이 프렘에게 이전됩니다.]
[데스 마스터리의 효과로 ‘데스’가 ‘데스 필드’로 강화됩니다.]
[데스 필드: 일정 지역에 죽음의 저주를 내린다. 그곳에 머무는 대상들은 단시간 안에 사망하게 된다. 프렘보다 강력한 힘을 머금은 존재에게도 통한다. 대신 강력한 존재들은 신체의 일부분만 괴사시킨다. 기존의 데스보다 괴사시키는 범위가 증가한다.]
충렬의 데스는 단일 대상이었다면, 프렘의 데스는 여럿에게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위력도 더욱 강해졌다.
그렇게 프렘은 데스 마스터리의 효과를 벌써부터 누리고 시작했다.
***
데스 리치로 다시 부활한 프렘. 녀석은 리치가 되자 놀라했다. 특히 단순한 몬스터에서 벗어난 녀석의 언어는, 이전보다 훨씬 발달해있었다. 물론 뼈다귀의 모습이었기에 녀석의 음성은 정신을 울릴 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힘이지? 어떻게 이렇게 강한 힘을 줄 수가 있는 것이냐!]
어떻게 줄 수가 있긴.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물론 충렬의 네임드 언데드가 되면 기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발생하겠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업적의 영향으로 이러한 일을 벌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 이런 업적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결과만 좋으면 되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나저나 악몽 제작자를 네임드로 만들다니.’
더군다나 프렘은 당장에도 악몽을 제작할 수가 있었다. 엄청나게 강력했던 존재인 악몽. 그것을 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감동의 시간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프렘을 처치한 것으로 판단한 시스템이 임무의 종료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도전자 ‘이충렬’ 님.]
[당신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마스터 네크로맨서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마스터의 자격을 상징하는 ‘한계 돌파’가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그럼, 영지로 복귀시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