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악몽 제작자
네임드들의 회복은 금방이었다. 충렬의 영지에 있는 혼돈의 신전. 그곳에는 성녀 실비아와 주교 윌리엄, 그리고 각종 인물들이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충렬은 상태가 좋지 못한 네임드들을 소환할 수 있었고, 신전에 머무르는 이들이 선뜻 나서서 회복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네임드들의 회복을 도운 충렬은 다시금 박해일을 만났다. 그리고 병력들을 항시 대기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무려 마스터가 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모든 수단들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충렬은 챔피언이 되자마자 승급을 준비하는 처지였다. 다른 이들에 비한다면 임무에 대비할 여건이 충분히 만족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모든 방면에서 미리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충렬은 다시 소환한 네임드들과 함께 머리를 굴렸다. 이전에 보았던 묘비의 정보도 당연히 알려주었다.
그렇게 움직일 무렵,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
[마스터 승급 도전권의 남은 시간: 1분 35초.]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마쳤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준비는 없었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비상의 수단은 하나 마련했다.’
비상의 수단은 바로 충렬의 무기 ‘죽음의 인도자’였다. 죽음의 인도자에는 당한 만큼의 대미지를 누적시켜 한 번에 터뜨리는 ‘파멸’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일전에 악몽의 말살과 1만 배의 시체 폭파에 당하면서 그 두 가지 힘이 누적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충렬은 영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네임드들의 공격을 받아가는 작업을 반복했다. 어차피 치료는 신전의 인물들이 해주면 되었으니 상관은 없었다.
‘덕분에 파멸을 사용하면 엄청난 대미지가 나타날 것이 분명해.’
솔직히 누적된 대미지 중에서 악몽의 말살 자체만으로도 그 어떤 누구도 처치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온갖 대미지가 누적되었다. 그랬기에 파멸을 사용한다면 그 어떤 상대라도 반드시 처치할 수가 있으리라.
‘심지어 악몽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놈을 한 방에 처치할 수가 있는 수준이다.’
20시간이 넘도록 축적시킨 대미지는 그만큼 상상 이상이었다. 확실한 파괴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쨌거나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 만들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번에는 영역 선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려 6일 가까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충렬은 이제 임무를 부여받기로 했다. 멀쩡히 찾아온 기회를 차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시간이 임박해 왔음을 인지한 충렬이 입을 열었다.
“시스템, 마스터 승급 도전권을 사용한다.”
충렬의 말에 시스템이 답했다.
[마스터 승급 도전권을 사용하였습니다.]
[마스터 승급 도전권이 소멸합니다.]
[당신에게 다음의 임무 목록들이 주어집니다.]
[원하는 시련을 선택하십시오.]
[선택한 시련을 통과한다면 당신은 마스터 도전자가 될 것입니다.]
시스템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전에 묘비글을 보았던 것처럼, 새로운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각 목록의 아래에는 간단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임무를 수행하던 도전자가 남긴 묘비의 글이 세 줄씩 나타납니다.]
[참고하여 임무를 선택해 주십시오.]
[등장하는 글은 랜덤입니다.]
동시에 시스템은 충렬의 눈앞으로 수많은 목록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임무 아래에는 정말 도전자들이 남긴 글들이 세 줄에 한하여 등장했다.
<팔리온 왕국 멸망>
[어스랜드의 북부에 자리를 잡은 팔리온 왕국이다. 조용히 살아가는 그들을 멸망시켜라.]
-팔리온 왕국 가만히 둬. 조용히 있는 애들은 건드리는 거 아님.
-평범한 마을 지키는 경비병이 달인 도전자 수준.
-마을은 어떻게 불태워도, 도시급 이상은 절대 불가.
<난민 대이동>
[화산의 폭파에 대도시가 휩쓸렸다. 1,000만 난민들을 초원의 게이트로 이동시켜 탈출시켜야 한다.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간다면 임무는 실패다.]
-이거 자체는 어렵지 않는데 지들끼리 다투다가 100명 그냥 죽음.
-난민들 사람 아니다. 조심. 지들 맘에 안 든다고 나 죽였다.
-말 진짜 안 듣는다. 화병 나서 뒤짐.
<불사조 사냥>
[전설의 신수 중 하나인 불사조를 사냥해라. 불사조를 완전히 잠재운다면 임무는 성공한다.]
-ㅋㅋㅋㅋ 이거 씨발. 개좆같은 임무다.
-죽여도 다시 부활함. 1년 동안 불사조랑 싸우다 지쳐서 죽음.
-핫뜨거운 우리 불사조~ 좀 뒤져라 치킨 새끼야~
<이동 치료소>
[대륙을 돌아다니며 아픈 자들을 치료하라. 300만을 치료하면 임무는 성공한다.]
-ㅅㅂ. 치료가 문제가 아니다. 도적들한테 내가 죽을 줄이야.
-치료하려다가 내가 질병 걸려서 뒤졌다.
-아니, 너무하네. 이거 어느 세월에 300만 치료함?
<데샤르 칸의 하렘>
[데샤르 칸의 부탁으로 발생한 임무다. 당신은 그의 하렘에 입장하여 그곳의 여인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모든 여인들을 만족시키면 임무는 성공이다.]
-와, 첫 타자 써큐버스에서 복상사를 할 줄이야.
-그나마 이게 쉬운 임무 아니냐? 3천 명만 만족시키면 승급.
-데샤르 칸 미친놈. 몬스터들도 모아놨네. 어떻게 전부 만족시켜.
…….
팔리온 왕국 멸망부터 시작해 임무의 목록은 엄청나게 많았다. 뭘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임무 하나가 충렬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건?’
<악몽 제작자 처치>
[악몽을 제작하고 다니는 존재를 처치하라. 제작자의 전투력은 보잘 것 없다.]
악몽 제작자라니. 설마 이전에 상대한 악몽을 만들고 다니는 녀석이란 말인가? 그 추측은 정확한 것 같았다. 설명 아래에 적인 글이 그러한 점을 알려주었다.
-미친. 악몽 너무 강하다. 숨 쉬며 사용하는 말살에 그냥 죽었다.
-악몽 하나 상대하는 동안 제작자는 또 다른 악몽 제작함.
-처음에 등장하는 악몽 빠르게 처치하고 제작자 처치 ㄱ. 그게 답.
설마 악몽을 제작하고 다니는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의 전투력은 보잘 것 없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제작자가 만들어내는 악몽 자체는 차원을 달리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악몽 제작자라…….’
그러지 않아도 충렬의 네임드 자리 하나가 공석이었다.
‘녀석을 처치하고 소환수로 삼는다면…….’
이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소환수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충렬은 상대가 몬스터건 인간이건,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상대를 처치하고 동의만 얻는다면 자신의 소환수로 등록할 수 있었다.
‘문제는 녀석을 구슬려야 한다는 것이겠지.’
물론 제작자를 처치했다는 가정을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솔직히 이전에 악몽을 처치했을 때 악몽을 소환수로 삼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시체 폭파로 인해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악몽의 시체 자체가 폭파에 휩쓸려 사라진 것이다. 때문에 소환수로 등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악몽 따위는 눈에 차지 않았다. 악몽 제작자. 녀석을 포획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기회다.’
마침 도전자들의 글을 읽어보니 악몽은 처음에 하나만 등장하는 듯했다.
‘하나라면…….’
충분히 빠르게 상대할 수가 있으리라. 힘을 회복한 악몽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만 등장한다면 자신은 있었다. 물론 시간을 끈다면 다른 악몽들이 생겨날 것이고, 임무는 실패하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악몽이 제작되는 순간 임무는 실패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그 전에 일을 끝마치면 되었다. 다른 임무들의 목록도 수두룩했지만 충렬은 마음을 굳혔다.
‘무조건 악몽 제작자 처치 임무를 선택해야 해.’
더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충렬이 입을 열어 말했다.
“악몽 제작자 처치를 선택한다.”
충렬의 말에 시스템이 응답해 주었다.
[챔피언 도전자 이충렬 님.]
[당신은 악몽 제작자 처치의 시련을 선택하였습니다.]
[맞습니까?]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그러자 시스템이 반응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은 악몽 제작자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잠시 후 이동하게 됩니다.]
[이동하기까지 대기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추가 대기 시간: 19분 59초.]
***
거대한 지하 카타콤. 그곳에는 하나의 연구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연구실에는 몬스터 한 마리가 있었는데, 녀석의 얼굴은 마치 염산에 녹아버린 것처럼 해괴망측했다.
몬스터의 머리 위에는 어떤 녀석인지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악몽 제작자, 그렘린 프렘>
고블린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특히나 녀석은 회색의 몸뚱이에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무언가에 열중했다.
“죽인다. 신을 반드시 죽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녀석은 신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달아 있었다.
몬스터 치고는 정말 이상했다. 제법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는 녀석이었다. 아니, 애초에 몬스터가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도 않는 연구실이었다. 그런 녀석의 주변에는 수많은 시체 해부도와 각종 마법진이 적힌 종이들이 가득했다.
특히 어떤 종이 위에는 그간의 실험 결과가 적혀 있었다.
-첫 번째 실험품. 육체 형성 실패.
-두 번째 실험품. 지속성 결함 확인.
-세 번째 실험 작품. 조금 완성적이나 이상한 인간에게 묶임. 되찾아오기란 불가.
-네 번째 실험 작품. 개량. 성공적. 다만 재료가 너무 많이 필요.
-다섯 번째 실…….
엄청난 집중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던 그렘린 프렘. 녀석이 순간 두 눈을 번쩍였다.
“재료가 다 모였다. 효과적인지 실험하러 간다.”
그러더니 녀석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뿜는 마법 주머니를 챙겼다. 마법 주머니를 챙긴 녀석은 어딘가를 향해 즉각적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프렘은 이동하지 못했다.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그의 주변으로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또 침입자인가? 내 연구실. 재료 많다. 악몽 금방 만든다. 침입자는 제거한다.”
그러더니 녀석은 챙겼던 마법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이상한 작업을 행하기 시작했다.
혈액이 담긴 플라스크병을 들고서 큰 바닥으로 이동한 프렘. 녀석이 그것으로 마법진을 그려갔다. 마법진을 그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마법진을 모두 그린 녀석은 어떤 창고로 들어가더니 시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행위는 바로 악몽을 만드는 행위였다. 녀석은 그 동안 한 번, 두 번 침입을 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제법 평온하게 대처했다.
“악몽 하나면 침입자들 제거 쉽다. 하지만 간혹 강한 침입자들도 온다. 재료 소모가 아깝지만 악몽 많이 제작한다.”
그렇게 녀석이 악몽의 제작을 완성하는 동안, 그리 멀지 않는 장소에 어떤 이들이 도착해 왔다.
그렘린 프렘의 연구실에 방문한 침입자들.
그들은 바로 충렬과 그의 무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