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미친.’
망자와의 포옹. 대충 20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포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암흑 투기는 모두 소모한 지 오래였다. 최대한 아끼며 위험할 때만 사용했음에도 더 이상은 사용할 힘이 없었다. 바닥난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순수한 도전자의 육체로만 망자를 끌어안았다. 망자는 충렬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을 물어뜯고, 귀를 뜯고, 살가죽을 긁으며 피해를 입혔다. 암흑 투기가 없으니 단순한 공격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충렬은 악착같이 버텼다.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피해가 발생해도 라이프 드레인 덕분에 복구가 되었다. 그러니 그나마 육체적으로는 버틸 수준이었다. 물론 그것은 육체에 한해서였다.
‘젠장할,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정작 문제는 망자가 여전히 활발히 날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망자의 발버둥은 단 한 차례의 멈춤도 없었다. 그는 충렬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발악하고 있었다.
‘슬슬 위험한데.’
육체는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점점 힘겨워졌다. 정신계와 관련된 패시브 스킬이 있어도 힘들었다. 한 자세로 20시간이라니. 미친 짓거리였다.
‘그래도 라이프 드레인이 없었다면…….’
공략을 시도해 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충렬은 다시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갔다. 무언가를 생각하며 버티기에는 돌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더 이상은 버틸 필요가 없었다.
악착같이 버틴 결과, 승리의 여신은 충렬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망자가 된 태양왕 라이트에 스며든 악몽의 힘이 모조리 소실되었습니다.]
[태양의 망자.]
[그가 가진 태양의 힘이 망자의 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립니다.]
***
시스템의 말을 끝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바로 충렬의 품에 안겨 있던 라이트였다. 어느새 그는 망자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새살이 돋아 있었고 눈빛은 총명하게 반짝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세풍의 갑옷을 입은 도전자의 모습이었다.
“켁. 이제 좀 그만 놓지 그래.”
그의 외침에 달나라로 가 있던 충렬의 정신이 돌아왔다. 뒤늦게 시스템의 음성을 이해한 충렬은 드디어 몸에 가했던 힘을 풀었다.
‘후…….’
적으로 인식하지 않아서인지 라이프 드레인도 자동으로 해제되었다. 그는 충렬이 놓아주자 갑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이런 거머리 같은 방식으로 나를 제압하다니. 그런 도전자는 네가 처음이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하거나 말거나 충렬은 단 한마디도 내뱉기가 싫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던 탓이다.
‘지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충렬 또한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충렬의 눈앞으로 멀끔한 모습의 사내가 서 있었다.
<도전자 태양왕 라이트>
‘죽여야 끝인 줄 알았는데, 죽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나?’
하기야, 시스템은 제압하라고 했지. 처치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단 분위기로 봐서는 그의 정신을 되돌리는 것만으로도 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도전자라니. 어떻게 된 일일까. 충렬이 의문을 가졌을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아차, 네 소환수들을 계속 가두고 있었군. 일단 풀어주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소환수들에게 적용되었던 ‘태양의 결계’가 해제됩니다.]
***
충렬에 의하여 정신이 돌아온 태양왕 라이트. 그가 충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새 둘의 주변으로는 결계에 당했던 충렬의 네임드들이 풀려나서 모여 있었다.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는지 셀 수도 없군.”
라이트는 익숙한 듯, 빠르게 핵심적인 이야기만 해주었다.
그는 지구에서 헬리오스로 끌려올 때, 처음으로 사라진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가 가진 직업은 태양왕으로. 특성으로는 영원한 태양의 삶이었다. 죽어도 죽지 않았고 포기하고 싶어도 도전자의 삶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러던 중에 악몽을 처치하라는 임무를 받았지.”
때문에 그는 단독으로 악몽 처치에 나섰다. 그렇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나마 악몽을 봉인하는데 그쳤다.
어쨌거나 그의 뒤를 이어 수많은 도전자들이 악몽에 도전했다. 물론 중간에 그를 깨우는 작업이 필수였지만 말이다.
“만약 네가 나와 함께 악몽 처치에 실패하면, 넌 죽고 나는 다시 악몽의 힘에 잠식당할 거다. 그리고 또 새로운 도전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
라이트는 달인을 넘어선, 챔피언 등급의 도전자였다. 그런 그가 악몽의 처치에 실패했는데 충렬이 어떻게 악몽을 처치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꽤나 나쁘지 않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악몽은 자신의 힘을 완전히 쓰지 못할 거다. 내 힘으로 놈의 힘을 억제하고 있으니까. 물론 그 덕분에 나도 달인급으로 등급이 한 단계나 떨어졌지만 말이지.”
자신의 힘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무려 그 정도였다니.
‘달인이 저 정도인데 챔피언급의 도전자가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지는 것인지 몰랐다.
결국 그는 충렬과 함께 악몽을 처치하면, 챔피언급으로 다시 힘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라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도전자의 삶을 정말 던져 버리고 싶군. 이따위 직업을 얻어 죽지도 못하다니.”
그런 그가 충렬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악몽을 처치하는 것에 있어 최선을 다해 도와주도록 하지. 나도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는 않아.”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충렬을 향해 손을 뻗쳤다.
“태양왕의 가호.”
그러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두 번째 봉인에 사용되었던 태양왕의 가호가 회수됩니다.]
[태양왕 라이트가 회수한 가호를 당신에게 부여합니다.]
동시에 충렬도 다른 네임드들과 마찬가지로 성장을 시작했다.
[첫 번째 봉인으로부터 흡수한 막대한 힘이 깨어납니다.]
[그 힘은 이제 당신의 온전한 힘으로 전환됩니다.]
***
네임드들에게 주입되었던 힘과는 달리, 충렬에게 들어간 힘은 더욱 거대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차적으로 충렬에게 모든 힘이 들어갔고, 소환수들은 그 힘에서 나온 찌꺼기들을 나누어받은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충렬은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라이트의 시험을 거쳐야 했고, 결국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타난 변화는 바로 레벨의 상승이었다.
[당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레벨이…….]
…….
도대체 레벨이 얼마나 상승하는 것일까. 시스템의 알림은 끝이 없었다.
‘이게 무슨…….’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시스템의 알림은 곧 종료되었다.
정확히 10번의 레벨 상승이 있자, 레벨의 상승이 멈추었던 것이다.
[레벨이 총 10만큼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레벨: 40(다음 레벨까지 400,000카르마 필요.)]
레벨이 빠르게 오르던 때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오른 적은 단연코 없었다.
‘…….’
그러나 놀라기에는 일렀다. 상승한 것은 고작 레벨에 불과했다. 레벨의 상승이 끝나자, 스킬의 변화가 나타났다. 네임드들과는 다르게 충렬의 변화는 더욱 무지막지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직업 특성이 변화했다.
[직업의 고유 특성이 강화됩니다.]
[‘죽음을 버티는 자’가 ‘죽음에 적응한 자’로 강화됩니다.]
[죽음에 적응한 자: 인간의 상태일 때 죽으면 아무런 페널티 없이 언데드로 부활한다. 죽어서 언데드가 되어도 기존의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가 있다. 언데드 상태일 때 죽으면 레벨이 3만큼 하락하며 더 강한 언데드로 부활한다. 다만 언데드 상태일 때는 상대를 처치했을 때 발생하는 카르마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야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더 이상 떨어질 레벨이 없다면 완전히 사망한다.]
죽음에 적응한 자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특성이었다.
‘언데드 상태일 때 죽어도 또다시 언데드로 부활을 한다고?’
더군다나 기존의 스킬도 모조리 사용할 수가 있었다. 물론 레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것도 더욱 강력한 언데드로 부활한다니.
‘엄청나군.’
지금 충렬의 레벨이 40이었다. 그러니 엄청난 여별의 목숨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뭐, 언데드 상태일 때는 카르마를 얻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처치에 대한 카르마만 얻지 못한다면…….’
아마 보상 같은 것은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새롭게 강화된 특성에 놀라고 있을 때, 시스템의 설명은 이어졌다.
이제는 보유하고 있던 스킬이 성장했다.
[‘데스’의 랭크가 E랭크로 상승합니다.]
[기존에 있었던 실패 확률이 사라집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상대를 단번에 절명시키는 스킬 ‘데스’.
‘그것의 실패 확률이 사라졌다고?’
단순히 F랭크에서 E랭크가 된 것 뿐이었다. 충렬은 재빨리 스킬의 설명을 살폈다.
[데스 - E랭크: 단일 대상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려 단시간 안에 사망하게 한다. E랭크가 되면서 실패할 확률이 사라졌다. 당신보다 강력한 힘을 머금은 존재에게도 통한다. 대신 강력한 존재들은 신체의 일부분만 괴사시킨다. (다음 랭크까지: 특수 이벤트 수행 시, 랭크의 상승 가능.) (재사용 대기 시간: 30분.)]
심지어 보스급의 적에게도 통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통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온전히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저게 어디야.’
신체의 일부분을 괴사시킨다면 전투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었다. 데스라는 스킬은 카르마로 랭크업이 불가능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킬의 랭크 상승이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네.’
그만큼 데스라는 스킬은 사기였다.
어쨌거나 그 다음에는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해본 스킬이었다.
[영역 선포(죽음의 땅)의 랭크가 E랭크로 상승합니다.]
[아군 언데드에게 주어지는 버프의 수가 늘어납니다.]
[적 언데드를 복종시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부활시킨 언데드의 강함이 한층 상승합니다.]
영역 선포 스킬은 기존에 있던 것들이 강화된 것이 전부였다. 딱히 바뀐 내용은 없었다. 다음 랭크로 상승시키기 위한 카르마가 100만으로 증가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영역 선포 다음으로는 암흑 투기였다.
[암흑 투기의 랭크가 7랭크로 상승합니다.]
[암흑 투기로 사용 가능한 ‘파괴 광선’이 생겨납니다.]
파괴 광선. 발록이 사용하던 능력 중 하나를 드디어 입수하게 되었다.
[파괴 광선: 암흑 투기를 응축시켜 직선으로 발사한다. 발록과 달리, 손가락 끝으로 지정하면 응축된 암흑 투기가 쏘아진다.]
설명은 무척이나 단순했지만 충렬은 알고 있었다. 파괴 광선이 얼마나 위협적인 공격 수단인지를 모르지 않았다.
어쨌거나 암흑 투기는 7랭크가 되면서 더 이상은 상승이 어려워졌다.
[암흑 투기를 6랭크까지 올리는 데 필요한 카르마: 500,000.]
‘이제는 필요한 카르마의 단위가 훌쩍 뛰어버리는군.’
어느 세월에 모아야 하지 싶었다. 단순한 방법으로는 어려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생각해야지 싶었다. 아직 스킬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