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99화 (199/237)

# 199화.

***

태양의 망자. 달려오는 그의 머리 위로 이름이 표시되었다.

<망자가 된 태양왕 라이트>

살아생전 그의 이름은 ‘라이트’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가 도약해 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높이 뛰어오른 그가 창을 내지르며 짓쳐들었다.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는 창에 당한다면 심상치 않은 피해를 줄 것이라 암시했다.

망자의 공격에 충렬의 네임드들이 외쳤다.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네임드들의 소리가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결계가 그들의 목소리마저 잠식했기 때문이다.

“……!”

“……!”

[……!]

[……!]

그들의 외침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충렬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망자가 내지른 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로 몸을 움직여 피할 것도 없었다.

곧바로 암흑 투기를 끌어 올린 충렬이 입을 열었다.

“공간 도약.”

동시에 충렬의 몸이 사라졌다.

파앗!

그리고 나타난 장소는 망자의 뒤쪽. 거리를 최대한 벌린 장소였다. 그러자 창을 내지르며 착지한 망자는 결국 허공을 찔렀다.

쉬익.

그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회피한 충렬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일단은 라이프 드레인의 범위 밖에서 싸워야겠어.’

상대는 전형적인 근접형 딜러였다. 좁은 범위 내에서 전투를 이어가는 것은 나중이었다. 우선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장거리에서 상대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그걸 사용할 기회가 찾아왔군.’

충렬이 사용하려는 것은 바로 얼마 전에 배운 스킬, 데스였다. 상대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려 단번에 죽게 하는 무지막지한 스킬이었다.

물론 적용이 실패할 확률이 있었다. 재사용 대기시간도 무려 1시간이나 되었다. 그래도 충렬은 가장 먼저 그 스킬을 사용했다.

“데스.”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라이트’에게 죽음의 저주를 부여합니다.]

당연히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라이트’를 집어삼킨 악몽의 힘이 저주를 튕겨냅니다.]

‘역시나 강한 존재에게는 통하기 힘드네.’

그렇다면 사실상 충렬에게 남은 것은 육탄전밖에 없었다. 소환수의 사용도 불가능했고, 주변에는 적을 향해 사용할 시체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나.’

그나마 믿을 것은 죽음의 인도자라는 무기였다. 충렬이 착용한 그 장갑에는 ‘파멸’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능이 있었으니 말이다.

‘최대한 버티다가 사용해야겠군.’

이것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 전까지는 ‘파멸’을 믿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누적된 대미지를 일시에 터뜨리는 그것만이 답이었다.

하지만 충렬에게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움직이려는 찰나, 망자가 예상외의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공격에 실패한 망자라 등을 돌렸다. 그리고 창을 늘어뜨리며 충렬을 바라보았다. 잠시간의 침묵 뒤. 그가 창을 질질 끌며 천천히 걸어왔다.

달그락. 달그락.

곧이어 발걸음을 멈춘 망자. 그가 창을 앞으로 휘둘렀다. 뒤로 늘어뜨린 창을 그대로 앞을 향해 내리찍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창끝으로부터 무언가가 발생했다. 그것은 데프론의 마기공과 비슷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듯. 투명했다.

[태양의 망자가 ‘절삭 파동’을 사용합니다.]

[지형지물 외, 대상 경로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잘립니다.]

그와의 거리는 대충 80미터 정도. 그러나 망자가 발생시킨 ‘절삭 파동’은 순식간에 충렬을 향해 들이쳤다. 총알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응축된 바람이 잽싸게 날아오는 것과 같은 빠르기였다.

‘이런……!’

충렬은 몸을 움직임과 동시에 공간 도약을 사용하려 했다.

“공간 도……!”

하지만 시스템은 암담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절삭 파동’이 당신의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암흑 투기가 당신의 부름에도 묵묵부답입니다.]

[당신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

시스템의 말 그대로 충렬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암흑 투기의 사용마저 불가능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절삭 파동은 이미 짓쳐오고 있었다. 문득 충렬의 눈앞으로 수많은 묘비들이 보였다. 하필 묘비들은 절삭 파동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젠장, 설마 내가 여기서 유다희 양을 보게 될 줄이야.

-어이없네. 하… 그동안 내가 이룩해온 것이 얼마인데...

-ㅋㅋㅋ저도요. 절삭 파동 ㄹㅇ 개사기죠?

-지려 버렸죠? 근데 유다희 양이 누구예요?

-무슨 말인지 모름?

-야, 모를 수도 있지 왜 갈구냐.

그러나 도움이 되는 글은 없었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가는 상황이었다. 충렬은 재빨리 대응했다.

‘어쩔 수 없다.’

설마 이런 곳에서 소모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충렬은 간만에 아이템을 사용했다.

“우로갈의 펜던트를 사용한다!”

충렬의 말에 시스템이 답했다.

[우로갈의 펜던트를 사용합니다.]

[절삭 파동이 당신에게 가한 압박이 해제됩니다.]

[들이치던 ‘절삭 파동’이 사라집니다.]

역시나. 우로갈의 펜던트는 뜻밖의 공격마저 회피해 내게 하였다. 물론 그만큼의 희생이 따랐다.

[우로갈의 펜던트에 저장되어있던 에너지 실드가 1회 차감됩니다.]

[앞으로 사용 가능한 횟수: 7회]

이제 겨우 7번만 사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죽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충렬이 절삭 파동을 피해내자 망자가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이 공격을 무효화시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놈의 의문도 잠시. 그는 다시금 창을 뒤로 늘어뜨렸다. 이미 한번 겪었기 때문일까? 시스템이 알려왔다.

[태양의 망자가 절삭 파동을 사용하기 위해 2초간 준비합니다.]

시스템의 알림에 충렬은 어이가 없었다.

‘저 스킬을 또 사용한다고?’

충렬의 속마음을 어떤 묘비에서 대변해 주었다.

-이 미친 망자 새끼야. 도랐냐? 무슨 스킬 쿨타임이 없어.

-놈이랑 원거리전 하지 마라. 무조건 다이다.

-ㅇㅇ거리 벌리면 절삭 파동만 계속 씀. 걍 근접전 ㄱ

물론 묘비에는 절삭 파동에 대비하는 법도 쓰여 있었다.

-절삭 파동을 피하려면 애초에 장애물 뒤에 미리 숨어 있거나…….

-방벽 같은 스킬 사용해야 한다.

-ㅇㅈ. 그런 걸로 막으면 괜찮긴 함.

-문제는 그렇게 시간 벌어봤자 결국 당함 ㅋㅋ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당하지. 어디서 저런 놈이 나온 거야.

앞서간 선배 도전자들의 공략이 있으니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했다.

‘거리를 벌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

위험하지만 지금은 거리를 좁힐 때였다.

***

충렬은 망자가 다시금 스킬을 사용하기 전, 스킬을 사용했다.

‘공간 도약.’

파앗!

충렬이 목적지로 삼은 곳은 망자의 옆이었다. 순식간에 충렬이 옆에 나타나자, 절삭 파동을 사용하려던 망자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설마 곧장 근접 거리로 올 줄은 몰라서다.

‘지금이 기회다.’

충렬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왼손을 말아 쥔 충렬이 암흑 투기를 주먹에 왕창 주입했다.

‘일단 가볍게 시작하자.’

그리고 주먹을 앞으로 내뻗었다. 주먹이 향한 곳은 망자의 머리였다. 정말로 시작한 가벼운 잽이었다. 물론 당한다면 상대는 박살 날 것이었다. 무려 암흑 투기가 들어간 힘이었으니까.

그런 충렬의 주먹에 대한 위험을 감지했던 것일까? 잠시 멈추었던 망자가 몸을 움직였다. 녀석은 거창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충렬의 주먹이 다가오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을 뿐이었다.

그러자 충렬의 주먹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스쳐지나갔다.

후우웅.

너무나 가벼운 동작으로 회피한 망자. 그가 뒤로 늘어뜨린 창을 휘둘러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충렬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할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기습적이라도 이런 정직한 공격 따위는 피해낼 것이라는 계산까지 마친 충렬이었다. 때문에 후속 공격까지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충렬은 곧바로 주먹을 폈다.

새끼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 날을 반짝 세운 충렬의 손날은 그 자세 그대로 망자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이런 공격은 의외였는지 망자의 안광이 순간 번뜩였다. 하지만 놈은 회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충렬의 공격이 날아옴에도 여전이 창을 움직였다. 창끝으로 찌르기에는 너무 거리가 좁았던 탓일까? 그는 창의 손잡이 끝으로 충렬의 복부를 가격하려 했다.

결국 충렬의 손날과 상대의 창대 끝이 서로를 향해 동시에 공격해 나갔다. 충렬은 곧 겪을 타격에 대비해 복부에도 암흑 투기를 잔뜩 끌어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충렬의 손날은 망자의 목을.

망자의 뭉툭한 창대 끝은 충렬의 복부를 가격했다.

빠각!

퍽!

암흑 투기가 주입된 충렬의 손날이 망자의 목을 치자 그의 목은 단번에 박살 났다. 목뼈가 부서지자 망자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옆으로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망자는 곧바로 회복했다.

[태양의 망자를 삼킨 악몽의 힘이, 부서진 망자의 목을 다시 재생시킵니다.]

[아직 망자의 몸에 깃든 악몽의 기운이 적지 않습니다.]

[악몽의 힘을 더 제거하십시오.]

그러나 충렬은 망자의 상태에 대해 살필 때가 아니었다. 망자가 가격한 가벼운 창대가 뜻하지 않은 충렬을 주었다.

암흑 투기로 방어를 했음에도 물리적인 충격이 복부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크윽……!’

내부의 장기가 온통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충렬은 이를 꽉 물고 버텼다. 어차피 충렬에게 고통은 잠시뿐이었으니 말이다.

[‘라이프 드레인’이 ‘태양의 망자’의 생명력을 빨아먹기 시작합니다.]

[손상된 당신의 내부가 급속도로 회복됩니다.]

만약 라이프 드레인이 없었다면 충렬은 그를 밀쳐내려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충렬은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고통은 잠시다.’

더군다나 망자와의 공수를 한차례 교환할 즈음, 근처에서 하나의 묘비가 보였다.

-근접전을 해도 창날에 당하지 마라.

-상처 회복 불가, 탈진, 상태 악화. 등등 각종 저주가 부여된다.

-한번 당하면 레알루 끝장이다.

-당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압해야 함.

묘비의 말 그대로 충렬은 거리를 벌릴 생각이 없었다. 대신 다른 생각이 있었다.

“남자는 취향이 아니지만…….”

그저 그 상태에서 망자를 그대로 덮쳤다.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만 한다면 승산은 이쪽에 있었으니 말이다. 라이프 드레인이 그의 생명력을 모두 흡수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었다.

충렬은 양팔로 그를 꽉 끌어안고, 양쪽 다리로 상대의 하체까지 제압했다. 망자는 창을 쓰지 못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잠깐만 이렇게 있습시다.”

결국 충렬은 망자와 진하게 포옹했다. 뜻밖의 전개에 망자가 충렬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도 남자는 취향이 아니라는 듯 무지막지하게 발버둥을 쳤던 것이다. 당연히 그의 반항은 무의미했다. 암흑 투기를 잔뜩 끌어 올린 충렬의 포옹 앞에서 말이다.

이제 충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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