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강 건너 불구경
인페르노 하운드의 행동에 시스템은 대전의 결과를 알려왔다.
[인페르노 하운드가 전투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대전은 케르베로스의 승리입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충렬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어째 갈수록 대전이 점점 쉬워지는 것 같단 말이야.’
분명 등장하는 상대들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충렬이 다섯 번째 대전마저 승리로 가져갈 때였다. 충렬의 상대는 분명 패배하여 기분이 좋지 않을 만도 했다. 그런데 상대는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패배하자, 충렬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척이나 태연한 반응이었다.
‘참 이상한 여자네.’
어쨌거나 충렬이 승리하자 시스템은 곧바로 보상을 지급해 주었다.
[도전자 ‘이충렬’ 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60,000카르마가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여섯 번째 대전은, 당신이 방금 패배시킨 도전자를 부려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만약 당신의 소환수가 처치된다고 해도, 함께 참여한 도전자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면 승리로 인정됩니다.]
[물론 승리하게 된다면, 상대 또한 일정량의 보상을 챙겨갈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알려오는 정보에 충렬이 의문을 품었다.
‘다음 대전에 함께 출전하게 된다고?’
하지만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옥 조력자라는 여자가 충렬의 앞으로 이동되었다.
***
[기다릴 것 없이 여섯 번째 대전을 이어가겠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출전하게 될 소환수를 먼저 선택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알려왔다. 충렬이 소환수를 쭉 무작위로 선택한다고 했기에, 시스템은 누구를 출전시킬 것인지 굳이 물어오지 않았다.
[당신의 소환수를 도울 헬라온의 소환수는 지정하여 출전시킬 수 없습니다.]
[당신의 소환수와 헬라온의 소환수가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당신의 소환수는 ‘레일리’가 출전하게 됩니다.]
[헬라온의 소환수 ‘지옥의 임프’가 레일리를 돕기 위하여 출전합니다.]
시스템의 말이 끝남과 함께 헬라온이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무뚝뚝하게 있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공. 함께하게 될 기회가 생겨 영광입니다.”
그녀의 말에 충렬이 그만 당황해 버렸다. 여자답지 않은 그녀의 말투 때문이 아니었다.
‘갑자기 뭔 대공이야?’
하지만 충렬은 곧 알 수가 있었다. 헬라온이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르타디아가 충렬에게 몰래 음성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케르베로스 때문에 네가 지옥에서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는 줄로 안다. 케르베로스를 부리려면 지옥에서는 엄청난 위치여야 하니 말이지. 대충 상대해 주면 될 것 같군.]
충렬도 아르타디아의 의견에 동의했다. 특히 충렬은 헬라온의 행동을 보고서 이미 어느 정도의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저런 반응이라면 다음 대전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불화가 생기지 않은 것이 어디던가. 고분고분해서 다행이었다. 때문에 충렬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반갑습니다.”
어쨌든지 여섯 번째 대전의 출전. 이번에는 레일리가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후, 다른 곳에서 치러지는 대전이 끝났는지, 시스템이 알려왔다.
[당신의 상대팀이 정해졌습니다.]
[상대팀의 정보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름만 공개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은 정말로 상대팀의 이름만 알려주었다.
[당신의 상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천당의 인도자 ‘힐러리’의 ‘이단 심판관’]
[2. 뱀 이교도 교주 ‘폴라’의 ‘코브라 기사’]
이단 심판관과 코브라 기사. 이름만 알려주니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신중히 상대해야겠군.’
뭐, 레일리가 어련히 알아서 하지 싶었다. 그녀는 초반부터 충렬과 함께해 온 네임드였다. 굳이 터치하지 않아도 잘 하리라는 것을 충렬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충렬은 상대의 정보를 파악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레일리를 믿기 때문에? 그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엄청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팀은 시작하자마자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
***
충렬이 다섯 번째 대전을 먼저 끝내서일까? 여섯 번째 대전을 위해서 상대 팀의 도전자들이 충렬이 있는 건너편으로 이동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힐러리라는 도전자는 새하얀 로브를 걸친 30대 중반 정도의 여인이었고, 폴라라고 불리는 도전자는 초록색의 뱀 문양 갑옷과 뱀 모양 투구를 착용한 젊은 사내였다.
아마 다섯 번째 대전은 힐러리가 이겼는지,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폴라에게 말했다.
“더러운 네놈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다.”
그러더니 시스템에게 요구했다.
“시스템! 그냥 나 혼자 진행하게 해줘! 어떻게 이런 작자와 함께 팀을 이루라는 거지?”
그녀의 외침에 폴라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봐 할망구.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그냥 편하게 대전을 즐기면 되지, 인신 공격은 왜 하는거야?”
“뭐? 할망구?”
“그래, 이 할망구야. 아니, 이곳에 와서 골라진 직업이 이런 것일 뿐이지 진짜 이교도 취급을 하고 앉아 있네. 나는 지구에서 평범한 웹 디자이너였다고.”
폴라의 항변에 힐러리가 자신의 주장만을 펼쳤다.
“흥, 네 시커먼 속을 모를 줄 알고? 나는 영혼이 깨끗하기 때문에 이러한 직업을 얻은 것이야! 네놈은 분명 추악한 영혼을 가지고 있겠지!”
그러더니 충렬과 헬라온이 있는 장소를 째려보며 발악했다.
“저기 네크로맨서와 지옥 조력자 역시 마찬가지일 터!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네 연놈들 모두를 참회를 시켜주마!”
그녀의 도발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렉이 비웃었다.
[참회라고? 참외같이 생긴 아줌마가 성깔은 무지하게 더럽네.]
그의 농담에 힐러리가 마렉을 싸늘하게 째려보았다.
“뭐라…….”
그런데 그녀는 곧 눈빛을 고쳤다.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 어느덧 의문으로 바뀐 것이다. 마렉의 직업과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푸, 품계가 높은 천사가 왜 저런 종자에게……!”
하지만 그녀의 의문도 거기까지였다. 시스템이 여섯 번째 대전을 속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혼자 대전을 하고 싶다고 한 의견은 묵살되었다.
[각자의 소환수를 투기장 내부로 이동시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레일리, 지옥의 임프, 이단 심판관, 그리고 코브라 기사가 투기장 내부로 이동되었다.
***
투기장에는 레일리와 지옥의 임프가 함께 나란히 섰고, 그 건너편에는 이단 심판관과 코브라 기사가 함께 서 있었다.
지옥의 임프는 레일리의 절반 3분의 1밖에 되질 않는 조그만 친구였다. 생긴 것도 영략 없이 귀여운 이미지였다. 녀석은 레일리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끼룩.”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렇지만 충렬의 옆에 서 있던 헬라온이 그 뜻을 알려주었다.
“만나서 반갑다네요.”
헬라온의 뜻을 들은 레일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임프에게 인사했다.
“나도 반가워.”
이쪽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쪽은 아니었다. 서로의 주인이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단 심판관과 코브라 기사는 대전을 시작하기 전부터 서로 으르렁거렸다.
이단 심판관은 철갑을 덧씌운 로브와, 해머를 착용한 사제였다. 그리고 코브라 기사는 기이한 기운을 내뿜는 검보라의 갑옷과 보라색의 롱 소드를 착용한 소환수였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주인의 성격을 닮았기 때문인지 이단 심판관은 특히나 코브라 기사의 성질을 돋웠다.
“추악한 존재와 함께 전투를 해야 한다니. 이런 불명예는 지금까지 없…….”
그러나 이단 심판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코브라 기사가 딱 잘라서 말했다.
“그 입 좀 닥쳐라. 교주님이 아니었다면 네 녀석은 이미 이 검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뿐이니까.”
그래도 코브라 기사는 조금 참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들의 언쟁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여섯 번째 대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10초 뒤, 각 소환수에게 적용한 억압을 해지해 드리겠습니다.]
[곧 여섯 번째 대전이 시작됩니다.]
[대전에 참여하게 된 소환수들은 전투를 준비하여 주십시오.]
이번 대전은 소환수가 도전자의 스킬을 가져가지 않는 것 같았다. 관련된 내용은 시스템이 알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10초 뒤, 대전은 시작되었다.
[10초의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소환수에게 가한 억압이 해지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얼마나 짜증이 났던 것일까? 대전이 시작되자마자 코브라 기사를 출전시켰던 폴라가 외쳤다.
“보상 따위는 필요 없어! 코브라 기사! 이단 심판관을 죽여 버려라!”
폴라의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이, 코브라 기사가 그의 교주의 명을 받들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곧장 자신의 검에 심상치 않은 스킬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코브라의 맹독!”
동시에 그의 검이 심상치 않은 보라색의 액체로 흥건하게 적셔졌다. 코브라 기사는 그런 검을 들고서 곧장 이단 심판관을 향해 베어갔다. 이단 심판관은 기사의 행동에 코웃음을 쳤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 역시 곧장 자신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스톤 스킨, 하늘의 가호!”
말싸움으로 시작된 분열은 결국 자기들끼리의 싸움으로 번졌다. 덕분에 레일리와 지옥의 임프는, 나설 것도 없었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하게 되었다.
***
이단 심판관과 코브라 기사의 전투가 한창 진행될 때였다. 폴라의 행동에 열을 받은 것인지, 힐러리가 그를 향해 악에 가득 차 있는 말을 내뱉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녀가 자초한 일이건만 자기 잘못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는 짓이 가히 볼만 하구나!”
물론 폴라 또한 힐러리와는 화해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할망구가 자초한 일이야! 이미 당신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당신 같은 사람이 만약 신좌에 앉게 된다면…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잖아!”
폴라의 대답에 힐러리가 답했다. 그녀의 눈은 실성한 사람처럼 진즉에 풀려 있었다.
“좋다! 끝까지 가보자!”
그러더니 미친 짓거리를 했다. 소환수끼리의 대전인데, 그녀가 폴라를 향해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죽어라! 홀리 스피……!”
하지만 그녀가 스킬을 사용하려는 순간, 시스템이 나섰다.
[신성한 소환수끼리의 대전에 ‘힐러리’, 당신은 다른 도전자에게 직접 힘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당신을 소환수 경기장에서 추방합니다.]
거기서 끝이었다. 힐러리의 모습은 허무하리만치 곧바로 사라졌다. 그녀의 소환수인 이단 심판관 또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힐러리가 스킬을 사용하려하자마자 이렇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시스템의 개입에 폴라가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과 돌아가신 분들까지 들먹이다니. 젠장, 저 할망구는 내가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아마 이전 대전에서부터 온갖 심한 모욕을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골탕을 먹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휴우, 이 정도면 그래도 큰 엿을 먹인 경우니 여기서 만족해야겠지.”
동시에 그는 충렬과 헬라온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이봐들! 난 원래 이런 비열한 짓을 하지는 않는다고! 어지간히 바가지가 긁혀서 말이야.”
그의 행동에 충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으로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까? 그가 시스템에게 말했다. 애초에 그는 이 장소가 불편했는지 재빨리 자리를 뜨려고 했다.
“어차피 2 대 1은 무리일 것 같고… 시스템! 항복한다! 나의 패배야!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어 미치겠네.”
결국 여섯 번째 대전은 레일리가 나서지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