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3초가 지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소환수에게 적용된 압박을 해지합니다.]
[대전을 시작하십시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료칸이 외쳤다. 그의 소환수에게 말이다.
“달려! 달려가서 물어!”
그러자 료칸의 명령을 받은 스톤 리자드 킹이 크게 울부짖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름은 킹이지만 이름에 비하여 작은 몸을 가졌기 때문일까? 녀석의 외침에 위엄은 느껴지지 않았다.
“끼에에에에엑!”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녀석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많이 민첩했다. 돌과 같은 단단한 피부는 전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을 스치듯이, 미끄러지며 마렉을 향해 재빠르게 돌진했다.
사삭.
사사삭.
사사사사사삭!
녀석의 빠른 접근에 마렉이 잠시나마 당황했다.
[어후! 엄청나게 빠르네!]
압박이 해지되고 대략 1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스톤 리자드 킹은 그 짧은 시간 안에 마렉의 지척거리까지 당도했다.
리자드 킹이 마렉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료칸이 외쳤다.
“크크큭! 지금이다! 물어뜯어 버려!”
료칸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자드 킹이 곧장 아가리를 벌렸다. 이대로 달려가는 속도에 더하여 마렉을 물어뜯기 위해서다.
그러나 마렉이 멍청히 당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마렉은 즉시 뒤로 물러나며 공중을 날았다.
[십년감수했잖아. 깜빡이는 켜고 들어오라고!]
마렉이 공중으로 몸을 띄움과 동시에 리자드 킹의 날카로운 이빨이 허공을 물었다. 그 허공은 방금까지 마렉이 있던 장소였다.
마렉이 하늘을 날아버리자 당황한 것은 료칸이었다. 그는 지금 눈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다.
“어… 어떻게 하늘을……! 날개도 없는데!”
그의 말은 마렉에게도 정확히 들렸던 것일까? 마렉이 무슨 소리를 하냐며 허공에 대고 말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날개를 가리키며 말이다.
[뭐가? 내가 날개가 없다고? 여기 있잖아.]
하지만 료칸과 마렉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설마 자신의 공격이 실패할 줄을 몰랐던 것인지, 스톤 리자드 킹이 악에 받힌 괴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끼아악! 끼아아아아아아아악!”
녀석의 괴성에는 빨리 내려오라고, 내려와서 싸우자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렉은 지상으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마렉은 리자드 킹이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자 무척이나 얄밉게 약을 올렸다.
[헹, 내가 왜 내려가냐? 공격해 볼 수 있으면 해보던…….]
그렇지만 마렉의 얄미운 말투는 중간에 멈춰야 했다. 마렉의 행동에 리자드 킹이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스톤 리자드 킹이 다수의 스톤 리자드를 소환합니다.]
[3마리의 스톤 리자드가 소환됩니다.]
그와 함께 리자드 킹의 주변으로 스톤 리자드 3마리가 소환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리자드 킹은 스톤 리자드들만 소환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스톤 리자드들과 함께 하늘을 보며 애타게 짖을 뿐이었다.
“끼에엑!”
“끼아아악!”
“끼에에에에엑!”
그 모습에 마렉이 가슴을 쓸어 담으며 안심했다는 말을 보였다.
[어휴. 놀래라. 난 또 무슨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줄 알았네.]
그러더니 마렉은 또다시 얌체 같은 짓거리를 이어갔다.
[흐흐, 이거나 한번 잡솨보라고. 혼돈의 징벌!]
마렉이 스킬을 사용하자 순간 하늘의 일정 부분이 일렁였다.
쿠르르릉.
그러더니 벼락이 내려치며 정확히 스톤 리자드 킹에게 내리꽂혔다.
콰콰콰광!
사실 다른 네임드들에 비하여 약해 보였을 뿐이지, 마렉의 혼돈의 징벌은 결코 약한 수준의 공격 스킬이 아니었다. 마법 방어력이 뛰어나지 않은 대상이 맞는다면, 단번에 지옥을 경험하게 될 정도로 파괴력이 있는 스킬이었다. 단순히 빛의 속성을 머금은 번개가 아닌, 어둠의 속성까지 합쳐진 혼돈의 힘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혼돈의 징벌은 물리 방어력에만 특화된 스톤 리자드 킹에게 매우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그것은 장내의 상황을 본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혼돈의 징벌에 적중 당한 리자드 킹은 몸을 뒤집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바퀴벌레처럼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그래도 녀석은 그 공격에도 죽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왕이라는 것일까? 그나마 간신히 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반응에 놀란 것은 반대로 마렉이었다. 그는 스톤 리자드 킹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엥? 내 스킬이 이렇게 강했었나?]
마렉은 설마 자신의 스킬이 이 정도였는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잠시 후, 마렉은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
[크크. 그러면 그렇지. 이 몸이 약할 리는 없다고!]
동시에 마렉은 하늘을 빙빙 돌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되었다. 스킬의 쿨타임만 다시 돌아온다면 마렉의 승리는 확실했다.
그렇지만 마렉은 아쉽다는 듯, 스킬 하나를 더 사용했다.
[이대로 너무 쉽게 이기면 재미없으려나. 발키리 소환.]
마렉이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옆으로 검과 방패, 그리고 경갑옷 종류로 완전무장한 혼돈 속성의 전투 천사가 등장했다.
[마렉이 <카오스 발키리1>을 소환합니다.]
마렉은 발키리를 향해 이어서 스킬을 사용했다.
[혼돈의 축복.]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렉이 <카오스 발키리1>에게 혼돈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발키리의 검에 강력한 혼돈의 힘이 부여됩니다.]
그렇게 발키리에게 버프를 걸어준 마렉이 명령을 내렸다.
[발키리야, 가서 저것들을 도륙내 보라고!]
마렉의 명령에 발키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지상으로 강하했다.
자신이 싸워야 하는 소환수 대전에서, 또 다른 소환수를 소환해 싸움을 붙이는 마렉이었다. 어떻게 보면 장난기가 매우 많아 보였다.
하지만 마렉은 진지했다. 장난기가 있는 모습을 보였어도 장난으로 대전에 임한 것은 아니었다.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고, 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그랬다. 마렉은 이참에 발키리의 전투력을 확실히 인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발키리의 전투력은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마렉에 의하여 무기에 축복까지 받은 발키리.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막강한 물리 방어력을 가지고 있던 스톤 리자드 킹이 단번에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속도로 강하하여 스톤 리자드 킹의 앞에 선 발키리가, 스톤 리자드 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주변에 다른 스톤 리자드들이 그 앞을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발키리의 검이 휘둘러지는 것이 먼저였다.
결국 발키리의 검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리자드 킹의 목을 그었다. 그러자 녀석의 머리가 목으로부터 가볍게 떨어졌다.
서걱.
물론 평범한 상태에서 그랬다면 목이 잘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물리 방어력마저 씹어 먹는 마렉의 버프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발키리가 검을 휘둘러 스톤 리자드 킹의 목을 쳐내었습니다.]
[스톤 리자드 킹이 처치되었습니다.]
그렇게 리자드 킹이 처치되자, 녀석에 의하여 소환되었던 다른 스톤 리자드들이 역소환되었다.
스톤 리자드 킹이 단숨에 처치되는 모습에 료칸이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사… 사기야! 나의 스톤 리자드는 물리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고! 그것도 저렇게 쉽게……!”
료칸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충렬을 노려보며 고성을 지르려고 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그러나 료칸은 고성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얼마나 분했던 것일까? 그가 고성을 지르려다말고 뒷목을 부여잡았다. 더불어 과도한 스트레스로 그의 시야가 까맣게 흐려졌다.
“커억……!”
거기까지였다. 그는 단말마의 비명만을 남긴 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료칸은 무력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털썩.
충렬이 근처에 있었다면 예의상 받아주었겠지만, 아쉽게도 스크린을 통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이번 대전의 결과에 대해 가볍게 만족할 뿐이었다.
‘이렇게 이기게 되는군.’
어쨌거나 료칸이 정신을 잃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시스템은 료칸의 상태 따위야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렉이 두 번째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도전자 ‘이충렬’ 님.]
[당신에게 15,000의 카르마가 주어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번째 소환수 대전이 종료되었다.
***
경기장에서 돌아오자 마렉은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
[크하하! 다들 봤냐고! 나도 일인분은 한다니까?]
마렉이 승리하여 돌아오자 그나마 착한 데프론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처음에는 무뚝뚝했던 데프론이었지만, 일행들과 어울리며 제법 말투가 많이 순해져 있었다. 그만큼 다른 네임드들을 존중한다는 뜻이었다.
[예, 잘하실 줄 알았습니다.]
데프론 외에도 제레미가 마렉의 승리를 환영해 주었다.
[와우. 엄청나던데요? 놀랐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일 줄은 몰랐거든요.]
데프론과 제레미의 칭찬에 마렉의 기분은 하늘마저 뚫을 기세였다.
[크흐흐. 앞으로도 나만 믿으라고! 내가 든든하게 지켜줄 테니까!]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것일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감이 너무 생기다가 나중에 실수를 하면 어쩔까 싶어서다. 심지어 마렉의 모습에 그가 소환한 발키리마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으리라.
어쨌거나 발키리는 더 이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없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스스로 역소환을 시킨 것이다.
[역할을 끝낸 <카오스 발키리1>이 역소환됩니다.]
발키리가 역소환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충렬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대전은 운이 좋았다.’
정말 천운이었다. 때마침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는 적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마법을 사용하거나 궁수와 같은 관련된 적이 등장했다면, 마렉은 고전을 면치 못했을 터였다. 혼돈의 징벌과 발키리 소환 스킬이 있다고 해도 마렉의 한계는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벌써 두 번째 대전까지 끝나 버렸군.’
아직 많은 대전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대전은 생각 외로 금방금방 종료되었다. 다음 대전에 누가 출전을 할지는 몰랐다. 그러나 충렬은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남아있는 소환수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강한 이들이다.’
그 동안 계속된 성장으로 이루어진 정예들이었다. 이 중 그 누구를 내어놓는다 하여도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충렬이 세 번째 대전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시스템이 물어왔다.
[세 번째 대결에 출전시킬 소환수도 무작위로 정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게 해줘.”
그러자 시스템은 즉각적으로 알려주었다. 이전보다 빠르게, 누가 출전하게 될 지에 대해서 말이다.
[세 번째 대전에 출전하게 될 당신의 소환수는 ‘새끼 악티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