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첫 번째로 출전한 제레미가 승리 후 돌아오자 충렬과 그의 무리들이 반겨주었다. 충렬을 시작으로 아르타디아, 레일리, 샤오링. 그리고 데프론과 마렉까지. 모두가 제레미에게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겨주어서 고맙습니다.”
“수고했다. 실력이 좋더군.”
“이제 쉬고 있어요. 첫 번째 대전을 하느라 고생했어요.”
“나머진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단번에 처치해 버리다니! 멋졌다고!]
물론 일행들이 반기거나 말거나, 케르베로스와 악티니언은 한쪽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일행들의 반김에 제레미가 손사래를 치며 겸손함을 보였다.
[하하, 제가 한 것이 뭐 있겠습니까. 강해진 덕분이죠. 오히려 도전자일 때보다 움직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몸도 가벼워진 것 같고요.]
그렇게 네임드들이 제레미와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첫 번째 대전이 끝나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물어보았다. 두 번째 대전이 시작되기 전, 출전시킬 소환수를 미리 정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대전에 내보낼 소환수를 지정해 주십시오.]
그런데 앞선 첫 번째 대결과 달리, 이후에 치러야 할 대전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다른 점은 바로 출전시킬 소환수를 정하는 방법이 2가지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대전부터는 소환수 중 하나를 무작위로 출전시킬 수 있습니다.]
[무작위로 출전시키고 승리할 때마다, 당신은 이전에 얻은 카르마에 1.5배를 얻어 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인 즉, 지정해서 출전시키면 그대로 1만 카르마만 받는다는 소리인가.’
아마 그럴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만약 계속 지정시켜서 승리를 한다고 해도 결국 얻어 갈 수 있는 카르마는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 무작위로 출전시킨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카르마를 가져가게 될 것이리라. 물론 계속해서 승리를 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군.’
최대한 많은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부터 무작위로 출전시켜야 했다. 중간에 패배한다고 해도 일정 이상의 승리만 챙겨서 가면 되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시스템이 알려오는 정보에 충렬이 답했다.
“두 번째 대전에 소환수를 무작위로 출전시킨다.”
[알겠습니다.]
[두 번째 대전이 시작되면, 제레미를 제외한 당신의 소환수 중 하나가 두 번째 대전에 자동으로 출전하게 됩니다.]
두 번째 대전은 과연 누가 나가게 될까? 무작위로 출전시킨 덕분에 서로 토론을 벌일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충렬이 무작위로 출전시킬 것을 결정하자 네임드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마렉을 쳐다보았다. 특히 아르타디아가 마렉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흐음. 마렉이 마지막에 출전한다면 위험할 텐데 말이지.”
아르타디아뿐만이 아니었다. 레일리 또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에는 마렉을 걱정해 주었다. 물론 깊게 파고들어 해석하면 충렬이 얻어 갈 것을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러게요. 마지막에는 강한 상대가 나올 가능성이 큰데…….”
둘의 걱정에 마렉이 가슴을 쫙 피며 말했다.
[흐흐흐. 걱정들 말라고. 내가 마지막에 출전한다면 화려하게 마무리를 해주도록 할 테니까!]
그러나 마렉의 입뿐인 허세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 화려한 마무리가 마렉의 패배일 수도 있었으니까.
변변한 공격 스킬도 없고, 그나마 있는 것은 혼돈의 징벌 딱 하나뿐이었다. 그러한 그가 최종 라운드에 출전한다고 해도 상대를 이길 가능성은 낮았다.
그래도 데프론이 마렉을 응원해 주었다.
[운이 좋다면 상대도 약한 소환수를 출전시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데프론의 음성이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렉이 후반에 출전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고? 곧 시스템이 누가 출전하게 될지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
충렬이 모든 이들의 첫 번째 대전이 종료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많은 소환수들이 대전을 치렀지만 그들의 대전도 금방 끝났다.
[모든 도전자들의 첫 번째 소환수 대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잠시 후, 두 번째 대전이 시작됩니다.]
[대진표를 작성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시스템의 음성이 있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충렬의 상대는 곧바로 정해졌다. 그러나 시스템은 충렬의 대전 상대에 대하여 밝히기 전, 다른 것을 먼저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무작위로 내보낼 소환수 중 누가 두 번째로 출전하게 될지에 대해서였다.
[두 번째 대전에 출전하게 될 당신의 소환수는 ‘마렉’입니다.]
혹여나 마렉이 후반에 출전하게 된다면 많은 걱정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초반에 출전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처음부터 상대가 잘못 걸리면…….”
“큰일이네요…….”
그래도 이번에는 어떤 상대가 등장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다만 도전자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당신은 무작위로 소환수를 내보내었습니다.]
[상대가 출전시킬 소환수에 대하여 대략이나마 정보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정하여 소환수를 출전시키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 같았다.
‘무작위가 꼭 나쁘리라는 법은 없군.’
상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여 대비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상대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마렉의 상대는 ‘스톤 리자드 킹’입니다.]
[생김새: 평범한 비늘 대신 단단한 돌덩이로 피부를 이룬 도마뱀의 종류이다. 그 크기는 1미터에 불과하지만 다수의 스톤 리자드를 소환하여 부릴 수 있다.]
[특징: 입으로 문 대상 석화, 강력한 물리 방어력, 물리 대미지 반사, 조금 빠른 움직임, 스톤 리자드 소환.]
마렉이 상대하게 될 소환수는 대충 어떠한 적인지 상상이 되었다.
‘도마뱀이라…….’
그렇지만 설명만 보아서는 정확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잘하면 마렉이 당할 일은 없겠는데.’
마렉은 하늘을 날 수가 있었다. 평소에는 보통 걸어 다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날아다니면 되었다.
‘상대의 소환수가 원거리 공격과 관련된 스킬이 없고,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마렉에게도 승산은 있다.’
마렉 또한 거기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인지하였던 것일까? 그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거만하게 웃었다.
[흐흐, 왜일까? 왠지 예감이 좋은걸? 도마뱀 따위야 가볍게 요리를…….]
그러나 마렉이 도마뱀 따위라는 말실수를 하자 아르타디아가 마렉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드래곤을 비하하는 말이 도마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렉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아르타디아는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그가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님을 모르지 않아서다.
“…….”
아르타디아의 반응 때문인지, 순간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마렉은 아차 싶었다. 그러더니 당황하며 말을 돌렸다.
[하하, 스톤 리자드는 내가 잘 처리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그런 여유로운 시간도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대전을 준비해야 했다. 상대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시스템이 대전의 시작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잠시 후, 마렉이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
256개였던 원형의 경기장들. 그것들이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2개씩 뭉치기 시작했다. 마치 세포 2개가 융합하여 1개가 되는 것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세포가 아니었기에 큰 소음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땅이 이동하는 도중 갈라지며 분해되어 쪼개졌다. 그리고 침몰했다.
하지만 침몰도 잠시, 쪼개진 두 개의 땅덩이는 하나로 합쳐졌다. 2개의 원형 바닥은 곧 그 합만큼 거대해진 하나의 원형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새로운 128개의 경기장이 완성되자, 시스템은 소환수들의 이동을 시작했다.
[각자의 소환수들이 출전할 경기장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
충렬과 마렉은 다행히도 상대 정보를 미리 파악하며 조금은 안심할 수가 있었다. 마렉도 상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는 한편, 마렉을 상대하게 된 상대 도전자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무작위로 소환수를 출전시킨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마렉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톤 리자드 킹을 부리는 도전자의 이름은 ‘료칸’. 일본에서 온 도전자였다. 그는 자신의 소환수 건너편에 보이는 마렉의 겉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저 흰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것은 뭐야. 약해빠져 보이잖아? 내 도마뱀에 물리면 단번에 게임 끝이라고 크크큭.’
시스템의 압박이 풀리기 전, 그는 마렉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어깨 쪽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지만, 료칸은 자신의 소환수가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흐흐. 무조건 이기는 대전이야. 불리해지면 스톤 리자드들을 계속 소환할 수가 있으니까.’
스톤 리자드 킹은 평범한 소환수와 달랐다. 불리하다 싶으면 스톤 리자드를 다수 소환하여 부렸다. 괜히 킹이 아니었다. 자신의 소환수가 상대하게 될 대상의 모습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지만, 그는 이번 대전을 무조건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스템의 압박이 풀리고 대전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 시스템이 충렬과 료칸에게 알려왔다. 아니, 모든 도전자들에게 알려왔다.
[대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들의 앞에 스크린이 생성됩니다.]
[스크린으로 소환수의 전투를 면밀히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는 상대가 어떤 명령을 내리는지를 보고 거기에 맞추어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충렬의 앞으로 2개의 스크린이 생성되었다. 하나는 마렉과 그 주변이 보이는 거대한 스크린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대 도전자의 모습이 보이는 스크린이었다. 도전자의 모습이 보이는 스크린에는 상대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리자드 연구자 ‘료칸’>
상대 또한 충렬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그는 무척이나 얄밉게 웃어왔다. 그가 말을 하자 직접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어라? 크크큭… 네크로맨서라……. 미안하지만 이번 대전의 승리는 내가 가져가마.”
그의 말에 충렬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가져가 보시던가.”
충렬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료칸이 이마를 찌푸렸다.
“뭐라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조금 이따가 싹싹 빌게 만들어주지 크크큭. 아, 물론 빌어도 소용은 없겠지만 말이야.”
그러나 충렬은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굳이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렬이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료칸도 재미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시스템이 알려왔다.
[그럼, 3초 뒤.]
[소환수들에게 가한 압박을 해지하겠습니다.]
이제 3초 후에 두 번째 대전이 시작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