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85화 (185/237)

# 185화.

***

모든 도전자들이 모이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시스템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에 모인 도전자들에게 알려왔다.

[현재 모인 인원: 256명.]

[모든 도전자들이 모였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진표를 작성하는 중입니다.]

대진표가 어떻게 되는지는 각자에게 곧바로 알려졌다.

[네크로맨서 ‘이충렬’ 님.]

[당신의 상대가 가진 직업은 ‘도적단장’입니다.]

시스템은 그 말만을 끝으로 충렬에게 물어보았다.

[첫 번째 대전으로 누구를 출전시키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제레미를 바라보았다. 제레미는 무언가의 결심을 한 듯 충렬에게 말했다.

[하하, 그래도 패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의 마음가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스템에게 말했다.

“제레미를 출전시킨다.”

충렬의 답변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알겠습니다.]

[상대가 누구를 출전시킬지를 고르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잠시 후, 상대 또한 결정을 제법 빠르게 했다.

[도적단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상대가 출전시킬 소환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잠시 뒤, 당신의 소환수와 상대의 소환수가 C-9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C-9경기장이 어디인지는 찾을 필요가 없었다. 잠시 후, 제레미가 수많은 원형의 경기장 중 하나로 이동되자, 충렬의 시야에는 그곳만이 밝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장소는 전부 어둡게 보였다.

[모든 경기는 동시에 시작됩니다.]

[하지만 다른 도전자들끼리의 경기는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다른 도전자들의 소환수가 경기장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충렬이 기다리는 사이, 제레미는 어느새 이동된 장소에서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

평범한 방패병에서 얼마 전 수호대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된 제레미. 그가 눈앞에 보이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소환수는 인간이었다.

의미심장한 푸른 천으로 입을 가리고, 날렵한 가죽옷에 쌍단검을 착용한 상대는 한눈에 보아도 상대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폭풍도적단원>

명칭에서부터 얼마나 공격적인지 느낄 수가 있었다. 방어 전문으로 성장한 제레미와는 반대였다. 아직 서로의 대전이 시작되기 전, 상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무척이나 도발적이었다.

“크크크큭. 내 상대가 해골이라니. 첫 대전은 무난하게 승리할 수가 있겠군. 대장이 기뻐하겠어.”

그의 말에 제레미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직은 시스템의 제약 때문인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이 알려왔다.

[3초 뒤, 첫 번째 친선 경기가 시작됩니다.]

[승리 조건은 상대를 처치하거나, 경기장 밖으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처치되어도 죽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대전을 준비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3.]

[2.]

[1.]

그리고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전을 시작합니다.]

대전이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몸을 억압하던 시스템의 기운이 사라졌다. 드디어 움직일 수가 있게 되자, 제레미의 상대가 다시 한번 입을 놀렸다.

“크큭. 단번에 끝내 주…….”

하지만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레미가 스킬을 사용했다. 자아가 생기고난 후의 첫 전투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생각 외로 진지하게 임했다.

[수호방패병 소환.]

제레미가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주변으로 10기에 해당하는 해골 방패병들이 등장했다.

[결사항전의 수호방패병 10기가 제레미의 부름에 의하여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골 모습의 수호방패병 10마리는 등장하자마자 도적단원을 쳐다보았다. 가진 것은 방패뿐이었지만 수호방패병들의 기세는 평범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도적단원을 바라보며 이빨을 부딪쳐갔다.

겔겔.

겔겔겔.

겔겔겔겔.

음험한 웃음을 흘리는 여러 마리의 언데드는 도적단원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이게 무슨……!”

하지만 그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해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호방패병 10기가 ‘폭풍도적단원’을 적으로 인식하고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레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그가 경악하며 말했다.

“해, 해골 주제에 또 다른 해골을 다시 소환한다고……? 이건 반칙이잖아!”

그러나 상대가 경악하거나 말거나 제레미는 상대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해골마 소환.]

제레미는 곧바로 해골마에 탑승했다. 그리고 수호방패병들과 함께 전진하며 상대를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진형을 이루며 전진해 오는 방패병들과 제레미의 모습에, 도적단원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제레미의 수호방패병들이 가지고 있는 방패의 크기와 종류는 다양했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각자의 방패를 앞세우며 전진하는 녀석들의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호방패병들은 동시에 방패를 앞으로 찍어가며 도적단원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쿵!

쿵! 쿵!

쿵! 쿵! 쿵!

도적단원도 만약 혼자가 아니었다면, 혹은 지형이 좁지 않았다면 이리저리 움직이며 활개를 칠 수가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도적단원이었다.

도적단원은 계속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곧 더 이상은 뒤로 물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제기랄! 더 이상 물러날 수는 없어!’

이 이상 뒤로 물러나면, 물에 빠지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경기장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아웃이었다.

‘으으… 분명 이번 경기에서 지면 엄청난 고문이 있을 텐데.’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부리는 도적단장. 그 도전자의 성격이 얼마나 포악한지를.

성과를 낸다면 그만큼의 보상을 얻겠지만,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엄청난 체벌을 각오해야 할 터였다.

‘젠장!’

결국 어쩔 수 없음을 느낀 도적단원은 자세를 낮추었다.

‘저 해골만 처치하면 되겠지!’

총 10기에 달하는 해골들이 자신을 계속해서 압박해 왔다. 그렇지만 모두 상대할 필요는 없으리라. 저 뒤에서 그들을 부리는 해골만 처치한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었다.

폭풍도적단원. 그는 처음부터 가진 바를 모두 꺼내기로 했다. 하지만 조금 불안했는지, 그는 이전과는 달리 조금 위축된 말투로 제레미에게 소리쳤다. 그의 음성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야비하게 쫄따구나 부리다니! 당당하게 나와 일대일로 맞서보자! 나에겐 폭풍 타격이라는 스킬이 있지! 엄청난 빠르기로 상대를 100회 타격하면 그 무엇이라도 부셔 버리는……!”

그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도적단원의 외침에 제레미가 수호방패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물러나.]

압박하여 처치하여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제레미는 도적단원의 말을 듣자마자 방패병들을 뒤로 물렸다.

***

경기장과의 거리는 멀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볼 수가 있었다. 대전의 양상을 지켜보던 충렬은 제레미의 행동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100회 타격이라. 그런 걸 말해주다니. 상대도 멍청하군.’

제레미가 100회의 타격을 받게 된다면, 상대의 말에 따라서 제레미는 크나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충렬은 왜 제레미가 직접 나서려는지 알고 있었다.

‘죽음의 방패로 방어를 할 셈인가.’

제레미에게는 죽음의 방패가 있었다. 죽음의 방패에는 일정 확률로 자신을 공격한 대상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리는 기능이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저주는 내가 최근에 배운 ’데스‘ 스킬과 무척이나 흡사하지.’

상대를 곧바로 사망하게 이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다만 충렬의 스킬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방패를 공격한 이에게만 저주가 내려지고, 언데드에게는 저주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은 없을 터였다 상대 소환수의 종족은 인간이었으니까.

***

제레미가 의외로 직접 나서자, 신이 난 것은 도적단원이었다. 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크크크큭. 머저리 같은 자식. 의외로 단순하잖아? 혼자 나온 것을 후회하게 해줘야지.’

도적단원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제레미는 해골마에서 내려 서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한 손에는 죽음의 방패를, 다른 한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 제레미였다.

깃발을 창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제레미는 그러지 않았다. 등에 깃대를 꽂으며 오로지 죽음의 방패를 앞세웠다.

제레미가 방패를 앞세워 나서자, 도적단원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방패 따위로 막아보았자 소용은 없다.’

자신의 폭풍 타격은 타격시킨 대상 자체를 갈가리 갈아버리는 스킬이었다. 도적단원은 양손의 단검을 각각 역수로 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가오는 제레미를 상대하기 위해서다.

둘이 전투를 벌이기 일촉즉발의 상황. 그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존재는 도적단원이었다.

“간다! 받아라! 폭풍 타격!”

도적단원이 스킬명을 외치자 그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도적이 아닌, 마치 기습하는 암살자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들이치는 상대의 행동에, 제레미는 침착하게 방패를 끌어 올렸다.

언뜻 보면 이대로 방어만하여 적에게 죽음의 저주를 부여할 속셈으로 보였다.

그러나 제레미는 굳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았다. 자아가 생긴 제레미는 그 이상의 전투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생각 외로 효과적이었다.

상대가 단검을 날카롭게 내밀며 제레미의 방패로 들이치려는 찰나, 제레미가 한쪽 발을 들었다가 땅으로 내리 꽂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지면 강타.]

제레미가 스킬을 사용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제레미가 발구르기로 지면 강타2를 사용합니다.]

[주변의 땅이 거칠게 흔들립니다.]

동시에 땅이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궁!

땅이 흔들림과 함께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도적단원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졌다. 흔들리는 땅을 겪어본 적이 없던 것일까? 그가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넘어지려 했다. 그것도 하필 제레미의 지척거리에서 말이다.

“어……? 어엇……!”

그리고 그것은 그의 불운의 시작이었다.

제레미는 자신의 바로 앞에서 고꾸라지고 있는 도적단원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도적단원은 제레미의 접근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이미 너무나 늦은 순간이었다. 도적단원이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제레미의 방패가 그의 머리를 향해 짓쳐들었다.

잠시 후.

도적단원은 제레미의 일격에 뇌가 흔들려야했다. 죽음의 방패가 그의 머리를 강하게 타격했기 때문이다.

퍼억!

머리가 강하게 타격을 당하자, 아무리 수준이 높은 도적단원이라고 하더라도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폭풍도적단원이 머리에 강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2초간 뇌진탕 상태에 빠집니다.]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2초는 도적단원의 생사를 결정짓기에 충분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도적단원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금방이었고.

털썩.

제레미는 잠시나마 무력화된 그를 위에서 바라보며 죽음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려했더니 이렇게 싱겁게……. 어쨌거나 잘 가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제레미는 죽음의 방패의 모서리로, 도적단원의 목을 향해 내려찍어 갔다. 도적단원은 설마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는지, 급하게 입을 열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할지라도 말은 할 수가 있었나 보다.

“자… 잠깐만……!”

하지만 제레미가 멈출 리는 없었다. 결국 제레미가 내려찍은 그의 방패가, 도적단원의 목을 으깨어 버렸다.

콰직!

제레미가 도적 단원을 처치하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아직은 첫 번째 경기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많은 카르마를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간단하게 끝난 경기치고는 적지 않은 카르마였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소환수가 첫 번째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에게 10,000카르마가 주어집니다.]

어쨌거나 제레미는 그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기에 직접 나선 것이었다. 죽음의 방패에 숨겨진 기능은 사용하지도 못했다.

결국 첫 번째 대전은 걱정과 달리 너무나 간단하게 종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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