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미끼를 던졌을 뿐
마왕이 순식간에 처치되자 시스템이 천사들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알려왔다.
[별다른 희생 없이 마왕을 유인하여 처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전투에 참여한 모든 도전자들의 레벨이 2만큼 상승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충렬의 레벨이 2만큼 상승했다.
[레벨이 25에서 27로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레벨: 27 (다음 레벨까지 270,000 카르마 필요)]
그리고 이어서 놀라운 임무가 주어졌다.
[추가 임무가 발생하였습니다.]
[임무: 마왕성 초토화]
[내용: 마왕의 토벌만이 끝이 아닙니다. 이제 마왕성의 마족들과 그 건물을 모조리 박살 내버리십시오. 다만 주의하십시오, 마왕성의 전체적인 전력은 감히 무너뜨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추가 임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기를 치는 것에 맛이 들린 마렉이 천사들에게 낚시질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어수룩하기는 했지만, 이미 속을 대로 속은 천사들을 또다시 믿게 만들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혀, 형제님들! 마왕이 이룩한 것들마저 모조리 정화를 시켜야 합니다. 방금 마왕성과 마왕의 추종자들을 참회시키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물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시스템의 명을 받은 것은 맞았으니까. 하지만 천사들은 마렉의 말이 천신으로부터 내려온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사들은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마렉과 친분을 다지려고 했다.
“오오! 역시 희생을 주저하지 않을수록 신의 관심을 더욱 받는다더니! 직접 목소리를 전달받는 위치까지 계셨군요!”
“저는 미리엘이라고 해요. 천계의 양떼구름 지역에 살고 있는데, 나중에 한번 방문해 주시겠어요?”
“저… 저희 지역도 방문해 주세요! 저는 하늘 정원에 살고 있거든요! 오시면 제 친구들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마렉은 단기간에 인기남이 되었다. 물론 그 정체를 모르는 천사들이 불쌍하기만 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천사들의 친밀감 표시가 부담스러웠던 마렉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헉.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마왕성부터 정화시키고 이야기할까요? 신께서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우신 분부터 차례차례로 방문하여 포상하라는 명을…….]
하지만 마렉은 차마 말을 끝내지 못했다. 마렉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천사들이 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처, 천신님의 은총을 받을 기회가……!”
“아아! 제가 빨리 가야겠어요!”
“아악! 형제여, 왜 나를 밀치나요. 함께 가요!”
그렇게 결국 천사들은 앞을 다투어 마왕성으로 향했다. 마렉과의 친분도 탐이 나는 것이었지만 천신의 포상이라니! 천사들은 모두가 이대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설마 고작 이런 거짓말이 통할지는 몰랐지만, 너무나 잘 통해서 어안이 벙벙해진 마렉이었다.
마렉은 어느새 충렬의 잔머리를 배워가고 있었다.
***
천사들이 마왕을 처치하기 위하여 떠나자, 주변에 남은 도전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미 천사들이 나타나고 현혹된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모든 도전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야에서 천사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을 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대박이다.”
“처, 천사들마저 부리다니.”
“네크로맨서는 사기 직업이었잖아!”
물론 아이템을 사용해 발생한 상황이었지만, 핑계를 대보았자 믿는 도전자는 없을 것이리라.
“알고 보니 달인급의 도전자 아니야?”
“그러니까. 베테랑이라고 말한 이유는 일부러 실력을 숨기려고…….”
도전자들의 오해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충렬은 다른 이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쓸 겨를이 아예 없었다.
왜냐고?
마왕이 처치되자 그의 육신이 사라지며 정수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범한 정수가 아닌, 무려 마왕의 정수를 말이다.
충렬은 이미 아르타디아의 몸에서 내려 정수의 앞에 서 있었다. 어느새 다크엘프로 변한 아르타디아가 충렬의 옆에서 말했다.
“저 힘을 흡수해라. 지금의 너라면 흡수하는 데 그다지 어렵지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수를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충렬이 접근하자, 정수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마왕 크로슈의 정수: 마왕 크로슈의 ‘영혼’이 담겨 있는 정수다. 마족과 관련된 힘과, 정신계를 50% 이상 개척한 사람만이 흡수할 수 있다. 흡수하면 마왕과 관련된 힘 중에서 일부를 얻는다. 만약 당신의 정신계 개척도가 뛰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마왕의 정수에 당해 새로운 마왕을 탄생시킨다.]
설명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왕의 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물론 설명에는 일부만 얻는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려 마왕의 힘이었다.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으리라. 충렬은 다른 도전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전에, 재빨리 정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시스템이 물어보았다.
[마왕의 정수를 흡수하기에 당신의 능력은 결코 모자라지 않습니다.]
[정수를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하면 당신이 소유한 암흑 투기의 수준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마왕이라는 특성과 당신의 직업을 고려하여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흡수한다.”
그러지 마왕이 남긴 주먹 정도의 크기를 가진 정수가, 충렬의 손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는 것처럼, 곧바로 흡수되었다.
[축하드립니다.]
[마왕의 힘이 당신의 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안락하게 안착됩니다.]
동시에 시스템은 충렬이 강해지는 것을 알려왔다.
[마왕의 정수가 당신의 레벨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당신의 레벨이 3만큼 증가합니다.]
[현재 레벨: 30 (다음 레벨까지 300,000카르마 필요)]
레벨의 상승은 시작에 불과했다.
[암흑 투기의 스킬 랭크가 9랭크에서 8랭크로 상승합니다.]
[암흑 투기를 사용하여 사용할 수 있던 ‘허공 도약’이 ‘공간 도약’으로 바뀝니다.]
[공간 도약: 암흑 투기를 이용하여 원하는 공간으로 순간 이동 한다. 또한 공중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다.]
그렇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암흑 투기에 대한 설명이 바뀌었다.
[암흑 투기 - 8랭크: 발록이 가지고 있던 무척이나 패도적인 어둠의 힘이다. 마왕의 힘까지 더해지며 현재 랭크를 뛰어 넘는 용량을 보유하게 되었다. 체내에 자리 잡은 암흑 투기는 원할 때 그 언제라도 사용할 수가 있다. (방출: 암흑 투기를 일시에 터뜨려 주변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공간 도약: 암흑 투기를 이용하여 원하는 공간으로 순간 이동 한다. 또한 공중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다) (7랭크까지 300,000카르마 필요)]
암흑 투기의 랭크 상승 다음에는, 새로운 스킬의 습득이 주어졌다. 암흑 투기의 내용도 놀라웠는데, 새로운 스킬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마왕의 특성과 당신의 직업을 고려한 새로운 스킬.]
[저주 스킬 ‘데스’를 습득합니다.]
[데스 - F랭크: 단일 대상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려 단시간 안에 사망하게 한다. 데스의 적용은 실패할 확률이 존재하며, 시전자에 비해 수준이 낮은 적에게는 적용될 확률이 증가한다. 또는 스킬의 랭크가 높을수록 적이 저주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 (다음 랭크까지: 특수 이벤트 수행 시, 랭크의 상승 가능) (재사용 대기 시간: 1시간)]
얼마 전에 죽음의 인도자에서 ‘파멸’이라는 기술을 얻은 충렬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파멸과 같이 커다란 대미지를 주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확실히 처치할 수 있는 스킬을 얻어버렸다.
‘데스라니… 이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는 엄청난 스킬이잖아.’
비록 실패할 확률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만약 저주를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상대는 무조건 사망이었다. 무지막지한 스킬임에 틀림이 없었다.
‘더군다나 엄청난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시간밖에 되질 않는다.’
그 말인 즉, 기회만 주어진다면 높은 빈도수로 사용할 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 정도라면 중박도, 대박도 아닌 초대박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는군.’
어쨌거나 충렬이 새로운 스킬 ‘데스’까지 습득하자, 충렬의 직업 수식어가 바뀌었다.
[당신의 수준이 ‘베테랑’에서 ‘일류’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베테랑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류의 수준까지 이룩한 충렬이었다.
***
마왕의 힘을 흡수하는 동안, 다른 도전자들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천사들이 마왕성에 가버리니 더 이상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임무 수행에 모두가 맥이 빠져 있었다.
“하… 진짜 이런 임무도 있는구나.”
“완전 편하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 산호선이었던가? 그것부터가 애초에 사기였어.”
“하긴, 네 말이 맞아.”
도전자들은 오랜만에 임무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시장에 온 것처럼 떠들어갔다. 하지만 영원히 떠들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시스템이 마왕성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천사들이 마왕성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마왕성이 초토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는 마족들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기여도가 낮은 도전자들부터, 차례로 보상을 받으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헉, 벌써 끝났다고?”
“엄청 빠르잖아.”
그렇게 도전자들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임무를 성공시키고 보상을 얻어갔다. 첫 번째로 보상을 받게 된 이가 입을 열었다.
“제기랄, 내가 기여도 꼴찌라니.”
하지만 시스템의 이동이 곧 이루어지는지, 그는 급하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보슈 형씨들!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그럼, 잘들 가!”
그를 시작으로 다음 타자가 입을 열었다.
“헉! 내가 꼴찌에서 두 번째인데 왜 이렇게 보상이 좋아? 이런…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볼걸!”
그리고 이어서 다음 도전자도 헉 소리가 나도록 놀라했다.
“와, 실화야? 이렇게 좋은 보상을 주다니!”
도전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충렬은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아마 그 순서를 보니, 충렬은 맨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수많은 도전자들이 이동하고, 그들의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이동되지 않은 도전자들이 충렬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들은 도전자들끼리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었을 때,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이끌어 나가려던 도전자들이었다. 그리고 마왕의 현혹에 당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네크로맨서님이 아니었다면……. 후우… 상상도 하기가 싫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난다면 정말 영광이겠습니다.”
그들의 말에 충렬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조심히 가십시오.”
충렬을 제외한 99명이 하나씩 이동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충렬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충렬 외에 남은 마지막 도전자까지 결국 이동을 끝마친 것이다.
‘이제 나도 영지로 돌아갈 때인가.’
마지막으로 충렬만이 남게 되었을 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과연 어떠한 보상을 받아갈지 기대가 되었다. 이미 마왕의 정수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어진 시스템의 음성은 심상치 않은 내용이었다. 충렬이 보상을 받기 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알려왔다.
[마신이 천사들에 의하여 마왕의 사망과 주변 일대가 초토화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이야기 되지 않은 천계의 침입에 마신이 분노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마신이 천신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천신은 마신이 수를 쓴다며 그에 대응해 준다고 합니다.]
[앞으로 마계 또는 천계와 친분이 있는 도전자들은 그와 관련된 임무를 새로이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마계와 천계와의 전면전이 시작된다는 정보를 소환된 천사들도 알게 되었던 것일까? 그들은 충렬이 따로 시스템의 음성을 받기도 전에, 이미 이쪽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때문에 충렬이 시스템의 음성을 들을 때쯤에는, 마렉의 시야에 나타날 수가 있었다.
이제 막 충렬이 보상을 받고 떠나려는 그때, 저 멀리서 나타난 천사들이 이쪽에 있는 마렉을 향해 외쳤다. 그들의 음성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자, 잠깐! 혀, 형제여!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 신의 묵시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마렉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외쳤던 천사에게 대답해 주었다.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렉이 선택한 것은 도망이었다.
[하하… 그럼, 이만.]
마렉이 따로 도망치려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충렬에게 보상이 주어지며, 충렬과 그 소환수들이 단지 영지로 이동되어 가던 것뿐이었다.
[도전자 ‘이충렬’ 님. 최고의 공로를 이룩한 당신에게 ‘결사단의 깃발’이 주어집니다.]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신과 소환수들이 영지로 이동됩니다.]
결국 천사들을 이용해 마왕을 처치하자, 천계와 마계와의 전면전이 시작되어 버렸다.
뭐, 충렬과는 상관이 없는 소리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