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아르타디아의 경고가 나오자 모든 도전자들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뒤로 조금 더 물러나자고.”
“안개가 있는 장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해.”
“그래. 마왕이 온다면 굳이 진격할 필요가 없겠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그렇지만 도전자들은 침착하게 대응했고, 충렬 또한 다르지 않았다.
“데프론, 샤오링. 너희 둘은 선두에서 대기해. 나와 함께 마왕을 근접 거리에서 상대한다.”
[알겠습니다.]
“네, 오라버니.”
마왕이 얼마나 많은 마족들을 이끌고 올지 몰랐다. 도전자들이 다른 마족들의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이쪽은 마왕을 직접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마렉, 레일리. 당신들은 제레미를 데리고 다른 도전자들의 상황을 신경 써주십시오. 그들이 무너지지 않아야 마왕을 온전히 상대할 수가 있을 겁니다.”
[맡겨만 주라고.]
“알겠어요.”
충렬은 마지막으로 아르타디아에게 말했다.
“제가 마왕을 상대하는 동안 뒤를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어차피 그녀는 마왕과 마주치는 순간 전력을 다해 싸우려고 할 것이었다.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움직여 줄 것이리라.
케르베로스와 악티니언은 당장에 소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선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렇게 모두가 진영을 정비하고 기다리는 사이, 마침내 때가 왔다. 이제는 시스템이 마왕의 접근에 대해서 알려왔다.
[마왕의 등장에 대비하십시오.]
[그가 곧 마족을 거느린 채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고 많은 마족들을 데리고 오려는 것일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충렬과 모든 도전자들의 손에는 땀이 가득 차올랐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다리는 그때, 모두의 앞으로 검은빛이 번쩍였다.
번쩍임의 크기는 대략 20평을 넘길 정도로, 무척이나 넓은 범위였다.
파앗!
거대한 검은 빛이 번쩍이자 모든 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해!”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하지만 잠시 후, 등장한 마왕의 모습에 도전자들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검은빛이 사라지며 나타난 마왕과 그 병력이 굉장히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마왕 ‘크로슈’, 그리고 그의 수하 하나가 여러분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기를 바짝 끌어당기고 있던 도전자들은 긴장이 풀린다는 듯이 늘어뜨렸다. 마왕이 겨우 마족을 하나만 데리고 오다니. 이렇게 무방비하게 올 줄은 몰라서다.
그랬다. 마왕은 그렇게 고작 마족 하나만을 데리고 등장했던 것이었다.
***
마왕은 지상에서부터 대략 4미터 정도의 공중에 떠 있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웃어재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충렬에게로 향해 있었다.
“크크크크크크크큭. 정말 제 발로 찾아왔을 줄이야! 크하하하하하하!”
뭐가 제 발로 찾아왔다는 것인지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충렬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암흑 투기를 가지고 있는 내가 직접 와서 기쁘다는 소리인가.’
아마 그 추측은 정확할 것이리라. 암흑 투기를 회수하기 위해 마족들이 영지를 침공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크로슈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많은 숫자의 병력이 자신의 앞에 서있음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기분이 좋다는 듯 계속해서 웃었다.
다수의 도전자들을 앞에 두고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마왕. 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인간.”
그러더니 놀랄만한 제안을 해왔다.
“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나에게 그 힘을 양도하거라. 그렇게 한다면 내 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주도록 할 테니까!”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왕 크로슈가 당신에게 수하가 될 것을 제안합니다.]
[크로슈의 수하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이 가진 암흑 투기를 모조리 그에게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 그의 명령에 절대 불복할 수 없는 마인이 됩니다.]
대충 설명을 끝낸 시스템이 충렬에게 물어보았다.
[마왕의 수하가 되겠습니까?]
물론 충렬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절한다.”
충렬의 거절에 신나게 웃던 마왕의 표정이 일순간 싸늘해졌다.
“그래?”
그리고 더 이상은 충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죽어.”
그러면서 마왕이 행동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마왕이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아르타디아였다.
“웃기고 자빠지는 소리를 하고 있군. 네 녀석은 혼자 이곳으로 온 것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곧바로 본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충렬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마왕이 얼마나 강할지는 몰랐지만, 혼자 온 것을 이제 곧 후회하게 될 것이리라. 때문에 더 이상 머뭇거릴 것 없이 데프론과 샤오링에게 말했다.
“가자.”
충렬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파밧!
데프론과 샤오링이 그런 충렬의 뒤를 따랐다. 다른 도전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잠시였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마왕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머뭇거리는 이는 단 하나였다. 그는 바로 마왕을 따라온 마족이었다.
“인간들이 너무 많은데 후속 병력을 기다리는 편이 어떠하…….”
그렇지만 그의 음성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마왕 크로슈가 그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크크큭 오랜만에 제대로 놀아보겠네. 마기 회수.”
마왕이 스킬을 사용하자 머리를 붙잡힌 마족이 비명을 지르려 했다.
“아… 아악……!”
하지만 그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족의 몸은 미라처럼 말라 버렸다. 그리고 말라 버린 몸은 곧바로 비틀어졌다.
설마 자신이 데려온 부하를 희생시키다니, 그 잔인한 성정에 몇몇의 도전자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렇지만 이내 그들의 인상은 더욱 찌푸려져야 했다. 왜냐고? 모든 이들에게 치명적인 상태 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왕을 향해 나아가는 충렬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왕이 입을 열어 스킬을 사용했다.
“어둠의 각인.”
그러자 마왕의 몸으로부터 무척이나 음험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왕 크로슈가 어둠의 각인을 사용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수준으로는 크로슈가 사용한 어둠의 각인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전장에 있는 모든 도전자들에게 어둠의 저주가 각인됩니다.]
충렬은 최근에 얻은 죽음의 인도자라는 장갑이 있었다. 그것은 일정 이하의 상태 이상에 모두 저항하게 해주는 장갑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소용이 없었다. 무려 마왕이 사용하는 저주였으니 말이다.
결국 마왕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에게 어둠의 각인이 새겨졌다. 물론 저주의 대상은 ‘도전자’에 국한되었기에 충렬의 소환수들이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각인은 상황을 무척이나 암울하게 만들어 나갔다.
[지금부터 어둠의 각인에 당한 도전자들이 입는 피해량이 2배로 증가합니다.]
[치유 스킬의 효과가 70% 감소합니다.]
[스킬의 쿨타임이 3배 증가합니다.]
[마왕의 마법에 당할 확률이 월등히 증가합니다.]
[전체적인 움직임이 10%가량 느려집니다.]
[스킬을 사용 시, 15%확률로 실패할 수 있습니…….]
…….
저주가 발생시킨 것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어둠의 저주가 여러분의 영혼을 좀먹기 시작합니다.]
[30분 안에 마왕을 처치하지 못하면 앞으로 마왕의 영원한 노예가 됩니다.]
[마왕을 처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자살을 추천드립니다.]
[30분 안에 자살을 하는 도전자들은 어딘가의 주민으로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시스템의 소식에 도전자들이 수군거렸다. 절반 이상이 걱정스러운 말투를 내비쳤다.
“헉… 영원히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고?”
“지금이라도 자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럼에도 몇몇의 도전자들은 투지를 내보였다.
“고작 마왕 혼자서 뭐를 할 수 있겠어! 그냥 싸워보자고!”
“그래, 일단은 붙어보고…….”
하지만 투지를 내보인 이들의 음성은 곧 절망으로 바뀌어야 했다. 마왕은 많은 수의 도전자들이 자신을 둘러싼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찮은 것들. 그냥 곧바로 나의 노예가 되어라.”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새로운 스킬을 이어서 사용했다.
“현혹.”
동시에 시스템이 장내에 알려왔다.
[마왕이 도전자들에게 현혹을 사용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둠의 각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왕의 현혹 스킬에 당할 확률이 월등히 증가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충렬은 현혹 스킬에 당하지 않았다.
[당신의 정신계 개척도가 무척이나 뛰어납니다.]
[당신은 현혹에 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충렬이 당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도전자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은 무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89명의 도전자가 마왕의 편으로 전향하였습니다.]
[마왕을 처치하기 전까지 그들은 적이 되어 아군을 공격할 것입니다.]
89명의 도전자가 현혹에 당했다는 소식에 충렬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미친……!’
아직 마왕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냥 간단한 저주와 현혹 스킬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
상황이 급변하자 곤란해진 것은 현혹에 당하지 않은 도전자들이었다.
“이봐! 칼! 정신 차려! 나라고!”
“뒤로 빼, 스미스! 이미 적이야!”
현혹이라는 기술 한 번에, 89명이라는 인원이 당해 버렸다. 이제는 결국 마왕의 병력이 이쪽을 압도했다.
때문에 마왕을 향해 달려가던 충렬은 재빨리 발걸음을 멈추었다. 만약 여기서 더욱 시간을 끈다면 포위가 되어 이번 임무는 무조건 실패였다. 마왕 하나를 상대하기도 벅찰 것이 분명할 텐데, 이 많은 수의 도전자들을 상대하기란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충렬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다.’
설마 비장의 수를 일찍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아르타디아가 본 드래곤으로 모습을 변한 상태였다.
충렬이 네임드들과 현혹되지 않은 도전자들에게 외쳤다. 다행히 현혹의 적용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인지, 아직은 거기에 당한 도전자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모두 아르타디아에게 탑승하십시오!”
아르타디아 또한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음을 파악했다. 때문에 다른 네임드들이 올라타기 쉽게 최대한 몸을 굽혔다.
누가 보아도 도망치려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벌레처럼 바둥바둥거리는군. 도망쳐 보았자 내 손바닥 안이다.”
얼마나 여유로웠는지, 그는 현혹시킨 도전자들도 제대로 부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두었다. 덕분에 충렬의 네임드뿐만 아니라, 다른 도전자들까지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르타디아에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물론 도전자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헉. 어떻게 해. 방금까지 함께 했던 이들이…….”
“어쩔 수 없다고. 상황을 봐. 이대로라면 무조건 죽어.”
“크윽. 그냥 자살하는 게 나을까? 도망친다고 해도…….”
하지만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이어서 들려오는 마왕의 말은, 왜 그가 여유로웠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크큭. 생각은 가상하다만 날지 못하게 해주겠다. 결계의 장…….”
그러나 마왕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네임드들과 당하지 않은 도전자들이 전부 아르타디아의 등에 오른 것을 확인한 충렬이, 하나의 아이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아리엘의 깃털을 사용한다!”
충렬이 품속에서 아리엘의 깃털을 꺼내고 말하자, 시스템이 그에 대한 답변을 해주었다.
[도전자 ‘이충렬’이 1회용 아이템.]
[천사 아리엘의 깃털을 사용하였습니다.]
[천계와 연결된 역방향 포탈이 생성됩니다.]
그와 함께 충렬의 앞으로 진동이 일어났다. 그 진동은 바로 포탈이 생성되는 소리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잠시 후, 포탈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천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이 아르타디아에게 외쳤다.
“도망칩시다!”
그러자 그녀는 두말할 것 없이 대답했다.
[알겠다.]
그러면서 즉시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임무의 목표는 마왕의 토벌이었다. 비록 천사들이 마왕을 처치하게 될 지라도, 이쪽이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그 임무는 완수한 것으로 판정되리라. 마왕에게 현혹된 도전자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