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마왕
언제부터였을까? 마왕성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등장하는 마족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탄하게 제거할 수 있었던 외곽의 마원석과는 달리, 중심부에 가까운 마원석들의 제거는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충렬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도저히 찾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녀석들이 숨어 있는 곳은 은밀했고, 까딱하면 곧바로 터져 버리기 일쑤였다.
지금은 마원석이 만든 안개 속에서 열다섯이나 되는 마족들의 공세를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방어막! 방어막을 펼쳐!”
“으악! 누가 치유를 좀 해줘! 알렉스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고!”
“여기 안드레아가 더 급해! 거기 팔은 지혈하고 이쪽부터! 폐를 찔렸어!”
그렇게 간간히 다친 이들이 발생하면, 그곳으로 마렉이 날아갔다. 그리고 다친 이에게 치유 스킬을 걸어주었다.
[마렉이 ‘안드레아’에게 혼돈의 치유를 사용합니다.]
[안드레아의 갈라진 가슴과 폐가 급속도로 수복이 됩니다.]
[안드레아의 소모된 체력이 회복되며 활력이 주어집니다.]
시스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드레아의 상태는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자칫하면 사망할 뻔했던 그였지만, 마렉의 치유 스킬 한 번에 완벽한 회복을 한 것이다.
그 광경에 도전자들이 감탄했다.
“와, 다 죽어가는 걸 살려.”
“분명 1분 전에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어? 재사용 대기 시간이 왜 저렇게 짧아?”
충렬도 나중에 안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렉의 치유 스킬이 다른 도전자들에 비해 엄청난 회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치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월등히 짧았다.
1분이라는 시간이 길어 보일지라도,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시 1분이 흐르고, 마렉은 아까 팔이 잘린 알렉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잘린 한쪽 팔을 붙잡고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윽…….”
그런 그에게 마렉이 말했다.
[이봐, 혹시 모르니까 떨어져 나간 팔을 꽉 붙잡고 있으라고.]
마렉의 요청에 알렉스가 겨우 답변했다.
“윽…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마렉은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혼돈의 치유.]
동시에 마렉으로부터 혼돈의 힘이 흘러나와 알렉스에게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최상의 상태로 바뀌었다.
[마렉이 ‘알렉스’에게 혼돈의 치유를 사용합니다.]
[그의 절단된 팔이 다시 붙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소모된 기력이 모조리 회복됩니다.]
겨우 치유 스킬 한 번에 알렉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최상의 컨디션이 되었다. 물론 마렉 외에도 치유 스킬을 가진 도전자들은 이곳에 많았다. 하지만 마렉의 경우처럼 엄청난 회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보통의 도전자들은 전투 중 발생한 간단한 것들에만 적용하는 중이었다. 이처럼 회복하기 힘든 부상을 당하면 언제나 마렉이 찾아가 치료했다.
덕분에 도전자들은 조금은 안심하고 전투에 임할 수가 있었다. 죽지 않고 목숨만 붙어 있다면, 마렉에 의해 회복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마족들뿐이었다. 도전자들의 방어를 힘들게 뚫고 누군가를 전투불능으로 만들면, 마렉이 다시 회복을 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 좀비보다 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
“또 네 녀석이냐! 그만 좀 덤벼!”
마족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마렉의 존재를 인식한 그들은, 곧 누구부터 처리를 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저 언데드부터 죽여! 저놈이 원흉이다!”
“내가 맡는다! 너희들은 다른 인간들을 막아!”
“무슨 소리! 저 녀석은 내가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하지만 그 광경을 다른 도전자들이 지켜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도전자들은 기적과 같은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는 마렉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수많은 탱커들이 마렉의 앞을 막아섰다.
“흥! 마족 새끼들아!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저분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을 것이다!”
“저분은 우리들이 지킨다고!”
사실 마렉은 죽어도 충렬이 다시 소환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이를 알 리가 없는 도전자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 모습에 마렉이 감동했다.
[이거… 다들 너무 감동적이잖아.]
하지만 감동은 잠시뿐. 마렉은 자신을 목표물로 삼은 마족을 쳐다보며 말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시든가.]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옜다. 벼락이나 먹어라. 혼돈의 징벌!]
동시에 마렉에게 달려들려고 했던 마족의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꽂혔다.
콰과광!
급작스럽게 들이치는 낙뢰에 적중되자, 그 대상이 된 마족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하지만 마족은 죽지 않았다. 이곳의 마족은 마렉의 스킬을 버틸 만큼 무척이나 질겼다. 그런 마족의 모습을 지켜보던 마렉이 고개를 저었다.
[으휴, 바퀴벌레 같은 놈들. 네놈들이 더 지긋지긋하네.]
그러더니 날개를 이용해 마족과의 거리를 벌렸다.
[난 도망간다!]
물론 뒷일은 그가 소환한 발키리에게 맡겼다.
[어이, 발키리! 저 녀석을 상대해!]
마렉의 명령을 받은 발키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움직였다.
[<카오스 발키리1>이 마렉의 징벌에 당한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출격합니다.]
발키리가 출전하는 것을 본 마렉은 즉시 꽁무니를 빼었다. 평소 장난기가 많은 마렉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의 전투 방식은 무척이나 얍삽했다.
마렉의 모습이 멀어지자, 마렉을 지키려고 했던 도전자들은 일순간 침묵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너무나 야비한 모습을 보니,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렉이 안전하면 되었다고 판단한 그들은, 멋쩍어하며 서로에게 말했다.
“쩝… 우린 그냥 돌아가서 다른 마족들이나 상대하자고.”
“그래. 올 필요가 없었네.”
***
마렉과 도전자들.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이 발생하는 동안, 충렬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마족들을 막는 동안, 안개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아직 도전자들이 적극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안개 때문이었다.
마족들은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몸을 숨겨 버렸다. 그래서 반격을 하려면 충렬이 빠르게 마원석을 제거해야 했다.
어느새 한 장소로 도착한 충렬이 오른손에 암흑 투기를 크게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두부에 손을 담그듯. 땅은 무척이나 쉽게 갈라졌다.
푸욱!
충렬이 손을 쑤셔 넣은 장소는 바로 마원석이 숨어 있는 장소였다. 잠시 뒤, 충렬의 손이 땅에서 빠져나오자 오른손에는 거무튀튀한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마원석을 밖으로 꺼내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활성화된 마원석이 지정된 장소를 이탈하였습니다.]
[잠시 뒤, 마원석이 폭파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즉각 마원석을 던졌다. 이전까지는 폭파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무작정 던졌다면, 이제는 달랐다. 마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기 위해 그들을 목표로 삼았다.
“갑니다! 13번 그룹은 주의하세요!”
간다는 소리는 마원석을 던진다는 소리였다. 굳이 마원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마족들이 그 소리를 듣고 도망갈 수가 있었으니까.
어쨌든 충렬의 지목을 받은 파티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괜히 입을 열어 마족의 경계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서로 눈빛을 교환한 도전자들은 충렬의 팔이 움직임과 동시에 서로 그 장소를 벗어났다. 도전자들이 자신을 상대하다 말고 이탈하자, 그들을 상대하던 마족이 비웃었다.
“크큭. 나약한 인간들. 이 몸이 무서워서 후퇴를…….”
물론 마족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충렬에 의하여 직구로 날아간 마원석이 놈의 머리를 강하게 타격했기 때문이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얻어맞은 마족이 이빨을 드러내었다.
“감히 누가…….!”
하지만 그는 누가 자신에게 돌멩이를 던졌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찾기란 불가능했다. 마족의 머리와 부딪친 마원석은, 정확히 0.5초 뒤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펑!
퍼벙!
퍼버버버버버버벙!
마원석의 폭발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반경이 넓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폭파 반경 안에 위치해 있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마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원석을 터뜨려 마족의 상체를 분해하였습니다.]
[마족을 처치하였습니다.]
[전투에 참여한 모든 인원에게 500카르마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원석이 제거되었습니다.]
[인근의 안개가 사라지며 아군의 시야가 원활해집니다.]
[도전자들에게 적용되었던 각종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주변의 안개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안개가 사라지자 도전자들이 목을 풀었다.
뚜둑.
뚝.
그러면서 숫자가 적은 마족들을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방어만 한다고 좀이 쑤셔서 뒈지는 줄 알았잖아.”
“쥐새끼 같은 자식들.”
도전자들의 흉흉한 모습에 마족들이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쥐… 쥐새끼는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인……!”
하지만 마족들이 반론을 제기할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도전자들은 이미 사방에서 마족들을 에워싸며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반격이 시작되었다.
***
마지막으로 상대한 마족의 숫자가 열다섯이었다. 만약 녀석들의 숫자가 여기서 조금만 더 많았다면, 그랬다면 정말 미친 듯이 힘겨운 전투가 이어질 터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혹시라도 만약에 앞으로 더욱 많은 마족들이 나타난다면, 이제부터 분명히 희생이 발생한다.’
지금은 간신히 물량으로 밀어붙일 뿐이었고, 이후에 마족들의 수가 더 많이 등장하면 힘들었다. 더 이상은 물량으로 밀어붙이기가 어려울 것이리라.
결국 연전연승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충렬과 도전자들이었지만, 긴장은 갈수록 배가되었다. 육체적으로 지치는 것보다, 정신적인 압박감이 더욱 도전자들을 위축시켰다.
그렇지만 도전자들이 절망하는 일은 없었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충렬과 그의 수하들이 앞에서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주위를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때였다. 충렬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마족들의 기운을 감지하던 아르타디아의 두 눈이 급격히 뜨여졌다.
“……!”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인지한 충렬이 한쪽 손을 가볍게 들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아르타디아가 마족들의 접근을 파악했나 싶어서다.
“잠시 멈추십시오.”
그러나 그녀는 의문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내뱉는 그녀의 음성은 무척이나 놀랐다는 어투였다.
“녀석이 직접 이리로 온다!”
아르타디아는 도대체 왜 놀랐던 것일까? 그녀의 놀람에 충렬이 물어보았다.
“녀석이라고요?”
그러자 충렬의 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모든 일행들에게 경고했다.
“마왕이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