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78화 (178/237)

# 178화.

***

미니맵에는 마왕성의 위치도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항로를 설정하여 바닷길을 나아가던 것보다, 더욱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더군다나 거리만 먼 것이 아니었다. 마족들이 심어놓은 각종 마원석들과, 간혹 기척을 감추고 습격하는 마족들 또한 간간히 존재했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터였다.

이곳의 마족들은 모두가 강했다. 약한 존재가 없었다. 마족 하나의 전투력은 이곳에 있는 파티 하나의 전투력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것도 다른 스킬 없이,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만 말이다. 그래도 전투는 어렵지 않게 할 수가 있었다. 당장에는 그렇게 많은 마족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아봐야 나타나는 마족의 수는 고작 다섯에서 여섯이 전부였다. 보통은 둘씩 붙어 다녔다. 아마 섬의 외곽이기에 아직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마원석으로 인한 안개가 건재했다면 하나의 마족을 상대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희생이 발생할 터였다. 그렇지만 충렬로 인하여 그러한 페널티는 사라졌다. 충렬이 마원석의 위치를 파악하고 곧바로 알려주니 페널티가 생길 턱이 없었다.

결국 충렬과 도전자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이동하는 동안 곳곳에는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마수들 따위는 그냥 마기를 머금은 몬스터일 뿐이었다. 상대하기는 마족보다 훨씬 쉬웠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동하는 도중, 아르타디아가 충렬에게 마왕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었다.

“마왕은 하나가 아니다. 마계에는 많은 수의 마왕들이 존재하지.”

동시에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알려오는 것은 조금 놀랄 만한 정보였다.

“지금 만나러 가는 마왕은 무척이나 세력이 약한 마왕이다. 잔챙이 같은 마족들을 부리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지.”

도전자들에게 있어서 이곳의 마족들은 전혀 잔챙이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입장에서야 그럴 뿐이었다. 어쨌거나 이 정도의 세력을 가진 마왕이 약한 정도라면 다른 마왕들은 어느 정도일까? 감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나저나 나도 대충 세력의 강함을 나누는 척도만 알 뿐, 지금 만나러 가는 마왕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충렬은 아르타디아를 통해 마왕에 대한 힌트를 얻어 볼까도 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녀를 통해 마계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굳이 그녀를 괴롭히지 않아도 이곳의 마왕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가 있었다.

수많은 묘비들 중 간혹 마왕을 상대해 본 이들이 남긴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그렇게까지 도움이 되는 글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왕성과 가까워지면 확인할 수가 있겠지.’

분명 그곳에도 묘비는 존재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렇게 충렬은 아르타디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을 계속해 나갔다. 간혹 마족들이 한 무리씩 나타난다고 한들 걱정은 되지 않았다. 녀석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이상 이쪽의 압도적인 물량으로 찍어 누르면 되었으니까.

***

불빛 하나 밝혀지지 않은 어두컴컴한 왕좌. 그곳에는 회색의 피부를 가진 젊은 청년이 앉아 있었다. 생김새로 본다면 영락없이 평범한 마족이었다. 입고 있는 옷 또한 어디에서나 볼 법한 간단한 옷이었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었다. 그는 무려 마왕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왕좌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건너편에는 많은 수의 마족들이 도열해 있었다.

마왕의 앞에 선 마족들 중 대부분은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들의 분위기는 자못 심각했다.

특히 지금 마왕의 기분은 상당히 언짢은 듯 보였다.

“그깟 암흑 투기 하나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화가 난 마왕이 마족 하나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마왕의 시선을 받은 마족이 갑자기 호흡을 하지 못했다. 단지 한 번의 시선이었을 뿐인데 그 압박감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커헉……!”

하필 마왕의 시선에 닿았던 것이 실수였다. 그 마족은 곧 자신의 목을 부여잡더니 마왕을 보고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크으윽… 제발……!”

제발 살려달라는 소리겠지. 그러나 마왕은 솟구치는 짜증을 어딘가로 발산해야만 했다. 때문에 아쉽게도, 그 마족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잠시 뒤.

호흡을 하지 못해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마족.

그의 목이 비틀어졌다.

콰드드드득.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어떻게 비틀어진 것일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마왕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순히 짜증 난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했던 마족은 불쌍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왕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마음대로 하던 마왕이었다. 그런데 원하던 일이 성사되지 않으니 화가 풀릴 리가 없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수의 마족들까지 투입을 시켰는데도 말이다.

“그동안 공들여 키운 마수들도 모조리 날려 버리다니! 이 버러지 같은 자식들!”

그런 이유로 마왕은 다음 화풀이의 대상을 찾아 나섰다. 마왕의 눈에는 방금 처치한 마족의 왼쪽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다른 마족이 보였다.

“너도 죽어!”

짧은 말과 함께 마왕이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러자 마왕과 눈이 마주친 그 마족이 경악했다.

“아… 안……!”

하지만 다행히도 그 마족은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안 된다는 말을 채 내뱉기 전에 누군가 마왕을 제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흰 수염이 풍성하게 난, 중년인의 모습을 가진 마족이었다. 귀족 신사의 옷차림을 한 그가 마왕의 힘을 중간에 차단했다.

“고정하시지요.”

마왕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그가 입을 열자 그제야 무의미한 살생을 멈추었다. 다른 마족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일까? 그가 자신을 제지함에도 마왕은 화를 전혀 내지 않았다.

“에드워드. 저것들이 일처리를 짜증 나게 하잖아.”

에드워드. 그는 전대 마왕을 보좌하고 현재의 마왕을 어릴 때부터 키워온 이곳의 2인자였다. 그런데 곧 놀랄 만한 일이 발생했다. 그의 다음 행동은 마왕이 행했던 것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죽이시니까 위엄이 서지를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마왕답게 이렇게 죽이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방금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마족을 한쪽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마광포.”

동시에 그의 손가락으로부터 응축된 마기가 쏘아졌다. 마치 레이저가 쏘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피융!

쏘아진 마기는 단숨에 대상 마족을 포함한 그 뒤에 도열해 있던 마족들까지 모두 꿰뚫었다. 그 수가 대충 10이라는 숫자를 넘어갔다. 마족들이 피할 틈은 없었다. 적중된 마족들은 그 즉시 한줌의 재가 되어 명을 달리했다.

일직선상의 모든 마족들이 먼지가 되자, 그 주변에 위치한 마족들은 더욱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잘못한다면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아서다.

그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에드워드는 장내를 슥 훑어보더니 마왕에게 이어서 말했다.

“보십시오. 단번에 죽여야 더욱 위엄이 서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신보다 더욱 악독한 모습에 당황한 이는 오히려 마왕이었다. 마왕은 마족들보다 더욱 당황했다. 기분이 나쁘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많이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냥 본보기로 몇몇을 괴롭게 죽이려고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많은 수의 살상이 발생했고, 마왕은 당황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알았어.”

그러던 그때였다. 마왕성 내부에서 한창 피바람이 불고 있을 때, 한 마족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얼마나 급한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일까? 그는 주변의 심각한 분위기에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발을 들였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마왕에게 보고했다.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다급했다.

“인간들이 침략해 왔습니다!”

그의 보고에 마왕과 에드워드의 표정에 의문이 가득했다. 고작 인간들이 침략해 왔는데 이렇게 부산을 떨 일이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보고를 들어본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서… 서쪽 지대의 마원석들이 모조리 털렸습니다! 100명에 해당하는 인간들이 무척이나 조직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마족의 보고에 마왕은 조금 흥미를 가졌다.

“예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들이 침공해 오더니. 요즘 들어서 뜸했단 말이야.”

에드워드가 마왕의 말에 대답했다.

“예. 인간들이 이곳을 오지 않은 지도 정작 반년. 아니, 반년을 조금 더 넘겼지요.”

“더군다나 100명이 한꺼번에 오다니. 그 정도의 인원이 지금까지 왔던 전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었지?”

인간들의 위협적인 진격에도 마왕의 표정은 태평했다. 오랜만에 재밌는 일을 발견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약간의 흥미를 가졌을 뿐. 마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보고에 의하여 마왕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암흑 투기를 가진 자가 인간들의 무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암흑 투기. 그 단어는 마왕을 현혹케 하는 마력이 있었다.

“뭐라!”

물론 마왕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기뻐서였다.

“크크크크크큭. 죽을 곳인 줄도 모르고 제 발로 찾아왔군.”

마왕은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끊임없이 웃어재꼈다. 그러더니 곧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고 보고하기 위해 달려온 마족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자, 안내해라. 그 인간이 있는 곳으로 말이야.”

마왕이 직접 나서려 하자 에드워드가 만류했다.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시지 마시지요. 아직 전대 마왕님의 힘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성을 벗어나면 힘이 극도로 약해지실 것입니다.”

하지만 마왕은 에드워드의 충언에도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힘이 약해진다고 한들, 설마 인간 따위가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마왕의 반응에 에드워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노련하게 마왕을 다루는 그라도 지금의 상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마족들이라도 데리고 가시지요. 저도 함께 가드리고 싶지만 마왕성을 벗어날 수가 없는 몸이다 보니…….”

에드워드의 걱정에도 마왕은 거절했다. 그는 거추장스럽게 마족들을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괜찮아. 기다리고 있어. 곧바로 암흑 투기를 되찾고 올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마왕은 머뭇거리는 마족을 채근했다.

“뭐 해? 어서 안내하지 않고.”

그러자 마족은 연신 에드워드의 눈치를 보면서도 감히 마왕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왕은 안내하는 마족 하나만을 데리고 충렬과 도전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왕성을 나섰다. 하지만 마왕은 이 결정이 곧 후회가 되는 결정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