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상륙
마왕성이 있는 섬까지 가는 도중에는 총 2가지의 위험이 있었다. 하나는 독수로 이루어진 바다였고, 다른 하나는 해양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충렬과 도전자들은 그런 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매우 안락한 항해를 할 뿐이었다. 독수는 산호선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고, 몬스터들 또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충렬은 항해하는 도중 제법 쏠쏠한 카르마를 챙길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초반에만 해도 악티니언의 활약에 적지 않은 카르마를 얻어갔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악티니언이 너무나 쉽게 사냥을 했던 탓일까? 몬스터들은 그 어떤 접근도 하질 않았다. 자신들의 서식지 한가운데로 충렬의 산호선이 지나가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충렬의 산호선을 꺼려하며 거리를 벌렸다.
‘이러면 조금 곤란한데.’
악티니언이 수중에서 산호선을 호위하며 이동하자, 몬스터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던 것이다. 특히나 시스템이 알려오는 소식은 조금 당황스러운 종류의 것이었다.
[산호선에 악티니언의 냄새가 진하게 묻었습니다.]
[‘크레이지 고비’들이 바다 포식자 악티니언의 냄새를 뒤늦게 인식하였습니다.]
[녀석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당신의 산호선과 거리를 벌립니다.]
[앞으로 당신이 탑승한 산호선은, 일반적인 수준을 가진 해양 몬스터들의 접근으로부터 당분간 안전합니다.]
이제는 악티니언을 역소환해도 더 이상은 사냥이 불가능했다. 설마 녀석의 체취가 산호선에 영향을 끼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흐음. 이거 너무나 강력한 소환수를 얻어도 문제가 있네.’
그래도 수중 몬스터를 포획할 기회가 생겼을 때, 악티니언을 선택한 것은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면, 이후에는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안락한 항해도 무리 없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이제 얼마가지 않는다면 금방 마왕성이 건설된 섬의 해안가에 다다를 것이리라.
***
곳곳에 묘비들이 수두룩한 것과 달리, 충렬과 도전자들은 너무나 편안한 항해를 하였다. 그러나 평온한 항해도 거기까지였다. 지금부터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저 멀리에 드디어 해안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을 유령 선원 발라무트가 알려왔다. 그는 충렬에게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영주님.]
그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주세요.”
충렬이 가리킨 방향은 시스템이 표시해 준 경로의 끝자락이었다. 드디어 상륙의 기회가 찾아와서인지 도전자들 또한 각자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너무 편하게 왔어.”
“이제부터는 슬슬 긴장들 하자고.”
“아까 오는 도중 분담한 역할들을 까먹지 마.”
“특히 보조 탱커들은 원거리 딜러나 서포터들 잘 지켜야해.”
“맡겨만 줘. 확실히 지켜줄 테니까.”
도전자들은 이곳까지 오면서 역할 분담을 대충이나마 끝낸 상황이었다. 처음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들도 어느 정도는 헬리오스에서 구르고 구른 이들이었다. 이런 대처는 기본적으로 할 수가 있었다.
어쨌거나 상륙 지점을 보니 딱히 별다른 존재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일이었다. 해안가 외의 지역은 온통 안개로 가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누가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했으니까.
그렇게 미지의 영역에 도착해가는 도전자들은 산호선이 정박하기만을 기다렸다.
***
해안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잠시 뒤, 그곳까지 정박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산호선이 마침내 해변의 한 장소에 정박하고, 모든 이들이 하선하자 충렬이 발라무트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영지로 돌아가세요.”
충렬의 말에 발라무트가 유령선원들을 대표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발라무트와 유령 선원들, 그리고 산호선이 순간 번쩍였다.
파앗!
그러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유령 선원들과 함께 산호선의 모습이 사라지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따로 알려왔다.
[산호선, 그리고 발라무트와 그 외의 유령 선원들이 영지로 되돌아갑니다.]
[영주의 반지 재사용 대기 시간이 22시간 11분 남았습니다.]
영주의 반지는 24시간이라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존재했다. 때문에 지금은 영지의 인물들 중 그 누구도 다시금 소환할 수가 없었다. 물론 충렬은 소환할 생각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가지고 있는 것들로만 임무를 수행해 나아간다.’
솔직히 충렬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마왕을 절대 상대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믿는 수가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했던 아이템을 사용할 때다.’
그랬다. 충렬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사 아리엘의 깃털이었다. 해골왕 레오를 도우는 임무에서 아리엘을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사용할 일이 없었다.
아리엘의 깃털은 포탈을 열어 천사들을 소환하는 아이템이었고, 충렬에게는 천계의 천사들을 쏟아져 나오게 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왕의 토벌이 정 안 된다 싶으면 그곳에서 사용할 생각이었다.
‘최소한 깽판이라도 쳐야지.’
분명 마왕과 천사들은 친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미 천사들의 성격을 겪어본 충렬은 그들이 다른 종족과는 화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천사들을 소환해 봤자 분명 나를 죽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아리엘을 처치한 사람은 명백히 충렬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쪽은 마족들을 이용해서 천사들을 처리하고, 동시에 천사들을 이용해서 마왕과 마족들을 괴롭히면 되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깽판을 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충 간을 보다가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깃털을 사용해야겠지.’
충렬도 쓸데없이 아이템을 낭비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육지를 향해 더욱 발걸음을 옮겼다. 충렬이 앞서자 네임드들이 그 뒤를 따랐고, 나머지 도전자들이 각각 균형이 잡힌 파티를 이루어 뒤따라왔다.
***
도전자들의 파티는 한 파티당 적게는 4명, 많게는 6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의 파티에는 탱커, 딜러, 서포터에 특화된 직업이 기본이었으며 추가적으로 다른 종류의 직업들이 섞여 들어갔다.
충렬은 따로 파티를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사람과 팀을 이룰 필요가 없었다. 혼자서 이미 하나의 파티 수준은 넘어가는 무리를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 현재는 충렬을 제외하고 총 20개의 파티가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파티 하나에 인원을 너무 적게 편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최대한 숫자를 쪼개어서 파티를 구성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팀으로 나뉘어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성까지는 그냥 향하지 못합니다. 안개가 앞을 가리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진해집니다.
-나중에는 코앞의 거리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임.
-이곳에 있는 마족들과 마왕은 안개의 방해를 받지 않아요.
지금부터는 흩어져서 안개를 제거해야 했다. 안개는 어떻게 제거하느냐고? 이미 앞서간 선배들의 발자취가 그에 대해 알려주었다.
-마족들이 심어놓은 마원석들을 찾아 파괴해.
-그럼 그 지역의 안개는 사라질 겁니다.
-안개를 제거하지 않고 전진하면 결국 전멸.
-농도가 진한 안개는 각종 디버프도 부여한다.
뱃길로 오면서도 발견한 정보였지만,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묘비들은 ‘안개’의 제거를 거듭 강조했다.
특히나 이곳에 있는 묘비들은 더욱 좋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여기에는 마원석들이 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힌트가 적혀 있었다.
-마원석은 위치는 랜덤. 원석 주제에 스스로 움직임.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지는 않아.
-주로 푹신한 땅 아래에 30센티미터 밑에 위치해 있다.
-ㅇㅇ움직이기 때문인지 녀석들은 고른 지반을 좋아함.
물론 알려주는 것은 마원석들의 위치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종류의 것인지도 알려주었다.
-성인 남성 주먹 정도의 크기를 가진 돌멩이인데 제거할 때 조심해라.
-잘못 건드리면 지뢰를 밟은 것처럼 터짐.
-실수하면 폭파에 휩싸여 죽는다. 진짜 조심 ㅋㅋ
-물론 살아남아도 그 소리를 듣고 근처의 마족들이 몰려온다.
그 글과 함께 마원석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한 설명도 있었다. 흑색의 동그란 돌멩이. 바로 그것이 마원석이었던 것이다.
충렬이 따로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도전자들은 그들끼리 역할을 나누어 움직였다.
“자, 이제부터 흩어져서 돌멩이들을 제거합시다.”
“1에서 10까지 해당하는 파티들이 먼저 수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11번에서 20번까지의 팀은 혹시나 접근할 마족들에 대비해 주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도전자들 중 하나가 충렬에게 말했다.
“네크로맨서님께서는 쉬고 계십시오. 저희가 길을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충렬은 도전자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보유한 암흑 투기가 마원석들이 발생시킨 안개의 시야방해 효과를 무효화시킵니다.]
[마원석의 안개 내에서도 당신의 시야는 건재합니다.]
[더불어 각종 부정적인 효과들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멀리 있을 때만 해도 충렬 또한 안개의 내부를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안개에 진입하자, 체내에 존재하던 암흑 투기가 안개와 반응하면서 모든 시야가 드러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원석으로 추정되는 것들의 위치 또한 충렬의 시야로 드러났다. 땅 위로 어두운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곳. 아마 그곳이 바로 마원석이 위치한 장소이리라.
‘암흑 투기가 발록의 힘이라서 그런 것인가?’
아마도 그 때문에 이런 이점들을 챙겨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충렬은 자신이 현재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즉시 파악했다.
‘일을 빨리 진행시켜야겠군.’
이곳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일은 전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충렬이 입을 열었다.
“그냥 1팀부터 20팀까지 마원석 제거에 착수해 주십시오. 마원석의 위치와 마족들의 접근은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네크로맨서님께서는 혹시 다 보입니까?”
다 보이냐는 말은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안개의 방해를 받지 않고 모든 시야가 보이느냐, 그리고 마원석의 위치가 정확히 보이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충렬은 도전자들의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었다.
“예. 다 보입니다.”
그러자 도전자들은 이제 해탈했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네크로맨서님. 직업 수식어가 베테랑 맞아요?”
“베테랑은 무슨. 이미 일류 이상인 것 아냐?”
“하아… 이젠 더 놀랄 것도 없네.”
“긴장이 하나도 되지 않는구만.”
그렇게 예전 임무에서 고생을 했던 만큼, 충렬에게 행운은 덮쳐서 찾아왔다. 결국 충렬로 인하여 마왕성으로 진격하는 도전자들의 무리는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되지 않을 것 같이 보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