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75화 (175/237)

# 175화.

***

이곳에 모인 이들의 목표는 같았다. 마왕의 토벌. 오로지 그것과 관련된 이들만 모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존이 걸린 순간부터, 마왕성 침공이라는 고귀한 목표 따위는 잊혀졌다.

그래도 이성적인 몇몇이 분위기를 바꾸어보려고 시도했다.

“잠깐! 전부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이대로 욕심을 부린다면 최소 절반 이상은 생매장된다는 소리잖아!”

“그래! 일단 평소처럼 묘비를 먼저 살펴서……!”

물론 100명이라는 사람이 모여 있다 보니 미꾸라지 같은 인간들은 반드시 껴 있었다. 그리고 그 인원은 제법 많았다.

“흥! 어쩌라고!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래! 가만히 있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이제는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충렬은 네임드들과 자리를 피하며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충렬은 굳이 먼저 나서서 상황을 처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지켜본 다음에야 상황을 알맞게 처리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일단은 다른 무엇보다도 묘비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

상황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각 나룻배의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은 탓에, 사람들은 최대한 많은 나룻배를 부수고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몇몇의 실력 좋은 이들은 벌써 나섰다. 그들이 나서자 나룻배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충렬은 나룻배의 숫자가 줄거나 말거나 관심을 주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저런 광기에 참여할 때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나 많은 묘비들이 보였다.

-빨리 다른 나룻배를 부수고, ㄱㄱ.

-2개만 부수면 무난하게 목적지까지 항해 가능. 3개면 편안.

-개꿀. 나룻배 4개 부수고 출발했더니 졸라 튼튼.

-그런데 왜 죽으셨나요?

처음에만 해도 나룻배를 부수고 이곳을 벗어났다는 이들의 글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곳을 벗어났는데도 죽었다면 이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나룻배로 안전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야.’

나룻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야 이 씨발 새끼들아. 나룻배 부수지 마라.

-맞아. 분명 다 함께 할 방법이 있는데 왜…….

-아, ㅡ_ㅡ 멍청한 새끼들. 지들만 살겠다고 부수고 튀어버리네.

-목적지까지 가면 뭐 하냐. 혼자 가면 그냥 뒈짐 ㅋㅋㅋㅋㅋ

-ㅇㅇ. 미안하다. 나도 먼저 간 놈이다. 이거 이기적으로 가면 전멸임.

-ㅋㅋㅋ. 개꿀.

-레알 인정. 꼴좋다, 개새끼들.

주변을 둘러보고 먼저 묘비만 살폈어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기적인 인간들로 인해 이제 곧 먼저 떠나는 이들이 생길 것이었다. 특히나 어떤 묘비에서는 핵심적인 글이 쓰여 있었다. 단체로 죽었는지 그들의 글은 서로 이어져 있었다.

-숨겨진 요소 있습니다. 저희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3명이 있었는데.

-그 새끼들이 나룻배 97개 부수고 3개로 지들끼리만 감.

-그런데 90명 이상이 떠나지 못하고 남게 되니 새로운 이동 방법이 생겼습니다.

-네, 그리고 잘 찾아보면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도 많아요.

-다만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에 시스템이 먼저 알려준 듯합니다.

-핵심은 마왕성에 도착하고서 인원이 적으면 절대 못 깸. 다 함께 살아서 가야함.

묘비들의 핵심적인 글을 읽은 충렬은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 이대로 관망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군.’

대충 묘비의 분위기를 살펴보니, 최대한 많은 인원이 살아서 건너가는 것이 좋아 보였다. 굳이 나서는 것은 싫었지만 충렬은 나서기로 했다. 남을 위해서?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이후에 마왕성으로 향했을 때, 힘들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계산을 끝마친 충렬이 입을 열었다. 결단을 내렸다면 행동으로 실천할 때였다.

“데프론.”

[부르셨습니까?]

물론 충렬은 나룻배를 모조리 부수는 방법을 택했다. 애초에 도전자들이 개인 플레이를 할 수 없도록, 모든 경로를 차단하고자한 것이다.

“가서 나룻배들을 모조리 부수고 와.”

충렬의 명령에 데프론이 물어보았다.

[전부 다 말입니까?]

이제 막 도전자가 오르기 시작하는 나룻배는 어떻게 하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 하나도 남김없이.”

***

충렬은 데프론에게 대표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네임드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데프론을 뒤따라 다른 네임드들이 나룻배를 부수기 위해 움직였다. 소환된 해골 보병들과 마법사들도 거기에 동참하니, 하나의 군대가 나선 셈이었다.

특히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르타디아였다. 그녀는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다크엘프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본 드래곤 아르타디아>가 다크엘프의 모습에서 본 드래곤으로 돌아갑니다.]

비록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변하는 것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드래곤으로 변하자, 그러지 않아도 비좁았던 장소는 따로 설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도전자들 또한 갑작스럽게 해골용이 등장하자 당황했다.

“저, 저게 무슨……!”

“어째서 본 드래곤이 이런곳에……?”

“헉! 누군가의 소환수잖아!”

“네크로맨서?”

도전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아르타디아가 이곳에 있는 전원에게 자신의 음성을 전달했다.

[지금부터 나룻배를 타고 가려는 인간들은 목숨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을 테니 말이지.]

그녀의 협박에 도전자들은 전원이 일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본 드래곤을 과연 혼자서 어떻게 상대한다는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자살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르타디아가 도전자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나머지 네임드들은 착실히 나룻배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나룻배를 하나씩 박살 낼 때마다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데프론이 나룻배 하나를 박살 내었습니다.]

[이후 당신이 사용하게 될 나룻배의 내구성이 일정량 상승합니다.]

[마렉의 발키리가 나룻배 하나를 박살 내었습니다.]

[이후 당신이 사용하게 될 나룻배의 내구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레일리의 해골 마법사가…….]

…….

그렇게 대략 10초 정도가 흘렀을까? 10초 만에 충렬의 무리들이 나룻배 30개 정도를 박살 내었을 때였다. 충렬이 아니더라도 이전에 다른 도전자들에 의해 많은 나룻배가 박살 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고작 30개 정도만을 박살 내었음에도 이젠 나룻배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아르타디아에게 시선이 끌려 있던 도전자들도 잠시 후, 나룻배의 숫자가 순식간에 줄었다는 것은 곧 인지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충렬의 행동을 오해했다.

“자. 잠깐! 이 정도 부수었으면 되었잖아! 네가 탈 나룻배 정도는……!”

“그, 그래 이만하면 충분히 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말로만 간절하게 말할 뿐이었다.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는 충렬의 소환수들에게 감히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룻배들의 숫자가 아무리 줄어든다고 한들, 당장 눈앞의 폭력이 무서운 법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대로 더 강압적으로만 나간다면 곧 저항하는 이들이 발생할 터였다. 그러지 않아도 몇몇의 도전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나룻배라도 탈취해서 탈출하자는 뜻이리라.

충렬 또한 이들과 반목을 하고 나아가자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강압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오는 장소다. 괜히 100명이라는 인원이 오는 것이 아니야.’

그래도 굳이 이쪽이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충렬은 괜한 설명은 입이 아프니 도전자들에게 말했다.

“나룻배 따위를 타고 이동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주변의 묘비들부터 살펴보시죠.”

충렬의 말을 꺼내자, 터질 것 같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잠시나마 정지되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표정이 좋지 않았던 도전자들이 수군거렸다.

“아, 다른 방법이 있어서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나?”

“그래, 그러고 보니 이곳에도 묘비가 있었잖아.”

“그것부터 살폈어야 했는데.”

“일단 둘러보자고.”

***

도전자들이 묘비의 글을 읽어가는 동안, 충렬은 나머지 나룻배들을 모조리 부수었다. 나룻배에 탑승하고 출발하려고 했던 이들도, 이미 강제로 끌어 내려진 상황이었다. 결국 100명이 남게 되고 나룻배는 단 한 척도 없어지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더 이상 나룻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00명의 인원이 아무도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3가지 방법이 임의적으로 등장합니다.]

[‘해안수로’의 길이 개방됩니다.]

[해안수로: 마왕성까지 마법 터널로 이루어진 길이다. 그러나 기괴망측한 몬스터들이 많이 서식하기에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피의 제단’이 중앙에 생성되었습니다.]

[제물의 제단: 30명의 영혼과 그 피를 바치면 마왕에 반하는 세력의 도움을 받아 안전히 이동할 수가 있다. 하지만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마족들을 믿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공간 이동의 방’이 개방됩니다.]

[공간 이동의 방: 주어진 고난을 극복하면 마왕성의 인근까지 이동시켜 준다. 단, 어떤 고난이 주어질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시스템의 음성에 묘비글을 잘 읽어가고 있던 도전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정말로 있긴 했네.”

“찾아보면 시스템이 알려준 내용 말고 다른 방법들도 있는 것 같아.”

하지만 긍정적인 음성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씨발, 이게 뭐야. 결국 다 같이 가도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냥 편하게 나룻배를 타고 가고 싶었는데…….”

“나도 그 정도 실력은 되었다고!”

불만을 표시한 몇몇은 무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충렬에게 따지기 위해 다가왔다. 아무리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소환수들이 있다고는 하나, 자신과 의견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겁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이봐! 어쩔 거야! 힘들게 가야 하게 되었잖아!”

“책임져! 이동하는 도중에 사망하기는 싫으니까!”

“나는 희생할 생각이 없…….”

하지만 그들의 음성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그들의 철없는 항의에 레일리가 발끈했기 때문이다.

“다 큰 사내들이 쫑알쫑알. 시끄럽네요. 그냥 알아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면 안 되나요?”

그러면서 그녀는 한 손에 파이어 볼트를 생성해 띄워 올렸다. 더 이상 충렬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면 공격하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리고 그 협박은 레일리만이 아니었다.

“그러게요, 언니.”

어느새 레일리를 언니라 하며 따라다니는 샤오링 또한 마검을 곧추세우며 도전자들을 경계했다.

그녀들의 모습에 개념이 없는 도전자들이 선동을 시작했다.

“이것 보라고! 분명 자기들이 편하게 가려고 이렇게…….”

그들의 말대로 충렬은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힘든 길을 이용해 갈 생각이 없었다. 선동해 오는 도전자들의 말에도 발끈하지 않았다. 머저리 같은 장단에 놀아날 시간도 아까웠다.

충렬이 선택한 것은 산호선을 바로 타고 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때문에 충렬은 산호선을 소환하기 위해서 곧바로 영주의 반지를 사용했다.

[영주의 반지를 이용하여 영지에 머물고 있는 ‘산호선’을 소환합니다.]

[산호선을 조종할 유령 선원들도 함께 소환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러자 부서진 나룻배들의 파편 사이로, 빛이 번뜩였다.

번쩍!

빛이 사라지자 그 크기가 범상치 않은 선박이 순식간에 등장했다. 3개의 마스트를 가진 중형 범선급의 배였다. 100명이라는 인원은 충분히 탑승시키고도 남을 크기였다.

거기다 드워프들의 기술과 머메이드들의 각종 산호들로 이루어졌기에, 무척이나 튼튼하고 예술적으로 보이는 배였다.

[산호선과 발라무트 외 13의 유령 선원들이 함께 소환됩니다.]

산호선이 갑자기 소환되자, 떠들썩하기 시작했던 장내엔 또다시 침묵이 발생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다들 의문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길게 가지 않았다. 결론은 충렬이 이용하기 위하여 소환한 선박이었으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게 거대한 산호선을 소환시킨 충렬이, 방금 정치질을 하려 했던 도전자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타기 싫은 사람 있습니까? 아까 누구 있던 것 같던데.”

충렬의 물음에 후회할 짓을 할 뻔했던 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방금까지 자신이 했던 짓들로 인해 함께 가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방금 선동질을 하려던 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염치없이 충렬에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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