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뱃길
비솔라 덕분에 안전하게 피신해 있던 아이들과 비전투 인원들은 얼마 있지 않아 돌아왔다. 충렬과 혈맹원들은 며칠간 임무에 참여하지 않고, 영지를 재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제는 더 이상 위협이 발생하지 않았던 탓일까? 영지는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그렇지만 놀고 있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중간에 멈추었던 마법 학교의 건설도 다시 시작해 완성했고, 이제는 성벽을 쌓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초 공사를 시작했다. 기존의 급조된 방어 시설을 철거하고서 말이다. 해골왕이 지원해준 병력들을 굴리니 대규모 공사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물론 완벽한 성채를 건설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요새 수준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평화로운 기간 동안 박해일은 충렬에게 하나의 선물을 주었다.
[자, 어때?]
평소처럼 여관에 있다가 박해일을 따라 나온 충렬. 충렬은 눈앞의 광경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영지의 한 곳에서 대충 큰 공사를 한다고는 알고 있었다.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들고, 그리고 제법 큼지막한 건물도 짓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냥 짓는구나, 하고 생각할 뿐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데 설마 그것이 선물인지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원래 가장 먼저 이것부터 지으려고 했다. 그래도 네 개인 공간은 있어야 하니까.]
개인 공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거창했고 화려했다. 그랬다. 박해일은 충렬을 위해 저택을 건설한 것이었다.
박해일의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알려왔다.
[당신의 대리인 ‘박해일’이 비밀리에 준비했던 영주의 저택을 당신에게 선보입니다.]
[영주의 저택: 2층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저택이다. 저택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응접실부터, 각종 방과, 샤워 시설, 주방과 집무실, 그리고 정원 등이 존재한다. 청소와 잡일을 할 하녀들이 공짜로 주어진다.]
딱히 특별한 기능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도전자의 신분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엔 제격으로 보였다. 박해일이 이러한 저택을 준비한 이유는 충렬을 위해서였다.
[아마 수많은 임무를 하느라 바쁘겠지. 영지에 돌아와 쉴 때만이라도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이유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충렬이 제대로 쉬었으면 해서 그는 저택을 지었다. 충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선물을 고맙게 받았다.
“이런 것을 준비해 줄 줄은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 그럼 푹 쉬라고.]
그 말을 남긴 박해일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충렬을 대신하여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아서다. 충렬은 거두절미하고 저택으로 발을 옮겨갔다. 충렬이 저택의 정문을 지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영주인 당신은 드디어 당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축하하는 의미로 저택에 하녀들이 주어집니다.]
[하녀들은 저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저택에서만 잡일을 하며, 봉사할 존재일 뿐입니다.]
‘하녀라고?’
순간 충렬은 조금 기대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주변의 주민이라고는 칙칙한 해골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아닌 이들도 있었지만, 맨날 해골들만 보니 울적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흐음, 하녀는 사람이려나.’
하지만 그런 충렬의 기대는 무참히 박살 났다. 충렬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오는 하녀들은 그 수가 정확히 열이었다. 그러나 충렬의 영지 특성 때문인지, 공짜로 주어진 하녀들은 모조리 해골들이었다.
[<해골 하녀1>이 당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정원에서 한걸음에 달려옵니다.]
[<해골 하녀2>가 당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주방에서…….]
[<해골 하녀3>이…….]
…….
다가오는 해골들의 모습에 충렬은 해탈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저 한숨을 푹 쉬며 저택을 살피기 위해 이동했다.
***
저택 내의 각각의 방은 따로 네임드들과 악티니언 등에게 주었다. 케르베로스 또한 불독의 형태로 모습을 변화할 수 있었기에 방이 비좁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럼에도 저택에 남아 있는 방들은 차고 넘쳤으며, 충렬이 현재 머물고 있는 집무실 또한 무척이나 널찍했다.
충렬은 집무실 내에 존재하는 의자에 앉아 다음 일정을 확인해 나갔다. 그런 충렬을 향해 해골 하나가 다가왔다.
[<해골 하녀7>이 당신을 위해 따뜻한 페퍼민트 차를 내어왔습니다.]
단순한 해골의 모습에 하녀복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이 괴상했다. 그렇지만 하녀들이 있으니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관리를 받는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하면 하녀들은 알아서 물러나 주었다. 그렇기에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충렬은 해골 하녀가 건네어주는 찻잔을 받으며 시야 상단에 표시된 글귀를 살폈다.
“그나저나 이제 때가 되었는데.”
본래라면 다음 임무 지역으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고? 바로 마왕성으로 가는 티켓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마왕성으로 향하는 티켓은 이미 오래 전에 사용했다. 그러자 다른 임무 지역으로는 갈 수가 없었고, 정원이 모두 찰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마왕성으로 가는 티켓을 사용한 도전자의 수: (99/100명)]
[1명의 인원이 더 티켓을 사용해야 출발할 수가 있습니다.]
[정원이 100명에 도달할 때까지 당신은 그 어떤 임무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충렬이 티켓을 사용한 시점은 이틀 전이었다. 마침 충렬이 티켓을 사용하자 정원은 99명이 되었고, 지금까지 그 숫자는 변동이 없었다.
“이거… 이러다가 영원히 여기에 발이 묶이는 것 아니야?”
충렬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해골만세 혈맹원들은 어느새 새로운 임무를 위해 영지를 떠났다. 그저 충렬과 네임드들만이 저택에 남아 이동을 기다릴 뿐이었다.
‘99번째인 내가 이 정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기다렸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충렬이 때마침 페퍼민트 차를 전부 마셨을 때, 마침내 티켓을 사용한 이가 나타났다.
[마왕성으로 가는 티켓을 사용한 도전자의 수: (100/100명)]
[드디어 100명에 해당하는 도전자들의 티켓이 사용되었습니다.]
[1시간 뒤, 마왕성이 지어진 섬.]
[그 근처로 이동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선 98명에 비한다면 일찍 출발하는 것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시스템이 알려오자 충렬은 출발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마침 시스템의 음성을 다른 네임드들도 들을 것인지, 곧 충렬의 집무실로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마렉이었다. 그는 자신이 소환한 발키리를 앞세워 시스템의 음성이 끝나자마자 등장했다.
[오, 드디어 출발인가? 어깨가 너무 뻐근했다고.]
꽤나 심심했던 건지 마렉은 매일같이 칭얼댔었다. 그렇기에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 마렉의 뒤를 이은 것은 레일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으로 마렉의 뒤통수가 보이자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봐요 마렉, 집무실 들어가는 입구를 전세 냈나요? 비켜주시겠어요? 좀 지나가게요.”
레일리의 목소리를 들은 마렉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흐억! 놀래라! 기척을 내고 다가와! 누가 흡혈귀 아니랄까봐...]
“...뭐라구요?”
말은 그렇게 했지 둘은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저게 일상이었다. 여전히 마렉은 레일리에게 제대로 기를 쓰지 못했다. 그렇게 그다음에는 데프론, 샤오링 순으로 차례차례 등장했고 마지막에 등장한 네임드는 아르타디아였다.
이번에는 영지에 아무도 남기지 않을 계획이었다. 무려 마왕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조금의 전력이라도 최대한 데리고 가야 했다.
특히 아르타디아는 집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마왕성으로 향하는 것인가.”
드래곤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족들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고, 그들의 멸망을 원하는 존재가 바로 아르타디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금방 모였다. 그리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되기까지를 기다렸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1시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다음 임무 지역으로 이동됩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에 모여 있던 충렬과 네임드들은 이동되었다.
***
충렬이 네임드들과 이동된 곳은 대략 100평 정도에 불과한 무인도였다. 있는 것이라고는 모래사장과 100여 척의 나룻배들, 그리고 충렬을 포함한 100명의 도전자들이 전부였다.
이동이 완료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여러분들이 사용한 티켓은 마왕의 토벌과 관련된 티켓입니다.]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스템의 말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도전자들은 이동되자마자 감격의 눈물을 흘려댔다.
“와! 만세! 드디어 이동이 되었다!”
“이야… 하마터면 미쳐 버릴 뻔했어.”
“크흑… 이동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스템님.”
“오오, 이제야 도착한 것인가!”
물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반대의 인물들도 존재했다.
“씨발! 이게 뭔 개 같은 경우야!”
“그래! 진즉에 빨리 이동시켜 줬어야지!”
“전부 다 닥쳐! 나보다 오랫동안 이동하지 못한 놈들만 떠들어라. 나는 트롤의 동굴에서 100일 동안 몬스터 고기만 먹었으니까.”
“몬스터 고기? 새꺄, 넌 배가 불렀어! 나는 이끼만 먹고 버텼다고! 100일도 우습다! 나는 120일이야!”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조용히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200일 이상이 아니면 전부 다 아가리들을 여물도록 하지. 조용히 시스템의 음성이나 듣도록 하자고.”
그의 말에 도전자들의 입이 일순간 다물어졌다. 200일이라니. 한 곳에서 이동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200일 동안 버틸 수가 있었을까?
뭐, 각자의 사정이야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일어날 일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나룻배를 이용해 이동해야 합니다.]
[마왕성이 지어진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표시된 경로의 뱃길을 반드시 지나야 합니다.]
동시에 미니맵에는 시스템이 말한 경로가 표시되었다. 그런데 그 거리가 제법 심각할 정도였다. 이상함을 느낀 도전자 하나가 의문을 품었다.
“왜 이렇게 멀어?”
“고작 나룻배를 타고 저 먼 거리를 이동하라고?”
그러나 고난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의하십시오.]
[이곳의 바닷물은 선박의 내구도를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독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빠르게 노를 저어가지 않으면, 나룻배는 침수되고 당신은 익사할 것입니다.]
시스템의 설명만 들어보면, 도저히 나룻배로는 건너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혹시나 공중으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시스템은 그러한 방법을 사전에 차단했다.
[뱃길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공중을 날 수 있는 스킬 등,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제지됩니다.]
[감시망을 피해 이동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이동하라는 소리일까? 나룻배로 이동해도 결국 익사해 버릴 텐데 말이다. 하지만 방법은 다 있었다.
[하나의 나룻배에는 하나의 인원만 탑승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다른 나룻배를 박살 낸다면, 박살 낸 숫자만큼 당신의 나룻배는 튼튼해질 것입니다.]
[잠시 후, 대략 5분 정도가 지나면 당신들이 서 있는 땅이 바닷물에 잠깁니다.]
결국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소리였다. 나룻배는 1인용에 불과했고, 다른 이들의 배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장내는 혼란이 가득했다.
“젠장할! 엿 같은 임무가 걸렸잖아!”
“아, 씨발!”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다른 배를 박살 내러……!”
혼란이 가득한 도전자들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느긋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충렬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타야할 배가 사라질 텐데 왜 이렇게 느긋했던 것일까?
사실 충렬은 시스템이 모든 말을 끝나기도 전에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영지의 호수에 정박되어 있는 산호선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배를 소환할 수가 있게 되었지.’
설마 배를 소환하게 될 날이 이렇게 가까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남들은 이제부터 목숨을 걸고 자신들이 탈 나룻배를 사수해야 했다. 혹은 먼저 하나의 나룻배를 탑승하기 위하여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 만약 나룻배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렬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머지 도전자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충렬은 네임드들을 데리고 슬그머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