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이어지는 케르베로스와 샤이아의 대결은 더 이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기가 없는 샤이아는 제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다. 아니, 무기가 있더라도 그녀는 결코 케르베로스를 이길 수가 없었다.
케르베로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샤이아를 압박했다. 특히나 지금의 광경을 보면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케르베로스는 귀찮다는 듯, 샤이아를 보더니 길게 하품했다. 녀석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샤이아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크르릉…….”
겨우 하품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발생된 입김만으로 샤이아의 육체는 타올랐다.
[케르베로스의 숨결이 억압 지옥의 불길을 더욱 타오르게 합니다.]
[억압 지옥이 ‘초열 지옥’으로 변합니다.]
[부정한 존재들은 더 이상 지옥의 불길에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적지 않은 힘을 소모하며 지옥의 불길에 저항하던 샤이아였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막는다고 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육체는 그냥 이곳의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핀 듯했다.
“크윽……! 이건 너무……!”
케르베로스는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샤이아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그 자리에 벌러덩 누우며 샤이아가 바싹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너무나 평온하게 있는 케르베로스의 모습이 얄미웠던 것일까? 샤이아는 독이 바짝 오른 고양이처럼 케르베로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자신이 가진 힘을 여기서 모두 사용하고자 했다.
그녀가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족의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숨겨왔던 힘을, 그냥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선천마기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쩔 수 없지.”
그 기운은 마치 영지의 일정 지역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방대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충렬까지도 그 기운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샤이아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샤이아가 스킬을 사용하려하자 벌러덩 누워 있던 케르베로스도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케르베로스는 샤이아가 모든 힘을 밖으로 꺼내기 전, 입을 활짝 벌렸다. 입을 벌린 것은 케르베로스의 가운데 머리였다.
[케르베로스의 머리 하나가 초열 지옥의 모든 기운을 입안에 가득 모읍니다.]
그와 함께 주변에 펼쳐진 지옥의 잔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초열 지옥이 종료됩니다.]
하지만 초열 지옥의 기운이 증발한 것은 아니었다. 넓게 펼쳐져 있던 지옥이 케르베로스의 입안에 응축된 것이었다. 그 모든 기운을 겨우 머리 하나로 머금다니, 무척이나 놀라웠다.
어쨌거나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지옥의 힘을 응축시킨 케르베로스는, 그것을 샤이아를 향해 사용했다.
[케르베로스가 응축한 지옥의 힘으로 ‘파이어 볼’을 만들었습니다.]
[파이어 볼이 케르베로스의 입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녀석의 입으로부터 평범해 보이는 마법이 발사되었다. 레일리의 파이어 볼트가 그냥 조그만 공을 이룬 것 같이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날아가는 속도는 무척이나 느렸다. 일반인조차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범했던 탓일까?
샤이아 또한 케르베로스가 발사한 파이어 볼의 모습에 그만 방심하고 말았다. 그녀는 저 파이어 볼 정도는 가볍게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흥, 지옥의 힘을 거두어들이고 고작 파이어 볼을 발사하다니. 그 선택을 후회하게 해주…….”
하지만 그녀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그녀는 지옥이 사라진 순간 장소를 벗어나 마계로 도망쳐야 했다. 케르베로스가 쏟아낸 파이어 볼은 결코 평범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할 정도의 극악한 종류였다.
잠시 후, 천천히 날아가던 파이어 볼과 샤이아가 충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파이어볼과 샤이아가 충돌했음이 분명한데도, 그 어떤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다.
들려온 것은 시스템의 음성뿐. 파이어 볼은 그냥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서 더 이상 샤이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샤이아가 파이어 볼에 당하며 존재가 삭제를 당하였습니다.]
[더 이상 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케르베로스의 폭주가 종료됩니다.]
너무나 허무한 결말에 장내는 일순간 침묵으로 유지되었다. 전투를 지켜보던 영지민들과, 해골만세 혈맹원들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것이다. 너무나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간혹 몇몇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긴 했지만,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축하드립니다.]
[영지의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
전투를 끝낸 케르베로스는 이전에 비해 많은 면에서 발전했다. 이제는 심지어 음성까지 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녀석은 충렬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은 아직 완성된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과 같은 말투였다.
[너무 졸립니다. 나는 잠을 잡니다.]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의 몸이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충렬의 문양으로 되돌아왔다. 녀석이 문양으로 돌아오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폭주가 끝난 케르베로스가 피곤함을 느끼며 장시간의 휴식 기간을 가집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케르베로스의 성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케르베로스는 네크로맨서인 당신에게 종속된 지옥의 수문장입니다.]
[특정 조건 달성 시, 당신의 직업과 관련된 초월의 존재로 진화할 수가 있습니다.]
[진화가 가능한 대상: ???, 개방된 정보가 아님, 아직은 알 수가 없음.]
헬 하운드에서 진화한 케르베로스는 그 강함이 아직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이제는 폭주의 힘이 끝났기에 방금과 같은 강함을 보이지는 못할 터였다. 그렇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나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초월의 존재로 진화를 한다니.
‘얼마나 강해진다는 것이지? 끝이 없군.’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보상을 받을 때였다. 영지의 방어에 성공한 충렬과 모든 도전자들에게는 이전에는 맛볼 수 없던 달콤한 보상이 주어졌다.
[영지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레벨이 3만큼 증가합니다.]
단순히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레벨은 3만큼 상승했다. 전투는 처음에 잠깐 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레벨이 상승하자 혈맹원들이 수군거렸다.
“미친……!”
“헉, 레벨이 3이나 증가한다고?”
“와! 화끈한데?”
몇몇은 시스템의 음성에 후회했다.
“젠장! 괜히 카르마를 모으고 있었어. 미리 올려놓을걸!”
“아, 나도 혹시나 몰라서 모으고 있었는데. 제기랄.”
“큭큭, 나는 미리 올려놨지, 가끔 이런 보상이 있었잖아.”
“휴, 널 따라서 올려놓기를 잘했네.”
그렇게 단순하지만 매우 파격적인 보상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아직 충렬의 보상은 끝나지 않았다.
[영지의 주인 ‘이충렬’의 레벨이 3만큼 더 상승합니다.]
영지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충렬의 레벨은 한차례 더 상승했다. 그 덕분에 3+3이 되어 충렬은 총 6이라는 레벨의 상승을 얻어갔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레벨이 19에서 25로 상승하였습니다.]
무려 6만큼이나 단번에 레벨이 상승하다니. 상승한 레벨만큼을 카르마로 환원하여 계산해 본다면 총 129만 카르마의 이득을 본 셈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역대급의 레벨 상승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충렬은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레벨 25의 달성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의 직업 수식어가 ‘노련한’에서 ‘베테랑’으로 변경됩니다.]
<상태창>
이름: 이충렬
레벨: 25 (다음 레벨까지 250,000카르마 필요.)
직업: 베테랑 네크로맨서
재능: <죽음> <군단> <불멸>
그러나 달콤한 보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고의 공적을 달성한 이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샤이아가 남긴 정화된 그녀의 무기였다.
[‘완전무결한 순결’이 영지 방어에서 최고의 공적을 이룬 도전자에게 주어집니다.]
당연히 그 보상의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그 아이템의 주인은 케르베로스를 주인으로 둔, 충렬이었다.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완전무결한 순결’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그 무기의 주인이 됩니다.]
다른 도전자들은 충렬이 그 무기를 가짐에 있어서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하기야, 그들은 레벨이 3이나 오른 지금의 상황도 횡재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충렬의 케르베로스에 의하여 너무나 편하게 업혀갔다. 그러니 혹시라도 만약 불만을 표현한다면 염치가 없는 수준을 넘어 파렴치한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시스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완전무결한 순결이 두둥실 떠올랐다. 순백의 레이피어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것은 충렬을 향해 서서히 날아왔다. 무기가 날아오는 도중, 시스템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완전무결한 순결의 형태가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 모습을 1회에 한하여 변경할 수가 있습니다.]
[혹은 보유하고 있는 무기와 합성을 시도하여, 더욱 상위의 아이템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합성은 앞으로 1분 내에만 시도할 수가 있습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달콤한 보상에 한눈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분 내에 결정해야 한다고?’
시간은 무척이나 촉박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본 완드’와 합성하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직업과 연관된 전용 무기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대신 원하는 형태로의 변경은 불가능하며, 합성되어진 형태로만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굳이 잔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형태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성능이었다.
“그렇게 해줘. 합성을 할게.”
충렬의 대답에 시스템은 그 의지를 받아들였다.
[당신이 소지한 ‘본 완드’와 ‘완전무결한 순결’의 융합을 시도합니다.]
동시에 충렬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본 완드가 마찬가지로 떠오르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레이피어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각각의 두 무기가 서로 붙는 순간 빛이 번뜩였다. 그 정도가 마치 섬광탄 3개가 터졌을 때 발생하는 정도였다.
파앗!
그렇게 빛이 번뜩임과 동시에 두 무기의 합성은 단번에 이루어졌다.
대략 3초 후, 빛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새로운 형태의 무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