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케르베로스
샤이아의 고유 무기. ‘끝없는 혐오’의 모습은 단순히 레이피어 모습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충렬은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도 지금은 지켜보아야 할 때다.’
아직은 도움을 주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막강한 방어력을 얻게 된 하운드 역시 도움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녀석은 천천히 샤이아를 향해 다가갔다.
“크르르르…….”
하운드의 움직임은 이전에 비해 제법 느려진 상태였다. 이전보다 더욱 커진 덩치와, 각종 변화된 피부들이 하운드의 움직임을 많이 느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 덕분에 잔뜩 무장한 전차와 같은 느낌을 풍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하운드가 다가오자 샤이아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서 하운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당장의 광경만 보아서는 별다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샤이아가 겁을 먹고 천천히 꽁무니를 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변화된 하운드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계산해 나가던 것이었다.
계산을 끝마친 샤이아는 즉각 움직였다. 그랬다. 이번에는 하운드가 아닌, 샤이아가 먼저 움직였다. 샤이아가 땅을 박차자, 순간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검은색의 빛이 일순간 번뜩이더니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파앗!
사라졌던 그녀가 나타난 곳은 하운드의 바로 아래였다. 그녀가 하운드의 아래로 이동한 이유는 단순히 시야를 피해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운드의 방어력이 강하지 않은 곳. 바로 지면과 마주보는 배 부분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하필 하운드의 덩치가 더욱 커져 버린 탓에, 밑의 공간은 샤이아가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하운드의 밑으로 이동한 샤이아는 가타부타할 것 없이 공격했다. 레이피어를 위로 세운 뒤, 하운드의 심장을 향해 찔러갔던 것이다.
샤이아의 공격은 매우 확신에 차 있었다. 자칫하면 치명적인 일격을 입을 수도 있는 하운드였다. 그러나 녀석은 멍청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아래로 샤이아가 도착해 왔다는 것을 알고서는, 몸을 약간 비틀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갔다.
그녀를 깔아뭉개기 위해서다.
만약 하운드가 피하려고 회피 동작을 펼쳤다면, 함께 따라오는 레이피어에 의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당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반대로 공격을 해버렸기 때문에 샤이아는 결국 레이피어를 회수해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압사되어 만만찮은 피해를 입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하운드의 몸뚱이는 단순한 몸뚱이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지옥의 불이 타오르고 있는 몸이었다. 단순히 압사되지만은 않을 것이리라. 어쩔 수 없음을 느낀 샤이아는 레이피어를 회수했다.
“쳇.”
레이피어를 회수한 그녀는 즉시 장소를 이탈했다.
파앗!
그녀가 이동하고 잠시 후, 제자리에 그대로 앉은 하운드로 인해 땅이 크게 울렸다.
쿠웅!
샤이아가 나타난 곳은 다시 하운드의 앞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냥 앞이 아닌, 바로 코앞이었다. 하운드의 코앞에 나타난 샤이아가 레이피어를 찔러갔다. 하운드의 머리를 향해서.
하운드는 샤이아가 레이피어를 찔러오자 아가리를 벌렸다. 이전보다 더욱 커진 하운드의 아가리가, 레이피어를 포함해 샤이아의 손목마저 씹어버릴 듯 했다.
먼저 공격했지만 이대로라면 샤이아가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샤이아는 팔을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렇게 십자 형태로 휘둘렀다.
딱히 공격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레이피어는 찌르는 용도였지, 저렇게 베는 행위로는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기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러한 행위를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행위가 끝나자마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마족 샤이아가 ‘고통스러운 간섭’을 하운드의 입안에 각인시킵니다.]
[고통스러운 간섭: 입은 피해를 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그 고통을 점점 증가시킨다. 각인을 해제하려면 적지 않은 힘을 소모해야 한다.]
샤이아는 바로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아주 악독한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저런 스킬이 있었다니.’
전투를 오래 끌수록 상대를 불리해지게 만드는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서 샤이아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스킬이었다.
그러나 스킬의 설명을 읽은 충렬은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을 뻔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스킬의 마지막 설명에 적혀 있던 글귀 때문이었다.
각인을 해제하려면 적지 않은 힘을 소모하여야 한다는 그 설명이, 충렬의 입꼬리 위치를 광대를 넘어서게 만들 정도였다.
아마 샤이아는 모르고 있을 터였다. 폭주한 하운드가 힘을 많이 소모할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충렬과 아군에게 들리는 시스템의 음성이, 저 마족에게는 들릴 리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들렸다면 저러한 스킬을 사용할 리가 없었다.
‘얻어 걸렸군.’
그렇게 샤이아는 하운드에게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우선 몸을 뒤로 빼내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후, 이제 회복 따위는 하지 못하겠지. 위험한 방법으로 각인을 새기긴 했지만 해제하기 가장 어려운 곳에 새겼으니…….”
물론 그녀의 혼잣말은 이어지다 말고 중간에 멈추었다. 왜냐고? 하운드가 또다시 진화를 하려해서다.
[하운드가 ‘고통스러운 간섭’의 각인을 해제하기 위하여, 현재 스파이크 스킨 하운드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짭니다.]
[짧은 시간에 막대한 힘을 소모한 하운드가 다음 단계의 존재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충렬은 시스템의 음성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진화와 관련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위험했겠어.’
하운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영지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고작 스킬 하나에 스파이크 스킨 하운드로서 가지고 있는 힘을 모조리 사용해야 할 정도라니. 그만큼 본래라면 샤이아라는 마족은 상대하기가 힘든 존재가 분명했다.
‘뭐, 덕분에 일이 잘 풀리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랬다. 저 마족 덕분에 일은 수월하게 풀리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시스템의 말이 끝난 직후 변화가 나타났다. 하운드의 몸이 활화산의 용암이 끓는 것처럼 피부의 표면이 끓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피부의 표면만이 아니었다. 끓기 시작하는 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그 결과, 하운드의 내부부터 시작해 모든 몸이 곧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부글부글부글.
그 모습에 샤이아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니, 어째서……!”
그냥 보기에는 자멸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모르지 않았다. 하운드의 모습이 더 강한 존재로 변하려고 한다는 것을. 때문에 샤이아는 하운드가 변화를 끝마치기 전에 공격해 나아갔다.
그녀는 들고 있던 레이피어를 곧장 하운드에게 찔러갔다. 하지만 하운드가 변신하는 도중에 공격하면 안 되었다. 그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하운드의 몸에 레이피어를 박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헬 휘핏으로 육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둠의 힘을 잔뜩 머금은 무기 ‘끝없는 혐오’가 하운드의 몸에 틀어박힙니다.]
[‘끝없는 혐오’가 가지고 있는 어둠의 힘을 불태우기 위하여, 자이언트 헬 휘핏으로서의 주어진 힘을 모조리 사용합니다.]
본래라면 하운드는 자이언트 헬 휘핏으로 변해야 했고, 또다시 폭주된 힘을 소모해야 케르베로스로 진화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다.
하운드가 모습을 변화할 때, 끝없는 혐오라는 힘이 개입되었다. 그로 인하여 하운드의 몸은 다른 힘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폭주된 힘을 사용하였고, 하필 사용한 그 힘은 자이언트 헬 휘핏으로서의 힘이었다.
결국 그 덕분에 하운드는 곧바로 최종 존재로 탈바꿈될 수가 있었다. 휘핏의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를 않았는데도 말이다.
[자이언트 헬 휘핏으로서의 모든 힘을 소모하였습니다.]
[진화 가능한 최종 존재.]
[케르베로스로 변화를 시작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부글부글 끓던 하운드의 몸이 일시에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하운드의 몸은 붉은 쇳물의 웅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부글부글 끓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웅덩이 위로는 거대한 불길이 연신 치솟아 올랐고, 웅덩이는 그 범위를 끝없이 넓혀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다. 대략 10초 정도가 흘렀을 뿐이었다.
10초가 지나자 기존의 웅덩이는 이전에 비하여 2배. 아니, 3배는 넓은 면적이 되었다.
그리고 넓어진 웅덩이에서는, 한 존재가 모습을 형성하며 서서히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물속에서 걸어서 나오듯이 말이다.
서서히 등장하는 존재의 첫 모습은 세 개의 머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운드일 때보다 더욱 흉포한 개의 머리가 각각 왼쪽, 중앙,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이어서 등장하는 몸뚱이 또한 이전에 비해 많은 면이 달라졌다. 한눈에 보아도 두터워진 가죽과 거대해진 덩치는 감히 덤비기가 어려울 정도의 체급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녀석이 웅덩이에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자, 가지고 있는 꼬리가 보였다. 뱀의 꼬리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도마뱀의 꼬리라고 말해야 할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용의 꼬리같이 길쭉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드래곤에 비한다면 그 크기가 두껍지 않고 얇았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 비해 제법 길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것 같이 섬뜩한 녀석의 모습. 그것이 중요했다.
그랬다. 그 모습은 바로 케르베로스의 모습이었다. 시스템은 최종 존재로의 모습으로 변하자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헬 하운드의 최종 진화가 케르베로스로 확정됩니다.]
[하지만 아직 폭주된 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권능으로 발현된 ‘억압 지옥’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폭주된 힘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최종 모습이 되었기에 ‘억압 지옥’이 종료되지 않는 한, 케르베로스에게는 무한한 지옥의 힘이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휘핏의 힘을 모두 사용해도 정화할 수 없던 샤이아의 무기를, 마침내 케르베로스가 되면서 정화할 수가 있었다.
[케르베로스가 지옥의 힘으로 ‘끝없는 혐오’의 모든 부정한 힘을 불태워 정화시켰습니다.]
[‘끝없는 혐오’가 ‘완전무결한 순결’로 변화합니다.]
[그와 동시에 마족 ‘샤이아’가 가지고 있던 고유 무기의 권한을 박탈시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은 매우 놀랄 만한 종류의 것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마의 무기를 완전히 정화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마족 ‘샤이아’가 지금부터는 정화된 무기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녀를 처치하면 당신은 그녀의 무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웅덩이의 한편으로 빨려 들어간 샤이아의 무기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볼장을 다 봤다는 식으로, 그녀의 앞으로 떨어졌다.
툭.
물론 그녀는 자신의 앞으로 속성이 변한 자신의 무기가 놓이게 되었지만, 더 이상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무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던 샤이아였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판단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자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