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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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으로 조성된 억압 지옥이라는 전장 안에는 하운드, 그리고 마족 샤이아만이 남아 있었다. 둘 외에 살아서 숨을 쉬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억압 지옥의 공간 내에서는 말이다.
단숨에 샤이아를 제외한 모든 병력을 처치한 하운드. 녀석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샤이아를 바라보았다. 두 개의 머리로 노려보자 사뭇 무서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크르르.”
“크르르르…….”
사나운 지옥개가 쳐다봄에도 샤이아는 겁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녀는 어느새 손에 돌돌 말아 쥔 채찍을 다시 펼치려고 했다. 그녀가 팔을 한차례 들었다 내리자, 말려 있던 채찍이 단번에 펼쳐졌다. 동시에 채찍의 끝이 바닥을 때렸다.
촤악!
그녀가 채찍으로 바닥을 때림과 동시에, 그녀의 주변에 위치해 있던 지옥의 불꽃이 사그라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지, 그녀에게로는 애초에 지옥의 불길이 옮겨 붙지 않았다.
사실, 무슨 술수를 부렸다고 하기보다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이 그만큼 강한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각자는 서로를 상대하기 위해 노려보고 있었다. 둘의 거리는 대략 60미터 정도로, 조금만 이동한다면 서로가 닿을 거리였다.
그렇게 대치하던 와중에 먼저 움직인 것은 하운드였다. 녀석은 딱히 다른 것은 신경 쓸 것도 없다는 듯이 샤이아를 향해 땅을 박찼다.
파밧!
머리는 2개였지만 녀석의 움직임은 느리지 않았다. 일반적인 헬 하운드일 때와 비교해도 그 속도는 비슷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녀석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아마도 지옥의 환경까지 주어지니, 녀석의 움직임이 가벼워진 것이 분명했다.
거구의 하운드가 날렵하게 움직이자 주변의 공기가 밀려났다.
후우우우우우우웅!
결국 하운드가 마족 샤이아에게 도착하기까지는 2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냥 땅을 박차자 순식간에 이동한 것으로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샤이아의 지척거리까지 도착한 하운드의 양쪽 머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입을 쫘악 벌렸다. 하지만 서로가 향하는 방향은 달랐다.
하나는 샤이아의 머리를 향해, 다른 하나는 샤이아의 다리를 향했다. 서로 다른 부위를 동시에 공략하려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샤이아가 멍청히 당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데리고 왔던 마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는 강자였다. 어느새 하운드의 공격이 시작되자, 샤이아는 채찍을 휘둘렀다.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미는 하운드를 향해서 말이다. 너무도 당당한 저 모습에 충렬이 의문을 가졌다.
‘아니, 하운드의 공격을 피하지 않는다고?’
이대로라면 샤이아의 살과 뼈는 단번에 하운드의 입안에 들어가 씹혀 버릴 터였다. 애초에 채찍 같은 것으로는 하운드의 공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설마 이렇게 벌써 끝나게 될까 싶었던 충렬은, 초조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체구 차이가 심하게 났고, 그 결과는 샤이아의 사망이었다. 물리적인 계산을 해보았을 때, 채찍 같은 무기로는 하운드의 이빨을 절대 막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잠시 뒤에 드러나는 결과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던 이변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샤이아가 물어뜯기기 전에 휘둘렀던 채찍으로 인하여, 하운드의 거대한 몸뚱이가 밀려났던 것이다.
촤악!
단 한 번의 채찍질. 그 한 번으로 달려들던 하운드의 몸뚱이가 더 이상 접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만약 저지되기만 했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채찍질에 당하자, 하운드의 몸뚱이가 저지됨과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단순히 뒤로 밀려난 것이 아닌, 강력한 힘에 의해 내팽개쳐진 정도였다.
거대한 몸뚱이가 채찍질에 밀려 뒤로 엎어지자 하운드를 받아낸 땅이 크게 울렸다.
쿠웅!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채찍질에 당하는 순간 하운드의 살갗이 크게 찢어졌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점점 더 크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상처는 그 크기와 범위를 급속도로 넓혀갔다. 만약 평범한 존재가 채찍에 당했다면 단번에 내장을 쏟아내고 사망할 정도로, 그 상처는 심각하게 벌려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운드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현재 지옥의 환경이었다. 그 말인 즉, 아무리 피해를 입어도 하운드의 상처는 어렵지 않게 재생이 된다는 것이었다. 자칫 심각할 상처로 변할 뻔했던 하운드의 상처는 다행히도 곧바로 치유가 되었다.
[뜨거운 지옥의 불길이 하운드에게 적용된 상태 이상, ‘찢어지는 상처’를 무효화시킵니다.]
[동시에 상처를 입은 부위가 지옥불의 기운으로 회복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하운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고 한들 위험한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왜냐고? 샤이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이아는 헬 하운드가 뒤로 엎어지자마자 그 기세를 몰아 앞으로 전진을 했다. 그리고 이어서 채찍을 재차 휘둘렀다.
하운드를 몰아치는 그녀는 큰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손목의 스냅만을 이용하여 채찍질을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채찍은 사방에서 하운드를 들이치며 괴롭혔다.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채찍이 휘둘러질 때마다 하운드의 상처가 터지며 연신 뒤로 밀려났다. 큰 공격도 아니었다. 단순히 채찍을 휘두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었다. 그 공격으로 하운드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몸만 들썩거릴 뿐이었다. 도무지 상대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상대할 방법은 결단코 없었다. 채찍의 무게가 천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운드를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그 광경을 보던 충렬은 그녀가 왜 겁을 먹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엄청난 마족이었군.’
하지만 충렬은 나서지 않았다. 엄청난 채찍 세례를 받고 있는 하운드였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죽을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옥의 불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세어지는 중이었고, 그만큼 하운드의 회복 속도도 빨라지고 있었다.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하운드가 계속해서 회복해 버리자 곤란해진 것은 샤이아였다.
“쳇, 역시 이 정도로는 처치할 수가 없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힘을 사용해야…….”
그러나 샤이아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입은 곧 다물어져야 했다. 계속해서 살이 터지고, 상처가 갈라지며 고통을 받던 하운드에게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해서다. 상처를 입음과 동시에 회복하는 과정을 수차례 겪다 보니, 시스템은 하운드를 진화가 가능한 다음 단계의 존재로 그 모습을 바꾸어주었다.
[하운드가 상처를 수복하는 데 적지 않은 힘을 사용하였습니다.]
[10분 이내에 트윈 헤드 하운드의 힘을 모조리 소모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운드가 다음 단계인 ‘스파이크 스킨 하운드’로 변화합니다.]
동시에 헬 하운드의 몸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러더니 잠시 후,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머리가 다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덩치는 이전보다 2배 이상은 더 커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운드의 등을 포함하며 몸 전체에는 갑각이 생겨났다. 마치 거북이의 등딱지처럼 생겼다. 물론 그 색은 타오를 듯 시뻘건 색이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각의 곳곳에는 타오르는 불의 창이 솟아나 있었다. 그것도 사방을 빽빽하게 채웠다. 혹시라도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면 당장에라도 창에 찔릴 듯 위험천만해 보였다.
마치 불로 이루어진 고슴도치를 보는 듯했다. 물론 고슴도치와 같은 귀여운 존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하운드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주의하십시오. 8분 이내에 다음 단계의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스파이크 스킨 하운드로 진화가 완료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어가던 충렬은 하운드를 어떻게 진화를 시켜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
‘생각보다 회복 속도가 너무 빠르다 싶었는데, 아마 회복하는 과정에서 폭주의 힘을 제법 사용하였나 보군.’
아마 그것은 정확할 것이리라. 그렇다면 진화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전투에서 케르베로스의 단계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괜찮았다. 하운드를 쉽게 진화시킬 방법이 떠올랐다.
마침 하운드의 모습을 보던 박해일이 충렬이 생각하는 것을 대신 대변해서 말해주었다. 물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복날의 개처럼 맞아야 더 강한 존재로 진화할 수가 있다니. 정말로 잔인하군.]
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정도라면 무척이나 안타까운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충렬은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상대 마족과의 전투가 종료되었는데도 최종 진화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 방법이란 바로 박해일이 말한 것과 동일했다. 진화할 때까지 계속 공격해서 폭주된 힘을 소모시키는 것, 바로 그러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당장에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하운드를 상대하던 마족 샤이아는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한눈에 보아도 하운드는 막강한 방어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단단한 외피에 수없이 늘어선 불의 가시들. 하운드를 향해 근접전을 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그러한 존재로 탈바꿈 되어서일까? 두 번째 진화 대상으로 모습이 변한 하운드는 더 이상 채찍의 세례에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도리어 채찍의 끝이 자신의 가시와 같은 표면에 닿자, 그것을 튕겨내었다.
티잉!
정확하게 말하면 채찍은 하운드의 표면에 닿지도 않았다. 닿으려는 순간, 지옥의 불이 일순간 방패 형태로 변하여 채찍을 튕겨내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샤이아 또한 채찍질로는 상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그녀는 곧바로 채찍을 회수했다.
그 모습에 충렬이 의문을 품었다.
‘물러나려고 그러나?’
그러나 샤이아는 후퇴하기 위해 채찍을 회수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흥,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암흑 투기와 비슷한 느낌의 기운을 체내에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힘을 채찍에 서서히 주입해 나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녀의 힘을 받은 채찍이 모습을 변해갔던 것이다.
[마족 ‘샤이아’가 소지하고 있던 자신의 고유 무기, ‘끝없는 혐오’의 모습을 변형시키기 시작합니다.]
[‘끝없는 혐오’의 모습이 채찍에서 레이피어로 변합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곧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웬만한 공격 따위는 가볍게 튕겨 버리게 된 하운드일지라도, 샤이아를 이기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