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마족들과 마수들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이끄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마족 ‘샤이아’였다. 그녀는 다른 마족들과 달리, 풍기는 기운이 매우 요사스러웠다. 샤이아는 산맥에서 완전히 내려가기 전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녀석들, 고작 그런 매복에 당하다니.”
하지만 말투와 달리, 그녀의 얼굴은 약간의 비웃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이대로 암흑 투기를 회수하여 마왕에게 가져다줄 생각이 없어서다.
‘호호, 분명 발록의 힘을 가져갔다고 했지?’
이미 일전에 다른 존재에게서 암흑 투기의 맛을 약간이나마 본 적이 있던 샤이아였다. 그녀는 이대로 발록의 암흑 투기를 빼돌려 독식하고자 했다. 물론 보는 눈이 많아 대놓고 그럴 수는 없었다. 어느 마족에게 마왕의 눈이 깃들어 있을지 몰랐다.
‘일단은 최대한 열심히 하는 척을 해야겠어.’
그러면서 마족들과 마수들의 숫자를 은근히 줄여 나갈 생각이었다.
‘흥, 인간과 언데드 따위를 상대하는 게 귀찮긴 하지만…….’
그녀는 혼자서도 모든 인간들을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상급 마족들 중에서도 높은 수준의 능력을 보유한 강자였으니까. 특히나 그녀의 채찍 기술은 이미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아아. 어서 빨리 그 힘을 가져가고 싶어.’
샤이아는 자신의 몸이 점점 달아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기다란 채찍을 돌돌 말아 손에 쥐고 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 점점 힘을 주었다.
발록의 힘을 자신이 흡수할 생각을 하니, 마치 마약을 한 것처럼 정신이 황홀해져갔던 것이다. 그녀는 일부러 자신의 붉어진 얼굴을 티내지 않으려고 맨 앞에서 마족들과 마수들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볼을 붉게 상기시키고 이동하던 그녀의 미간으로 화살 한 발이 날아왔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전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오는 것일까? 하지만 그 의문은 잠시였다. 일단은 들이치는 화살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쉬이이익!
기분 좋은 이때에, 갑자기 분위기를 깨버리는 화살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샤이아는 곧바로 채찍을 휘둘렀다. 그녀가 채찍을 휘두르자 채찍은 뱀이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들이치는 화살을 쳐내었다.
빠각.
엄청난 빠르기로 접근하는 화살이었다. 그랬는데 그녀의 채찍은 화살이 근처로 접근도 하지 못하게 했다. 화살촉 자체를 재빠르게 부셔 버린 것이다.
화살을 쳐낸 그녀는 곧바로 그 화살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파악해 나갔다. 그리고 곧 발견할 수가 있었다. 거대한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에 올라타고 있는 해골이 보였다.
그 해골은 샤이아가 화살을 막아내자 아쉽다는 말투를 내비쳤다. 화살을 쏘았던 해골, 그는 바로 박해일이었다.
[쳇, 아깝군. 정신 나간 모습으로 있기에 단번에 뒈질 줄 알았더니.]
그랬다. 박해일은 땅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밖으로 나와 화살을 발사한 것이었다.
샤이아는 언데드가 자신에게 화살을 쏘았다는 것도 화가 났는데,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을 잃은 듯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감히 언데드 주제에……!”
막상 할 말이 없어서 그냥 평범한 수준의 화를 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박해일의 뒤에 탑승해있던 해골 마법사 하나가 그녀에게 이글거리는 파이어 볼트를 발사해서다.
화르르륵!
물론 파이어 볼트 또한 그녀에게 적중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또다시 채찍을 휘둘러 마법을 타격하자, 마법이 흩어지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완벽한 방어를 자랑한 샤이아였지만, 그녀의 기분은 이미 최악으로 치달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것이다.
“으으……! 해골들이 감히!”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른 방향의 땅굴에 숨어 있던 자르딘, 왕찌엔, 그리고 헬 하운드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탑승한 해골 마법사들도 이어서 볼트 종류의 기초 마법을 그녀에게 날렸다.
다른 마족들이나 마수도 아니고 자신을 목표로 공격하다니, 결국 그로 인하여 그녀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마족들과 마수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뭐 해! 가서 잡아와! 죽이지 말고 산채로!”
그녀는 감히 자신을 농락한 저 해골들을 이대로 죽여 버릴 생각이 없었다. 산채로 붙잡아 그 뼈를 질근질근 씹어버릴 생각이었다.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언데드라도 자신이 있었다. 영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할 자신이.
***
하늘에서 적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충렬은, 해일과 나머지 일행들의 도발이 훌륭하게 먹혔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적의 본대에서 네 무리의 마족들과 마수들이 분리되어 나왔다.
네 무리의 적들은 해일, 왕찌엔, 자르딘, 헬 하운드를 향해 달려갔다. 각각의 숫자가 그렇게까지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대충 한 무리 당 20에서 30마리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충렬은 이제 지시를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땅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놈들이 땅굴을 발견하고 들어간다면, 바로 생매장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놓았으니까. 물론 그 숫자는 한정되어 있기에 효율적이지는 못했다.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이 좋았다.
어쨌거나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첫 지시가 가장 중요했다. 충렬은 가장 먼저 박해일에게 말했다.
“해일, 다른 분들이 먼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시선을 끌어주십시오.”
가장 많은 어그로를 받은 해일은 중앙의 위치에서 대기시켰다. 분명 그에게는 큼지막한 먹이가 떨어질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이용해서 가장 커다란 함정으로 이끌어야 했다. 땅굴은 언제나 피신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곳으로는 유인해 보았자 많은 적들은 처치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시선을 끌어 달라는 충렬의 의도를 파악한 해일이 답했다.
[알겠다.]
충렬의 지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왕찌엔, 자르딘. 곧바로 지정한 위치로 이동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충렬은 세심한 곳까지 지시했다.
“너무 빨리는 가지 마십시오. 최대한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이동해 주십시오.”
충렬의 지시가 끝남과 동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파악했다.
[알겠네.]
[알겠습니다.]
왼쪽은 자르딘, 오른쪽엔 왕찌엔이 각각 11시, 1시 지점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 이동에서의 관건은 각 포인트에 설치한 함정을 교묘하게 피해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군이라고 한들, 밟으면 발동하는 무지막지한 함정이었다.
그렇게 자잘한 함정들을 지나치면, 중간에 큼지막한 함정이 있었다. 그래도 함정을 설치한 지역을 미리 파악한 왕찌엔과 자르딘은 어렵지 않게 해골마를 몰아 움직였다.
둘이 거리를 벌려 움직일 때, 충렬은 하운드에게 말했다.
“하운드, 너는 뒤쪽에 미리 빠져 있어라. 조금 이따가 이동할 장소를 알려줄게. 해일, 당신은 대충 3초 뒤, 남쪽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해 주십시오.”
충렬의 말을 기다리던 헬 하운드와 박해일이 즉시 응답했다.
[컹컹!]
[그러도록 하지.]
***
헬 하운드와 박해일은 서로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둘이 있는 곳으로는 더욱 많은 마족들이 이동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헬 하운드가 충렬의 지시를 받고 어딘가로 급히 이동하자, 헬 하운드를 쫓던 적들은 모두 박해일에게로 어그로가 끌렸다.
[이런, 너무 많잖아.]
그 숫자만 적게 보아도 대충 50은 되어 보였다.
단단히 벼르고 들이치는 것인지, 그를 향해 달려오는 마족들과 마수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특히나 마수들은 검치호를 보더니 침을 좔좔 흘렸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보는 듯했다. 그 모습에 검치호가 낮게 음성을 내리깔았다.
“크르르르르…….”
놈들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때가 왔음을 인지한 박해일이 검치호를 움직였다.
[저리로 가자.]
박해일의 명령에 검치호가 즉시 땅을 박찼다.
파밧.
박해일은 장소를 이동하는 도중에도 활시위를 계속해서 당겼다. 박해일이 쏜 화살은 다가오는 적들을 향하지 않았다. 또다시 샤이아라는 마족을 향했다.
박해일은 그녀와 멀어지는 와중에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화살을 쏘았다.
피융!
피융! 피융!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마족을 화나게 해야, 작전이 쉬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의도는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얄미운 박해일의 행동에 얼마나 화가 났던 것일까? 샤이아가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카아악!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박살 내어 죽여 버리겠다……!”
덕분에 박해일에게 붙어가는 병력의 숫자는 배로 증가했다.
***
공중에서 모든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관찰하고 있던 충렬은 입맛을 다셨다. 본대에서 병력을 분산시켜 야금야금 갉아먹을 계획이었다. 충렬의 그 의도는 분명 통했다. 마족들 또한 던진 미끼를 덥석 물며 유도하는 대로 움직였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박해일이 조금 위험해졌군.’
얼마나 화가 났던 것인지, 병력을 지휘하던 마족이 병력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모조리 박해일에게 달려들도록 했던 것이다. 때문에 박해일은 거의 900이 넘는 병력을, 혼자서 감당해 내야만 했다.
‘상대가 이렇게 멍청하게 막무가내로 돌진시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거만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솔직히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물론 충렬의 걱정과 달리, 박해일은 상황을 무척이나 여유롭게 이끌었다. 그는 엄청난 병력의 숫자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다. 하기야, 예전 승급전에서도 무척이나 충렬을 괴롭혔던 그였다. 그는 치고 빠지는 움직임에 특화되어 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헬 하운드, 너는 일단 왕찌엔의 근처로 가라.”
사실 충렬이 헬 하운드에게 시키려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함정에 당한 마족들이나 마수들이 발생하면, 놈들의 생명을 확실히 끊고 그 시체를 먹어치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즉, 시체 처리의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었다.
마침 왕찌엔이 노련한 움직임으로 가장 먼저 적들을 함정으로 이끌었다.
헬 하운드가 왕찌엔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왕찌엔의 근처에 위치하던 함정이 발동되었다.
[김시민이 설치해 놓은 어둠의 구덩이가 마족을 집어삼키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어둠의 구덩이가 자신을 밟은 마족을 곧바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족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몸이 땅속으로 들어가자 있는 힘껏 외쳤다.
“크아아악! 이게 무슨.…… 도와줘……!”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다른 마족들은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흥, 잘못하면 같이 끌려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
물론 이기적인 말을 내뱉으며 거리를 벌린 그 마족도, 아쉽지만 땅을 잘못 밟았다.
“어… 어……?”
[김시민이 설치해 놓은 어둠의 구덩이가 마족을 집어삼키기 시작합니다.]
타락의 구덩이에서 어둠의 구덩이로 바뀐 김시민의 스킬이었다. 그렇지만 위력만 조금 약해졌을 뿐, 그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마족들을 집어삼키는 속도가 느렸지만, 충분히 완벽하게 집어삼켜가고 있었다.
만약 도중에 다른 마족들이 함정에 당한 마족들을 도와주었다면, 그 마족들은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기주의적인 마족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왕찌엔을 쫓았던 마족들은 곧 전원이 구덩이에 당해 버렸다.
마족들이 당했는데 마수들은 오죽했을까? 마족들이 당하기 전에 마수들은 땅속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현재 마수들은 머리만이 땅 위로 겨우 빠져나와 있었다. 몸의 대부분 이미 땅속에 빨려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키아아악!”
“캬아악!”
헬 하운드는 그럴 때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놈들이 땅속에 완전히 파묻혀지기 직전, 그들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물론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적들을 강하게 깨무는 것은 덤이었다.
왜냐고?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놈들은 그저, 헬 하운드의 시식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날카롭고 단단한 헬 하운드의 이빨이 마족들과 마수들의 뼈를 단번에 박살 내었다.
콰득.
콰드득.
콰드드득.
그렇게 박해일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움직이는 사이, 적들은 그 숫자가 착실히 줄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