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고통받는 마족들
충렬과 빈센트 쪽의 무리들이 마족들을 수월하게 처리하는 한편, 혈맹 쪽의 도전자들은 힘겨운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수준은 마족들과 마수들을 상대하기에 레벨과 스킬의 랭크가 조금씩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착같이 적들을 조금씩이나마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각종 직업들이 가진 다양성을 이점으로 삼아, 최대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만약 그들만 있었다면 몇몇의 희생이 발생했을 터였다. 하지만 정말로 위험한 고비는 박해일에 의하여 미리 차단되었다.
박해일은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며 혈맹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마족들이 날뛰지 못하게 한창 견제하던 박해일은 한숨을 푹 쉬었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겠군.]
다른 이들을 일일이 신경 쓰면서 적을 상대하니 피곤했다. 모두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박해일의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잠시 투덜거리기만 할뿐. 곧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면서 혹여나 다치는 이가 생기지는 않을까 연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박해일과 혈맹원들은 적들을 상대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승기는 박해일과 혈맹원들 쪽으로 서서히 기우는 중이었다.
***
총 600에 달하는 마족들의 병력이 처치되는 때였다. 이 이후로는 더 이상 산맥에서 각개격파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군이 당한 것을 알게 된 마족들이 두 무리 이상씩 뭉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몸을 빼야 했다. 적들의 진군 속도는 덕분에 느려졌지만, 뭉쳤기 때문에 지금의 병력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영지로 되돌아가 적을 맞이할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물론 적들이 뭉치면 이쪽도 뭉쳐서 상대하면 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방법은 너무나 위험했다. 일단 죽음의 기사들은 소모한 오러를 회복해야 했고, 혈맹원들도 지쳐 있었기에 휴식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적들이 뭉친 덕분에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났다. 어느새 본 드래곤으로 변한 아르타디아. 바로 그녀를 이용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다녀오겠다.]
그 말을 남긴 아르타디아가 하늘을 날았다. 갑자기 어디를 가느냐고? 뭉친 적들에게 브레스를 날려주기 위해서 날아가는 것이었다. 이쪽이 후퇴할 시간을 벌어다 주고, 동시에 적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기회였다.
그렇게 아르타디아가 힘찬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날아갈 무렵, 충렬은 상태창을 살폈다.
‘그나저나 헬 하운드의 진화도가 99%에 달했다.’
이번 전투에서 마족들과 마수들의 시체를 먹어치운 결과였다. 이제 1%만 더 상승시키면 하운드는 진화할 것이었다. 지금 함께 움직이고 있는 하운드의 몸에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쇠가 달구어진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리라. 뜨거움을 발산하고 있는 하운드의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그 열기는 후끈했다. 진화도가 100%에 달하게 된다면, 마치 터져 버릴 것처럼 말이다.
‘잘하면 이따가 영지를 방어하는 도중에 진화를 해버릴지도 모르겠어.’
어쨌거나 지금은 빈센트와 혈맹원들. 그들과 함께 후퇴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도중, 시스템이 알려왔다.
[본 드래곤 아르타디아가 아이스 브레스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20의 마족과 마수 380마리가 처치되었습니다.]
[브레스를 사용한 아르타디아가 역소환됩니다.]
[이후 24시간동안 그녀는 소환할 수가 없습니다.]
드래곤의 브레스는 과연 엄청났다. 그 짧은 시간에 400이라는 병력을 단숨에 증발시켜 버리다니. 덕분에 마족들의 병력은 총 2천에서 1천이라는 숫자로 줄어들었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충렬은 표정을 굳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들, 1천이라는 병력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
본래라면 산맥에 머물며 적의 숫자를 계속해서 줄이려 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약간 힘에 부쳤다. 때문에 영지로 되돌아왔고, 충렬을 포함한 일행들은 모두 휴식과 더불어 정비하기 시작했다.
‘땅굴은 비상시에 활용한다.’
일단은 놈들이 영지를 밟는 순간, 온갖 함정으로 최대한 괴롭혀 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시스템이 알려왔다.
[적들이 당신의 영지 근처에 도달한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현재 적들의 무리는 북쪽 산맥의 중간 지점을 지난 상태입니다.]
[당신의 특수 상황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영주의 시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주의 시야: 영지의 상황을 영혼의 상태로 높은 하늘에서 전체적으로 볼 수가 있다. 동시에 영지 내에 존재하는 아군에게 음성을 전달하여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영주의 시야를 사용하는 도중에는, 영지 내의 모든 아군의 전투력과 사기가 대폭 상승한다. 다만, 영주의 시야를 사용하면 당신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영지 내의 모든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대신 몸을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었고 말이다.
‘그래도 제법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특히 영주의 시야가 적용되는 동안은, 아군의 전투력이 대폭 상승한다는 설명이 무언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아직 암흑 투기가 회복되려면 한참 남았다.’
시체 폭파의 위력 때문에 소모된 암흑 투기는 좀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어차피 충렬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일단은 사용해 봐야겠어.’
마음을 정한 충렬이 입을 열었다. 현재 충렬은 여관 옆, 넓은 공터에서 수많은 아군들과 있었기에 안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걱정이 들지 않았다.
“영주의 시야를 사용한다.”
충렬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영주의 시야를 사용하였습니다.]
[영주의 시야는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번 취소하면 이번 방어에서는 두 번 다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충렬의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러더니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잠시 후, 충렬은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가상의 영지전을 했을 때랑 비슷하잖아.’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뛰어났다. 영지전을 할 때는 정찰하지 않은 장소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장소가 훤하게 보였다. 다스리는 영지 내에서 사용한 덕분인지, 아주 사소한 곳곳까지도 세밀하게 볼 수가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영지의 근처까지 일정 범위는 완전히 파악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함정의 위치와, 땅굴의 종류, 그리고 방어 시설의 상태 까지도 자세히 표시되어 나타난다.’
영지 내에 보유한 건물들의 상태 또한 정확하게 표시되어 보였다.
그렇게 충렬이 영주의 시야를 사용하자, 영지 내에 존재하던 모든 아군들도 그러한 점을 인식했다. 다만, 모두의 음성은 정신으로 울리며 전달되었다.
[음… 이건……?]
[영주가 우리들을 지켜보게 되었다는데?]
[오, 갑자기 몸에 힘이 넘쳐.]
덕분에 충렬은 무척이나 유리한 시야를 가지고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런 충렬의 시야로 마족들의 정확한 진군 방향까지 확인할 수가 있었다. 충렬은 적들의 움직임을 곧바로 파악해 나갔다.
‘음, 이젠 그냥 아예 하나로 합쳤나 보군.’
1천의 병력이 하나로 뭉쳐서 오고 있었다. 분명 아르타디아의 브레스를 맛보았을 텐데도 저렇게 행동하다니.
‘마족들도 멍청히 반응할리는 없다.’
아르타디아가 역소환이 되었다는 것을 알던지 모르던지, 큰 공격 이후 저렇게 뭉쳤다는 소리는 충분히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조금 곤란한데.’
영지 내에는 현재 수많은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혹여나 놈들이 함정에 당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쪽이 직접 상대해야 할 적의 숫자가 많아진다.’
그렇게 하면 전투가 힘들어질 것이다. 마족들의 병력이 최대한 많이 함정에 당하게 해야 했다.
‘탈것이 있는 이들로 구성해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야겠어.’
시선을 어지럽게 해서 함정에 당하게 할 속셈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충렬은 누구누구를 보낼지 금방 떠올렸다.
“해일, 왕찌엔, 자르딘. 미안하지만 한 번 더 고생을 해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충렬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해일이 물어보았다.
[함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속셈인가?]
“예.”
충렬이 함정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자 셋이 각각 답했다.
[좋은 생각이다. 나 또한 적들이 괜히 뭉쳐서 올 리는 없다고 생각되는군. 아마 뒤쪽에는 뛰어난 마족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맡겨주게나.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면 즉시 움직이도록 하겠네.]
[어차피 언데드라 딱히 지치지는 않습니다.]
그런 셋의 대답에 충렬은 마렉을 불렀다.
“마렉, 당신은 공중에서 대기하다가, 위험하다 싶은 이가 발생하면 도와주십시오.”
[흐흐, 걱정 말라고. 여차하면 발키리를 소환해서 즉시 건져 올린 다음 후퇴시킬 테니 말이야.]
“헬 하운드, 너는 따로 내 지시를 받으며 이동한다.”
[컹컹!]
충렬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레일리, 해골 마법사를 나서는 이들에게 하나씩 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죽어도 상관없는 해골 마법사를 해일과 왕찌엔, 자르딘의 탈것과 헬 하운드에게 하나씩 탑승시킬 생각이었다.
나머지 인원들이 할 일은 이제 방어 시설 내에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지금부터는 충렬이 머리를 쓸 때였다. 충렬은 즉시 자신의 시야로 보이는 일정 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지정한 위치로 각자 이동해 주십시오.”
다행히 충렬이 위치를 지적하자, 지시를 받은 이들은 어렵지 않게 그 장소를 인식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
이제 곧 마족들은 북쪽 산맥을 완전히 넘어올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충렬의 영지 내로 진입한다는 소리였다. 충렬은 놈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해일과 왕찌엔, 자르딘과 헬 하운드를 적절한 장소에 배치했다. 각자의 탈것과, 헬 하운드의 위에는 해골 마법사가 한기씩 탑승해 있었다.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잠시 후, 놈들이 도착하면 계속해서 원거리 공격을 시도하십시오. 짜증남을 느낄 정도로 말입니다.”
[그야 쉽지.]
[알겠네.]
[어차피 해골 마법사가 탑승해 있으니 잘 이동하기만 하면 될 것 같군요.]
“상황을 전체적으로 볼 수는 있지만, 상황이 시작되면 동시에 지시를 내리기는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동 경로는 대충 표시해 두었으니 유동적으로 움직임을 부탁드립니다.”
그런 이유로 충렬은 고작 넷만 출정시킨 것이었다. 셋은 유동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헬 하운드는 직접 계속해서 주시하며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충렬의 말을 들은 셋이 답했다.
[알겠다.]
[걱정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곧 산맥을 완전히 내려올 마족들에 대해서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