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64화 (164/237)

# 164화.

각개격파

인원이 많다 보니, 여관에서는 회의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넓은 장소가 필요한 탓에 혼돈의 신전 앞에서 일행들은 다크엘프의 모습으로 변한 아르타디아의 말을 들어갔다.

마족들의 위치는 제법 멀었다. 광활한 북쪽 산맥 너머의 어느 황무지와 같은 장소에 도달해 있었다.

“이틀 정도 뒤에 영지에 도착할 거리다. 그런데 놈들의 군세가 평범치 않아. 대충 2,000 정도가 되는 숫자다.”

순간 충렬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숫자가 2천이나 된다고? 숫자로만 보아서는 도저히 막을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엄청 많이도 왔군요.”

아르타디아의 말에 박해일의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해골로 이루어진 그의 안면이 오래간만에 찌푸려졌던 것이다.

[이런, 저번에 온 녀석들은 단순한 정찰조에 불과한 녀석들이었군.]

그렇지만 아르타디아가 나쁜 소식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해볼 만한 싸움이야. 마족들의 숫자는 고작 100에 불과하니까.”

“그렇다면 나머지 1,900은 뭡니까?”

“마수들이지.”

마수들이라. 그녀가 싸워볼 만하다고 말한다면 아마 마족들보다는 약한 존재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나 많다. 그냥 전투를 하게 된다면 많은 피해가 발생하게 될 텐데.’

적지 않은 인원들이 죽어나갈 것이리라. 하지만 충렬은 영지의 인원이 사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때마침 최근에 합류한 김시민이 좋은 아이디어를 말했다.

[놈들이 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괴롭혀 주면 안 됩니까?]

그 말에 힌트를 얻은 것일까? 박해일이 그의 말을 이어갔다.

[좋은 생각이다. 북쪽 산맥이라면 순찰을 위해 수도 없이 돌아다닌 장소지. 그곳에서 놈들을 최대한 각개격파하면서 숫자를 줄여 나가야겠어.]

충렬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다만 충렬은 북쪽 산맥의 지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박해일부터 시작해 왕찌엔과 자르딘은 그곳의 지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침 아르타디아가 좋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괜찮은 생각 같군. 놈들도 한꺼번에 모여서 오는 것이 아니다. 종류가 다른 마수들끼리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대충 200단위로 나뉘어서 오는 중이지.”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충렬은 지금이 적기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산맥을 넘어오게 된다면 분명히 다시 뭉치겠지.’

흩어져 있는 것은 잠시일 뿐. 충렬을 치기 직전에는 반드시 모일 것이었다.

‘놈들이 뭉치기 전에 무조건 쳐야 한다.’

이쪽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답이었다. 이대로 영지를 버리고 멀리 도망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저들은 암흑 투기를 찾기 위하여 계속해서 따라올 터였으니까.

‘특히나 힘겹게 일군 영지를 잃기는 싫다.’

그렇다면 싸워서 적들을 섬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

아르타디아는 진군해 오는 마족들에게 당장에라도 브레스를 사용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최대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놈들이 영지에 도착했을 때가 적기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드워프나 신전의 인물들은 방어를 맡았다. 물론 기동성을 살릴 수 없는 이들도 모조리 방어를 하게 두었다. 북쪽 산맥으로 향하는 것은 기동성을 살릴 수 있는 인원들이었다.

그렇게 별동대의 역할을 맡은 무리는 크게 세 무리로 나뉘었다.

해골 기사 빈센트를 위시한 죽음의 기사들, 그리고 머렐을 대표로 둔 해골만세 혈맹. 마지막으로 충렬의 무리였다.

크게는 그렇게 세 무리로 나뉘고, 박해일과 왕찌엔, 그리고 자르딘이 북쪽 산맥의 지리를 안내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1. 이충렬과 네임드 일부, 자르딘]

[2. 빈센트 외 죽음의 기사 다섯, 왕찌엔]

[3. 머렐 외 해골만세 혈맹원들, 박해일]

그런데 빈센트는 죽음의 기사 외에 모든 병력을 두고 움직였다. 그렇기에 제일 적은 인원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걱정하지 않았다. 죽음의 기사 다섯이 얼마나 강력한지, 중간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데프론의 묵직함보다 더욱 무거운 공격이 가능했고, 샤오링 정도의 빠르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더군다나 다크 오러로 몸을 보호하는 수준에까지 올라있었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은 스스로의 몸을 빼낼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혈맹원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평소 행동을 보아도 각자의 손발이 이미 수준급으로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아마 알아서 잘 대처하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혈맹에는 박해일을 붙여주었으니, 여차하면 무슨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대처할 것이리라.

그런 이유로 충렬은 자신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남을 신경 쓴다고 해도 소용은 없었다.

“그럼, 출발하죠.”

지금부터는 신속함만을 추구해야 했다. 빠르게 북쪽 산맥에 도착할수록 최대한 많은 마족들과 마수들을 처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북쪽 산맥은 넓었다. 때문에 영지에서 출발한 세 무리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나아갔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었다.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는 아르타디아가 하늘에서 적들의 위치를 알려줄 것이었으니까.

***

지상으로 이동하니 북쪽 산맥의 초입부를 지나 끝자락에 다다르기까지 꼬박 하루 정도가 걸렸다. 너무 급하게 이동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며 이동해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늦지 않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마족들이 북쪽 산맥으로 진입하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물론 마족들이 지나갈 만한 장소에서 몸을 숨기며 대기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박해일의 뒤를 따라온 머렐과 그 혈맹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굳게 쥐었다.

군주라는 직함이 있었지만, 혈맹원들은 머렐과 거리낌 없이 대화했다.

“이봐, 머렐. 긴장하지 말라고.”

엄청나게 긴장을 한 탓인지, 머렐의 손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혈맹원들은 그가 긴장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기에 그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또 떠나간 동료들이 떠오른 것인가? 그들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사실 머렐은 여기까지 오면서 동료들을 잃은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들 좋아서 한 일이라지만,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이번의 전투에서도 몇몇을 잃을까봐 스스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들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찮다. 도전자의 몸으로는 그를 위해 죽는다고 한들 여한이 없어.”

여기서 말하는 ‘그’는 이충렬을 말하는 것이었다. 충렬이 없었다면 어차피 죽었을 몸이었다는 생각으로 다함께 머렐을 다독였다. 해골만세 혈맹원들에게 있어서 신좌로의 도전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단지 도전자의 몸을 유지하는 한은, 재밌게 즐기다 가기로 했다. 물론 충렬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듣던 박해일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과는 그다지 안면이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애초에 박해일은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특유의 말투로 뒤따라온 이들을 질책할 뿐이었다.

[벌써부터 누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집어 치워라. 내가 알려주는 것만 제대로 인지해. 그렇게 한다면 여기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게 할 테니까.]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박해일의 첫마디가 너무나 뜻밖이었던 탓일까? 혈맹원들이 껄껄 웃으며 머렐과 박해일을 번갈아 보았다.

“하하, 말투가 시원시원 하구만.”

“그래 머렐, 걱정하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해 싸우자고.”

“네크로맨서님께서 대리인으로 정하신 분이 함께하고 계시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든든한데?”

하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였다.

공중에서 적의 위치를 가늠하던 아르타디아가 박해일을 포함한 혈맹원들에게 음성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쪽으로 한 무리의 적이 간다. 대충 4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남았군. 마수의 종류는 카우다. 소같이 생긴 외모에 거대한 몸집을 가진 녀석이지. 마법적인 능력은 없지만 물리적인 파괴력이 뛰어나니 참고하도록.]

한 무리의 적이라면 마족 열에 마수 190마리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소식을 알려준 아르타디아는 즉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향했다.

아르타디아가 정보를 알려주고 떠나자, 화기애애할 뻔했던 혈맹들의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겉으로는 침착한 척을 했지만 이들도 사람인데 긴장되지 않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검치호에 올라타 있는 박해일의 등이 보였다. 이상하게 그 등을 보자, 혈맹원들은 자신들의 긴장이 차차 옅어지는 것을 자신들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

아르타디아는 빈센트에게도 마찬가지로 마족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빈센트는 간단히 고맙다는 표시와 함께 죽음의 기사들과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나갔다. 아르타디아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충렬이 있는 장소였다.

그녀는 당장에 브레스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드래곤의 모습으로 싸우기로 했다. 마수들 따위를 상대하는 데에는 거대한 덩치가 제격이었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다크엘프의 몸으로 변했다. 드래곤의 모습으로는 잠복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후에 드래곤의 모습으로 전투를 벌일 때는 마족들을 주의해야 했다. 어떤 마족이 왔느냐에 따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예전과 달리, 아르타디아 또한 혼자는 아니었으니까.

“이쪽을 향해 오는 마수들의 종류는 다크베어들이다. 조금 골치 아픈 녀석들이지.”

“다크베어라고요?”

“그래. 마계에서 살아가는 곰의 종류인데, 무척이나 사납고 목숨 줄이 질기다. 웬만큼 칼질로 도륙해도 잘 죽지 않을 정도지.”

그렇게 충렬과 네임드들은 이쪽으로 향하는 마수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곧 들이닥칠 녀석들에 대비했다.

***

마족들의 수준은 이전에 아르타디아의 토벌에 참여하면서 만난 마족들의 수준이 아니었다. 같은 등급이라도 이곳으로 온 마족들의 실력은 한층 더 향상되어 있었다. 아르타디아는 그 점을 일행들에게 주지시켰다.

“긴장해라. 이번에 상대할 마족들은 쭉정이들이 아니다.”

그렇게 아르타디아가 도착하고서 대략 2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마침내 마족들이 마수들을 이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흩어져서 오는 것이 정말이었는지, 눈앞에 보이는 마족들과 마수들의 숫자의 합은 총 200이었다.

충렬은 현재 모든 네임드들과, 헬 하운드, 그리고 악티니언까지 대기시켜 놓았다.

충렬과 그 무리들은 마족들과 마수들이 산맥에 진입할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놈들은 이쪽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족들은 산맥에 오르기 시작했다.

충렬은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때가 찾아왔다.

충렬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도 선두로 나서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이 땅을 박찼다. 그 뒤를 데프론과 샤오링, 제레미가 뒤따랐다. 마렉과 레일리, 그리고 아르타디아는 먼저 앞서나간 이들을 보조하기 위해 움직였다. 헬 하운드와 악티니언은 마렉과 레일리 등을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따라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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