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63화 (163/237)

# 163화.

선행은 되돌아온다

영지의 방어를 위해서 준비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이틀이 흘렀다.

방어 시설이라고 해보았자 거창하게 무언가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간단히 돌을 쌓고, 곳곳에 목책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으니까. 그나마 언데드라서 쉬지 않고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방어 시설은 아직도 계속 만드는 중이었다.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

드워프들은 열심히 영지의 인원들이 무장할 수 있도록 무기를 만들었고, 각종 소모품들을 비축했다. 비전투 인원은 비솔라를 통해 머메이드 왕국으로 피신을 시켰다.

왕찌엔과 자르딘은 해골 경비병을 두 부대로 나누어 항시 순찰을 도는 중이었다. 마족들이 일주일 내로 온다고 했지, 딱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맞추어서 오는 것은 아니었으니 대비는 해야 했다.

혼돈의 신전에 영지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 믿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족들에 대한 대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본 드래곤으로 모습을 변한 아르타디아. 그녀가 영지를 벗어나 주변을 날아다녔다. 혹시나 수상쩍은 낌새가 있을까 싶어서다.

그렇게 마족들에 대한 대비는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시스템이 충렬에게 심상치 않은 정보를 알려왔다.

[영지 방어에 참여하기 위하여 다수의 도전자들의 무리가 곧 도착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의아해했다.

‘도전자들이 방문한다고?’

일단 적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침 충렬의 근처에서 방어 시설을 건설하는 현장을 감독하던 박해일도 시스템의 음성을 들었다.

[무슨 일이지? 도전자들이 지원을 온다는 소리인가?]

그도 충렬과 마찬가지로 의아해했다. 영지의 방어에 관련이 없는 도전자들이 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의 음성이 끝나고 얼마 후, 도전자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왔기 때문이다.

[해골만세 혈맹의 군주, 각인사 머렐이 도착하였습니다.]

[해골만세 혈맹원 ‘평화의 치유사’가 도착하였습니다.]

[해골만세 혈맹원 ‘철벽 가디언’이 도착하였습니다.]

[해골만세 혈맹원 ‘도굴꾼’이 도착하였습니다.]

[해골만세 혈맹원 ‘지식 탐구자’가 도착하였습니다.]

[해골만세 혈맹원 ‘괴수 연구가’가 도착하였습니다.]

[해골만세 혈맹원…….]

…….

시스템이 알려오는 정보를 살피니 한 단체를 이룬 도전자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도전자들이 단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도 방금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룬 단체의 이름이 뭔가 이상했다.

‘해골만세 혈맹?’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궁금증이 너무나 많이 생겼다. 그러나 그 모든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할 수 있었다.

***

각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내가 충렬의 앞으로 왔다. 그는 갈색 머리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평범한 서양인이었다.

물론 그의 직업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인 ‘해골만세’ 혈맹의 군주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해골만세 혈맹의 군주, 각인사 머렐>

충렬의 앞으로 다가온 그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네크로맨서님. 머렐입니다.”

꽤나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이동해 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어디서 본 적이 있냐고 물으려는 찰나, 머렐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실 겁니다. 엄청 예전에 만났으니까요. 그래도 저희는 혈액 공장에서 구출을 받았을 때, 그때 보았던 네크로맨서님의 얼굴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충렬의 기억이 드디어 돌아왔다. 정답은 혈액 공장에 있었다.

‘그래, 기억났다. 전에 이곳의 영지를 얻기 전, 뱀파이어들의 혈액 공장에서 구출한 도전자들이다.’

너무나 예전의 일이었다. 설마 그때 구출한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오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이 머렐이라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그냥 겸사겸사 그들을 구해주었을 뿐, 딱히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충렬은 지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구출한 인원이 대충 50명 정도였나?’

지금 보이는 인원은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어쨌거나 도와주러 온 이들이 분명했다. 어떻게 도와주러 올 수 있었는지, 혈맹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다.

‘일단은 안에서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것 같군.’

충렬은 우선 그들을 여관으로 인도하기로 했다. 물론 입 발린 멘트는 서비스였다. 뒤늦게 기억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렇게 찾아오실 줄은 몰라서 당황했네요. 일단 안으로 가시죠.”

***

충렬은 머렐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혈맹은 게임에서 길드나 클랜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실제로 길드나 클랜을 형성한 이들도 다수 존재한다고 했다. 혈맹은 그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충렬에 의하여 구출되고 얼마 후, 혈맹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하여 혈맹을 만들었고, 혈액 공장에서 함께 구출된 다른 이들을 찾아 혈맹에 가입시켰다고 했다.

가입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혈맹의 취지는 강해져서 충렬을 돕자는 목적이 있었고, 모든 이들이 그때의 악몽 같은 시간에서 자신을 구해준 충렬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이곳에서 죽는다면 어딘가의 주민이 된다고 하기에, 도전자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은 충렬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다.

머렐은 다행히도 그때 구출된 모든 이들을 찾아 혈맹에 가입시킬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혈맹을 만들고 부터는 일반 임무와는 달리, 대규모의 인원이 필요한 임무에 투여되고는 했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사망했다고 했다. 해골만세 혈맹에 남아 있는 인원은 이제 고작 30명뿐이었다. 그들은 혈액 공장에서 함께 구출된 동료들만 받았을 뿐, 다른 도전자들은 따로 혈맹원으로 받지 않았다. 그래서 갈수록 그 인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20명은 도중에 안타까운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혈맹원을 모은 그는 충렬을 도우면서 임무를 수행하고 싶어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혈맹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 영지로 오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시스템에게 관련된 임무를 달라고도 해보았지만, 혈맹의 규모로는 네크로맨서님에게 접근이 쉽지 않더군요.”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시스템이 알려왔습니다. 이곳에 대규모 침공이 발생하니 방어 임무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요.”

그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대충 이들이 어떠한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죄송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죄송할 문제요?”

“네. 그… 저희들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십시오.”

“무슨 부탁입니까?”

도대체 무슨 부탁일까? 그러나 충렬의 입장에서는 그가 말하는 부탁이 별것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득이 되는 부탁이었다.

“혈맹의 본부를 이곳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영지의 방어에 참여 할 ‘해골만세’ 혈맹에 영주의 입장에서 보상을 내릴 수 있습니다.]

[혈맹에서 요구한 보상: 혈맹 본부 입주권]

[임무의 성공 시, ‘해골만세’ 혈맹의 본부가 당신의 영지에 안착하게 됩니다.]

[영지 내에 혈맹의 본부가 생기면, 그들로부터 정기적인 카르마를 징수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혈맹 본부 입주권을 약속하시겠습니까?]

누가 보아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카르마를 정기적으로 징수할 수가 있다니.’

복덩이가 굴러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충렬은 약간 신중하게 생각했다.

‘혹시나 이들이 사고를 치면 어떡하지?’

어떻게 보면 이들은 주민이 아니었다. 물론 사고를 칠 인물들이 당장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것은 또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은 충렬의 가려운 부분을 곧바로 긁어주었다.

[당신의 영지에 속한 혈맹의 군주와 그 혈맹원들은 당신의 뜻에 반하는 일을 일체 행할 수 없습니다.]

추가적인 시스템의 설명에 충렬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입가에 미소를 만든 충렬이 입을 열었다.

“혈맹의 본부를 이쪽으로 옮겨주신다면 저야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충렬의 허락이 떨어지자, 머렐을 포함한 그 혈맹원들에게 시스템이 알려왔다.

[이곳의 영주, 네크로맨서 이충렬이 당신들에게 혈맹의 본부를 이곳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습니다.]

[그를 도와 마족들의 침공에서 영지를 수호하십시오.]

[영지의 방어에 성공하면, 당신들은 앞으로 이곳을 본부로 삼아 활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혈맹원들이 오고난 후, 또다시 3일의 시간이 흘렀다.

작명 센스가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했지만, 해골만세 혈맹원들이 도착하자 영지의 방어는 한층 더 확고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각종 직업들이 몰려오다 보니 확실히 나쁘지는 않다.’

특히나 최근에 주민으로 합류한 김시민을 선두로, 각종 함정에 조예가 깊은 직업을 가진 이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적들이 침투해올 루트를 파악하고, 곳곳에 별 희한한 함정들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방어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도굴꾼이라는 직업을 가진 도전자 덕분에 특별한 전략도 가능했다.

‘땅굴이라니.’

덕분에 적의 시야를 피해 영지의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그의 스킬로 인하여 땅굴은 생각 외로 금방 만들 수가 있었다. 물론 시간이 촉박했기에 그리 완성된 땅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차하면 확실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직 설명할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사들을 모아서 온다는 빈센트. 그가 많은 병력을 끌고 왔다.

[흠, 늦게 온 것이 아닐까 했는데, 적절한 때에 왔나 보군.]

도대체 얼마나 긁어모아 온 것일까? 충렬의 영지로 온 빈센트의 뒤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언데드가 도열해 있었다.

[해골 왕의 지원 병력]

[대표: 해골 기사 빈센트]

[죽음의 기사: 5]

[개조된 방어형 좀비: 50]

[불굴의 해골 병사: 300]

그의 도착에 충렬과 함께 있던 죽음의 기사들이 투정을 부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오십니까.]

[우리들만 이곳에 버리고 도망친 줄 알았네.]

그들의 투정에 빈센트가 검을 들었다.

[오랜만에 교육을…….]

하지만 빈센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아연실색하며 충렬의 뒤로 몸을 숨겼다.

[선배님. 농담이지 말입니다.]

[하하, 이거 참 이곳의 영주님께서 보시는데 살살하시지.]

어쨌거나 빈센트의 도착에 충렬이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병력을 지원해 주셔도 되시는지…….”

충렬의 말에 빈센트가 말했다.

[왕궁의 병력은 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제대로 된 이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나마 이것밖에 데리고 오질 못했다. 마족들을 상대하는 데 일반적인 녀석들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그가 말을 이어갔다.

[어쨌거나 방어 준비를 할 것이 아직 남아 있나? 도와주도록 하지.]

그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은 여전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디가 필요하냐면…….”

그렇게 그의 도움을 받으려는 때였다. 영지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정찰을 하던 아르타디아. 그녀가 충렬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충렬, 마족들을 발견했다.]

아직 충렬의 영지에 마족들이 직접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마족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먼저 파악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