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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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령이라도 아르타디아의 물리적인 공격은 무척이나 효과적으로 피해를 주었다. 아르타디아 자체의 몸집이 크다 보니, 드래곤의 몸으로 후려치면 정령의 몸을 이룬 물이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면적이 커서, 켈드론이라는 정령의 몸이 수복되기까지는 제법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해서 아르타디아가 완전히 유리하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반대로 정령의 공격 또한 그녀에게 평범함 이상의 피해를 입혔다. 엄청난 수압이 들어간 공격은 드래곤의 뼈조차 부술 정도로 막강했으니 말이다.
나머지 정령들쯤이야 충렬의 네임드들이 잘 상대하는 중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등한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작 문제는 충렬과 김시민, 둘이었다.
그렇게 둘이 대치하기 시작하였을 때였다.
김시민은 충렬을 상대하기 전, 먼저 오염된 정령들을 도울 생각으로 광범위 스킬을 사용하려 했다.
“타락한 자들의 늪…….”
그러나 그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김시민이 함부로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도록 충렬이 그를 향해 짓쳐들었기 때문이다.
암흑 투기를 하체에 한껏 집중시킨 충렬이 땅을 박찼다.
파밧!
앞으로 나아가는 충렬의 두 주먹에, 엄청난 양의 암흑 투기가 응축되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상대를 후려칠 듯이 들이치는 그 모습에, 김시민은 어쩔 수 없이 언데드들에게로 향한 스킬 사용을 취소했다.
그러더니 곧장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어둠의 장막.”
그러자 그의 앞으로 검은색의 장막이 나타났다. 충렬은 저 스킬에 대해 아르타디아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공격 자체를 집어삼켜 무효화시키는 능력임을 말이다. 하지만 충렬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암흑 투기라면 저 장막을 부숴 버릴 수 있다.’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저런 마법적인 능력을 상대하는 것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암흑 투기였으니까.
그렇게 잠시 뒤. 섬광과 같이 들이치는 암흑 투기와, 그런 암흑 투기를 방어해 내기 위한 어둠의 장막이 충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둘이 충돌하자 당장 변화가 나타난 것은 어둠의 장막이었다. 어둠의 장막은 충렬을 전혀 집어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쩌저적!
금이 가기 시작한 어둠의 장막은 들이치는 충렬을 거부한다는 듯이 연신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암흑 투기의 거친 힘이 너무나 광포했기 때문이다.
충렬은 자신을 밀어내려는 어둠의 장막을 연신 두드렸고, 결국 승리한 것은 충렬의 암흑투기였다. 어둠의 장막은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챙그랑!
어둠의 장막이 산산조각 나자 김시민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그러나 그의 당황도 잠시뿐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 김시민이 곧바로 두 번째 스킬을 사용했다.
“부패의 손!”
동시에 그의 손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충렬은 당연히 저 스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근처에 다가가면 분명히 피곤해진다.’
때문에 김시민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믿는 구석은 바로 라이프 드레인이었다.
김시민과의 거리가 일정 거리 이내로 좁혀지자, 충렬의 라이프 드레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라이프 드레인이 당신에게 적대적인 ‘타락술사 김시민’에게 적용됩니다.]
[그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빨아들입니다.]
[대상과의 거리가 6미터 50센티미터를 초과하면 스킬은 자동적으로 취소됩니다.]
그렇게 연결된 라이프 드레인은, 김시민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하지만 충렬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시민의 능력이었다. 충렬은 아직 김시민이 가지고 있는 부패의 손에 숨겨진 모든 기능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능력에 대해서 이제 알게 될 차례였다.
김시민은 자신의 생명력이 빨리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침착시켜 갔다. 그러더니 두 눈으로 충렬을 노려보며 부패의 손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충렬은 의아함을 느꼈다.
‘아르타디아가 알려준 것 말고도 다른 능력이 있는 것인가?’
하기야, 아르타디아도 순식간에 당하고 역소환이 되었다. 당한 것 이상의 것은 알지 못하리라.
하지만 충렬의 의문은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손을 움직인 김시민이 양손으로 충렬의 양 팔을 잡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실제로 잡힌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잡힌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도전자 김시민의 부패의 손이, 당신의 팔을 옥죄어옵니다.]
그 이후로 들려오는 시스템의 음성은, 아르타디아가 당했다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옥죄어진 당신의 팔이 썩어갑니다.]
[먼 거리에서 당했기에, 썩어가는 속도가 조금 느립니다.]
분명 닿지도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김시민의 손은 공간마저 무시하며 충렬에게 타격을 입힌 것이다. 아르타디아의 설명과는 달리, 급속도로 썩어가지는 않았다.
‘거리에 반비례하는 대미지를 입히는 스킬인가.’
아마 그런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버틸 만했다. 특히나 충렬은 곧 상황이 매우 유리해졌음을 알 수가 있었다. 분명히 팔이 썩어 들어가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라이프 드레인이, 썩어가는 양쪽 팔을 순식간에 복구시켜 주었다.
[라이프 드레인으로 흡수한 생명력을 이용하여 부패하는 신체 부위를 회복시킵니다.]
충렬의 몸이 썩을 것 같다가도 곧바로 회복해 버리자, 김시민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제기랄.”
그의 표정을 보니 부패의 손을 제법 많이 믿었던 것 같았다.
더군다나 김시민이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충렬의 상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렬은 부패의 손에 당했던 양 팔에 암흑 투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암흑 투기가 부패의 손에 당한 저주를 집어삼킵니다.]
[부패의 저주가 사라집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것은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김시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까지 이러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안 되겠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가 거리를 벌려 도망치자 그에게 적용되었던 라이프 드레인도 취소되었다. 순간 그의 행동에 충렬이 당황했다.
‘싸우지 않고 도망간다고?’
충렬이 당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지금까지의 적들은 도망가려는 행위 자체를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충렬은 자신도 모르게 그만 쫓아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충렬은 곧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했다.
‘일단 뒤쫓지는 않는다.’
섣불리 뒤쫓을 수는 없었다. 마렉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고 있었다. 생각 없이 쫓아가다가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당할 수가 있다. 그럴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정령들을 정리하고, 다함께 추적하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애초에 뒤쫓을 필요가 굳이 없는 임무였다.
‘그래, 반드시 그를 처치할 필요는 없지.’
임무를 완수하는 방법은 오염된 정령들을 모조리 퇴치하는 것, 또는 타락술사의 처치였으니까.
‘일단은 모든 정령들을 처치하는 쪽으로 가야겠어. 그렇게 한다면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놈이 다시 나타날 것이니까.’
만약 막으러 오지 않는다면, 이쪽은 편하게 정령들만 처치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되었다. 반대로 그가 막기 위해서 온다면 그를 처치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되었다. 한번 붙어보니 그를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쨌거나 생각을 정리한 충렬은, 네임드들을 돕기 위해 정령들의 토벌에 합류해 갔다.
그렇게 김시민과의 두 번째 대결은 충렬의 승이었다.
***
충렬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김시민은 현재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가고 있었다. 전투는 잠시였지만 그의 모습은 무척 초췌했다. 검은색 후드 안에 감추어진 그의 얼굴이 비쩍 말라 버려 있었다. 라이프 드레인에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그의 호흡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헉. 헉.”
김시민은 오염된 정령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것을 보고선 표정을 구겼다. 자이언트 켈드론은 아직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자신의 임무는 실패였다.
솔직히 오염된 정령들이 많이 죽어나가든지 말든지 자신은 상관이 없었다. 한 마리의 정령만 살아 있으면 됐다. 그놈을 중심으로 계곡을 다시금 오염시키면 됐으니까. 혹시 몰라 다른 장소에 숨겨둔 오염된 정령들 역시 무사히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시민은 하염없이 시간을 끌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끝장을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 귀찮은 줄다리기를 이어나가야 할 뿐이었다.
그리고 김시민은 충렬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을 때,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고 움직였다. 급하게 이동했던 탓이다.
본래 김시민의 직업 특성상,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김시민은 상대를 어느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결과는 처참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한국인이었군.’
한국인 도전자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같은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을 만나니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 몸이다.’
김시민은 어느 정도까지 도망치자 로브를 잠시 벗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몸을 살폈다. 신기하게도 김시민의 몸 곳곳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의 징그러운 괴물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단순한 문신이 아니었다. 괴물들의 그림은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보였다.
“벌써 몸 전체까지 퍼져 버렸군.”
그의 몸 곳곳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그의 직업 특성 때문이었다. 타락술사라는 직업을 얻으면서 다른 도전자와는 달리 스스로의 몸을 좀먹게 되었다. 어둠의 괴물들이 가진 힘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 힘이 사용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도전자라도 인간의 몸으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죽으면 어딘가의 주민이 된다고 하지만 김시민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김시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결코 주민으로 되살아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결코 죽을 수 없다. 죽게 되면 나의 영혼이 어둠의 괴물들에게 먹히는 처지이니까.’
때문에 더더욱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 길만이 살길이었다.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김시민은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강구해 나가기 시작했다.